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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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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미국 뉴욕은 한국 재즈계의 불모지다.

작곡가 겸 지휘자 지혜리(Jihye Lee·이지혜)는 철옹성 같은 그곳을 균열내고 있다. 게다가 국내엔 생소한 '재즈 오케스트라' 영역에서다. 서울보다 뉴욕에서 더 유명한 한국 뮤지션이다. 예술가에 영감을 주지만 그만큼 치열한 뉴욕에서 삶을 오선지 삼아, 음을 꾹꾹 눌러 써 나가고 있다.

사실 지혜리는 과거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싱어송라이터로서 활약했다. 지혜 지(智)와 노래 요(謠)를 합쳐 지요라는 예명을 내세웠다. 2010년 첫 미니앨범, 2011년 첫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2012년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갔고 보이스 퍼포먼스와 재즈 작곡을 전공했다. 버클리 음대 재즈작곡부문 최고상 '듀크 엘링턴 어워즈'를 2회 연속 받았다.

'지혜로운 노래'는 뉴욕에서 더 통했다. 재즈 앳 링컨센터 오케스트라, 카네기 홀 내셔널 유스 오케스트라 재즈, 비엠아이 등에서 작·편곡을 위촉받았다. 맨해튼 음악대학의 석사 재학 중 첫 오케스트라 앨범 '에이프럴(April)'(2017)을 발매했고 작년 두 번째 정규앨범 '데어링 마인드(Daring Mind)'를 내놓았다.

그녀의 성과가 국내에 역수입되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 그해 10월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재즈 오케스트라의 미래, 지혜리 오케스트라(Jihye Lee Orchestra)'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재즈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남도 잡가 '새타령'으로 호평을 들었다. 온스테이지 선정 위원을 지낸 최다은 SBS 라디오 PD는 "화성이 없는 단선율의 음악을 빅밴드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양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동원됐음을 느낄 수 있다.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오가고 피콜로와 플루트로 음색적 변화를 주면서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되는 명곡"이라고 평했다.

또 '데어링 마인드'는 올해 3월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KMA·한대음)'에서 최우수 재즈 연주 음반상을 받기도 했다. 정병욱 한대음 선정위원은 "치열하게 활동 중인 뉴욕 신(scene) 너머 한국에서도 분명 가장 눈여겨봐야 할 올해의 재즈 앨범으로 손색없다"고 들었다.

그리고 '2022 여우락(樂) 페스티벌'의 하나로 오는 20~2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펼쳐지는 지혜리 오케스트라 '너나:음양'을 통해 국내 음악 팬들에게 오프라인에서 제대로 인사한다.

지혜리의 지휘로 전통 타악기 연주자 황민왕이 합세한 18인조 재즈 빅밴드는 동서양 타악기의 관능적인 내전(內戰)을 보여준다. 변성(變聲)의 생동감이 안겨 줄 전통과 세련의 근사한 조우. 지혜리는 다양한 민족이 운집한 뉴욕 한가운데에서 "조상의 음악을 제대로 알고 있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근 합정에서 만나 지혜리와 나눈 일문일답.

-여우락은 국악 기반의 축제인데 출연 요청을 받으셨습니다.

"신기해요. 국악에 연이 없었거든요. 작년 온스테이지에서 연주한 '새타령'을 보고 연락을 주신 거 같아요. 이번에 전체 프로그램을 맡겨 주신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너나:음양'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이 됩니까?

"이번 여우락 섭외가 절묘했던 타이밍인 이유는 제가 다음 프로젝트를 국악 관련 앨범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이었거든요. '이런 생각을 어떻게 풀어낼까' '재즈로 어떻게 녹여낼까' 고민을 하며 나름 시도를 하고 있을 때 연락을 받은 거죠. '새타령' '방아타령' '아리랑'은 재즈 오케스트라로 편곡해요. 나머지 연주할 5곡은 국악 장단을 차용해서 재즈 오케스트라로 쓴 창작곡들입니다. 익숙한 멜로디도 있고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가 익숙한 장단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국악 팬들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해요."

-국악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사실 얼마 안 됐어요. 뉴욕이라는 곳이 워낙 다양한 민족들이 집결돼 있잖아요. 이스라엘, 아르메니아, 터키, 남미, 일본에서 온 친구들이 자기네 문화나 역사 그리고 전통을 재즈에 녹여내는 걸 보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나의 조상의 음악을 알고 있나'라는 생각이요. 개인적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물음도 많이 가졌죠.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미국 안에서 동양인 혐오가 있었고, 타지에서 고립돼 있다 보니 정체성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어요. '뮤지션으로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판소리와 사물놀이 등 국악에 대한 관심이 생겼죠. 특히 장단에 대한 위대함을 알게 됐어요. 발전돼 있는 형태의 장단을 보면서 흥미로웠고, 재즈 안에 분명하게 녹여낼 수 있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 작업을 시작했죠."

-뉴욕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더 폐쇄적인 곳이라는 얘기도 들었고요.

"사실 적응하는데 힘든 건 많죠. 연고도 없고 언어도 완벽히 할 수 없고 생긴 것도 문화도 다르니까요. 그곳에서 뭐를 시작한다는 자체가 어려웠죠. 시작하는 데 제일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서 할 만해졌죠. 그런데 '뉴욕은 미국이 아니고 뉴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워낙 다양한 곳에서 오는 다양한 민족이 섞여 있어서 '한국에서 온 여자라서 힘들었다'라는 식의 접근은 하고 싶지 않아요. 대신 어떻게 자리를 잡았냐라고 물으신다면, '많이 물어봤다'고 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가 그들과 다른 것이 약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초반엔 '이들을 또 언제 보겠어?'라는 굉장히 용감한 마음으로 공연이 끝나면 뮤지션에게 이메일로 물어보기도 하고, 커피 한잔 마시자고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죠. 누군가는 불친절하지만, 누군가는 흔쾌히 도움을 줘서 많이 묻고 답을 하나씩 하나씩 얻어갔습니다."

-재즈 오케스트라는 국내에서 낯선 장르인데요.

"저 역시 한국에 있을 때 그런 예술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어요. 버클리 음대 복도를 지나다 처음 재즈 오케스트라 라이브를 들었어요. 그 에너지와 음악으로부터 나오는 압도감이 너무 황홀했어요.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리아 슈나이더,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뱅가드 재즈 오케스트라를 듣기 시작했죠. 재즈 오케스트라가 (기존 재즈 편성보다) 훨씬 더 다채롭다는 점에 끌렸어요. 제가 쓸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점이죠. 예를 들어 퀸텟이라면 제가 팔레트에서 쓸 수 있는 칸이 다섯개예요. 그런데 17명이라면 열일곱 개의 칸을 쓰면서 자유롭게 조화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작곡가의 욕심인 거죠. 역동성의 범위도 그렇고 색깔 사용도 그렇고, 작곡 기법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다고 생각했어요."

-뒤늦게 음악을 시작하셨고 재즈 작곡과 지휘도 엄청 짧은 시간에 섭렵하셨습니다. 숨겨져 있었던 재능일까요?

"모르겠어요. 그런데 '한번에 일어났다'고 보기엔 어려워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할 때도 작곡에 대한 나름의 진지한 고민이 있었거든요. 물론 지금의 수준은 아니었지만요. 그런데 여러 음악 관련 주어진 환경이 저로 수렴된 것이고, 그것이 재즈 작곡을 할 때 조금은 남들과 다르게 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해요. 모든 사람이 정규 코스를 밟아서 오랜 시간 음악을 써야만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건 아니죠."

-두 번째 정규앨범 제목 '데어링 마인드'는 대담한 마음을 뜻합니다. 뉴욕에서 치열하게 살아오신 것을 묘사하는 듯합니다.

"이 앨범은 뉴욕에서 있었던 일들의 모음집 같은 형태예요. 제가 뉴욕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고군분투하고 뭔가 이루고 또 실패하는 이야기죠. 그것 자체가 대담한 마음 같긴 해요. 근데 사실 저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특히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끝까지 가려고 모인 이들이기도 해요. 그런 뉴욕의 정신을 담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아요. (음악으로 쓴 현지 기록 같다고 하자) 네 그런 셈이죠."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음악적 목표는 무엇인가요?

"작곡가는 항상 더 큰 앙상블을 원하죠. 미국엔 재즈 오케스트라에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더한 편성이 있어요. 클래식은 현 위주이고 재즈는 관 위주인데, 이 두개를 합친 오케스트라가 있죠. 그런 앙상블을 위해 곡을 쓰는 것 혹은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위해 쓰는 곡을 쓸 기회가 있었으면 해요.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 거죠. 재즈가 홈(Home)이기는 하지만 어디를 갔다 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재즈가 골격이지만 다른 옷을 입을 수도 있는 거고. 작가로서 창작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많아요."

-대중음악에도 다시 관심을 가지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다만 대중음악 작곡은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캐치하고 감각적이고 나름의 언어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제가 아주 감각적일 수 있는 나이가 지났죠. 또 그 신(scene)에 있어야만 알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데 그것이 저는 없는 거 같고요. 다만 재즈 오케스트라와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합쳐진 것을 '심포닉 재즈'라고 하는데, (포크록 대모인) 조니 미첼이 심포닉 재즈와 함께 노래를 하기도 했어요. '보스 사이드 나우(Both Sides Now)'가 그런 예죠. 이런 예처럼 대중음악 가수와 심포닉 재즈를 작업하고 싶어요. 스팅도 했고 외국에선 하나의 예술 형태로 자리를 잡았죠."

-한국 재즈 신이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세요?

"네, 10년 전 한국을 떠나왔을 때랑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요. 예전에 유학을 갔다와도 한국에 오는 순간 현실적인 문제로 자신의 작품을 포기한 부분이 있었는데 요즘엔 유학 다녀온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학을 갔다 오지 않은 친구들도 유튜브 등을 통해 저희 때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방법을 갖고 똑똑하게 음악을 해요. 재즈 공연을 하면 젊은 친구들도 관객으로 많이 온다고 하더라고요. 재즈 문화 소비 인식이 생긴 거죠."

-뉴욕에서 '좋은 안목'을 얻었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뉴욕에 있을 때는 몰랐어요. 뉴욕을 떠나서 다른 곳을 가니까 제가 봤는지도 몰랐던 것이 보이더라고요. 뉴욕이라는 곳이 학교인데,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 학교'예요. 그게 뉴욕의 매력이죠. 환경에서 배우는 것 자체가 안목인 거죠. 그를 통해 추진력을 가질 수 있고요. 누군가는 뉴욕에서 살아남아줘야 해요. 그 다음에 오는 이들도 그를 보고 '나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저는 그게 한국 재즈 신(scene)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먼저 가주는 것. 특히 뉴욕엔 선례가 없어 더 힘들게 느껴지고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누군가 그런 편견을 깨준다면, 다음 세대는 좀 더 쉽게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고요.

"지금 곡을 써줘야 할 것이 많아요. 김소라 타악 연주자와 스트링 퀄텟을 위한 장구 곡, 벨기에 브뤼셀 재즈 오케스트라가 맡겨 주신 편곡, 독일 가야 하는 일정도 있고, 미국 플로리다에서도 작업을 해요. 올해가 본격적으로 글로벌하게 다니는 해 될 거 같아요."

-계속 성과를 내주고 계신데 언제 뉴욕 재즈 신에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객관적인 사실로 얘기하자면 뉴욕 유명 클럽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거요. 그런데 가장 어려운 것이 지속성이에요. 과연 다음 앨범과 공연에서도 잘할 수 있을까요? 계속 잘하는 것이 지속될 때 자리를 잡는 거겠죠. 하지만 그래서 영원히 자리를 잡는 사람은 없어요. 60년 동안 잘해서 매번 불러줘도, 다음 해에 안 불러 줄 수 있거든요. 아티스트로서 산다는 것은 자리를 잡고 사는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지속성이 중요한 거죠."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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