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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벼락 같이 젊고 세련된 감각, 바다처럼 깊고 심오한 통찰.

독일 기반의 VR아티스트 겸 시각예술가인 추수(31·TZUSOO) 작가(베를린 기반의 뮤직비디오 스튜디오인 프린세스 컴퓨터 CEO 겸 디렉터)가 무슨 작업에서든 기운생동(氣韻生動)한 힘을 끌어내는 이유다.

기생운동은 묘사하는 대상의 성격이나 특징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거다. 원본의 아우라를 그대로 옮겨 작품에도 기품이 묻어난다.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을 근거지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인 추수 작가는 개별 존재의 진실한 자세를 포착해 순간순간의 숭고함을 빚어낼 줄 안다.

무엇보다 미술작업을 넘어서는 '전방위 예술가'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인간의 심장을 이식할 수 있는 감각을 지녔다. '가왕' 조용필(73)이 지난 4월 발매한 새 EP '로드 투 트웬티-프렐류드 투(Road to 20-Prelude 2)'에 실린 신곡 '필링 오브 유(Feeling Of You)' 뮤직비디오 작업이 예다.

여전히 청신한 노래의 언어를 아우르고 구사하는 조용필의 모습이 추수 감독이 연출한 '필링 오브 유'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에 잘 녹아 들어갔다.

통통 튀는 원색적인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조용필의 대표곡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못찾겠다 꾀꼬리'에 영향을 받아 한국 전통 민화 '작호도'에 나오는 호랑이와 까치의 디자인을 활용했다. 조용필의 시그니처인 기타·안경 등 그와 비슷한 생김새의 아바타 캐릭터도 등장한다. 뮤직비디오는 이렇게 세 캐릭터가 함께 여행하는 과정을 그렸다. 변화무쌍한 색감과 원근법, 그리고 각종 상징과 은유의 황금비율을 자랑한 이 뮤직비디오는 조용필, 그의 음악 여정, 우리의 문화와 관련 훌륭한 안테나 역을 해준다. 다음은 추수 작가와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뮤직비디오와 멜론에 공개된 코멘터리 필름 등을 보고 조용필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님에도 조용필 선생님의 특징과 세계관을 단번에 파악하는 통찰이 놀라웠습니다. 주로 조용필 선생님의 어떤 것들을 보고 참고하고 파악하신 건지요? 이전에 혹시 조용필 선생님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이전 조용필 선생님에 대한 인상과 이번 작업 이후 조용필 선생님에 대한 인상은 어떻게 변했는지요. 이번 작업은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예술을 세대 따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요. 역사의 거장들을 항상 친구로 삼습니다. 모험가들은 태가 납니다. '팔리는 것'만을 찾지는 않죠. 그래서 화려해 보이진 않을지라도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이 다릅니다. 처음에 제 작품을 특이하다 하시고 연락을 주셨을 때는, 이 분이 대체 제게 무엇을 기대하시는 걸까 아리송 했죠. 하지만 이것 역시 선생님의 도전과 모험이라고 여겨졌고, 최선을 다해 응했습니다. 이런 뮤지션으로서의 인상은 작업 전후로 변했다기 보단 공고해졌습니다."

-특히 대교약졸(大巧若拙)로 요약하긴 게 정말 공감이 갔습니다. 조용필 선생님의 트렌디함이 더 높게 평가 받는 건 화려한 기교가 아닌 담백함으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라고 저도 생각해와서인데요. 대교약졸은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인데 평소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은가요? 직선적인 것이 아닌 순회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신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릉도원 같은 표현도 그렇죠.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시면서 동양인으로서 더 정체성을 지키려고 하시는 건지, 평소 원래에도 동양사상이 관심이 많아서 관련 서적 등을 많이 읽고 공부를 해오신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심이 감독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다른 수저는 없었지만 '예(藝)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든요. 전각가(篆刻家)로서 선생님을 아버지로 두어, 잠자리에 들기 전 늘 듣던 이야기가 노자의 도덕경과 추사 김정희였습니다. 하여 예술과 철학의 진정한 상통을 이룬 명작과 대가들이 평생의 관심사였고, 그러한 경지의 작품을 해 내고자 다른 모든것을 제쳐둔 체 하루 하루 진정성으로 예술을 마주하는 삶을 삽니다. 뮤직비디오에는 제 개인적인 예술관보다, 이 음악이 고유하게 담고 있는 철학을 읽고 해석해 담아내려 합니다. 그게 흥분돼요. 뜬금없는 예쁜 화면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조용필 선생님의 '필링 오브 유'를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죠. 이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러다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해와 산과 꽃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도덕경에 나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을 떠올리게 된겁니다. 대교약졸은 매우 공교한 솜씨는 오히려 서투른 것 같이 보인다는 뜻인데, 그 서투름은 익숙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처럼 순수하다'로 해석해야 하죠. 오히려 인위적인 기교를 버리고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입니다. 서양 철학이 좋아 독일로 떠나 왔지만, 오히려 떠나보니 제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토양에서 자랐는지 더 잘 알게 됐습니다. 오랜 공부 끝에 도가의 경지에 이르는 철학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느꼈죠. 하지만 저는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한다기보다, 이 순간, 개인으로서의 순간, 세상의 순간을 표현합니다. 저는 오늘 한국인도 독일인도 아닌 새 세대죠. 세계 각지를 떠돌며 영어로 소통하고, 차별에 저항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섞이는데 거리낌 없는 우리를 이제는 동, 서양인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노년에도 여전히 청신한 노래의 언어를 아우르고 구사하는 조용필 선생님의 모습이 감독님이 연출한 '필링 오브 유' 뮤직비디오에도 잘 녹아 있습니다. 통통 튀는 원색적인 색감이 그런 점들을 반영한 건가요?

"'환유', 어린 아이의 순수함으로 돌아오다. 긴 활동 기간 동안 진지함, 화려한 기교, 대중성 모두 섭렵하시고 나서 다시 뿜어내시는 맑고 청량한 음악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작호도에서 영감을 얻은 호랑이, 까치 캐릭터 그리고 조용필 선생님의 시그니처인 기타·안경 등 그와 비슷한 생김새의 아바타 캐릭터도 공감대를 많이 형성했죠. 이 캐릭터가 탄생하는 과정은 코멘터리 필름에서 잘 말씀 주셨는데 각 캐릭터의 형태 등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 모든 작품의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운생동'입니다.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죠. 각 캐릭터의 디테일을 한 가지씩 꼽자면, 먼저 조용필 선생님 아바타에는 시그니처인 기타·안경을 구현하며 YPC라는 스펠링의 피어싱을 살짝 선물했습니다. 호랑이는 한국 민화인 작호도에서 처럼 우스꽝 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수호신 같은 모습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까치에게는 긴 다리를 줬더니, 댓글에 까치인지 학인지, 황새를 따라가려는 뱁새인지 논란이 분분하더군요."

-뮤직비디오 속 숨겨진 디테일로 말씀 주셨던, 까치가 혼자 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호랑이 머리 위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 대해 설명하신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힘겨운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녹여내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그런 연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예술가분들은 독립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있는데 무자비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예술가분들도 당연히 연대가 중요하겠죠?

"이번 뮤직비디오에서는 동료들이 힘겨운 여정을 함께 하기도 하지만, 갈림길 앞에서 각자의 꿈과 목표를 위해 헤어지죠. 하지만 홀로 떠나온 그 길에서 뜻밖의 새로운 인생들과 조우합니다. 세상 누구나 겪는 일 아니겠어요.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이별은 아니라고 믿어요. 엔딩처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도 있는 일이고, 아니더라도 소중했던 인연은 영원히 마음속에 품고 가는 거죠. 예술가로 산다는 건 참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부와 명예는 말할 것 도 없고, 수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사람들이 상상하는 자유와 자기만족도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는 삶이죠. 그렇기 때문에 존재만으로 고마운 이들이 많고, 항상 마음 깊이 연대하고 존경하며 살아갑니다."

-조용필 선생님이 자신이 가진 강점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아티스트적인 태도가 대단하다며 거기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셨는데,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공부하시는 감독님의 태도에도 그런 면이 묻어있는 거 같아요. 예술에서 새로운 기술은 왜 필요하며 최근 관심 깊게 보고 계신 기술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술에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예술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역사적으로도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야기되는 감각의 변화는 예술의 발전과 매우 긴밀하게 결부되돼 있습니다. 백남준은 '예술과 기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과학적 장난감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전자 매체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일이다'라 했습니다. 예술이란 바로 이런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일으키고 있는 모든 시각적 충격과 카타르시스에 눈을 뗄 수 없죠. 또 한 번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풍성하고 다채로워지는 광경입니다."

-뮤직비디오 스튜디오 이름을 '프린세스 컴퓨터'로 지으신 이유가 '컴퓨터 세계의 공주가 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다'는 뜻에서 지으신 것으로 알아요. 그렇게 하고 계신 거 같고요. 이 이름을 짓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추수라는 활동명은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알고 있습니다. '가을의 맑은 물'이라는 뜻이 맞는 거죠? 혹시 영어 철자로 TZUSOO라고 표기한 이유가 있을까요?

"추수는 제 예술가 아이덴티티이고, 스튜디오 프린세스 컴퓨터는 그런 추수를 피해 제가 세운 스튜디오 입니다. 추수 역시 본명이 아닙니다. 성인이 됐을 때, 아버지께서 저라는 사람을 아기 때 보다 더 잘 알게 되었으니 그에 걸맞는 새 호를 내려주신 거죠. 다섯가지 뜻이 있어요. 가을의 맑은 물, 맑은 눈매, 시퍼렇게 날이 선 칼, 장자(莊子)의 편명(篇名) 등 입니다. 어감이 투박하고 못생긴 감이 있지만 그 의미가 이리도 아름답죠. TZUSOO는 독일어로 추수를 발음하기 가장 가깝게 표기한 스펠링입니다. 종종 예술가 추수는 너무 진지해요. 때로는 우울하고 무겁죠.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 초대돼 전시회를 열며 내용과 형식, 이론과 이미지가 모두 빛나는 경지를 향해 가느라 골머리를 썩힙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크레파스로 그저 황홀히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환상적인 이미지를 뿜어낼 수 있는 손 끝을 그저 담배만 태우는데 방치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새로운 이름을 만든 겁니다. 프린세스 컴퓨터, 공주니까 컴퓨터로 하고 싶은 것 다 할거라는 마음으로. 그러다 다른 천재적 멤버 로이트 마크바트(Lloyd Marquart)를 만나고, 팀원들을 고용하기 시작하며 스튜디오를 차렸습니다. 저는 총괄 CEO 겸 디렉터를 맡고 있고요. 밤새 울고 웃으며 컴퓨터에 매달리는 이상한 공주들의 스튜디오입니다."

-조용필 선생님에 앞서 릴체리, 림킴, 쎄이(SAAY), 박지우 등 주로 젊은 감각의 뮤지션들과 뮤직비디오 작업을 했어요. 협업하는 뮤지션들의 기준 혹은 조건 같은 게 따로 있나요?

"우리는 서로 하는 게 같습니다. 느낄 수 있어요. 작품에 매달리고 고민하고, 표현하고, 사랑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요. 매체가 다를 뿐이지요. 그래서인지 협업을 하고 나면 거의 모두 친구가 돼있어요."

-릴 체리 씨의 '비타민 비(Vitamin B)' 뮤직비디오는 특별함으로 주목 받았고 쎄이 씨의 '오메가(Omega)' 3D VR 뮤직비디오로는 슈투트가르트 국제 애니메이션 필름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뮤직비디오 상을 받기도 하셨어요. 각 아티스트마다 뮤직비디오 콘셉트를 정할 때 아티스트랑 대화를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기존 자료들을 참고하시는 편입니까?

"이 때 뮤직비디오 전반의 스타일과 분위기, 등장 인물과 배경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스케치들을 가지고 뮤지션 측과 긴밀하게 소통하죠. 대부분은 제가 음악으로부터 풀어낸 시각적 해석을 환영 해 주십니다. 매주 있는 회의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고들 하세요. 작은 부분들은 수정에 들어가기도 하죠. 예를 들면 '필링 오브 유'와 '라'(조용필 이번 EP에 실린 또 다른 신곡) 영상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사실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영감을 얻어, 한국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에 슬쩍 표범 무늬를 얹은 혼종의 동물이었어요. 그러나 조용필 선생님께서 지금까지의 표범 이미지가 너무 강해 오히려 호랑이쪽으로 가길 원하셨고, 결국 무늬도 전부 민화에서 가지고 오며, 작호도(鵲虎圖·호랑이와 까치 그리고 소나무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구성으로 굳어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빠르게 캐치해낸 그림들이, 제 해석과 뮤지션의 의견이 섞여 들어가는 과정을 자유롭게 하죠."

-VR 등 작가님의 작품엔 기술 사용이 도드라지지만 그건 작가님의 상상력을 좀 더 구현하기 위한 장치이지 작가님의 작품 본질은 기술보다는 인문학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회화적인 풍경에 기반한 다양한 상상력, 거기에 동서양의 다양한 고전, 마니악한 대중문화들이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인데요. 이를 보면서 감독님의 문화 섭렵의 양이 얼마나 대단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그림, 책, 영화, 음악 등을 접하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요즘 가장 관심 있는 문화 혹은 작가 혹은 장르가 있나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합니다. 화장도 전혀 할 줄 모르고, 티비도 없고, 맛집도 몰라요. 주말도 없고, 퇴근도 없이, 그저 작업하고 전시를 보고 독서하거나 음악을 듣습니다. 사람과 술을 무지 좋아하는 게 유일한 취미랄까요."

-인공지능 가상 작곡가 에이미 문(Aimy Moon)도 특별한 행보였습니다. 이 작업에 매력을 느낀 이유가 무엇이고 이 작업이 우리 대중문화에 어떤 시너지를 낸다고 생각하세요?

"에이미는 케이팝(K-Pop) 신(scene)에서는 인공지능 음악을 만들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지만, 미술관으로 돌아오면 가발과 옷을 벗어 던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죠. 20대 초반의 긴 머리, 날씬한 체형에 순수하고 매력적인 얼굴을 한, 소위 아이돌의 전형적인 외관을 닮아야만 하는 인플루언서가 직업이고, 미술관에서는 편안하게 대머리인 채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죠. 현재 에이미 문 이라는 활동명으로, 50곡이 넘는 음악의 저작권자로 등록돼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반복되는 여성과 유색인종 그리고 모든 이분법적 차별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며 독일, 루마니아, 뉴욕의 미술관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도 어디로 튈지 모르게 커 가는 에이미는 제가 가장 아끼는 딸 입니다. 커리어와 사생활 두 측면에 모두 진심인 저와 닮은점이 있기 때문일까요."

-가상 세계,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관심도 많으시잖아요. 어릴 때 게임도 많이 접하시면서 이 세계에 더 공부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요. 조용필 선생님의 '필링 오브 유' 뮤직비디오에도 영상 통화하는 장면이 나와 현실을 반영한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습니다. 가상 세계가 우리 세계의 주요한 현실이 될까요? 감독님께서 그리시는 가상의 세계 미래는 무엇입니까?

"무릉도원과 민화를 배경으로 하며 현실의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세상을 지었지만, 동시에 작품이 발표되는 시대의 한 자락을 녹여내고 싶었어요. 심지어 뮤직비디오 제작 전체 과정에서 모든 회의는 영상통화로 이뤄졌거든요. 이게 바로 우리의 오늘이죠. 가상세계라 하면 거추장스러운 VR 안경을 쓰고 허공을 응시하는 이미지를 떠올리시곤 하는데, 그게 아니라 매일 아침 눈을 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게임을 하고,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사람이 실제로 만나는 사람보다 많은 우리 모두가 이미 몸의 절반은 가상세계에 걸치고 있는 셈이에요."

-원래 국내 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하신 걸로 아는데 판화를 먼저 전공하게 됐던 이유가 있나요? 어릴 때 감독님의 꿈은 무엇이었고 지금 꿈과 어떻게 연결이 되고 있나요?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됐던 걸로 아는데 장학생 선발과정과 이 프로그램이 감독님에게 어떤 도움이 됐나요? 슈투트가르트국립조형예술대학교대학원에서 공부하신 이유, 그리고 독일을 근거지로 삼게 된 이유가 혹시 있을까요?

"아주 어릴 적부터 예술가를 꿈꿨습니다. 그런데 홍익대학교 판화과에 진학할 땐 아버지께 속았고, 독일행을 결정했을 땐 지도교수님께 속았죠. 그림을 좋아했으니 자연스럽게 회화과에 진학하려 했는데, 아버지께서 회화는 혼자 잘 하면 되지만,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판화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 하셨습니다. 혹했죠. 그렇게 석판화, 동판화, 지판화 등 모든 고생스러운 판화를 섭렵하게 된 겁니다. 그러다 예술철학에 더 심취해 예술학과를 복수전공 하게 됐고, 독일 철학에 완전히 매료됐죠. 책에 파묻혀 머리를 싸 매고 있을 때면, 지도 교수님께서는 '원서로 읽으면 더 쉽다'고 위로하셨습니다. 독일어로 더 쉬운 원서를 읽겠다는 집념으로 곧바로 석사과정을 슈투트가르트에서 시작했고, 존경하는 작가인 크리스챤 얀콥스키 지도 하에 5년을 보냈습니다. 물론 독일어로 철학서를 읽는 게 더 쉽다는 건 잘못된 환상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한국 교수님께 메일로 항의하니 '내가 본의 아니게 뻥친 거, '살짝' 넘어가세요. ^^'란 답장을 받았답니다. 어쩌겠어요, 저는 이미 반 독일인이 됐고, 베를린과 사랑에 빠졌고, 여전히 원서에 도전하고 차이고를 매년 반복하고 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제 독일의 어머니시죠.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된 후, 생계를 위해 하던 알바를 전부 그만두고 작업에만 미친듯이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의 작품은 미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뜨겁습니다. 불화할 수도 있는 이 두 지점이 충돌하지 않고 어울러진다는 것도 감독님 작품의 매력 같아요. 정치적인 이슈를 미학적으로 다룰 때 중요하게 여기시는 건 무엇인가요?

"정치적이지 않은 예술은 없습니다. 우주에 산재한 무수히 많은 것들 중, 무언가를 선별해 조명하고 전시한다는 게 어찌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나요. 저 역시 그저 내 삶과 생각들을 표현하는 것 뿐입니다. 어렵고 힘든 문제를 시각적 환희와 함께 풀고싶어요."

-감독님께서 가장 관심 갖고 있는 차기작 혹은 이후 행보는 무엇인가요?

"이번 겨울, 한국에 있을 개인전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는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크(Björk), 그리고 미국의 DJ인 예지(Yaeji)과 작업 해 보고 싶어요. 우리의 그로테스크하고도 카타르시스적인 영상미를 함께 폭발시킬 뮤지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은 모든 인류의 영혼이 컴퓨터에 업로드 될 근미래를 대비하고 계시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네트워크성에 대비하는 것이 왜 중요한 건가요?

"상상만으로 신나잖아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미학적 접근은 별로 없죠. 그저 그곳에서도 예술가로서 할 일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예술이 더 이상 존재할지 아닐지조차 모르는 일이지만요. 얼마나 낭만적이에요?"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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