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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영화제작자인 베르나르-앙리 레비가 새 영화 “슬라바 우크라이니(Slava Ukraini;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패배하지 않을 경우 서방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으로 경고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음은 요약.

레비는 러시아군 저격에 대비해 양복 위에 방탄복을 입은 차림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흑해 오데사항에서 러시아 해군이 설치한 수뢰를 제거하는 우크라이나 함정에 오르고, 포격으로 파괴된 수도 키이우의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고, 슬로뱐스크의 우크라이나군 참호를 방문하고, 전쟁에 크게 겁을 먹은 어린 아들을 달래는 어머니를 보면서 말을 잃었다.

74살의 나이에 키이우, 하르키우, 마리우폴 등 러시아 미사일이 쏟아지는 곳을 누비는 레비는 마치 액션 영화 주인공 같은 모습이다. 그는 지난 12개월 동안 예술작품 가득한 파리의 집과 마라케시의 18세기 궁전 휴양지를 떠나 러시아군의 공격을 당하면서 영화를 촬영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유럽의 미래와 전 세계 진보, 서구 문명에 영향을 미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진심 어린 호소라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내가 아는 세상, 내가 자라고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클라우제비츠, 헤겔, 비엔나 문학 등 여러 사상 조류를 언급했다.

사상가를 팝스타처럼 추앙하는 프랑스에서 레비는 사상가, 작가, TV 진행자, 영화 제작자 등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사다. 그의 이름 앞 글자를 딴 B.H.L.이 마치 프랑스 고급 브랜드처럼 취급될 정도다. 유명한 만큼 목소리만 큰 호사가라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지난달 22일 시사회가 있었던 영화 “슬라바 우크라이니”는 레비가 직접 우크라이나를 10 차례 방문해 만들었다. 레비는 지난 50년 동안 보스니아, 다르푸르, 르완다, 쿠르드 지역,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등의 분쟁 지역에 서방이 개입할 것을 강조해왔다.

레비는 이번 영화에서 서방의 운명이 어느 때보다 큰 위기에 처해 있음을 강조한다. 러시아, 중국, 이란 튀르키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핵으로 서방을 위협하는 신냉전이 도래한다는 경고다.

그는 우크라이나 지원이 과도하다는 미국과 유럽의 정치인들을 “멍청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이 전쟁터에 디자이너가 만든 양복을 입고 간 것에 대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작은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라고 했다.

1948년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난 레비는 1970년대 프랑스에서 프랑스 좌파에 마르크시즘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사상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정치, 철학, 유대주의, 미국의 정체성 등에 관한 수십 권의 저서를 펴냈고 인종차별반대단체를 설립하고 프랑스 대통령이 애청하는 매체의 주인공이 됐다.

반면 성희롱 비난을 받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도미니크 스트라우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지지하면서 엄청난 비판도 받았다. 벨기에에서 최소 8번 파이 공격을 받기도 했다. “신은 죽었지만 내 머리카락은 완벽하다”고 말했다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레비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답했다.

프랑스 언론인 자드 린가르는 레비가 기후변화나 미투 운동과 같은 당대의 이슈에서 멀어지면서 영향력이 줄었다고 말한다.

반면 레비의 지지자들은 반대자들이 레비의 부와 영향력, 성공을 질투하는 것으로 폄하한다. 레비는 가수 겸 배우 아리엘 돔바슬과 결혼해 살고 있다. “슬라바 우크라이나”를 공동 연출한 마르크 루셀은 “비판자들은 파리 살롱의 안락한 소파를 절대 벗어나는 법이 없다”고 반박했다.

레비는 소설가 앙드레 말로를 추종하던 20대 초반인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 1977년 마르크시즘과 마오이즘을 배격하는 “인간 얼굴을 한 야만”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선한 행동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의 아버지 앙리 레비는 청소년이던 1930년대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에 맞선 공화군에 참전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에 맞서 자유프랑스군의 일원으로 싸웠다. 레비는 보스니아 내전 때 세르비아군 저격수로부터, 쿠르드 지역에서 이슬람국가 전사들로부터,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 박격포 공격을 당하면서 아버지의 용기와 투지를 떠올렸다고 했다.

1990년대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개인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느꼈다면서 처음엔 이슬람 보스니아군을 지원하는 국제연대를 창설하려 했지만 영화를 찍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보스니아에 가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가 이슬람 주민들에 대한 세르비아군의 잔혹행위를 고발하는 영화의 제작비를 대줬다고 했다. 2011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리비아 사태에 개입하도록 설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레비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소설가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 등 미국 소설가들이 자신의 최고 롤 모델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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