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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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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새하얀 눈 내려오면 / 산위에 한 아이 우뚝 서있네 /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 아름다운 그 이름 사람이어라 / 그 이름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11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학전 블루 소극장. '월드 클래스' 재즈보컬 나윤선이 깜짝 등장했고, 객석에선 놀란 관객이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터뜨렸다. 신비로운 오르골의 소리만 은은히 흐르는 가운데 나윤선의 순백 같은 새하얀 목소리가 학전 김민기 대표와 학전 그리고 관객들을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배우 장현성이 "오늘 관객분들은 땡잡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전 세계 굵직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그녀를 150석짜리 소극장에서 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나윤선은 이곳에서 데뷔했다. 학전의 대표작으로 1994년 5월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주인공 '선녀' 역을 맡아 문화계에 귀한 발걸음을 들였다. 세계를 누비는 가운데도 나윤선은 학전을 잊지 않았다. 김민기 대표에 대한 존중심도 항상 표해왔다. 학전 폐관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던 지난해 말 마포아트센터에서 연 재즈 콘서트 '어나더 크리스마스_필링 굿(ANOTHER CHRISTMAS_FEELING GOOD)'에서도 '아름다운 사람'을 불렀다.

사실 나윤선은 최근 경황이 없는 상태다. 얼마 전 부친상('한국 합창의 대부' 나영수 한양대 명예교수 별세)을 당해 막 장례를 치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친상 언급은커녕 슬픈 기색 없이 무대에 올랐고 이날 공연 마지막에 배우들이 '지하철 1호선'의 넘버 '지하철을 타세요'를 합창할 때도 등장해 박수를 쳤다. 학전에 대한 그녀의 진심이 오롯하게 느껴졌다.

이날 공연 1부 MC를 본 배우 오지혜도 최근 부친상을 당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연극계의 거목 오현경이 별세한 것이다. 최근 장례를 치른 그녀는 기꺼이 학전을 위해 나섰다. 오지혜는 1995년 오디션을 봐서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고, '개똥이'에도 나왔다. 자신의 부모인 오현경·윤소정이 김민기 대표와 친분이 있었다고 했다. 오지혜는 "김민기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오디션을 보려니까 엄청 떨렸다"고 돌아봤다.

지난달 28일부터 펼쳐져온 '학전, 어게인 콘서트'의 열여섯 번째 회차인 이날은 특별했다. 다른 날들은 주로 가수들이 콘서트로 책임지는데 이날은 '배우 데이'로 꾸며졌다. '학전 조상님'으로 통하는 '지하철 1호선' 초연 배우 방은진·설경구를 비롯 설경구와 함께 '학전 독수리 5형제'로 통하는 장현성 그리고 최문덕, 박윤희 그리고 이날 '지하철 1호선' 솔로곡 '서울의 노래'를 부른 정문성, 뮤지컬배우로 활약 중인 방진의 등 학전 출신 배우 70여명이 총출동했다. 학전은 소극장인 만큼 분장실이 비좁다. 오지혜는 "70명의 배우가 벽에 붙어 있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거나 하면서 대기 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배우들은 학전에 대한 추억담을 털어놓고, 김민기 대표에 대한 존경심을 마음껏 고백했다. 학전 공연 포스터를 붙이다 김민기 대표의 눈에 띄어 '지하철 1호선' 초연 배우로 합류한 설경구는 "(노래를 못해서) 무선마이크가 내게 주어지지 않았어요. 무용하시는 분과 저만 없었다"고 웃었다. '지하철 1호선' 오디션에서 노래 대신 랩 가사가 많은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를 불렀다는 최문덕은 "(노래 대신) 나는 연기로 승부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번안극인 '지하철 1호선' 원작 국가인 독일 베를린에서도 공연한 적이 있는 설경구는 대학시절 '아침이슬' '작은 연못' '늙은 군인의 노래' 등 김민기의 노래를 부르며 그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됐는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깨진 적이 없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방은진은 김민기 대표 얘기가 나오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 이들은 '지하철 1호선'이 부산에서 공연한 시절을 떠올리며, 현지 사투리로 공연한 얘기도 전했다. 부산 객석에서 부산 '지하철 1호선'을 지켜본 설경구는 "첫 넘버 제목이 '6시9분 서울역'이 아니라 '6시9분 부산역'이었다"고 기억했다. 장현성의 기타 연주에 맞춰 들국화의 '축복합니다'를 합창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아빠 얼굴 예쁘네요' 등 학전의 대표작 일부 장면을 부르는 형식이었다. 젊은 배우들은 '고추장 떡볶이' '무적의 삼총사' 등 학전의 상징 중 하나인 '어린이 뮤지컬' 메들리를 선보였다. 어린이 뮤지컬이라고 하기엔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었다. '지하철 1호선'도 주요 대목만 뽑아 선보였다. '기다림'에선 무대 공간의 빈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배우들이 나왔다. '지하철 1호서' 소품곡이자 학전의 사가(社歌)와도 같은 아카펠라곡 '일호선'이 앙코르 전 본 공연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날 공연에 참여한 배우들이 모두 나와 객석 뒤편에도 자리 잡고 이 곡을 다 같이 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날 반주를 나눠 맡았던 YB·OB 밴드도 함께 했다.

투병 중인 김민기는 이날 극장엔 오지 못했다. 대신 배우들은 방은진이 제작한 감사패를 그에게 헌정하는 것으로 감사함을 재차 표했다. 설경구는 "학전은 제게 운명 같은 장소예요. 학전과 김민기 대표님이 영원할 줄 알았죠. 없어져도 학전의 DNA는 우리의 가슴에 새겨질 겁니다. 김민기 대표님이 얼른 건강해지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공연이 끝난 뒤 벽에 걸린 스크린엔 김민기의 '봉우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33년 동안 학전 무대에 오른 배우·스태프 771명의 사진이 등장하고 이름이 나열됐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는 오는 14일 '김민기 트리뷰트'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학전이 꼭 33주년을 맞는 15일 폐관한다. 학전의 이름을 지켜 다른 기관이 운영하는 방안도 일부에서 나왔지만 학전은 김민기 대표 없는 학전은 학전이 아니라며, 학전답게 폐관을 결정했다. 학전의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같은 장소에선 신진 예술가 등용문 등 학전의 정신을 잇는 타 기관의 프로젝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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