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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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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강주희 기자 = 1972년 9월5일. 하계올림픽이 한창이던 독일 뮌헨 선수촌에 총성이 울렸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는 속보가 쏟아지자 전 세계는 경악했다.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 '뮌헨 올림픽 참사'의 시작이었다.
영화 '9월5일:위험한 특종'은 53년 전 이스라엘 선수단 인질극을 생중계한 미 ABC 방송국 스포츠팀 이야기를 다룬다. 사건 현장에 달려가고 취재원을 만나 뉴스를 완성해 가듯 영화는 스포츠팀의 취재·보도 과정을 밀도 있게 풀어낸다. 실제로 선수촌 인근에 자체 스튜디오를 차렸던 ABC는 22시간 동안 현장을 실시간으로 내보냈고 전 세계에서 9억명이 시청했다.
사상 초유 인질극에 스포츠팀은 "이걸 생중계할 수 있는 건 우리 뿐"이라며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필름통을 몸에 두르고 잠입 취재를 시도하고, 에어컨이 없는 스튜디오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그날의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집념과 용기를 버리지 않은 이들 덕분에 관객은 함께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는 보스턴글로브 탐사보도팀이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파헤친 '스포트라이트'(2016)나 미 국방부 기밀 문건을 폭로한 위싱턴포스트의 법정 투쟁을 그린 '더 포스트'(2017)를 연상케 한다. 극 중 인물들은 서로 다른 사건을 보도했지만 저널리즘의 원칙,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제시했다는 형식에서 비슷하다.
특히 인질극 중계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장면은 울림이 크다. 생방송이 가능한 유일한 방송사로서 세기의 특종을 놓칠 수 없을 터. 여기에 팀에서 유일하게 독일어가 가능한 통역사 마리안느가 창구 역할을 하면서 스튜디오는 시청률과 윤리적 가치가 뒤엉켜 끓어오르는 용광로가 된다.
자칫 인질이 살해되는 장면이 생중계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스포츠팀 총괄자 마빈 베이저(밴 채플린)의 한 마디를 작품을 관통하는 화두를 던진다. "그들이 누군가를 쏜다면 그리고 생중계 된다면 그건 누구를 위한 이야기죠? 저희입니까? 저들입니까?"
영화는 여러모로 기시감도 불러일으킨다. 경찰의 구조 작전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바람에 인질 구출을 망치고, 속보 경쟁에 치명적 오보를 낸다. 이 때문에 영화를 보다보면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모두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밑바닥까지 추락한 사건들이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만큼 결말은 현실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모두 사망하면서 생중계는 끝난다. '인질 전원 사망'이라는 마지막 속보를 전하고 스튜디오를 떠나는 프로듀서 제프 메이슨(존 마가로)는 허망한 표정으로 스크린 밖 관객들을 바라본다. 불이 꺼진 스튜디오와 무거운 음향이 당시 취재진이 겪었을 참담함을 짐작게 한다.
그럼에도 영화의 의미가 전해지는 것은 다시는 있어선 안 될 참사를 상기시키고, 언론의 역활을 되묻기 때문이다. 53년 전 총성이 울린 순간부터 인질 전원이 사망하기까지 모든 순간을 보도한 ABC 스포츠팀을 통해 참사 앞에 무엇을 생각해야할지, 보도할 가치 있는 뉴스는 무엇인지 곱씹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zooe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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