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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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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늘 죽음을 참아왔으면, 당신은 싱어송라이터 해파(Haepa·문근영)의 정규 1집 '죽은 척하기'를 알아들을 것이다.

"지금 여기 이 공기가 이대로 멈췄으면"('세이프 헤븐(Safe Heaven)')이라는 생각은 죽음을 삼켜본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特權). 음반 제목이 풍기는 염세적인 어감에도 마냥 비통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몽환적이고 축축한 사운드는 해파의 말을 빌리자면, 삶이라는 거대한 물(水)에서 '어푸어푸'하게 만드는 '물 세상'의 은유. 그런데 침잠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바닥을 쳐본 자들이 이제야 알아채는 희망. 해파는 이 음반으로 그걸 발견했고 위로를 받았으며 청자와 슬픔을 나눈다.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파도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대한 나름의 방책"이 이 음반 작업 과정에서 세워졌다.

해파는 포크 듀오 '시옷과 바람' 멤버다. 맞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들인 그녀(29회)와 허정혁(28회)이 결성한 팀. 일렉트로닉과 밴드 사운드가 주축인 '죽은 척하기'를 듣고, 시옷과 바람과 연관성을 떠올리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합정역에서 만난 해파는 "'죽은 척하기'에 실린 노래들이 진짜 저의 자아"라고 말했다. 다음은 해파와 나눈 일문일답.

-솔로 정규 1집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써온 노래가 담겨 있어요. 1집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숙제처럼 갖고 있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과 안도감이 듭니다."

-평범하지 않은 '죽은 척하기'라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논리적인 과정을 거친 건 아니에요. '죽은 척하기'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약 1년 전 '앨범에 어떤 곡을 넣을까'라는 생각도 하기 전예요. 이런 생각에 따라 앨범에 실린 곡을 선정하고, 전체적으로 갈무리하는 글을 쓰다 보니까 사실은 이제까지 '내가 죽은 척하고 있었던 기간 안에 만든 노래를 담았구나'라고 딱 한번에 정리가 되더라고요."

-왜 '죽은 척'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 건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을 할 무렵부터 노래를 쓰기 시작해 여기까지 왔어요. 2016년이 졸업년도죠.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는 걸 보면서 '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어떤 일도 못할 거 같은 거예요. 그러면 마음 속에 꽁꽁 숨겨왔던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노래를 해보기로 한 거죠. 돌이켜보니까 그 시기에 불안이 심했고 바닥을 쳤어요. '죽은 척 하면서 살았던 시기였구나'를 알게 된 거죠. 사실 저는 하라는 대로 살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취직 앞에서 딱 걸린 거죠.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겠으니까 불안이 너무 심했죠."

-음악을 처음부터 업으로 삼으려고 했던 건 아닌가요?

"음악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가깝게는 지냈어요. 어릴 때 성악을 배웠고, 동요대회에 출전하기도 했고, 중고등학교 때 는 밴드에서 기타를 맡기도 했죠. 직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감히 못했어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네가?' 같은 반응을 얻을 거 같았어요. 라디오헤드와 플라시보를 좋아했어요. 특히 플라시보 보컬(브라이언 몰코)를 너무 좋아해서 독서대에 사진을 붙여 놓고 그랬죠. 국내 밴드로는 언니네 이발관, 3호선 버터플라이, 네스티요나를 좋아했습니다. 대학에선 심리학을 전공했어요. 학교 홈페이지를 보면서, 경영·역사·언어를 차례로 제거하는 소거법으로 과를 정했죠. 그렇게 대학 생활을 보내고 취직을 앞두게 됐는데 '1인분의 일'을 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 때 충격이 심하게 왔죠.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삶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노래 만드는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 만드는 프로그램을 독학하고, 학원을 다니고, 레슨을 받기 시작했죠."

-해파라는 예명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뜻을 담아 지은 건 아니고, 어감이 좋았어요. 해파리의 이미지가 있었고, '바다의 파도'(海波) 이미지도 그려지잖아요. 해파리나 해파는 물렁물렁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속엔 독이 있거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죠. 그게 좋았어요."

-2018년 '제29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차치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내가 음악을 해도 괜찮을까'라는 다른 사람의 승인을 받아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공고를 보게 됐죠. 지원을 해서 수상을 했고, 그때부터 엄마·아빠에게 음악 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탄 상이야'(방 의장은 제6회 동상 수상자)라고 하면서요. 하하. 이후에 제가 음악을 하고 있다고 얘기를 해도, 조금 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2019년 동갑내기 친구인 허정혁 씨와 시옷과 바람을 결성했는데, 어떻게 만들어진 팀입니까?

"정혁이랑은 어느 공연장에서 같은 라인업으로 처음 만났어요. 유재하 경연대회 한 기수 선배이기도 하고, 이후에 여러 번 마주치면서 팀을 꾸리게 됐습니다. 팀 이름은 '시인과 촌장' 같은 느낌으로 짓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OO와 바람'은 어때라고 제안했고, 정혁이가 그 때 당시 김소연 시인님의 '시옷의 세계'를 인상 깊게 읽었던 때라 '시옷과 바람'이라고 짓게 됐죠."

-해파 솔로 음반은 시옷과 바람 음악과 달라요. 부러 차별점을 주려고 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시옷과 바람 결성 이전부터인 2016년부터 만들어진 노래를 담은 거니까요.

"시옷과 바람이 저의 다른 자아입니다.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둘이서 만들기 때문에, 저의 색깔만 들어가기 어렵죠. 그렇다고 정혁이 색깔도 아니고. 둘이서 만들다 보니 '제3의 색깔'이 나와요. 기타 두 대로 단정한 음악 포크 음악을 하겠다고 정하다 보니, '시옷과 바람'만의 자체 색깔이 있죠."

-원래 포크보다 밴드 사운드에 관심이 많았나요? 시옷과 바람은 음악 활동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학생 때부터 좋아한 건 밴드 음악이죠. 시옷과 바람은 큰 의지가 돼요. 신(scene)에 발을 들였는데 혼자 헤쳐나가는 게 아니라 팀을 이뤄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죠. 외롭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요. 여린 이파리 같은 두 뮤지션이 힘을 합친 거죠. 시옷과 바람 활동 덕에 제 앨범을 만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어요. (일종의 연대 공동체 같다고 하자) 맞아요."

-앨범 수록곡 중 '세이프 헤븐'은 가사가 참 슬픕니다. 사운드는 몽환적인데 너무 부유하지는 않아요.

"올해 열세살 된 고양이 '몽구'랑 같이 살고 있는데, 어느날 몽구랑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죠. 그런데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평온한 상태를 얼려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다음 날이 오는 게 두렵고, 앞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던 때에 만든 곡이에요. 사운드는 몽환적이고 부유하되, 너무 벙벙거리거나 너무 젖어 있지는 않았으면 했어요. 톡 쏘는 사운드보다 먹먹하고 둥근 소리 질감을 좋아하는 게 제 성향이기도 해요."

-'아임 파이널리 어 고스트'(I'm finally a ghost)'는 콘셉트가 독특합니다.

"절 속박하는 것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유령이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되면 날 통제하려고 했거나 속박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실제 유령이 돼 내가 떠돌아다니면, 얼마나 시원할까라는 생각도요. 그런 통쾌함을 담고 싶었던 노래였고, 실제 쓰면서 통쾌함을 많이 얻었어요."

-'커다란 망치'라는 곡 제목도 독특합니다.

"어렸을 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걸 없었던 일로 여기고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잘못된 관계, 잘못된 습관, 잘못된 시스템 모두 부순 다음에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았죠. 그런데 싹 없애거나 지우는 건 불가능하고 수리와 보수 과정을 거쳐야 하는구나를 점점 깨닫게 됐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든 곡이에요."

-앨범 자체가 해파 씨의 힘들었던 청춘 기록 같은데, 마냥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노래를 쓰는 과정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거든요."

-이 앨범을 만들고, 더 이상 '죽은 척하기'를 안 해도 되는 상황인가요?

"처음 음악을 만들었을 때를 떠올리고 그때와 비교하면, 덜 죽은 척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힘든) 시기를 조금은 지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인 거 같고, 버텨온 제가 장하기도 해요."

-음악하기를 가장 잘했다는 생각이 든 때는 언제인가요?

"앨범을 만들면서 첫 합주를 했을 때요. 혼자 노래를 쓸 당시엔 음대에서 음악을 공부한 프로연주자들과 협업하는 건 꿈도 못 꿨어요. 합주를 할 때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감격했죠."

해파가 밴드와 합주하는 감격을 실제로 목격할 수 있는 날이 온다. 오는 9월15일 벨로주 홍대다. 해파는 이곳에서 '죽은 척하기' 발매 기념 단독 쇼케이스를 연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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