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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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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다희 인턴 기자 =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우스운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어요."
배우 박해수(44)는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4월4일 공개)에서 '목격남'을 연기했다. 목격남은 어리바리하면서도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악랄한 인간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나 기사를 보면서 실제 사기꾼들을 참고해서 연기했다. 그 사람들은 오랜 시간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한다. 그게 눈덩이처럼 불어서 그러다가 '사람도 죽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제가 연기할 때도 실제 밖에서 봤을 때는 바보 짓하는 게 보이는데 안에서 자기들끼리 죽이고 사는 문제라는 게 코미디라고 생각했다."
'악연'이 공개된 후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에서 박해수와 만났다. '악연'은 일반적인 드라마처럼 모든 인물이 한 번에 소개되지 않는다. '사채남' 역을 맡은 배우 이희준을 시작으로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인물이 하나 둘 등장한다. 박해수는 보면 안 되는 걸 목격하는, 언뜻 바보 같은 모습으로 첫 등장한다.
"첫 장면에서 저를 지나가는 행인 11 정도로 봐주길 원했다. 동네에 있는 불쌍한 바보라고 생각해 줬으면 했다. 날씨가 추워서 귀마개를 했는데 그래서인지 캐릭터가 더 잘 만들어진 것 같다. 가끔 사기꾼 캐릭터로 돌아오는 장면도 있었는데 너무 드러난 것 같으면 감독님이 '다시 돌아와'라고 이야기해 줬다. 극 중엔 안 나왔지만 이광수에게 택시비 받고 가는 뒷모습을 길게 찍은 장면도 있었다. 그 장면도 뒤뚱뒤뚱 걷다가 나중에는 원래 사기꾼 본질이 보이게 똑바로 걸어간다."
목격남은 드라마 끝까지 실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집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다. 박해수는 그런 목격남이 한 편으로는 짠하고 외로워 보였다고 했다. "과거조차도 남의 모습을 훔쳐 양심을 빼고 돈을 번 빈 껍데기 같은 존재다. 남의 옷을 입고 자기 집인 척하고 사는 인생인데 나중에는 결국 남 때문에 몸까지 뺏긴다. 남에게 연명하면서 사는 나쁜 사기꾼이지만 짠하고 외로워 보였다."
'악연'에는 배우 신민아·이광수·공승연·이희준·김성균 등 다양한 배우가 출연해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드라마 구성 상 이들이 모두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박해수는 거의 모든 배우와 연기 합을 맞췄다. "희준 선배님과 성균형님은 현장에서 든든하고 묵직하게 버텨주셔서 사실 제가 막 뛰어놀아도 다 받아주셨다. 공승연 배우는 갖고 있는 중저음의 보이스가 갑자기 툭 하고 나올 때 재밌게 표현될 때가 있었다. 눈도 맑은데 맑은 눈의 광인 같아서 덩달아 재밌게 연기했다. 신민아 배우는 오랜 팬으로서 실물 영접을 해 굉장히 감사했다. 그런데 소리 지르는 장면들만 있어서 미안했다. 연기 호흡으로 재미있었던 분은 광수 배우였다. 초반에 함께해서 제가 고민도 많이 했는데 유쾌한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박해수는 이광수와 같이 산에서 시체 묻는 촬영 현장을 회상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추운 겨울에 삽으로 땅을 판다. 이 장면은 긴장감 넘치고 으슥하다. 그러나 현장은 유쾌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때 새벽이었고 추워서 꽤 힘들었다. 그런데 그날 광수와 둘이 키 차이도 크게 나서 그런지 이상하게 코믹했다. 나도 지금까지 못 본 광수의 캐릭터였고, 광수도 처음 접하는 저의 캐릭터라서 그랬나 보다. 광수와 서로 애드리브를 계속했다. 드라마에도 나왔는데 '땅이 얼어서 파기 어렵다 그죠?'라고 말한 게 저의 애드리브였다. 같이 범죄를 저지르는 마당에 누구한테 질문하고 대답을 얻고 이러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 현장에서는 그런 멘트가 나올 만큼 재밌었다."
목격남은 극 중 전신 화상을 입는다. 박해수는 화상 이후 아픔과 예민함을 표현하기 위해 각종 다큐멘터리를 보며 증상을 연구했다. "인간의 고통엔 10단계가 있는데 마지막 단계에 있는 두 병 중 하나가 화상이더라"라며 "분장할 때 어떤 근육들을 잡아놓고 있기는 하니까 그래서 나오는 특별한 표정들이나 고갯짓을 연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화상 특수 분장에는 "3시간이 걸렸다"며 "처음에 분장을 빨갛게 세게 했었는데 이후에는 단계를 조금씩 낮춰가면서 색도 조금씩 연하게 했다. 관객들에게 너무 혐오스럽게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감독님도 오랫동안 고민하신 것 같다."
시청자 중엔 목격남이 주연(신민아) 손에 죽는 게 아니라 남의 삶을 훔쳐서 살다가 그 사람 업보로 죽게 되는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저는 죽음 밖에 안 남은 거다"며 "마지막에 목격남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탔어도 전복돼서 죽었을 거다. 드라마의 결말이 주는 메시지가 따뜻해서 저도 좋았다"고 했다. 신민아와 같이 나온 장면에 대해서는 "제가 민아씨를 압박하는 것 같이 보여도 압박을 당하고 있는 것은 저"라며 "신민아씨가 택시를 앞에서 막아 서고 제가 막 소리친 다음에 택시 기사에게 '갑시다'라고 하면서 눈을 피한다. 이게 더 이상 못 쳐다볼 것 같아서 피했던 거다. 민아씨가 나를 정말 깨끗하게 쳐다보면서 압박하는 게 더 공포스러웠다"고 했다.
박해수는 넷플릭스 공무원이라는 별명이 있다. '오징어게임'(2021) '수리남'(2022)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2022) 등 넷플릭스 시리즈에 그만큼 자주 출연했다. 넷플릭스에 지분이 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지분은 아직 없다"며 "좋은 캐릭터 만나는 게 감사하고 기쁘다. 무거운 내용이라서 '보기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너무 무겁게 보이지 않게 조금 경쾌하게 연출하신 감독님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해 애정도 많았다. 되게 많이 기다렸고, 긴장되고 떨렸다. 매운맛으로 만났는데 많이 좋아해주셔서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박해수는 살면서 악연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인연 밖에 없었다. 인연이라는 걸 믿는 것 같다. 한 분 한 분 다 뒤 돌아보면 말도 안 되는 운명이 있다. 연극을 할 때도 오늘 없어야 할 연출 하는 분이 무슨 일로 공연을 보고 저를 캐스팅해서 다음 작품에 넣어줬다. 어느 날은 스프링클러가 극장에서 터져서 제 공연을 보게 돼서 캐스팅해 준 분도 있었다. 근데 악연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다른 사람이 저를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는 인연만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dahee32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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