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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아무 흔적도 없는 그러나 슬픔이 지나간 자리 ♪♬"

엄마·아빠와 동화책을 읽던 여섯 살짜리 막내딸은 '흔적'이라는 단어를 발견하자 이렇게 흥얼거린다. 부모의 노래 '슬픔의 자리' 가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부모의 기타 연주가 더해지고, 집에선 합창이 울려퍼진다.

최근 자택 인근 망원동에서 만난 부부 포크 듀오 '선과영' 멤버 복태(40·박선영)와 한군(32·한겨레)은 "이 장면 하나만으로 진짜 시간과 돈을 들여서 앨범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미소지었다.

선과영이 최근 발매한 정규 1집 '밤과낮'은 근사한 '우리식 성인가요'다. 뽕짝과 트로트로 대표되는 한국식 성인가요보다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올드팝, 어덜트 컨템포러리를 자산으로 삼았다.

열한 살 딸·열 살 아들·막내딸 그리고 반려견을 돌보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음악생활을 이어온 부부가 자신들과 한 시대를 함께 경험한 동년배들에게 전하는 '어른들의 노래'. 인생에 대해 터무니없는 희망 또는 절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삶은 언제나 거기 있을 것이라는 '뭉근한 위로'를 전한다.

이들 부부가 첫 정규 음반을 발매한 건 전신 '복태와 한군'으로 2010년 처음 활동을 시작한 이래 12년 만. "음악에 대한 자존감이 없었는데 그간 해온 단단한 근거가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부부와 나눈 일문일답.

-올해 선과영으로 팀명을 바꿨습니다.

"제가 혼자서 2008년부터 활동을 시작(자가 제작한 데뷔 앨범 '헬로, 복태(Hello, Boktea)' 발매)했고 2010년 한군을 만났죠. 팀 이름은 사실 가칭이었어요. '이름을 지어야지 지어야지' 하다가 고착화가 돼 중간에 바뀌기도 애매했죠. 제대로 된 팀명은 앨범을 낼 때 정하기로 했어요. (2011년 결혼 이후) 2012년에 저희 사연이 KBS 1TV '인간극장'('복태와 한군,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오면서, 자연주의·유기농 이미지로 각인돼 공연에선 주로 밝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번 음반에 실린 노래가 진짜로 저희가 부르던 노래예요."(복태)

"사실은 연주하고 싶은 건 딥(deep)한 노래였어요. '슬픔의 자리' 같은 노래요. 그런데 저희가 육아를 하면서 음악을 하기 때문에 생계와 공연이 밀접하고 그런(밝은) 이미지도 굳혀갔죠. 다른 뮤지션과 교류하려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해요.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한다든지 같은 흐름 안에 있어야 하는데 저희는 공연을 마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환경이 이어졌죠. 인디 신(scene)이 좁지만 저희는 그마저도 거기에 걸치지 않고 정말 독립적으로 활동했어요."(한군)

"그러다 (이번 앨범 프로듀서인) 단편선을 만나 같이 앨범을 준비하면서 서로 뜻이 맞았어요. '팀명을 바꿨으면 좋겠다'도 그 중 하나였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어떠냐고 해서 '복태와 한군'으로서 해체를 선언하고, 새 이름으로서 재시작을 알리자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죠. 팀명은 제 본명인 '선영'에서 따왔어요. 선과 영 사이에 과를 붙임으로써 '라인'(line·선)과 서클(Circle·영)이라는 뜻이 만들어졌어요."(복태)

"팀명은 시간이 흐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직선적 시간적 흐름과 순환적 흐름의 시간 이야기. 순환은 계절 또는 공전·자전일 수 있어요. 그리고 1년, 2년, 3년 4년, 24시간은 직선적 시간의 흐름이죠. 그래서 이런 이름이 나오기도 했어요."(한군)

-단편선 프로듀서님을 만나고 편곡 등의 부분에서 좀 더 화려해진 거 같아요.

"저희가 목말라하던 갈증을 정확히 터치해주셨어요. 포크음악이지만 조금 더 다양한 악기 편성들로 여러 향기와 색깔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둘이 해오다보니 주변에 뮤지션 풀이 많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기타 한 대에 노래, 피아노나 첼로 정도였죠. 드럼이나 베이스 같은 리듬 부분에 대해 항상 고민이 많았는데 이번 앨범에 실린 11곡 모두 리듬이 다채로워요. 그런 면에서 즐겁게 했죠."(한군)

"앨범에 실린 시간의 스펙트럼이 넓어요. 멀게는 2007년에 만들어진 곡도 있고, 대부분이 2008년과 2010년 사이에 만들어진 곡들이에요. (계피가 피처링한) '난 그냥 걸었어' 내레이션을 올해 쓰면서, 꽤 오래된 역사가 담긴 앨범이 됐죠. 처음엔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봐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일관성이 없을까 염려가 됐거든요. 단편선과 작업을 하다 보니 하나의 궤를 같이 하는 지점이 생겼어요. '나의 아주 깊은 마음'은 서정적인 전통 포크였는데 한군과 단편선이 만지다 보니 일렉트릭한 방향으로 가게 됐죠. 그게 소란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장치가 됐어요."(복태)

-6번 트랙 '나의 아주 깊은 마음'의 후주에서는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를 일부 샘플링했는데요. 1950~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Nouvelle Vague)의 정점이자 영화 혁명가로 통한 고다르는 선과영 앨범 발매 이틀 전에 안타깝게 돌아가셨어요.

"단편선과 60년대 프랑스 고전 영화, 프렌치팝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프랑스 음악에는 으레 내레이션을 사용하는 게 기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계피 씨의 내레이션이 들어갔죠. 사운드 트랙 미장센도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고 적절한 부분을 찾아냈죠. 때마침 저도 포크 말고 일렉트로닉이나 앰비언트 음악을 시도하고 싶었거든요. 장비를 사들이고 드럼 머신으로 이것저것 잼을 하다가 '나의 아주 깊은 마음' 뼈대가 만들어졌어요."(한군)

-앨범엔 삶에 대한 고민이 많이 담겨 있어요. 곡들을 하나의 꿸 수 있는 모티브가 있다면요?

"2007년 노래를 처음 만들게 됐을 때 감정은 외로움이었어요. 그런데 제 외로움을 드러내는 게 부끄러워서 다른 무엇의 외로움으로 가장해서 노래를 만들었죠.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거시적인 슬픔으로 조금 더 방향을 넓히고 있더라고요. 앨범 제목이 '밤과낮'인데 정확히 '밤이다 낮이다'로 나뉘는 게 아니라 밤과 낮 사이에 존재하는 공허함에 대해 노래했어요. 제가 연극을 전공했는데 슬픔을 연기하는 배우가 거기에 완전히 빠져 표현하면, 오히려 관객은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슬픔을 표현하는 사람은 거리를 둬서 슬픔을 표현해야 한다는 거죠. 노래를 만들 때도 그런 마음으로 해요. 제가 거리를 둬야 듣는 분들이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틈이 생긴다고 생각해요."(복태)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저는 그릇을 빚고 복태 씨는 거기에 음식을 담는 거죠. 평소 복태 씨는 가사를 쓰고 문득 멜로디가 떠오르면 같이 앉아서 코드를 만들어요. 결국 남는 곡은 후딱 만들어낸 노래예요. '해가 지고 바람 불면'은 15분 정도가 걸렸어요."(한군)

"계속 사고를 해요. 단어를 수집하고 잊지 않고 있다가 연결시키는 거죠. 응축된 것이 튀어나와 조립하는 시간이 15분인 셈이죠."(복태)

-세 아이와 반려견을 돌보고 생계를 위해 공연, 예술교육, 바느질 등을 업으로 삼는 정말 바쁜 스케줄 가운데 어떻게 영감을 얻나요?

"저희도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습관이 잘 들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순간 순간 영감을 메모해요.그 한문장씩 저장이 된 것들이 연결이 돼 가사가 됩니다. 음악 작업할 시간이 확보돼 작정하고 만드시는 분들이 부럽긴 해요."(복태)

"음반 만드는 건 즐거운 일이고 소원하던 일이니까 힘들지 않아요. 음악 작업 시간 확보를 위해 아이들을 친구 집에 맡기고 장모님 댁에 맡기고 데리고 오는 과정이 힘들었던 거죠."(한군)

"아이들이 '엄마 그게 그렇게 중요해. 우리들과 못 놀고 있는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꿈을 이루기 위해 아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못 보내고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갈등 속에서 10년을 보냈죠. 이 돈(음반 제작비)이면 살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지라는 현실적인 고민도 생기고요. 매일 현타가 오는 거죠. 육아 모드, 음악 모드 스위칭을 빨리 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복태)

"영감은 매일 아침 신보를 들어요. 신문 보듯이. 또 사실 초딩들이 유행을 가장 빨리 알잖아요. 두 초등학생이 있으니까 요즘 유행하는 밈, 짤, 인기 유튜버 등 최신 정보 업데이트가 빨라요. 하하."(한군)

"한군은 음악을 정말 많이 들어요. 습관처럼 디깅을 하죠. 근데 알고리즘을 따라가다보면 1970~1980년대 노래로 수렴돼요. 최근엔 (한국의 전설적인 여성 포크 싱어송라이터인) 방의경 선생님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가 찾아온 뿌리가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복태)

"방의경 선생님의 노래는 맑고 곱고 심플하고 그냥 군더더기 없는 정수예요. 예쁘게 꾸민 프랑스·이탈리아 코스 요리가 있어도 힘들고 괴로울 땐 설렁탕 한 그릇이 최고잖아요. 저희도 그런 식의 심플한 걸 찾아가게 되더라고요. 1972년에 나온 방의경 선생님 '내 노래 모음'을 많이 들었어요."(한군)

-한군 씨는 남원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저의 아버지 기타 연주를 듣고요. 시골 개척 교회 목회를 하신 혁신가셨는데 (들국화가 부른 버전으로 널리 알려진) '사노라면'을 부르시는 걸 중학교 때 듣고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서 초밥 먹을 때 그려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줄이 떠 있는 클래식 기타였는데 말이에요. 이후 김광석, 송창식 선생님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라디오헤드의 사운드 스케이프 실험에 반했죠. 스쿨 밴드하면서 팬티만 입고 연주하고 기타 부수면서 음악적 발광, 발산을 다했어요. 그때 독기를 뺏고 짝궁을 만나 지금은 이런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한군)

-복태 씨는 연극 이론을 공부하셨잖아요.

"원래는 방송국 PD가 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방송반이었거든요. 그런데 예술의 근본은 '연극학'이라는 아는 언니의 말을 듣고,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런데 당시 황지우 총장님도 그렇고 제게 문화기획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마츄어 증폭기(야마가타 트윅스터)를 처음 뵙게 된 거예요. 영화과 조교셨는데, 포크 인디 신의 거목 같은 분이죠. 그 분의 공연을 마주하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자신의 개성이 음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거죠. 이랑 씨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 친구들끼리 모여서 기타를 치고 제가 할 수 있는 말들로 노래를 만들었어요. 독립 출판으로 책도 내고요. 제 음악적 뿌리는 아마츄어 증폭기예요. 졸업할 때 즈음에 음악을 배운 적도 없는데 혼자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안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클럽 빵 오디션을 보기도 했죠. 그러다 한군을 만난 겁니다."(복태)

-이번 첫 정규 음반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정규는 진짜 저희의 숙업 사업이었어요. 앨범을 내는 것이 계속 좌절되고 행사를 위한 공연, 공연을 위한 공연을 하기도 했죠. 예술가로서 창작 작업을 못하다 보니, 끊임없이 갈등도 생겼고요. 근데, 단편선과 (독립 레이블인) 오소리웍스를 만나 지금 이 때가 결국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에 5년 전, 10년 전에 뭔가 했다면 이 만큼 못했을 거예요. 익은 열매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겁니다."(한군)

"그간 근거가 없으니까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두려웠어요. 저희 노래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고 이 과정을 통해 뮤지션으로 성장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게 '거품이 아니었구나'를 확인하게 됐죠. 단단한 근거를 내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자존감도 올라갔어요. 조금 더 동기가 생겼고 노래를 하고 노래를 만들 때 조금 더 큰 책임감과 의무감이 생겼습니다."(복태)

"제일 중요한 건 동료가 생겼다는 거예요. 계피, 홍혜림, 안복진 같은 분들이요. 이전엔 저희가 근거가 부족하니까 이런 분들하고 음악적으로 같이 할 수는 없었어요. 저희가 그분들에 비해 레벨이 낮았으니까요. 이젠 그들이 저희 동료구나라는 걸 자각하게 됐어요. (추천사를 써준) 김목인 씨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저희를 지켜봐주신 분이에요."(복태·한군)

-부부가 같이 음악을 만들고 팀으로 활동하면 어떤 점이 좋나요?

"모든 걸 공유하죠. 삶과 일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어요. 물론 그동안 지지고 볶는 시간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 이만한 벗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럼 없이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죠."(복태)

"최고의 동료예요. 부족한 부분이 채워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해왔죠. 그렇게 각자 포지션을 맡고 있으니 굴러가는 거예요."(한군)

"일과 삶의 경계가 없다는 게 힘들 순 있죠. 공적으로 프로세스를 돌려야 일의 효율이 올라가는데 일하다가 집안 일도 바로 해야 하니까 일에 대해 집중하는 밀도가 낮아질 때가 있긴 해요. 근데 가장 힘든 건 공연과 합주할 때를 잡는 거예요. 한명만 음악을 하면 상대방에게 맡길 수 있는데 저희는 같이 움직여야 하니까 아이들 돌봄이 반드시 수반돼야 하죠. 공연을 잡을 때도 (복태의) 친정 엄마가 시간이 되냐 안 되냐가 중요하거든요."(복태·한군)

-세 아이는 작업하는 걸 매일 매일 지켜봤겠네요.

"아이들에게 음악이 특별한 게 아니에요. 대수롭지 않게 '(음원 플랫폼에) 검색하면 나오네'라고 반응하는 정도죠. 최근 옥상달빛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역시 추천사를 써준) 하림 씨가 저희 노래를 틀어줬는데 '옥상달빛 라디오에 나왔다고? 에이~ 설마!'라고 반응하는 거예요. 옥상달빛은 대단하지만 저희는 엄마·아빠 잖아요 하하. 그런데 셋째랑 동화책을 읽다가 정말 음반 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흔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아무 흔적도 없는 그러나 슬픔이 지나간 자리'라면서 (앨범에 실린) '슬픔의 자리'를 부르는 거예요. 제가 따로 노래 연습을 할 수가 없어 집에서 계속 흥얼거려요. 막내는 제 껌딱지인데, 그걸 계속 듣고 저와 주고 받으면서 노래를 해요. 그러면서 어려운 가사는 아니구나라는 걸 깨닫죠. 저희 노래 타깃이 부녀자이기도 해요. 아이랑 같이 들어야 육아노동자를 위한 노래이기도 해요."(복태)

-10월9일 벨로주 홍대에서 이번 앨범 수록곡 전부를 들려주는 쇼케이스를 연다고요(계피가 게스트로 나온다).

"다른 뮤지션들과 한 시간 반 동안 합주를 즐길 수 있다는 기쁨이 가장 커요. 엄청 무거운 것을 둘이서 짊어지다가 더 많은 이들과 나눠서 드는 기분이에요."(한군)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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