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 CoinNess
- 20.11.02
- 5
- 0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동아그룹은 계열사 22곳을 거느리고, 재계 순위 10위를 지키며 한때 재계를 호령하다, 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동아그룹은 지난 1945년 최준문 창업주가 '충남토건사'를 설립하며 태동했다. 최 창업주는 1949년 '동아건설합자회사'로 사명을 변경한 뒤 대전과 청라 등 전국 곳곳에서 토목과 건축 공사를 수주하며 이름을 알렸고, 1957년 동아건설산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꿨다. 이후 1958년 흥일증권을 비롯해 1966년 동아콘크리트, 1968년 대한통운, 1972년 대전문화방송 등을 인수하며 그룹의 면모를 갖췄다.
최 창업주는 1977년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경업 수입을 받던 장남 최원석씨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줬다. 최원석 회장은 1983년 인류 역사상 최대 토목공사로 불리며 사막을 옥토로 바꾼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따내며 동아건설을 세계에 알리며 승승장구했다. 최 회장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통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등재됐다. 1997년 동아그룹은 동아건설을 앞세워 11조원의 자산과 2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순위 10위의 재벌그룹으로 변모했다.
동아그룹은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로 쇠락의 길을 걷는다. 성수대교 시공사가 동아건설이었다. 성수대교 붕괴로 32명이나 사망했는데, 사고 직후 동아건설은 '성수대교 하자 보수 기간인 5년을 잘 지켰다'고 밝혀 국민적 공분을 샀다. 대법원은 사고 발생 7년 후 동아건설의 부실 공사 때문에 성수대교가 붕괴했다고 확정 판결한 바 있다.
동아그룹은 성수대교 붕괴 이후 악화한 여론에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동아건설은 국내에서 주로 재건축·재개발 공사를 하며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막대한 이주비용을 감당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도시 정비사업 등에 투자한 1조4000억원이 묶였다.
이에 동아그룹은 김포 매립지 개발로 위기를 넘기려고 했다. 동아건설은 당시 공시지가만 1조원에 달하는 370만평의 김포매립지를 갖고 있었다. 용도변경과 40억 달러의 외화 유치를 통해 토지 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동아그룹의 용도변경이 물거품이 됐다. 당시 농림부는 ‘이 땅이 처음에 농지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절대 용도변경이 안 된다’며 반대했다. 결국 동아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고, 1998년 최 회장은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동아그룹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겼다. 당시 700억원의 사재도 내놓았다.
그해 8월 동아그룹은 워크아웃 대상 기업으로 최종 확정됐다. ‘동아건설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를 매각해 경영을 정상화’하라는 단서가 붙었다. 동아그룹 계열사들은 하나둘 팔리거나 청산됐다. 동아그룹은 2000년 11월 법정 관리 대상기업으로 결정돼 퇴출당했다가, 2001년 5월 파산을 선고받았다. 그렇게 55년 역사를 자랑하던 동아그룹이 공중분해 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sky0322@newsis.com
댓글 0
추천+댓글 한마디가 작성자에게 힘이 됩니다.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