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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998838




김진
럭비대표팀 김진이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2019. 12. 19.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임재훈 크리에이터] 196cm에 100kg이 넘는 건장한 체격, 서구적인 외모에 유창한 한국말 실력. 언뜻 보면 그냥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실제 한국인이다. 그의 이름은 김진(29·안드레 진 코퀴야드). 한국 럭비 국가대표 귀화 1호 선수이다. 김진은 지난 2015년부터 한국 럭비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인천에서 열린 2020년 도쿄올림픽 남자럭비 7인제 아시아 지역예선전에서도 발군의 경기력으로 한국럭비 사상 첫 올림픽 진출을 이끌었다.

◇럭비공 같은 럭비인생의 킥오프
김진은 1991년 1월 15일,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시절 선택은 럭비가 아닌 축구였다. 차범근 축구교실을 다녔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보며 축구선수를 꿈꾸었다.

럭비와의 인연은 중학교 3학년때 시작됐다. 김진은 미국 식품회사 아시아지역 책임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한국,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살았는데, 중 3때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기숙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교내 인기 스포츠가 럭비였다. 평소 축구, 농구를 즐기던 김진에게 럭비는 매력적인 스포츠로 다가왔다. 지도자들도 그에게 럭비의 즐거움을 알려주는데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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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김진(가운데)이 경기 종료 후 상을 받고 있다

“그때 럭비 감독님과 코치님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셨어요. 한 분은 스코틀랜드 대표팀 선수 출신이었고 다른 분은 프랑스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했던 분인데, 이분들에게 배우면서 스스로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매일 느꼈기 때문에 운동 자체가 재밌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김진은 다소 늦은 나이에 럭비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좋은 지도자 아래 실력이 날로 성장했다. 럭비를 배운지 2년 만에 미국 청소년 대표팀으로 발탁될 정도였다. 김진은 럭비 선수로서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 정말 기뻤어요. 그 계기로 프로 무대에 대해 더 꿈꾸게 됐고, 럭비를 한번 길게 해보자 마음먹게 됐던 것 같아요”

미국 청소년 대표팀으로도 활약하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김진은 이후 미국대학 럭비 최강팀인 UC버클리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 입학했다. 전공은 정치외교학과로 선택했다. 아버지 따라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각 나라의 역사와 사회적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진은 대학시절, 새벽 훈련후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다시 팀 훈련을 하는 등 바쁜 생활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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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대학교 시절 김진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하지만 운동과 학업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은 어려웠다. 김진은 결국 대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했다. 졸업 직전엔 럭비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프로 무대에서 뛰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미국 럭비대표팀에 승선해야 했다. 프로리그가 있는 유럽에 진출하기 위해 미 대표팀에 이름을 올려야만 했다.

김진은 졸업을 앞두고 미국의 유명 럭비 실업팀인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San Francisco Golden Gate RFC)에 입단했고, 그 해에 팀의 우승(Pacific Rugby Premiership)에 일조했다. 김진은 미 서부 최고권위의 럭비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대표팀 승선은 불확실했다.

결국 그는 2014년 상하이에 있는 스포츠 이벤트 회사에 입사하며 럭비공을 내려놓았다. 김진은 “회사에 다니면서 선수 생활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학교에서 전국체전 우승하고 실업팀에서도 우승해본 것으로 만족했다”라고 그때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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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Francisco Golden Gate RFC에 뛰던 김진(가운데)이 경기에서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제2의 럭비인생, 트라이 어게인

비록 회사원이 됐지만, 10년 가까이 럭비 선수로 살아왔던 김진. 럭비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김진은 그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 럭비 동아리에 가입해 종종 활동했다. 그런데 뛰면 뛸수록 자신의 실력이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주위의 칭찬까지 더해지며 럭비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 커졌다.

그러다가 김진은 홍콩에서 열린 작은 럭비대회에 참가하게 됐는데, 이때 그의 경기 모습을 본 한 홍콩 클럽팀 관계자가 입단과 함께 귀화를 제안했다. 한국과의 예상치 못한 인연도 그 즈음에 나타났다. 럭비선수 생활에 대한 확신을 키워가던 김진은 2015월드세븐시리즈 홍콩 7인제 대회에 참가한 한국 대표팀 경기를 보게 됐다. 한국에 럭비팀이 있다는 사실은 그의 심장을 힘껏 뛰게 만들었다.

“사실 저는 한국에 럭비선수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근데 직접 가서 보니까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대한럭비협회에 연락해 한국에서 럭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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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함께 기뻐하는 김진(오른쪽에서 네번째)
한국인의 자긍심을 품고 있는 김진은 회사에 휴가를 신청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 다시 럭비선수로 살아가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한국에 도착한 김진은 대표팀 훈련에 참여했고 대한럭비협회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 그렇게 김진은 홍콩이 아닌 한국 럭비 국가대표가 됐다. 그런데 홍콩의 제안에 미련이 남진 않았을까.

“저에게는 너무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 사람이니까요. 어머니가 모델로서 한국 패션계를 이끌어갔듯이 저도 한국 럭비를 이끌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어요”

한국에 정착한 김진은 2016년 8월부터 현 대표팀 감독이자 당시 상무 지도자였던 서천오 감독 아래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며 귀화 절차를 밟았다. 국제럭비위원회(IRB) 규정에 따르면 귀화 여부와 관계없이 특정 국가의 대표선수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은 귀화해야 출전가능하다. 1년이 지난 2017년, 김진은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며 태극마크를 단 귀화 1호 선수가 됐다.

김진은 귀하 허가 통지서를 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다는 것보다 제가 드디어 공식적으로 한국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 더 기뻤어요. 사실 외적인 것도 그렇고, 저 자신이 완전히 한국인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귀화하고 나서는 당당히 한국인이라고 밝힐 수 있었어요”

-(2)피·땀·눈물이 베인 올림픽 진출,(3)김진이 바라본 한국 럭비가 이어집니다.
-사진 김진, 대한럭비협회, SPORTS KU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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