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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 ink and color on silk, 36.5☓70.0cm. 경매 추정가는 4억~8억원
“봄날 새벽의 과거시험장,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 치르는 열기가 무르익어, 어떤 이는 붓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하며, 어떤 이는 책을펴서 살펴보며, 어떤 이는 종이를펼쳐 붓을 휘두르며, 어떤 이는서로 만나 짝하여 얘기하며, 어떤 이는 행담行擔에 기대어 피곤하여 졸고 있는데, 등촉은 휘황하고 사람들은 왁자지껄하다.
모사模寫의 오묘함이 하늘의 조화를 빼앗는 듯하니, 반평생 넘게 이러한 곤란함을 겪어본 자가 이 그림을 대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질 것이다. 강세황.
[貢院春曉萬蟻戰, 或有停毫凝思者, 或有開卷考閱者, 或有展紙下筆者, 或有相逢偶語者, 或有倚擔困睡者, 燈燭熒煌人聲搖搖, 摸寫之妙可奪天造, 半生飽經此困者, 對此不覺幽酸. 豹菴 光之]”
강세황이 제발의 첫머리에서 봄날 새벽녘의 과거시험장이라 했으니, 과거시험 치르기 직전의 풍경일 것이다. 전날 밤에 과거시험장의 문을 열면, 일산과 깔고 앉을 공석空石, 말뚝과 말장, 그리고 등을 준비하여 힘센 무인인 선접군先接軍을 앞세워 화살처럼 빠르게 들어가 다투어 자리를 선점한다. 시험문제를 빨리 보고 답안지를 빨리내야 합격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워낙 수험생이 많이 몰린 탓에 시험지를 빨리 제출하여 먼저 채점을 받은 이들 중에서 합격자가 많이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했다.
그러니 시험장이 무질서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간혹 압사하는 사고까지 벌어졌다. 일산별로 당시 접接이라고 불리는 한 팀이 자리 잡고, 일산 위에 각 접을 표시하는 글을 쓴 등을 세운다. 한 사람의 과거 보는 선비를 위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고용된 선접군, 과거 답안지를 대신 지어주는 거벽巨擘, 글씨를 대신 써는 사수寫手, 그리고 심부름하는 노비까지 한 팀을 이루는데, 이들을 접이라 한다.
김홍도의 과거시험장 그림은 시험보기 직전의 풍경이지만, 우리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 펼쳐 있다. 시험이 시작되어도 상황이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19세기에 제작된 평생도 중 <소과응시>(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보면, 조그만 일산 아래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시험을 보고 있다.
김홍도의 과거그림을 통해서 그동안 기록으로만 간간이 접했던 난장판 같은 과거시험의 실상을 실감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이 그림은 역사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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