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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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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클리셰가 된 성소를 여전히 뜨거운 마음으로 순례하는 자의 음악.

팬덤을 무섭게 불려가고 있는 대세 싱어송라이터 김승주(26)의 두 EP '소년만화 상(上)'과 '소년만화 하(下)'를 읽고, 아니 듣고 느낀 감흥이다.

싱어송라이터의 산실 '제3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2021)에서 대상을 받으며 떠오른 김승주는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신인 뮤지션 발굴·육성 지원 프로젝트 '뮤즈온(MUSE ON) 2024' 열 팀 중 한명으로 꼽히며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인정 받았다.

최근엔 'Z세대 아이콘'인 래퍼 이영지가 진행하는 KBS 2TV '더 시즌즈 - 이영지의 레인보우' 속 신인 소개 코너 '내일 같아서 그래'에 출연해 지상파 음악방송에 데뷔하기도 했다.

전 세계 대중음악의 클래식인 영국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열렬한 마니아인 김승주는 강력한 노랫말이 강점인 포크 음악을 기반으로 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상상력을 쌓아 올린 노래를 부른다.

포크의 심장을 갖고 비틀스의 감성으로 만찢남의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특별한 상상력으로 독특한 서사를 풀어내는 그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클리셰를 환기시켜주기도 한다. 자신에게 절실한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음악이, 가장 좋은 질문이라는 것도 보여준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슬램덩크', 시게노 슈이치의 '이니셜 D', 후지사와 도루 '상남 2인조', 오토모 가츠히로 '아키라', 우라사와 나오키 '20세기 소년' 등 일본 만화로부터 영감을 길어올린 김승주의 '소년만화' 시리즈는 사실 리얼리즘으로 가득하다.

다음은 최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김승주의 팝업 현장에서 그와 만나 나눈 일문일답.

-수작으로 통한 '소년만화' 상에 이어 이번에 하가 나오면서 약 2년 만에 완간이 됐습니다.

"'소년만화' 상이 나온 게 2023년도 1월이었으니까요. 원래는 상하에 별책부록까지 해서 시리즈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하'는 애초 EP가 아닌 두 세 곡이 실린 싱글을 계획했었어요. 제가 아직 정규를 내지 않았지만 '소년만화' 시리즈를 정규 앨범이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했거든요. 그런데 바로 하편을 만들려고 하니까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부담이 생기는 거예요. 환기시킬 겸 다른 EP('고시엔')를 만들었죠. 그러고 나니까 하편 작업할 수 있는 마음이 더 생겼어요."

-'소년만화'는 다양한 일본 만화에 영감을 받은 곡들 위주로 실렸습니다. '소년만화' 상의 첫 번째 트랙 '소년만화(권두컬러)' 모티브는 '슬램덩크'입니다.

"'백호 군단'은 왁자지껄하면서 무대뽀잖아요. 전 그렇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투명하고 솔직하고 무모한 게 저는 안 되는 것 같아요. 그 태도가 너무 부러운 마음에 썼던 곡이에요."

-'엔진'은 '이니셜 D'가 모티브고요.

"전 음악을 너무 사랑해요. 근데 이걸 너무 좋아하니까 '너무 너무 사랑해버려서 날 제어할 수 없고 구제불능의 상태가 되면 어떡하지' 고민들을 많이 했었는데요.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까 그것이 꼭 잠에서 깰까 봐 잠을 못 자겠다고 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그게 너무 바보 같았어요. '그래서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이 사랑하고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이 살아내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썼던 곡이 '엔진'입니다."

-'빙글지구'는 따로 용감을 준 만화가 없네요.

"'소년만화'는 제 시행착오가 다 담겨있는 앨범이거든요. '슬램덩크' '이니셜 D' 주인공들은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저는 일상에서 그냥 무례한 사람 혹은 바보 같은 사람 또 특별해지려고 하는 '괴짜'가 되는 거 같더라고요. 저도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둥글게 반복되는 권태로운 시간들 속에서 계속 전속력 달리기를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지구가 만약 네모거나 평평할 경우, 계속 달리다 보면 절벽 밑으로 떨어질 거 아니에요. 그러면 뭔가 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구는 둥그니깐 계속 뛰어야 하죠. 오늘 제가 침을 투 뱉으면 다음날 그 침이 한 바퀴 돌아서 제 얼굴에 다시 떨어지는 상상을 하면서 썼던 곡이에요."

-'주인공의 법칙'은 '상남 2인조'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주인공들이 돌아이잖아요. 이 곡은 '상남 2인조'뿐만 아니라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봤던 많은 만화들의 집합체예요. 만화 속 주인공들에겐 '주인공의 법칙'이 있잖아요. 총알을 맞았는데 목걸이가 있어서 막아주거나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안 써도 괜찮잖아요. '상남 2인조'에선 가드레일을 뚫고 절벽 밑으로 떨어져도 피 한 방울 안 흘리거든요. 또 만화 속에선 내가 가진 돈이 다 떨어져도 아무도 날 버리지 않을 것 같고요. 그런데 현실에선 주변 사람들과 저는 어른 흉내 내면서 사는 게 너무 역부족인 거예요. 그래서 정석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사는 걸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곡이죠. 이 주인공의 법칙 안에 계속 살면서 '철딱서니 없는 상태로 있을 것 같아'라고 선포하는 노래예요. 말 그대로 '소년만화'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곡이죠."

-'소년만화' 상의 마지막 트랙 '낙원2019' 곡 설명엔 '2019 11월에 죽었던 승주의 유서'라는 설명이 더해져 있습니다.

"이 곡은 제가 스물 두 살 많이 어두웠던 시절에 유서로 썼던 곡이에요. 저를 사랑하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골칫거리인 존재가 저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때였어요. 음악도 밉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절 미워하는 것 같고요. 착하게 얘기하면 이런 느낌이었어요. 버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살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진짜 죽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기타를 들고 저희 동네 폐건물로 향했어요. 옥상에 올라가서 노래를 막 불렀는데 그 곡이 너무 좋은 거예요. 바로 '낙원2019'예요. 음악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난 좋은 음악 만들어서 음악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는구나' 생각을 하면서 그냥 내려왔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그 건물을 보니까 너무 낮더라고요. 지금은 그 때를 '낙원의 시기'라고 불러요. 그 동네에 요리하는 친한 형이 있거든요. 그 형이 오랜 기간 방치돼 있던 그 폐건물의 1층을 인수해 리모델딩을 해서 술집을 차렸어요. 그 술집 이름이 '낙원'이에요. 형이 제 얘기를 들고 '승주가 올라갔던 건물이니까 낙원으로 짓자' 했어요. 그 형이 유독 제 노래 중 '낙원'이라는 노래를 좋아해요."

-'소년만화' 상 서사를 요약하면 소년의 방황인가요?

"'만화 주인공들처럼 투명하고 무모하게 살고 싶어. 근데 세상은 그렇지 않아. 난 거기에 맞춰서 살기엔 너무 역부족이야. 난 너무 애송이이고 풋내기야. 하지만 가드레일에 부딪혀도 난 죽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들의 이미지에 이어 가드레일을 박은 시점부터 하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럼 최근 발매한 '소년만화' 하에선 어떤 이야기가 이어지나요?

"가드레일을 박아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아야 되는데…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거예요. 피를 철철 흘리고 숨도 안 쉬어지고 너무너무 아픈 거예요. '주인공의 법칙이 나한테 적용이 안 되네' 상상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노래를 만들고 계속 부르는데, 해소되지 않는 것에 대한 어려움, 두려움 속에서 연민이 생겼어요. 그래서 혼자 떨어진 느낌도 들었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연주하는 밴드가 생겼고 제 음악을 좋아해 주는 분들도 생겼어요. 그렇다 보니까 조력자가 생긴 느낌이 들더라고요. 팬덤 이름은 '누더기'예요. 전 제 얘기만 쓴다고 생각했는데,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군단처럼 모이게 된 느낌이 들었어요. 다들 마음속에 누더기 조각을 하나씩은 가지고 살고, 그걸 우리는 세상에서 계속 감추며 살잖아요. 공연장을 비롯해 우리가 모였을 때는 그 누더기를 감추지 말고 그 조각조각을 모아 너덜너덜한 깃발이든 커다란 이불이든 만들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하게 된 이름이에요. 또 그 과정에서 회사(김지은 대표가 이끄는 에나멜(ENAMEL))도 들어가게 됐고요. 여러 조력자들이 생기면서 세상으로 다시 올라간다는 서사를 담았어요. '소년만화' 상하 앨범 커버를 보시면 아실 테지만 상은 떨어지는 모양새고 하는 올라가는 모양새예요. 그리고 상에선 혼자 떨어지고 하에선 밑에서 올려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 1번 트랙 '54.9㎒'는 주파수 느낌이네요.

"플래시백 같은 효과를 생각하면서 만든 트랙이에요. 제 머릿속에 영화,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너무 많으니까 그런 걸 상상하면서 곡을 만드는데 이 트랙은 아수라장인 된 도시 속을 제가 걸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해요. 도시 곳곳엔 폭격 흔적도 가득해요. 이 혼란들은 제가 만든 걸 거예요. 근데 저 멀리서 라디오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제 노래 중에 '이 감자튀김은 모래시계 같아서'라고 있거든요. '소년만화' 상하와 공유하는 게 비슷해요. 근데 1절 후렴이 노래의 끝이었는데, 숨겨졌던 2절 가사가 라디오를 통해서 나오는 거예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난 사실은 이런 사람이었지' 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썼어요. 곡 제목에 54.9가 들어가는 이유는 제 사인이 숫자 5 그리고 티(T) 모양을 만들고 에이(A)를 쓰거든요. 오타쿠라는 뜻에서 이렇게 쓴 옛날에 만들었던 사인이었는데, A가 숫자 4하고 비슷해서 숫자에 의미부여를 하고 싶어 이렇게 만들었어요."


-'도시폭격'은 '아키라'에서 모티브를 얻은 곡이라고요

"스토리를 가져왔다기보다 '무너진 도시' 같은 이미지적인 것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무너진 도시는 만화 '헌터×헌터'에도 나와요. '유성가'라는 도시요. 이 도시는 무엇이든 갔다 버리는 쓰레기장 같은 곳이에요. 어느 순간 아기들도 그곳에 갖다 버리죠. 전 유성가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해요. '아포칼립스'를 만들게 되는 계기 같은 곡이에요. 실제로 폭격이 일어났다기보다 저항의 마음을 담았어요."

-'인류를구원할수도없는통기타가수'는 '20세기 소년'이라는 만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요.

"이 곡의 영문 제목이 ('20세기 소년' 주인공 이름인) 켄지(KENJI)예요. 제가 지금처럼 밴드사운드 음악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켄지처럼 통기타 하나 들고 총 쏘는 걸 멈추게 하는 걸 꿈 꿨어요. 근데 통기타로 공연하면서 '내가 아무런 것도 해낼 수 없겠구나'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 가사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항상 있거든요. 근데 들어주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어요. 그런데 일렉 기타를 치면서 들어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나고 제 가사를 더 들여봐 주시는 거예요. 조카의 울음을 뚝 그치게 할 수 있는 선물을 가지고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 지겨워서 앰프를 꽂은 거죠. 제 음악의 변화에 대한 것들이 담겨있다고 할까요?"

-그럼 음악 자체가 예전과 많이 바뀐 건가요?

"사실 하나도 안 바뀌었어요. 전 항상 자전적인 얘기들을 해요. 포크가 가사에 대한 힘이 가장 강력한 음악이라고 여전히 생각합니다. 포크엔 저항적인 것들도 많이 담겨져 있고요. 밴드 음악의 사운드로서 아웃풋이 나가지만, 포크적인 어법을 계속 사용하고 있어요."

-'무한탈출'의 모티브가 된 만화는 무엇인가요?

"이 곡은 만화의 이미지나 이야기로부터 받은 영감은 없어요. 그리고 다른 곡 편곡은 제가 홀로 했는데 이 곡은 박태욱이라는 친구와 같이 했어요. 그 친구도 만화를 좋아하는 친구예요. 그 친구의 지분이 더 커서 제 이름 빼고 박태욱만 올렸어요. 사운드를 만화적으로 표현하자면 '에반게리온스러운 사운드'라고 할까요? 혼란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여전히 오답도 없고 정답도 없는 무한의 굴레 속에서 살고 있지만 '난 이제 괜찮아졌어'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다만 제 곡이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있는 곡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곡만큼은 시원하게 해소되는 느낌을 안 주려고 최대한 노력했어요."

-드디어 마지막 트랙인 '소년만화 완(完)'입니다.

"사실 전 제가 권두(卷頭)컬러(책 앞 페이지에 색깔이 들어간 것)라고 믿었어요. 소년만화를 보면 처음 시작할 때 주인공이 혼자 등장하잖아요. 제 '소년만화' 상 첫 트랙 '소년만화(권두컬러)'에서도 혼자 기타 치면서 불렀거든요. 근데 '소년만화 완'에 도착해보니까 드럼, 베이스, 기타 쳐주시는 분들, 제가 생각한 것을 눈에 보이게 하고 세계관을 입혀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난 거예요. 약 2년 동안 이 소년만화 시리즈를 만들면서 달려왔던 시간들이 누군가한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 몰라도 모든 타임라인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다 보니까 너무 큰 의미였거든요. 이렇게 많은 동료들이 생겼고 '같이의 가치'를 알게 된 거죠. 이 곡엔 그간 제가 냈었던 음악들의 소스들이 조금씩 다 들어가 있어요. '소년만화' 상하 사이에 냈던 EP '고시엔'에 들어간 작은 소스들까지도요."

-'소년만화'엔 승주 씨 또래보다 윗세대가 즐겨 본 만화들이 가득해요. 어떻게 만화를 접했고 좋아하게 됐나요?

"제가 경기 시흥 매화동이라는 곳에 살아요. 매화잎 떨어지는 모양새와 비슷해서 매화동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게 된 동네예요. 근데 저희가 사는 곳은 구석진 곳이에요. 책 대여점이 없어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남아 있었죠. 그곳에서 만화를 빌려봤어요. 제 음악은 진짜 뻔하게 한 모퉁이를 조금 꼬집는 정도라고 생각해요. 아주 새롭지 않지만 조금의 빈틈이 있는 정도의 음악이요. 근데 앞서 말씀드린 만화들이 어린 마음을 뜨겁게 만들잖아요. 클리셰가 있지만 그것들이 주는 뜨거운 게 있잖아요. 그런 만화들을 생각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옛날 만화 위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거 같아요."

-이번 앨범을 완결하고 승주 씨에게 생긴 변화가 있나요?

"거창하거나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기보다는 '멈추지는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제가 너무 제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올해 초 누더기분들과 '신년계획서 발표회'라는 걸 했었어요. 사실 전 겨울을 싫어해요. 춥기도 하지만, 한 해를 검사 받는 기분이 들어서요. 그런데 올해 신년계획서 발표회 때 약속했던 건 다 지켰어요. 그리고 올해 너무 좋은 김지은 대표님과 너무 많은 좋은 동료들을 만나서 좋게 마무리가 됐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실적인 이야기를 허풍처럼 하는 음악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더기분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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