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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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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김봉현은 '힙합 글쓰기'가 '힙합'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힙합 저널리스트'다. 정확하고 깔끔한 문장의 율동성(律動性)으로, 메시지를 생포하는 그는 '글쓰기로 랩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봉현이 최근 펴낸 '한국과 힙합'(한겨레출판 펴냄)이 그 증거다. 힙합이 국내 어엿한 대중문화로 자리 잡는데 걸린 시간은 약 20년. 그런 과정에 글쓰기뿐 아니라 공연 기획자, 영화 제작자 등으로 힘을 보탠 김봉현이 자신의 업계 체험을 씨줄로 하고 한국사회의 속성을 날줄로 해 엮어낸 일종의 평론 에세이집은 '한국 힙합'의 풍경화다.

그런데 올해는 마침 '힙합 50주년'이다. 힙합 팬들은 1973년 8월11일을 '힙합의 탄생일'로 여긴다. 자메이카 출신 DJ 쿨허크(Kool Herc)가 미국 뉴욕 브롱크스 내 허름한 아파트에서 친구들과 작은 파티를 연 것이 힙합의 시작이라고 힙합계는 본다. 미국은 올해 초 '그래미 어워즈' 내 특별 무대 등 힙합 5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내내 열고 있다.

이런 시기에 '한국 힙합'을 환기해보는 일은 독자적인 힙합 문화를 만들어온 우리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김봉현은 그 일에 앞장서고 있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다음은 연남동 김봉현 작업실에서 그와 만나 나눈 일문일답.

-힙합 50주년에 책이 나왔습니다. 책 '후문'에서 '랩스타'로 추앙받거나 '힙찔이'로 경멸 받는 한국사회에서 힙합은 이제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다는 말도 의미심장했어요.

"물론 50주년은 힙합의 본고장이다 보니까 미국에서 더 큰 의미가 있죠. 어떤 분들은 '왜 우리가 그걸 기념하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힙합은 아시아에서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독자적인 역사를 만들었거든요. 몇십 년 동안 쌓아 올린 거잖아요. 힙합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남다른 게 사실이죠. 가난한 동네에 사는 흑인들의 음악이었고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보면 절박하게 매달리고 활용한 음악이거든요. 다른 장르 역시 그런 면이 있지만 힙합은 그런 속성이 핵심이죠. 한국에서도 힙합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맥락의 영향을 받았고,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포인트죠. '힙합이 내 삶을 구원했다'라는 말을 미국에서 많이 하고 한국에서도 하는데, 힙합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독자적으로 힙합 역사를 기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케이 힙합(K HIPHOP) 가이드북 2023'을 펴내면서 일본 힙합의 베테랑인 지브라(zeebra)의 추천사를 받았는데 '아시아에도 독자적으로 기념할 수 있는 힙합의 역사가 있다'라는 말씀에 되게 공감을 했어요. 이제 독자적인 우리 힙합이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힙합 50주년은 의미가 크죠."

-정확히 시기를 구분하기는 힘들겠지만, 한국식의 힙합 문화가 만들어졌다라고 할 수 있는 기점을 언제쯤으로 볼 수 있을까요?

"한국말 라임 같은 경우에는 2000년대 초반 버벌진트나 데프콘 같은 래퍼들이 체계를 만들었어요. 지금도 크게 보면 그들이 세워 놓은 큰 체계 위에 있다고 할 수 있죠. '쇼미더머니' 같은 경우엔 처음 나왔을 때 혹평을 받았지만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선구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한국이 힙합을 만나서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요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개인적으로는 저널리스트님 같은 비평가들이 국내 힙합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이 듭니다. 1990년대 후반 PC통신 나우누리에서 출발한 비평 중심의 블랙 뮤직 전문 동호회 '돕 사운즈'에서 분화된 창작 동호회 '쇼 앤 프루브'(SNP)에 몸 담으셨죠. 그 때 분위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돕사운즈와 SNP를 만드신 분들은 저보다 연배가 높은 분들이었어요. 그분들의 특징은 좀 다른 동호회보다는 좀 더 학구적인 느낌이 강했다는 거죠. SNP에서 활동을 하면서 버벌진트, 데프콘, 휘성 같은 뮤지션들이 아마추어 때부터 활동하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오가는 얘기들이 지적으로 수준이 높다는 걸 느끼기도 했죠. 그런데 한국 힙합 초창기라 딱히 무엇이 정해져 있다고 보기 힘든 시기였어요. 청년들이 혈기가 넘쳐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치고받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거기서 버벌진트가 '한국말 라임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보여줬어요. 누군가는 그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겠지만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기에 힙합 신에 받아들여졌죠."

-사실 한국어는 몇 개 정해진 모음으로 끝나는 게 많아서 라임 만들기가 힘든 구조로 알고 있습니다.

"(힙합 본고장인 미국에서 사용하는) 영어랑 좀 체계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이전엔 '끝말 맞추기' 식으로 많이 했죠. 버벌진트는 국문법의 기본 이론을 가지고 라임을 만들었어요. 구개음화, 경음화 등을 사용했죠. 거센 소리, 된소리 등을 염두에 두고 라임을 만드니까 메시지의 자연스러움을 해치지 않고도 라임이 만들어진 거죠."

-평론가님은 처음에 어떻게 음악 쪽에 관심을 갖게 되신 거예요?

"90년대에 뭐도 모르고 CD와 테이프를 많이 사서 들었어요. 꼭 힙합에 집중한 건 아니었어요. 그 중에 힙합적인 음반들이 있었던 거죠. 솔리드, 듀스 등의 음반도 들었어요. 그런데 홍대 앞 한 레코드점에서 우탱 클랜, 스눕독의 카세트 테이프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면서 힙합에 빠져들었어요. PC통신에 힙합 동호회가 있다고 해서 들어갔죠. 그런데 힙합은 다르잖아요. 비트가 쿵쾅거리는데 솔직하게 말하고, 욕도 하고, 그러니까 호기심을 가지고 이제 계속 듣게 된 거죠."

-처음으로 사신 힙합 음반이 뭐였어요?

"엘엘 쿨 제이(LL Cool J)의 '미스터 스미스(Mr. Smith)'요. 원래 16곡인가 들어있는데 국내 라이선스 반엔 6곡인가 잘려가지고 10곡이 들어있었어요. 사전 심의 제도가 있던 때라 만신창이가 된 앨범인데 그걸 그때 듣고 좋아했던 거죠."

-저널리스트님도 처음엔 창작을 하고 싶어했나요?

"저는 창작에 대한 생각은 크게 없었어요. 왜냐하면 재능의 종류가 좀 다르다고 생각해서요. 전 윤종신 씨의 음악도 엄청 좋아해요. 그런데 윤종신 씨의 가사를 잘 받아들이고 잘 느껴서 그것에 대해 남들에게 말해줄 수는 있지만 제가 그런 가사를 직접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감성보다) 이성과 논리가 좀 더 개입되는 사람이라 재능의 종류가 다르다고 여겼거든요. 그래서 그냥 이 일을 처음부터 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거를 하고 싶었어요."

-이성에 대해 말씀 주셨지만, 저널리스트님의 글은 담백하고 문장 구조가 깔끔합니다.

"좋게 말하면 깔끔한 것이고, 좀 건조하고 딱딱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죠. 저는 미사여구 같은 걸 붙이는 미문을 즐기지 않아요. 그렇게 쓰고 싶은데 못 쓴다기보다는 애초에 제 천성이 그런 문장을 추구하지 않는 거죠. '문학적인 글보다는 다른 종류의 글을 잘 쓰는구나'를 느꼈고 그쪽을 발전시키려고 했어요 글쓰기 책을 쓰거나, 글쓰기 강의를 할 때도 이렇게 말해요. '논증적이거나 논리적인 구조가 있는 글쓰기를 배우려면 저한테 오시라. 다만 전 문학적인 글이나 시 같은 거는 가르치지 못한다'라고요."

-글쓰기에서 강조하시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아주 많지만 예를 하나 들면 처음부터 끝까지의 흐름과 배합의 완성도에 대해서요. 간단한 문장으로 툭툭 먼저 던져놓고 다음에 좀 더 긴 문장으로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구현하고 또 균형을 잡기 위해 전환하는 느낌의 문장을 넣어주는 식의 배합과 구성이죠."

-가사 쓰는 것과 비슷한데요. 평론가님은 글쓰기로 힙합을 하시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날카로운 통찰력은 여전한데, 뭐랄까 좀 더 태도가 대상을 아우르는 느낌이 듭니다.

"잘 아시겠지만 살아가면서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있는 일들은 없잖아요. 예를 들어 '쇼미더머니'도 초반엔 비판을 했지만 첫 방송 이후 11년이 지난 지금 '쇼미더머니'도 변했기 때문에 평가도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전 그때그때마다 진짜로 느끼는 걸 말해요. 긍정적인 성향이 많아졌다면 그런 식으로 평가를 하고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PC통신으로 글쓰기를 시작하셨지만 온라인뿐 아니라 물성이 있는 책으로 글쓰기를 꾸준히 하시는 점도 좋아요. 요즘 같은 때에 책을 펴낸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거창하게 '책을 지켜야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을 하지는 않아요. 또 저는 계속 시대에 적응을 하는 사람이고 시대에 적응을 하고 싶은 사람이죠.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래도 책은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중요한 저의 한 부분이에요. 일본 중고·수입 음반 가게인 '디스크 유니온'에서 'DU 북스'라는 출판사를 운영해요. 이 출판사랑 미팅을 하는데 DU 북스가 자신들의 출판사를 소개한 글이 낭만 그 자체예요. 제 마음이랑 같아요. 이런 글입니다. '더욱 편리하게 패스트푸드화 돼 가는 세상에서도, 우리는 편리하지 않는 사치스러움과 풍요로움을 가능한 누리며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의 촉감, 잉크 냄새, 책의 두께, 사람의 오감 등의 한 패키지에 대한 애착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예요."

-힙합 저널리스트라고 불리시는데, 개인적으로는 평론가님에게 약간 손해일 수 있는 수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전문성을 담보해야 하는 저널리스트라는 수식도 얻기 힘들지만 힙합 말고도 다른 장르 음악도 잘 아시잖아요. 그럼에도 '힙합 저널리스트'라는 직함을 더 선호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냥 제 성격인데요. 제가 힙합을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많이 다루기 때문이에요. 저널리스트라는 직함을 선호하는 건 평론가라는 말을 떼어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평론만 하는 게 아니라 기획도 할 수 있고 영화제도 만들 수 있고 다큐멘터리도 제작할 수 있고 정말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서포트할 수도 있고 또 래퍼들과 협업을 할 수도 있거든요. 전 그러고 싶은데 평론가라는 말은 되게 좁잖아요. 그래서 힙합과 저널리스트를 합친 거고 그렇게 저를 포지셔닝하고 싶었어요."

-이번 책을 내시면서 생각이 좀 정리된 부분이 있습니까?

"19권을 냈지만 되게 부담스러운 책이었어요. 저의 숙원 사업 같은 느낌인 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적인 혹은 예술적인 책이 아니잖아요. 사회비평서라고 하기엔 (사회과학 전문서적보다) 전문성이 떨어지겠죠. 그런데 '힙합을 좋아하는 한국인'으로서 '이 둘의 관계가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쪽에서는 열광하는데 한쪽에서는 멸시하고 폄하하고…. 또 한국은 힙합과 안 맞는다고 했는데 아시아 나라 중에서 힙합이 한국에서 제일 터졌고요. 이런 게 되게 아이러니하잖아요. 복합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런 얘기를 아무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저의 오리지널리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안 시켰지만 막연한 책임감이 있었던 거죠. 또 힙합이 인기 있는 것과는 별개로 미디어에서 약간 함부로 말하거나 쉽게 대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클래식 음악을 다룰 때 잘 모르면 그냥 다루지 않아요. 그런데 힙합은 잘 몰라도 '저항의 음악'이라고 쉽게 써요. 저항도 복합적인 관점이 있어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사실 많지 않거든요. 힙합에 대해 더 알려고 하지 않고, 더 전문성 있게 알려고 하지 않죠. 알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나요. 그런 얘기를 저 혼자만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책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이런 얘기를 제대로 하고 싶어서 처음엔 500쪽짜리 책으로 내고 싶기도 했습니다. 앞서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같은 책은 권위 있는 인문학서를 펴내는 출판사인 '글항아리'에서 낸 것도 사람들이 힙합을 얕보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였죠."

-그러면 이번에 책을 내시고 책임감이 좀 덜어진 건가요?

"개인적으로는 약간 좀 후련한 건 있어요. 그런데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많은 관심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제 주변분들과 (이번 책의 표지 인물인) 래퍼 더 콰이엇(The Quiett·신동갑) 같은 경우에는 저랑 힙합에 대해 깊은 것까지 공유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더콰이엇, 벤틀리, 국회의사당이 한 프레임에 들어 있는 표지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5년 전에 '리스펙트'라는 제목의 웹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CGV 아트하우스에서 개봉한 적이 있습니다. 래퍼들과 저의 예술적·음악적 대담을 담았어요. 랩의 예술성, 힙합 문화의 멋과 매력을 얘기했죠. 그 때 더콰이엇의 소속사 사무실이 여의도에 있었어요. 그때 그 사무실에서 나와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자신의 차인 벤틀리를 주차해 놓고 랩을 했어요. 그게 되게 좋았어요. 힙합은 홍대이고 홍대는 예술과 문화의 거리지만 여의도는 한국의 중심지잖아요. 정치와 금융의 중심이죠. 그런데 래퍼들이 성공을 해서 여의도에 사무실을 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한국의 정치 중심지인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성공한 래퍼가 그 증표이자 성공의 전리품인 벤틀리를 세워놓고 랩을 하는 건 상징적인 그림인 거죠. 이번에 책을 쓰면서 저 그림이 다시 떠올랐어요. 이 사진 하나에 제 책의 주제가 모두 들어 있는 것 같았어요.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2010년대에 대한 것이에요. '쇼미더머니'가 등장하고 힙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올라가고 힙합이 음원 차트 1위를 하는 그 시기에 벌어졌던 한국과 힙합의 관계들을 다뤘어요."

-'랩스타로 추앙하거나 힙찔이로 경멸하거나'라는 부제도 인상적입니다.

"이번에 제목과 부재는 100% 제 워딩이 그대로 반영됐어요. 출판사에서 잘 받아주셨죠. 저는 이번 제목과 부제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특히 부제는 힙합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두 시선을 잘 담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올해에도 '힙합 전사'라는 말이 쓰이더라고요. 근데 '재즈 전사' 식의 표현은 쓰지 않잖아요. 전사는 이방인 혹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될 때 사용하는 개념이죠. 한국이 바라보는 힙합의 태도를 다양하게 담고 싶었어요."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책을 쓰실 예정입니까?

"아시아를 넘나드는 활동에 좀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일본 래퍼인 지브라도 제가 5월에 초청했죠. 10월 말에 나고야에서 '힙합 커넥션'이라는 페스티벌이 열려요. 타이거 JK, 수퍼비가 가는데 제가 에이전시로 같이 가거든요. 이런 식의 교류를 계속하고 싶어요. 개인을 떠나서 시대가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해외 진출의 이야기가 아니라 활동 기반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대가 올 거고 그렇게 돼야죠."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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