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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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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그건 아마 인생의 표정일지도 모른다. '퍼펙트 데이즈'(7월3일 공개)의 마지막 장면 말이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출근길에 올라 운전을 하던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얼굴엔 어느새 만감이 서린다. 그는 기쁘다. 슬프다. 낙관한다. 비관한다. 들떴다가 가라앉는다. 후회하고 참회하고 희망에 찼다가 낙심하고 체념한다. 끝내 잊지 못하지만 금새 잊고 살다가도 헛헛하다. 보고싶고, 보고싶지 않다. 화가 난다. 두렵다. 좋다. 이 마지막 시퀀스는 이 작품을 압축한다. 그리고 인생을 압축한다. 당신의 무표정 안에는 그렇게 온갖 마음이 다 떠다닌다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며 셀 수 없이 많은 삶들을 헤아린다.

빔 벤더스(Wim Wenders·79) 감독이 담아낸 도쿄 화장실 청소부 중년 남성 히라야마의 일상은 영화가 아닌 것 같다. 기상-출근-업무-점심-업무-퇴근-목욕-저녁-독서-취침이라는 규칙과 반복엔 생활이 있지 사건은 없다. 리듬을 깨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그건 일시적이고 임시적일 뿐이다. 그런데 2주에 걸친 히라야마의 그 일상은 그럼에도 영화가 된다. 자기 세계를 완성한 이 남자가 그 세상을 만들기까지 지나온 길은 영화일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히라야마가 완벽한 날들을 이어가기 위해 겪은 삶의 곡절이, 구축한 태도가, 끝내 지켜낸 취향이 영화라서 '퍼펙트 데이즈'는 당연히 영화다.


3주만에 완성한 시나리오, 17일만에 끝낸 촬영에도 '퍼펙트 데이즈'는 충만하기 만하다. 노장 감독은 히라야마의 평범한 나날 순간 순간에 인생이라는 영화를 포착한다. 이건 새벽의 영화이고, 비질 소리의 영화이며, 정돈과 단정(端正)의 영화다. 노동의 영화이고, 장인(匠人)의 영화이며, 가장 더러운 곳에서 행해지는 경건과 위엄의 영화다. 도시의 영화이며, 인연의 영화이고, 뜻밖과 의외의 영화다. 따뜻한 목욕물의 영화이고, 한 잔 술의 영화이며, 음악과 책의 영화다. 풀의 영화이고 빛의 영화다. 침묵의 영화이며, 말의 영화다. 그리고 나의 영화이며, 나와 다르지 않을 당신들의 영화이다.

말하자면 '퍼펙트 데이즈'는 일상을 존중한다. 일개 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의 나날은 어떤 의미도 부여 받지 못한 채 흘러가버릴 수 있었으나 세심하게 관찰당했기에 히라야마라는 세계로, 그리고 영화로 격상된다. 만약 누군가 이 작품을 본 뒤 위로 받는다면 그건 묵묵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 모든 히라야마를 벤더스 감독이 알아봐주고 있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의 규칙적인 리듬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든 사소한 것들이 똑같지 않으며 매번 달라진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퍼펙트 데이즈'가 인생의 의미를 추어올리진 않는다. 가령 히라야마는 "인생은 아름답다"며 상찬하는 말 따위는 하는 법이 없다. 그는 조용히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다가 나직하게 미소 지을 뿐이다. 그래도 삶이라는 건 살아볼 만하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고, 사는 거 별 거 없다고, 인생을 가끔 조금씩 예찬한다. 책방 주인의 수다에 웃고, 동네 남자들의 농담에 웃고, 우연찮게 잘 나온 사진 한 장에 웃고, 하루가 잘 마무리 됐고 잘 시작됐을 때 웃는다. 히라야마를 웃게 하는 건 이런 사소한 것들이고, 우리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음악,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퍼펙트 데이즈'는 영화 내외에서 더 풍성해진다.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은 분명 이 작품과 공명한다. 히라야마라는 이름은 오즈 야스지로의 '꽁치의 맛'의 그 히라야마에게서 왔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읽은 이들에게 히라야마의 독서 취향은 썩 마음에 드는 것이 될 테고, 루 리드·벨베언더그라운드·밴 모리슨·패티 스미스·롤링스톤스·니나 시몬 등 옛날 가수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아주 긴 플레이리스트가 돼 줄 것이다. 이상한 자세를 잡고 서있는 노숙자 노인은 일본 댄서 다나카 민이다.


결국 '퍼펙트 데이즈'는 야쿠쇼 코지의 영화다. 이 걸출한 배우가 앞서 다른 영화에서 보여준 강렬한 모습들과 비교하면 이번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평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남다를 게 없는 연기가 오히려 이 배우가 다다른 경지를 보여준다. 관객은 그의 모든 행동, 심지어 쪼그려 앉은 뒷모습에서라도 삶의 실감을 느끼게 될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 시퀀스에서 연기는 야쿠쇼의 연기 인생을 요약할 때 반드시 들어갈 하이라이트 필름이 될 것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자 연기상을 받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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