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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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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방시혁 의장이 이끄는 K팝 최대 기획사 하이브(HYBE)가 그간 강점으로 내세운 '멀티 레이블'이 시험대 위에 올랐다. 민희진 대표가 이끄는 자회사 어도어(ADOR) 사태에 직면하면서다.

멀티 레이블은 쉽게 말해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이 함께 사는 형식이다. 방 의장이 2005년 설립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부침을 겪다가 글로벌 슈퍼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됐다.

여자친구의 쏘스뮤직(2019), 세븐틴의 플레디스·지코의 KOZ엔터테인먼트(2020), 미국 연예기획사 이타카 홀딩스(2021), 미국 힙합 레이블 QC미디어홀딩스·라틴 레이블 엑자일 뮤직(2023)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워왔고 '멀티 레이블'을 운영하게 됐다. 2018년 CJ ENM과 합작해 세운 빌리프랩은 작년에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현재 국내외 하이브 레이블은 11개에 달한다.

2021년 설립된 어도어는 하이브가 인수 형태로 편입한 것이 아닌, 자체적으로 처음 세운 레이블이다. 사실 처음부터 설립이 기획됐던 레이블은 아니다. 업계에 잘 알려진 것처럼 방 의장과 민 대표는 쏘스뮤직에서 새로운 걸그룹을 탄생시킬 예정이었다. 방 의장·쏘스뮤직, 민 대표의 이견차로 이것이 틀어졌고 결국 민 대표가 어도어를 이끄는 것으로 갈등은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갈등의 시작이었다. 2022년 5월 쏘스뮤직에서 걸그룹 '르세라핌'이 론칭하고 같은 해 7월 '뉴진스'가 데뷔하면서 경쟁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같은 회사에서 색깔이 다르더라도 2개월 차이를 두고 신인 그룹이 데뷔하는 건 이례적이다.

결국 쏘스뮤직과 어도어는 각각 르세라핌과 뉴진스를 앞세워 실적·성과 경쟁을 하게 됐다. 물론 표면적으로 '선의의 경쟁'처럼 보이는 구도가 두 회사의 성장엔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하이브의 지원사격 여부 등을 놓고 사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두 팀 모두 흥행에 성공했는데 사실 뉴진스가 앞서가는 모양새였다. 이 과정에서 민 대표와 어도어는 하이브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독자적으로 팀을 성공시켰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어도어와 자신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여겨왔다. 민 대표는 내부적으로도 관련 불만을 계속 표시해왔다.

물론 어도어는 하이브 자본으로 세워진 것이다. 실제 하이브가 자본금 161억원을 출자해 만들었다. 현재 지분도 하이브가 80%, 민 대표 측이 20%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민 대표는 '하이브 자본'에 대해 동의를 하지 못한다는 의견을 피력해왔다. 민 대표는 작년 초 영화 주간지 '씨네21'과 인터뷰에서 "투자금이 결정돼 투자가 성사된 이후의 실제 세부 레이블 경영 전략은 하이브와 무관한 레이블의 독자 재량이기도 하거니와 난 당시 하이브 외에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 제안을 받았었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처가 어디든 '창작의 독립', '무간섭'의 조항은 1순위였을 것이라 사실 꼭 하이브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왜 굳이 하이브였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당시 인터뷰의 결과 다른 맥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각설한 바 있다.

민 대표의 말처럼 멀티 레이블은 각 회사의 독립적 운영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하이브 내에 속해 있더라도 레이블들은 서로의 작업에 대해 절대 함구하고 있다. 협력보다 경쟁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국내에서 멀티 레이블 체제를 처음 시작한 건 하이브가 아니다. 지난해 하이브와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SM엔터테인먼트가 울림엔터테인먼트 등을 레이블로 편입하며 덩치를 키웠고 CJ ENM도 한 때 독자적인 여러 개의 레이블을 인수해 운영했다.

멀티 레이블, 특히 상장사의 멀티 레이블의 최대 강점은 양산한 다량의 콘텐츠로 사업의 다각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매출 규모가 커지면 주가 상승도 탄력을 받게 된다.

세계 음반 시장 1위 나라인 미국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 잡은 시스템이다. 이른바 세계 3대 음반사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워너 뮤직 그룹이다. 각각 수많은 레이블들을 거느리면서 전 세계 음악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86년 독일의 베르텔스만이 미국 RCA를 사들이면서 세계 음반회사들의 인수합병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1980년대엔 당시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일본이 음악 산업에서도 강자였다. 소니가 미국 CBS를 사들였고 역시 일본의 마쓰시타(현 파나소닉)은 미국 게펜 레코드를 인수했다. 이와 별개로 1992년엔 영국 EMI가 영국 버진 뮤직(VMG)을 사들였다. 그렇게 1990년대 초반은 소니, 마쓰시타, EMI, 베르텔스만, 네덜란드 폴리그램(PolyGram), 미국 타임 워너 등 6개 메이저 음반사가 세계 음악 시장을 석권했다.

그런데 점차 독과점이 된다. 이내 1990년대 중후반엔 워너, 소니, EMI, 폴리그램, 독일 비엠지(BMG) 등 5대 메이저 음반사로 재편됐다. 또 2000년대엔 유니버설뮤직, 소니 BMG, EMI, 워너뮤직이 세계 4대 음반사가 된다. 당시 세계 3위 음반 업체인 EMI와 4위인 워너뮤직이 서로 인수하겠다며 M&A 공방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다 또 인수 합병을 거쳐 현재 유니버설, 소니 뮤직, 워너로 재편된 것이다.

현재 유니버설엔 인터스코프레코즈, 버진레코즈, 캐피톨레코즈, 리퍼블릭 레코드 그리고 현재 하이브와 손잡고 글로벌 걸그룹 '캣츠아이' 데뷔를 준비 중인 게펜 레코드 등이 속해 있다. 소니뮤직그룹엔 RCA레코즈, 콜롬비아레코즈, 에픽레코즈 등이 있다. 워너뮤직도 아틀란틱, 팔로폰 등을 운영 중이다.

이들 세 음반사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미국 빌보드가 이들을 제외하고 세계 음악시장에서 독자적 성과를 낸 레이블과 유통사 리더를 선정하는 타이틀이 '인디 파워 플레이어스'다. 세계적 기준의 규모를 놓고 볼 때 세 글로벌 음반사를 제외하면 모두 인디 취급을 받는 셈이다. 작년 6월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빅히트 뮤직의 신영재 대표와 쏘스뮤직의 소성진 마스터 프로페셔널, SM 이성수 CAO·탁영준 전 COO(현 공동대표)가 '2023 빌보드 인디 파워 플레이어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운영 방식이 얼마 전까진 국내에선 효과를 보지 못했다. 2020년대까지만 해도 능력 있는 프로듀서의 제왕적 리더십이 주목 받았다. SM의 이수만, JYP의 박진영, YG의 양현석 즉 하이브가 급부상하기 전 3대 K팝 기획사로 불리던 곳들이 예다.

하지만 1인 프로듀싱 체제로 오랜기간 군림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SM 경영진과 갈등을 겪다 퇴진하면서 한 때 SM 인수에 나섰던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이 더 주목 받기 시작했다.

1인 프로듀서 체제는 다양한 그룹이 속한 회사 색깔에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순차적으로 팀의 음반이 발매돼 팀마다 활동 공백 기간이 비교적 길다. 그룹의 음반 발매와 활동이 수익과 바로 직결돼 바로 바로 음반을 내는 최근 K팝 기획사의 흐름과 어긋나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브는 쉬지 않고 소속 그룹들의 음반이 나온다. 올해만 들어서도 르세라핌,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보이넥스트도어 등 각 레이블에 속한 그룹들이 앨범을 냈고 플레디스와 빌리프랩은 각각 신인 그룹 투어스와 아일릿을 냈다. 하이브의 주력인 세븐틴, 뉴진스는 곧 새 앨범을 낸다. 이로 인해 업계가 크게 우려했던 방탄소년단의 군백기를 메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어도어 사태에서 보듯 레이블 고유의 색깔을 지키는데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민 대표 측은 자신들이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 의혹 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자 하이브가 민 대표 등이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 시도를 한 정황을 포착했다며 보복 형태로 감사권을 발동했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빚어지고 있지만, 사실 아일릿이 지난달 데뷔했을 당시 최근 K팝계 뉴진스가 유행시킨 Y2K 감성 분위기를 풍긴다고 반응하는 이들도 꽤 됐다. YG의 블랙핑크와 베이비몬스터처럼 회사 내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팀이 나왔을 때 용인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2년의 차이를 두고 비슷한 색깔의 걸그룹을 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뉴진스와 아일릿은 레이블도 다르다. 민 대표 측은 "하이브 산하 레이블에서 데뷔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가 누구의 동생 그룹이니 하는 식의 홍보도 결코 용인할 생각이 없다"고 꼬집고 나서기도 했다.

반면 최근 유행한 Y2K나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이 민 대표의 전유물은 아니다. 뉴진스와 아일릿을 따져 놓고 보면 프로듀싱 방향성이나 지향점이 다르다는 분석도 꽤 나온다. 여기에 민 대표 역시 과거의 다양한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이 있다. 민 대표는 평소 '정반합(正反合) 이론'을 중요하게 여겨왔고, 이를 통해 SM에 비주얼 디렉터로 몸 담았을 당시에도 기존 레퍼런스에서 고유성을 길어올린 작업을 선보여왔다. 정(正)과 반(反)이 갈등을 겪으면서 합(合)으로 초월한다는 논지를 K팝 세계에도 적용해왔다. 이런 민 대표의 지향점은 1인 프로듀서 체제일 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서로 독립적인 체제로 운영되는 멀티 레이블에선 레이블 간 정반합은 자칫 기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K팝 기획사들에겐 멀티 레이블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회사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를 뒷받침하는데 해당 시스템이 아직까지는 적격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해외 대형 음반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도 몸집을 불려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SM을 인수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역시 멀티 레이블 체제이고, SM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천명한 SM 3.0 역시 멀티 레이블을 골자로 한다.

최근 힙합 콘셉트를 내세운 비츠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영파씨'가 크게 주목 받고 있는데, 역시 다수의 멀티 레이블을 갖고 있는 알비더블유(RBW)와 여기에 속한 DSP미디어와 협업이 없었으면 데뷔 과정이 더 힘들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JYP엔터테인먼트처럼 박진영이라는 컨트롤 타워를 확실히 두고 본부제로 운영하는 방안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결국 각 레이블의 개성과 시스템을 존중하되, 모회사의 주도로 레이블 간 의견을 조율하고 모두 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게 필요하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박지원 하이브 CEO는 지난 23일 사내 이메일을 통해 "이번 사안을 잘 마무리 짓고 멀티레이블의 고도화를 위해 어떤 점들을 보완해야 할 것인지, 뉴진스와 아일릿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어떤 것들을 실행해야 하는지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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