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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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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대중음악 노랫말은 의례적인 상황을 이치에 맞게 쓰는 게 아니라, 이치에 맞는 상황을 의례적이지 않게 쓰는 것이다. 그건 현실과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어떤 상황에 대해 환기해 준다.

국내 싱어송라이터 중 톱 가수 겸 배우 아이유(31·IU·이지은)가 이 방면에서 단연 알아주는 솜씨를 갖고 있다. 그녀는 젊은 뮤지션 중 작가절 기질이 가장 풍부하다.

작년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 논문지에 실린 '싱어송라이터 아이유 곡의 가사에 나타나는 수사법 양상'(저자 김정철·정재윤)에서 '푸르던' '라일락' 등 아이유 곡 중 22곡을 분석한 결과 아이유는 직유법·은유법·의성법·의태법의 사용 빈도가 전문 작가사의 그것보다 비교적 더 많았다.

이를 통해 논문 저자들은 "아이유는 의례적인 문장을 사용하기보다는 비의례적 문장을 사용해, 곡의 주제나 내용을
비유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봤다. 이러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아이유가 작사한 가사는 크게 두 가지의 효과를 준다고 분석했다. ▲가사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부여해 각 개인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가사와 청자를 연결하는 것 ▲직접적인 문장이나 일상적인 언어와는 다르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경향은 최근 발매한 미니 6집 '더 위닝(The Winning)'에서도 이어진다. 아이유는 앨범에 실린 다섯 곡 중 한곡에만 공동 작곡가로 참여한 반면 작사는 홀로 도맡았다.

"저녁 일곱시 / 노을의 팔레트"('쇼퍼(Shopper)'), "난 기어코 하늘에 필래 / (…) 유 세이(You say) '후'"('홀씨'), "즐거운 악몽이지"('쉬(Shh)…'), "나의 이 가난한 상상력으론 / 떠올릴 수 없는 곳으로"('러브 윈스 올(Love wins all)'), "흐리거나, 시리도록 맑을 / (손에 닿거나, 아득히 멀어질) (…) 어둡거나, 눈부시게 밝을 / (소란하거나, 아득히 고요할)"('관객이 될게') 등 은유법, 의성법 그리고 대구·대유법 등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아이유는 제목에 하나의 단어를 사용하여 상징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곡 내용과의 연관성을 상상하기 쉽게 만들어"('싱어송라이터 아이유 곡의 가사에 나타나는 수사법 양상')주는 효과를 일으키는데, 이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노래에 대한 이미지를 강하게 그려주고 노래 서사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킨다. 더블 타이틀곡 '쇼퍼' '홀씨' 등의 예에서 보듯 이번 앨범에서도 그런 경향은 이어진다.

다만 메시지가 이전에 수렴됐다면, 이번엔 발산한다. 내면적 고뇌에 천착하기보다 외부와 함께 고민하길 원한다. 즉 이번 앨범은 아이유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변주하며 공감대 폭을 넓히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어느덧 데뷔 16주년을 맞은 아이유가 30대가 돼 처음 낸 앨범에서 책임감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일부에선 이번 음반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린다. "본인 위주의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이전보다 귀에 감기는 멜로디가 적다" 등이 대표적이다.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이유로 지목되는 건 욕망에 대한 직진이다. "포 마이 빅토리, 이븐 유어 젤러시(for my Victory, even your jealousy) / 나 이제껏 모르던 세상을 욕심 내볼래" 등이 그렇게 분석된다. 본인 위주의 승리라 예전보다 많은 이들이 메시지에 동조하지 못했고 이를 성장통을 앓고 있다는 식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긴 호흡을 가진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더 위닝' 다섯 트랙의 유기성을 놓고 보면 해석은 달라진다.

"아직도 난 / 더 가지고 싶어"라고 시작하는 '쇼퍼' 영감의 착상(着床)은 아이유가 국내 여성 솔로 가수로는 처음으로 2022년 9월 17~18일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었던 콘서트 '더 골든 아워(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다.

그 자리에 모였던 약 9만 유애나(아이유 팬덤)는 아이유가 카트에 담은 욕심과 용기의 시뮬레이션이었다. '쇼퍼' 뮤직비디오 속 아이유가 획득한 황금 배트는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경쾌하게 지키는 무기가 된다. "그 더운 밤의 수만 관객들의 소리가 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또렷이 내 안에 들어와 새로운 욕심들을 깨웠다"고 고백한 아이유는 스스로 또 다른 자신들을 노래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내 뒤로 착착 따라붙어 / 다 예쁘게 줄지어"('홀씨')라고 노래할 수 있다. 뉴진스 혜인(10대)·조원선(50대)·패티김(80대) 등 다양한 세대가 참여해 세대의 연대를 모색하며 "뒷짐을 진채 / 따라갈래 / 그녀의 긴 발자국 / 서로를 이어 (서로를 이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힘도 얻게 됐다. 덕분에 "유영하듯 떠오른 / 그날 그 밤처럼, / 나와 함께 겁 없이 / 저물어줄래?"('러브 윈스 올')라면서도 사랑은 승리한다는 용기도 갖게 됐다. "그 모든 날들의 어느 열렬한 / 관객이 될게 / 난 나의 너를 믿어"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이유다. 결국 '더 위닝'의 '승리 서사'는 아이유 것만이 아닌 우리의 모든 것이 된다.

이미 20대에 아이유는 누구보다 큰 성장통을 여러 번 겪었다. 이른 나이에 데뷔해 뮤지션으로서 성장기를 이미 지나 30대가 된 그녀는 이제 성장통을 앓아야 할 때가 아닌, 통각(痛覺)의 접점을 더 넓혀야 할 때라는 걸 느끼고 있다. '더 위닝'은 그 과정에 있는 앨범이다. 국내 드문 30대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걸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낸 그녀의 숙명적 메시지는 공명할 수밖에 없다.

또 차트 성적은 사실 필연이 아닌 우연에 가깝다. 약 한 달 간 멜론 톱100 등 국내 음원차트 정상을 장악한 '러브 윈스 올'은 이미 히트곡 혹은 유행가로서 제 역할을 했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아이유 표 장엄한 발라드로서 작곡가 겸 프로듀서 서동환의 스트링 편곡이 인상적인 이 곡은 2021년 8월 멜론이 차트를 개편한 이후 1시간 만에 '톱 100'에 오른 첫 여성 가수의 곡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그런데 멜론 차트가 국내 인기곡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아이유의 곡이 1위에서 밀려났다고 해도, 그게 바로 인기 하락의 기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더욱이 순위는 상대적이다. 좋은 곡이 많으면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 음악 팬들 사이에서 '어둠의 아이유'라고 불린 비비(BIBI·김형서)의 '밤양갱'이 1위를 차지했다고 '어둠의 아이유'가 아이유를 이겼다는 식의 비교급은 성립이 안 된다. '러브 윈스 올'의 1위 성적도 대단했고, 장기하 작사·작곡·편곡의 시너지를 낸 '밤양갱'도 지금의 성적을 거둘 만큼 충분히 좋은 노래다.

뿐만 아니라 아이유는 미니 앨범인 이번 음반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 '쇼퍼'는 일렉트로-팝 록(Electro-Pop Rock), '홀씨'는 R&B·힙합, 심지어 '쉬…'는 국내 메인 스트림에서 드문 진한 블루스 록이다. 아이유가 작정하고 차트 인기만 노렸다면 앨범은 좀 더 대중적인 곡들로 채웠을 것이다. 1위를 숱하게 한 아이유가 대중적 작법을 모를 일이 없다. 멜로디가 좋은 곡은 히트곡이 될 확률이 크지만, 메시지가 분명한 노랫말은 명곡이 될 확률이 크다.

'쇼퍼'의 영감이 증명한 것처럼 아이유가 뮤지션으로 변곡점을 갖는 중요한 계기는 콘서트다. 2~3일·9~10일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여는 '2024 아이유 허 월드 투어 콘서트 인 서울(IU H.E.R. WORLD TOUR CONCERT IN SEOUL)'도 새 앨범의 뿌리가 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앞서 아이유는 지난 2019년 같은 장소에서 국내 여성 가수 처음으로 360도 무대의 공연을 펼쳐 호평을 들었다. 이번 공연 역시 마찬가지다. 퍼포머로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이라는 관객에 대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형식이다. 공연마다 티켓값이 낮게 여겨질 정도로 막대한 물량과 무대를 선보이는 아이유의 '아낌 없이 퍼주는 무대'는 이번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유가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유애나와 감응하고 그걸 재해석하는 것에 열심이라는 건, 콘서트를 본 관객들은 누구나 안다. 우리는 성장해온 20대 아이유에 크게 빚 졌고, 30대의 그녀로부터 또 다른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술가로 성장한다는 건 모자란 걸 하나씩 없애서 완전무결한 상태로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과 확연히 다른 자신의 것을 "마지막 소절 숨의 첫 모금"처럼 내쉬는 것이라는 걸 아이유는 그렇게 우리에게 안부로 전한다. 아이유는 그녀의 승리가 아닌 우리의 승리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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