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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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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시스] 손정빈 기자 = 1955년생 일흔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창작욕은 잦아들지 않는다. 올해만 영화 2편을 완성해 두 작품을 모두 들고 부산에 왔다. 스스로도 "나는 좀 다른 감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특별한단 얘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다르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든지 40년이 됐지만, 아직 나만의 스타일이랄까, 테마랄까 하는 건 정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난 이상한 감독이죠. 여러분이 나를 보는 것과 내가 나를 보는 것에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영화 40년…아직도 나만의 스타일 없어"

구로사와 기요시(黒沢清·69) 감독은 일본 장르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공포와 스릴을 주로 다룬 그는 '큐어'(1997) '회로'(2001) '도쿄 소나타'(2008) '해안가로의 여행'(2015) '스파이의 아내'(2020) 등으로 국내에도 마니아층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아시아 영화인상을 구로사와 감독에게 줬다. 부산영화제가 올해로 29번쨰를 맞았으니까 외려 너무 늦게 줬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구로사와 감독은 3일 오후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명예로운 상을 받아 특별한 한 해가 됐다"며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구로사와 감독이 올해 부산에 들고 온 영화 2편 모두 장르물이다. 하나는 일본 최고 스타 중 한 명인 스다 마사키가 주연한 스릴러 '클라우드'. 다른 하나는 프랑스에서 만든 스릴러 '뱀의 길'이다. 전자는 리셀러로 활동하는 한 남자가 자기도 모르게 원한을 사게 돼 다수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후자는 딸을 잃은 여성이 같은 일을 당한 남성과 함께 살해범을 찾아 복수하는 과정을 담았다. 구로사와 감독이 2004년에 나온 자신의 영화를 프랑스 제작사와 셀프 리메이크 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공개된 두 영화는 모두 작품 전체를 감싸는 긴장감이 인상적이었다.


◇"난 그저 장르영화 감독…영화적인 순간만 생각해"

사람들은 구로사와 감독 영화에서 현대인이 가진 근원적 공포와 고독을 읽어낸다. 그러나 그는 "내 영화는 장르영화 혹은 B급 영화일 뿐 메시지를 담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영화로만 표현 가능한 순간이 있는 게 장르영화입니다. 영화로만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 담겨 있어서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보고 나서는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영화죠. 익사이팅한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겁니다. 물론 영화 중엔 사회 문제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것도 있고, 인간 내면 깊이 들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다만 제 안에 있어서는 영화적인 게 중요합니다. 영화적이어야만 영화의 길, 영화의 가능성은 더 넓어지고 커지는 겁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나이와 스타일은 모두 다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미이케 타카시, 기타노 타케시, 가와세 나오미 등과 함께 일본 영화계 한 세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이어 하마구치 류스케, 후카다 코지, 미야케 쇼 감독 등이 또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로사와 감독은 하마구치·후카다 감독에게 직접 영화를 가르친 스승이며, 멘토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구로사와 감독은 후배들의 작품 세계를 칭찬하면서도 "장르영화를 하려는 감독은 없는 것 같다. 가끔 장르영화도 찍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또 이들의 영화를 높이 평가하며 "그들은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내 손에 닿지 않는 영화를 찍었다"며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을 다른 사람보다 한 발 앞서서 나아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난 영화 주변을 360도로 돌고 있다"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 젊은 감독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감독들은 장르영화보다는 대화가 중심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 것 같아요. 아마도 누구나 손쉽게 좋은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이니까 그렇겠지요. 영상·음향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됐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처음 영화를 할 땐 8㎜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찍었어요. 사운드가 열악했기 떄문에 더 효과적인 영상과 촬영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르영화 쪽으로 나아간 것이겠지요."

구로사와 감독은 대체로 장르영화 감독으로 불리지만 단순히 그렇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장르물 내에서도 각기 다른 촬영과 효과로 감각을 자극했고, '도쿄 소나타'나 '스파이의 아내'처럼 드라마가 중심인 작품도 당연히 있었다. 그의 작품 세계를 한 두 마디로 규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하느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난 영화를 360도로 돌려가며 보는 사람이라 일직선으로 쭉 나아가는 건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식으로 영화를 하는 걸 난 상상하지 못했고, 상상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봉준호가 아직 내 친구라서 다행"

"전 영화가 너무 좋아서, 영화 보는 게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본 영화가 산처럼 많죠. 그런 영화들과 비교하면 제 작품은 언제나 어딘가 조금 부족합니다. 제 영화를 360도로 돌려보면 어디는 부족하고, 어디는 과하고, 항상 제가 생각했던 것의 일부 밖에는 달성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전 그렇게 영화를 빙글빙글 돌고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만 가는 건 불가능해요."

전날 열린 개막식에서 구로사와 감독이 상을 받기 전 봉준호 감독이 영상을 통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봉 감독은 "광팬"이라며 그의 필모그래피를 줄줄 읊었다. 구로사와 감독은 "감격했다"고 말했다. "원래 봉 감독은 한국에 있는 제 친구 중 한 명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유명해지고 거장이 돼서 제겐 손이 안 닿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제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줘서 아직 우리가 친구구나, 했죠.(웃음)"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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