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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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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러닝 타임 206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신작 '플라워 킬링 문'(원제:Killers of the Flower Moon)의 길고 긴 상영 시간은 곧 이 작품의 정체다. 이 거장은 자신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관객이 3시간26분 간 꼼짝 않고 보기를 요청한다. 어떤 끊어짐도 없이 영화의 페이스에 발을 맞춰 가야 이 작품에 담아낸 것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래서 '플라워 킬링 문'은 시리즈가 되지 않고 시네마가 돼야 한다. 이 영화가 도전하는 건 미국이라는 나라의 기반과 미국을 떠받치는 멘탈리티에 대한 코멘트. 이런 거대 담론을 제대로 논의하고 이해하려면 이 정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시간과 함께 영화 속 세월을 오롯이 경험해야 한다는 게 스코세이지 감독의 판단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애플TV+라는 플랫폼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극장 개봉을 관철했다.


데이비드 그랜 작가가 2017년에 내놓은 동명 논픽션을 영화로 만든 '플라워 킬링 문'은 역시나 스코세이지스럽다. 1920년대 오클라호마를 배경으로 원주민 오세이지 부족이 막대한 오일머니를 벌게 된 뒤 이 돈을 노리고 접근해 충분히 시간을 들여가며 이들을 하나 둘 제거해가는 백인 집단의 이야기는 탐욕-범죄-권력-전락으로 이어지는 그의 갱스터 영화를 닮아 있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두 파트너 로버트 드 니로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등장 역시 이것이 '스코세이지식(式) 영화'라는 걸 명확히 한다. 원작에 담긴 방대한 이야기를 치밀하고 유려하게 풀어내는 거장의 솜씨는 이번에도 긴 러닝 타임을 너끈히 감당해낸다. 스코세이지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큰 제작비인 2억 달러(약 2700억원)를 쏟아 부었다는 게 방증하듯 역작이며 노작이다.


'플라워 오브 킬링 문'의 텍스트는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카지노' '아이리시맨' 등과 유사하지만, 콘텍스트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맞닿아 있다. 조던 벨퍼트가 저지른 천문학적인 규모의 주식 사기 실화로 월가의 탐욕을 넘어 미국 사회를 좀먹는 병폐를 지적했던 스코세이지 감독은 약 100년 전 오일 머니를 둘러싸고 벌어진 오세이지족 살인 사건을 통해 미국 주류 사회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유한 패악의 역사를 상기한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니스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끝내 고백하지 못한 한 가지 진실에 불을 들이밀어 기어코 밝혀냄으로써 그때 그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실토한다. 스코세이지 영화 세계를 성실히 복습해온 관객에겐 이 스토리와 연출 방식에 일부 기시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이 웬만한 영화가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있다는 건 명백하다.


스코세이지 감독 영화가 으레 그렇듯 이 작품 역시 배우 보는 맛이 있다. '플라워 킬링 문'에서 드 니로와 디캐프리오가 보여준 연기를 그들이 해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명배우들의 클래스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브렌던 프레이저, 제시 플레먼스 등의 연기 역시 뛰어나다(드 니로·디캐프리오·프레이저는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자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몰리를 연기한 릴리 글래드스톤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글래드스톤과 줌미팅으로 만나 뒤 곧바로 그를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컴퓨터 화면을 넘어서 느껴지는 눈빛에서 본능적으로 글래드스톤이 몰리를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결정에 화답하듯 이 배우는 자신의 가문과 오세이지족이 맞닥뜨린 비극을 그 강렬한 눈에 모두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 작품에서 능동적인 범죄자는 사실상 드 니로가 연기한 윌리엄 헤일 한 명 뿐이다. 디캐프리오가 맡은 어니스트를 포함해 헤일의 범죄 행각에 얽힌 이들은 대개 헤일과 그가 내린 명령에 복무하며 푼돈을 받아 챙기는 수동적인 인물들이다. 말하자면 '플라워 킬링 문'이 더 부각하려는 미국의 폭력의 역사는 어니스트처럼 사는대로 생각하는 성찰 없는 자들이 저지른 만행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시키는 자, 시키는대로 하는 자, 방관하는 자 모두를 공동정범으로 보는 것 같다. '플라워 킬링 문'은 1942년생 80대 노장이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뜨겁고, 여든이 넘어서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만이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서늘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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