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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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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드라마 뿐만 아니라 최근 거의 모든 종류의 영상 콘텐츠의 절대 목표는 자극이다. 보는 이의 눈을 붙들어 놓기 위해 더 짧고, 최대한 가득 채워서, 온통 정신 없이, 모든 말초신경을 흔들어 놓으면서, 일단 몰아치려 한다. 영화 '청설'(11월6일 공개)은 이런 시대 흐름에 발맞추지는 못할 망정 온통 거꾸로 간다. 로맨스 영화 치고는 짧지 않은 상영 시간(109분)에, 채우기보다는 비워놓는 걸 택한 것은 물론이고, 대사마저 거의 없다. 느린데다가 조용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저자극에 자꾸 마음이 간다. 마음이 변하는 찰나를, 도저히 뗄 수 없는 시선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안간힘을, 교감에 성공할 때의 환희를 이 영화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청춘들이 아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 있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과정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청설'은 맞아도 아프지 않은 곳을 요란하게 두들기는 게 아니라 지긋이 급소를 터치한다.

이 영화를 만든 조선호(47) 감독을 만났다. 조 감독은 "채우는 건 너무 쉬운 선택 같았다"며 "비워 놔도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요즘 흐름과 이 영화는 다른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그게 이 영화의 개성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고 해도 우리 영화 같은 감성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사회 반응 좋았다. 일반 관객 반응도 기대하고 있겠다.

"첫 반응이 좋은 것 같긴 하지만 시사 반응을 다 믿고 있진 않다.(웃음) 즐거운 의심이랄까. 다만 전반적으로 좋게 봐줬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 흐름이 일반 관객에게 이어졌으면 한다."

-전작 '하루' 이후 새 영화 내놓기까지 7년이 걸렸다.

"나름 잘 살았고 열심히 살았다. 이런 저런 작업을 계속했다. 역시 코로나 사태 영향이 제일 컸다. 시간이 훅 가버리더라. 영화라는 게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나. 업계 특성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아무튼 열심히 살았다.(웃음)"

-필모그래피를 보면 멜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더라. 어쩌다 '청설'을 만들게 됐나.

"필모그래피를 봐도 그렇고 날 사적으로 아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네가?'라고. 다만 장르를 떠나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청설'에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얘기라는 것. 첫사랑도 그런 관계의 이야기 중 하나다. 그렇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로맨스가 자신있는 분야는 아니었다.(웃음) 공부하고 의논하면서 각색했고, 그렇게 완성한 시나리오에 나는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분들 역시 만족했다.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은 영화가 나왔다고 본다."

-공부했다는 말을 했다. 첫사랑 영화이니까, 그 감각을 영화에 드러내는 게 중요했을 것이다. 꽤 오래된 감정일텐데 어떻게 끄집어냈나.

"맞다. 첫사랑,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웃음) 다만 오래 전이라도 직접 경험해본 감정이고, 마음 어딘가에 화석으로라도 남아 있는 게 있으니까 되짚어 가려고 했다. 첫사랑에 대해서만 생각한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고 관심이 갈 때 느끼는 감정 변화들을 계속해서 찾아 나갔다. 이 영화에 담긴 사랑의 감각을 내 안에서만 찾은 건 아니다. 지인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이 사랑할 떄 느낀 마음에 대해 알아 봤달까. 더 다양한 사례를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도 해봤다. 다만 우리 영화에 그 첫사랑의 감각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배우들이 만들어 냈다고 본다. 우리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줬다."


-2009년에 나온 동명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 했다. 각색과 연출을 맡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원래 음악영화를 준비 중이었는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제작이 쉽지 않았다. 그때 무비락('청설' 제작사) 대표님은 몇 몇 작가들과 함께 '청설'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가 정체기가 왔던 것 같다. 시나리오가 잘 안 풀리자 내게 각색을 제안했다. 각색을 하면 하겠지만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로맨스인데다가 원작엔 코미디 요소가 많으니까 나한테는 좀 어려워 보였다. 다만 원작을 충실히 따르진 못해도 내 스타일로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니까 해보라더라. 작가들이 써놓은 각본을 두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각색을 해나간 거다. 다행스럽게도 무비락에서 그 각색을 맘에 들어했다. 그렇게 연출까지 맡게 됐다."

-원작과 다른 방향의 각색이라는 게 뭔가.

"일단 내가 각색을 맡기 전 시나리오는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캐릭터가 매력적인 작품이니까, 그 캐릭터를 더 들여다 보고, 강화하고 싶었다. 아까 말한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 관한 얘기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 여름 캐릭터에 대해서 말하자면, 짧게 나오긴 하지만 부모와 함께 있는 장면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더 명확히 드러나지 않나. 또 여름과 동생 가을의 이야기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용준도 마찬가지다. 용준이 부모와 나누는 여러 대화를 통해 캐릭터가 더 잘 드러난다. 이건 원작에 없던 것들이다. 다만 원작과 반드시 차별화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까 방향이 달라졌다."


-두 주인공 홍경과 노윤서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두 배우가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 것과는 별개로 멜로 영화 자체가 흥행에 대한 리스크가 있기도 한 상황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은 두 배우를 내세우기란 쉽지 않은 선택 아닌가.

"우리 영화와 맞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일단 배우 나이와 캐릭터 나이가 비슷했으면 했다.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그 나이에서만 나오는 생동감이 있기 마련이다. 그게 연기에 묻어나길 바랐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캐스팅이라고 봤다. 그리고 커리어보다는 실제 만났을 때 느낌을 봤다. 홍경·노윤서·김민주 모두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우리 영화를 하고 싶어 했다. 이런 요소들이 모이니까 캐스팅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더라."

-최근 멜로 영화가 많지도 않고 흥행 면에서도 신통치 않다. 게다가 '청설'은 상대적으로 느린 영화다. 대사도 거의 없다. 자극을 쫓는 시대에 이같은 유형의 작품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

"왜 없었겠나.(웃음) 우리 영화는 항상 무언가가 비어 있다. 우선 대사가 거의 없다. 호흡이 느리기도 하다. 음악을 많이 쓰지도 않았다. 특히 음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빈 데가 많으니까 음악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나 그건 너무 쉬운 선택 같았다. 어떻게든 채워넣는 방식이 우리 영화와 맞지도 않았다. 편집을 하다 보니까 결국 음악이 없어도 충분히 괜찮다는 판단을 내렸다. 물론 요즘 흐름과 이 영화는 다른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그게 이 영화의 개성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고 해도 우리 영화 같은 감성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용준·여름·가을은 수어로만 소통한다. 수어가 이렇게 많은 한국영화가 있었나 싶다. 수어 대사가 많은만큼 수어 연출에도 신경 썼을 것 같다.

"연출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도 수어에 대해 잘 모를 땐 동작이 유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아름답게 보이길 바랐다고 해야 하나. 단순히 미적으로 아름답기를 원했다기보다는 수어 안에 담긴 생각과 감정이 나오는 과정이 아름답게 보이기를 바랐다. 아무튼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수어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눠 보니 수어는 최대한 압축적이고 효율적으로 내 의사를 전달하는 언어이지 아름다워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 실제로 농인이 쓰는 그대로 수어를 보여주는 게 그들과 그들의 언어에 대한 예의라고 봤다. 다행히도 배우들도 생각이 같았다. 배우들이 수어 연습을 워낙에 열심히 해서 그들에게 따로 주문하거나 그들을 압박할 건 없었다."

-'청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연스럽다는 거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듯한 다른 멜로물과는 다르다. 일단 억지스럽게 예쁜 공간에서 찍지 않았다. 배우들의 패션도 더없이 수수하다.

"패션은 유니클로 스타일이다.(웃음) 예를 들어서 그 예쁘다는 것에 예술적 야망이 있다면 그래도 된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가 예쁘기만 하려고 하면 거부감이 든다. 내 스타일 역시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청설'은 그 이야기를 생각할 때 더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촬영 장소를 물색할 때도 예쁜 걸 찾지 말아 달라고 했다. 20대가 갈 만한 장소라면 충분했다. 어떤 공간을 영화적으로 만들어주는 건 그 공간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이고 캐릭터라고 본다. 의상 같은 경우엔 배우들에게 입고 싶은 걸 입으라고 했다. 이 부분에서도 나와 배우들의 생각이 일치했던 것 같다. 배우들이 우리 영화 걀을 잘 이해하고 있다 보니 그것에 어울리는 옷을 골라 왔다."

-관객이 첫사랑을 할 때 감정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

"누군가를 좋아할 때를 떠올려 보면 자꾸 상대에게 눈길이 가지 않나. '바라본다'라고 해야 할까. 그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용준이 여름을 처음 볼 때 시선이 여름에게 고정돼 있다. 여름의 시선은 가을만 보고 있다. 그 시선을 통해 마음이 가 있는 방향을 보여주고 싶었다. 용준과 여름이 결국 다시 만나게 될 때를 보면 같은 방향으로 앞뒤로 섰던 두 사람이 결국 마주보지 않나. 그 모습으로 그들의 마음이 표현되길 바랐다. 본다라는 건 수어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을 거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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