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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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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월드클래스 재즈보컬' 나윤선 무대를 보기 전엔 단단히 마음 먹어야 한다. 귀와 눈뿐만 아니라 마음 게다가 머릿속 어느 저편까지 몽땅 내어줘야 하니까.

나윤선이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친 정규 12집 '엘르(Elles)' 발매 기념 겸 데뷔 30주년을 기억하는 콘서트는 노래가 깊이 들어갈 때, 삶의 문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앙코르 첫 번째 곡으로 들려준 영국 재즈 보컬 노마 윈스턴 '저스트 섬타임스(Just sometimes)'가 그런 순간을 빚어냈다. 마지막 소절인 "아이 리얼라이즈 섬타임스 저스트 하우 아이 미스 유(I realize sometimes just how i miss you)"를 부른 직후 나윤선은 끝까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지난달 별세한 '한국 합창의 대부'이자 그녀의 부친인 나영수 한양대 명예교수를 떠올리면서 불렀기 때문이다.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 무대 위에서 노래 외에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나윤선이 용기를 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나 교수는 나윤선의 열렬한 팬이자 멘토였다. 그래서 이번에 나윤선이 윈스턴의 노래를 커버한 의미가 더 컸다. 윈스턴은 여성 재즈보컬은 허스키해야 한다는 편견을 깬, 소프라노 목소리를 갖고 있는 거장이다. 역시 소프라노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나윤선은 윈스턴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미성의 가녀린 목소리로도 재즈 보컬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윈스턴 그리고 나윤선은 입증했다. 그리고 나윤선에게 윈스턴처럼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준 사람 중 한 명이 나 교수였다.

이날 나윤선의 보컬엔 서사와 함께 정경이 있었다. 청각과 시각이 공존하는 공감각적 풍경을 선사했다. '갓스 고나 컷 유 다운(God's gonna cut you down)'이 그랬다. 세르비아 출신 피아니스트 보얀 지가 이번 콘서트 반주자로 나섰는데, 나윤선의 소개처럼 그는 청중뿐 아니라 다른 피아니스트에게 충분히 영감을 줄 수 있는 퍼포머였다.

보얀 지는 해당 곡을 연주할 때 해머가 현을 때려 타현악기(打絃樂器)로 분류되는 피아노를 타악기이자 발현악기(撥絃樂器)로 만들었다. 그랜드 피아노의 뚜껑을 왼손으로 때려 소리를 내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현을 직접 튕겼기 때문이다. 청중에겐 다소 낯선, 새로운 피아노 몸통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또 다른 악기 같은 나윤선의 그로테스크하면서 우아한 보컬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졌다.

두 아티스트 모두 뛰어난 기교에도 테크닉을 과시하는 게 절대 아니라, 곡의 정서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고민 끝에 찾아낸 기법이라는 걸 감정선으로 보여줬다.

나윤선이 직접 돌리는 뮤직박스와 함께 풀어낸 로버타 플랙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스 송(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은 '여백의 미(美)' 극한이었다.

에스토니아든, 프랑스든 모두 자신들의 민요 같이 들린다고 반응하는 '아리랑' 역시 이날도 함께 했다. 패티김의 '초우'는 나윤선이 해외 여성 뮤지션들뿐 아니라 국내 디바에게도 영감을 받았다는 맥락의 증표였다.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프랑스에서 재즈를 공부한 나윤선의 음악 근원은 어디인가 같은 끊임없는 성찰이 동반됐다.

엄청난 공연은 감각을 전하면서 사유를 끄집어낸다. 고민을 건너 뛴 감성은 가슴은 울릴지언정 머리에까지 와닿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윤선의 공연은 사유하는 머리, 감동하는 가슴, 전율하는 발끝까지 모두 뒤흔든다. 우리도 모르게 재즈, 여성 뮤지션들에게 진 빚을 나윤선은 매번 그렇게 갚아준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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