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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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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가수 백설희 '봄날은 간다'를 떠올린 건, 봄이 확연히 가고 여름 초입에 들어설 때 배우 박예니를 만나서가 아니다. 여리여리하지만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들어 긍정적 힘을 갖게 만드는 '연분홍'의 속성을 그녀가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아서다.

'예쁜 아이'를 뜻하는 사라진 우리말 '예니'를 본명으로 가지고 있는 그녀. 최근 개봉한 영화 '그녀가 죽었다'(감독 김세휘)에서 박예니가 맡은 '호루기'는 그녀의 본연과는 먼 모습이다.

누적관객수 90만명에 육박 중인 이 영화는 '훔쳐보기'와 '보여주기'의 역학 관계를 흥미롭게 다룬다. 자신을 철저하게 포장한 소셜 미디어 스타 '한소라'(신혜선 분), 그런 그녀를 죄책감 없이 훔쳐보는 부동산 중개업자인 피핑 톰 '구정태'(변요한 분)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다.

박예니가 맡은 BJ '호루기'는 한소라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인물이다. 화젯거리가 될 거 같은 일에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호루기는 영화 속 긴장감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완화하는 신 스틸러다. 이 캐릭터에 펄떡거리는 생동감을 불어넣은 박예니는 호평을 듣고 있다.

평상 시 미국 뉴욕대 티시 예술대학·하버드대 대학원 출신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지만, 연기만 하면 이 모든 수식이 당분간 얼어붙으니 이는 박예니의 연기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2020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통역사 역할로 데뷔한 박예니는 배우 김남희와 호흡을 맞춘 KCC건설 스위첸 CF로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문명의 충돌'을 주제로, 실제 부부의 공감대를 살 만한 내용을 드라마타이즈 형식으로 선보인 이 광고는 인기에 힘 입어 시즌2까지 제작됐다. 박예니는 김남희와 함께 실제 부부 삶을 톺아보는 것 같은 '현실 연기'로 주목 받았다. 스크린 데뷔작인 '내겐 너무 소중한 너'(2021)에서도 무용을 전공했지만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위해 귀향한 '연주'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 연기를 그려냈다.

이렇게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이는데 박예니는 되도록이면 자신의 안에서 인물의 성격을 끄집어내려고 한다. 그녀에게 선험적(先驗的) 경험은 무궁무진한 듯하다. 다음은 최근 충무로에서 만나 박예니와 나눈 일문일답.

-무대인사를 재밌게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희가 선물을 들고 객석 뒤편에 계신 관객분들에게도 직접 찾아가서 드리고 했어요. 변요한 선배님, 신혜선 선배님, 윤병희 선배님과 진짜 재밌게 무대인사를 했어요. 저희끼리 계속 무대인사를 하고 싶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죠."

-'그녀가 죽었다' 오디션은 어땠습니까?

"일단 제 목소리가 좀 저음인데 감독님이 그 자리에서 목소리 톤을 한 두 음만 올려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조금 더 밝게 해볼 수도 있냐고 물어보시기도 했고요."

-'그녀가 죽었다'의 호루기, 넷플릭스 '셀러브리티'(2023)에서 맡으셨던 '정선'은 극 중에서 설정된 캐릭터 위치가 유사해요. 모두 셀럽 주인공 곁에 있는 인물이죠. 하지만 캐릭터 성격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니 씨가 보시기에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호루기, 정선 둘 다 텐션이 높은 캐릭터이긴 해요."

-그런 지점은 예니 씨랑 다를 거 같은데요.

"처음 뵙는 분 앞에선 살짝 긴장하지만, 평소에 밝고 긍정적이고 또 이렇게 잘 웃어요. 하하. 그래서 밝은 역할을 연기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죠. 정선이는 명품을 굉장히 좋아하고 소셜 미디어 스타들을 연예인처럼 여기면서 따라하고 싶어 하는 특징이 있었죠. 반면 호루기는 텐션은 높아도 '저격 방송'을 하는 친구죠. 악하다고까지 볼 수 없지만 남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친구예요."

-그럼 혹시 호루기의 전사(前史)에 대해 상상해본 게 있나요?

"호루기는 근거 없이 공격을 하지는 않아요. 이유 없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요. 대본상에도 살짝 다루긴 했는데 맛집이라고 광고했는데 알고 보니까 맛이 없고 직원들이 불친절한 곳을 저격한다든지,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공격한다든지 해요. 자기가 생각했을 때 부조리한 것들을 저격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죠. 한소라를 저격할 때도 그녀가 소셜 미디어에 비건 샐러드를 올리면 '어디 가서 족발 뜯고 있을 것'이라는 공격하는 식이죠. 이건 제 애드리브이기는 했는데,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사람들은 욕 좀 먹어도 싸다는 생각으로 방송을 하는 친구가 호루기예요."

-호루기는 자신만의 '정의 기준'이 있는 친구네요. 혹시 호루기 캐릭터에서 가장 공감이 된 지점들이 있나요?

"소라가 사라진 것에 대해 경찰서에 신고를 하면서 처음 호루기가 등장하잖아요. 소라가 걱정돼서 신고하러 간 마음은 가짜가 아닐 거라 생각을 하는데, 그 와중에 경찰한테 이 내용을 자기 방송에서 얘기해도 되냐고 물어보잖아요. 그러면 호루기가 '나쁜 사람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자신의 착해 보이는 걸 숨기려고 하는 일종의 방패 같은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렇게 해석하니 몰입이 조금 더 쉽더라고요."

-물론 호루기가 표출하는 형태와는 당연히 다르겠지만, 예니 씨도 방어기제 같은 게 있을 거 같아요. 국내에서 국제고 졸업 이후 뉴욕대 티시 예술대학과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연기를 공부하셨잖아요. 그래서 항상 학력이 먼저 언급되는데 이에 대한 방어가 본인도 모르게 생겼을 거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으실 거 같고요.

"유학생활을 했고 또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는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 그래서 '얘가 성격이 안 좋을 것이다'라는 편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누구를 만나든 따뜻하게 대하려고 해요. 가식은 절대 아니고요. 가식이라면 항상 그렇게 하기 힘들겠죠. 누군가를 만날 때 제가 조금 더 바보짓을 하는 거 같고, 광대가 되더라도 망가지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그녀가 죽었다' 막바지 장면에서 소라가 정태에게 행하는 행동이 그리스 비극적인 분위기도 풍겼습니다. 예니 씨가 보시기에 이번 영화의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소재가 독특하다는 얘기에 너무 공감하고요. 또 정태의 시선으로 보다가 소라의 시선으로 바뀐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특히 소라가 남의 관심을 훔쳐 사는 사람인데 포장된 모습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켰을 때, 공포감까지 가는 수준의 수치스러움을 보여주는 게 제일 재밌었어요. 우리 모두 자신의 본 모습은 자기만 알잖아요. 그런데 그런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날카롭게 지적 받았을 때 생기는 묘한 감정의 순간을 영화가 잘 나타내준 영화 같아요."

-말씀 주신 부분은 스타들의 속성과도 맞닿는 지점이 있네요.

"가끔씩 저를 전혀 모르시는 분들이 악플을 남기면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상처 받는 제 모습을 보고 고민이 될 때가 있어요. 제가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모습이 맥락 없이 '짤'로 온라인에 돌아다니는데 저에 대한 편견이 들어간 글들도 있었고, 무시하는 글들도 있었죠. 하지만 제가 계속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다 보면 제 편이 그래도 생기지 않을까 믿고 있어요. 특히 이번 '그녀가 죽었다'에서 대단하신 선배님들과 함께 하면서 '이 분들은 그릇이 정말 크구나. 강단도 세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저도 '더 근육을 길러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었어요."

-연기를 맨 처음에 갈망하게 된 때를 듣고 싶습니다.

"정확한 시점은 다섯 살 때였어요. TV에 나오시는 분들이 진짜 의사나 소방관이 아니라 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라는 걸 알았을 때였거든요. 초등학교 때 연기 학원이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어요. 대신 저랑 약속을 하셨어요. 공부 잘해서 대학교에 들어간 뒤 시작하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셨죠. 그래서 (뉴욕대) 심리학과에 들어갔고 예술대로 편입하려고 오디션을 봤어요. 미국에서 연기과로 유명한 대학이라 맨 처음부터 그걸 목표로 해당 대학에 들어간 거죠."

-심리학을 계속 공부하셨어도 연기에 도움이 됐을 거 같아요. 아무래도 캐릭터 이해나 감정 이입에 도움이 됐을 거 같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부분들에 많이 흥미를 느껴요.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좋게 고쳐 나갈 수 있을까 또 생각하죠. 만약 내부 편입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계속 재밌게 공부했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배우들은 인문학자 같기도 해요. 사람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이해해야 하잖아요. 연기를 하시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나요?

"이 직업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그러니까 연기가 아닌 진짜 본연의 모습들을 갖고 있는 분들을 만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저희가 연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들이 중요하다는 걸 실제로 깨닫게 됐죠. 대학교 때 연기 지망생들도 조명팀, 음향팀, 카메라팀을 다 해요. 이런 걸 다 해봐야 배우로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배우가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 현장 경험을 하면서 각자 하시는 역할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까 그분들의 마음을 완전히 알지는 못해도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해주시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됐죠. 그게 너무 좋아요."

-글 쓰시는 것도 좋아하실 거 같아요.

"무작위로 질문을 던져주는 5년짜리 다이어리를 쓰고 있어요. 매일 매일 질문이 달라요. 어떤 거는 가볍고 어떤 질문은 되게 심오하죠. (파편화된 질문에서 자기 삶의 단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거네요라고 반응하자) 맞아요. 그리고 질문들이 제가 관심 받는 느낌을 줘요. 누가 나한테 구체적인 질문을 해주면 좋을 때가 있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 뭔지 물어봐 주시는 걸 좋아해요."

-예니 씨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입니까? 하하.

"저는 연한 핑크를 좋아해요. 연분홍이요. 겉으로 보기엔 너무 여리여리하고 약할 것 같은데 연분홍만큼 강한 색깔이 없는 것 같아요. 보고 있으면 사람이 녹게 되잖아요. 저는 연분홍색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요.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파워가 엄청 세다는 것과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색은 자기가 담고 싶어 하는 느낌을 반영한대요. 저도 제가 여리여리하게 보여도 제대로 보셨을 때 기분이 좋아지셨으면 좋겠어요."

-예니 씨는 잠깐 뵀지만 태생적으로 순하고 선한 느낌이 있어요. 정말 사랑 받고 잘 자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 태생적인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이길 수가 없죠. 정말 말씀하신 연분홍 같은 느낌이에요.

"부모님하고 굉장히 친해요. '룸메이트'라고 부를 정도로요. 그런 부분이 아마 잘 자란 느낌을 주는 거 같아요."

-데뷔 이후 초창기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사회적인 활동에도 관심이 많다고요.

"그렇다고 아직 적극적으로 봉사를 많이 하거나 기부를 하지는 못했어요. 좀 더 영향력이 커질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럼 배우의 사명감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시는 게 있나요?

"어렸을 때는 마냥 재밌을 것 같아서 연기를 좋아하게 됐지만,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나서 정말 뼈저리게 느꼈던 거는 사람들에 대한 반응이에요. '위로 받았어요'라고 말씀 해주시면 내가 연기를 하는 이유가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사람들이 웃는 게 좋으니까요."

-뭔가 연기가 공적인 영역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네요.

"되게 자기중심적인 걸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그 순간에 제가 보여지는 것에 대한 즐거움도 있는 거니까요."

-인터뷰하면서 '망가질 수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셔서 그럼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어요?

"저는 뭐든 준비가 돼 있어요. 만약 'SNL 코리아'에 초대를 해주신다면, 역대급의 짤을 만들어드릴 수도 있어요. 하하."

-이름은 본명이신 거예요?

"네. 예쁜 아이라는 뜻을 가진, 사라진 우리말 단어예요. 저희 어머니가 지어주셨어요. 제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아들인 줄 아셨대요. 저희 언니 이름이 예슬이고, (태어나기) 제 이름은 예찬이었어요. 근데 태어나고 보니까 딸인 거죠. 그 때 엄마가 대학교 다니실 때 좋아하시던 국어국문과 교수님이 알려주신 단어 '예니'가 떠올랐대요. 그 단어가 늘 남아 있었대요."

-이번 작품은 예니 씨에게 어떤 전환점이 됐습니까?

"영화 봐주신 분들이 지금까지 제가 맡았던 캐릭터가 다 달랐고 호루기 역시 달랐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사실 그런 목적을 갖고 연기를 한 건 아니거든요. 저는 상당히 모든 게 그냥 다 저스러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다르다고 생각을 해 주시니까 앞으로 하는 것들도 '진짜 다 다르게 해봐야지'라는 결심이 생겼어요.

-그럼 예니 씨는 자기 안에 있는 걸 끄집어내 연기하시는 스타일이네요.

"네 완전히요."

-그러면 그만큼 예진 안에 또 다른 예진 씨가 많은 거네요.

"저는 누구든 그 안에 다른 모습이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기자님을 대할 때 나오는 모습이랑, 집에 가서 엄마를 대하는 모습은 너무 다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는 자신의 팔레트가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계속 꺼내서 쓰려고 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예니 씨가 호루기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남들 저격하는 방송을 조금씩 줄이고 '칭찬 방송' 같은 것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구독자 수는 줄어들어도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내가 인생을 잘 살았구나'라고 생각하려면. 지금 이래 갖고는 부끄러운 순간들이 많지 않을까."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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