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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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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내 나이가 적소잉. 이 나이에 이라고 춤 추고 노래하는 사람이 어딨소. 이라고 다리 떠는 놈 봤냐고. 나가 어디 살짝만 떱디까. 자중해서 그 정도요. 나이 먹고 주책이라고 할까봐. 나한텐 아직 이런 흥이 있는데, 솔직허니 두려워요잉. 이 다리가 안 떨어질까봐. 이게 그냥 떤다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 감성에서 나오는 거거든."

가수 남진(78)은 자신을 "가요계 최고 꼰대"라고 했다. 그러나 이 불세출의 스타는 여전히 노래와 춤에 관해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관객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꼰대가 될 수는 없었다. 남진이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노래를 향한 열정에 관해 얘기할 때, 그를 수식하던 그 단어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영원한 오빠. 여든을 바라보는 원로에게 오빠가 웬말이냐고 할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몸은 나이 들었어도 정신은 결코 낡지 않은 남진에게 그보다 합당한 단어는 없어 보였다.

"생각보시오. 나가 이 나이 먹도록 그렇게 열심히 하고 싶겄소. 피곤해요. 힘들다고 나도. 노래하는 건 중노동이니께. 근디 지금 나가 '님과 함께'를 20대 때 부르던 것처럼 부르면 안 되잖아. 어릴 땐 그냥 뭐 신나게 불러제끼면 그만이었지만, 이젠 60대 70대 80대가 된 내 팬들이 공감할 수 있게 불러야지. 감성이 더 무거워지고 깊어저야 해요. 나는 인자 그걸 찾고 있는 거요. 그 감성을 찾기 위해 매일 연습한다고. 옛날처럼 부르면 그건 거짓말이. 대충 할 때가 편했어.(웃음)"

남진의 가수 인생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영화 '오빠, 남진'이 다음 달 4일 공개된다. 1960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해 65년 간 현역 가수로 활동해온 그의 삶이 '님과 함께'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모르리' '빈잔' '둥지' 등 히트곡과 함께 담겼다. 남진이 직접 곡절 많은 연예계 생활에 대해 풀어내고, 박일남·쟈니리·백일섭·김창숙 등 그와 같은 시대를 지나온 가수·배우들, 진성·설운도 등 한 세대 뒤 후배들, 그리고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장윤정·송가인·박현빈·장민호 등 젊은 가수들이 남진에 대해 얘기한다.

형식적으로는 평범한 다큐멘터리 영화 이상은 되지 못한다. 다만 전라남도 최고 부잣집 아들인 젊은 김남진이 그의 아버지 말을 빌리자면 풍각쟁이가 노릇에 발을 디딘 뒤 온갖 풍파를 겪으며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인 남진이 돼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 찾아 온다. 그저 유행가로 보였던 그의 히트곡은 남진이라는 가수 개인의 경력이면서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도 뗄래야 뗄 수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런 걸 다큐라고 하요? 난 다큐가 뭔지도 몰랐어. 제작자들이 이런 걸 같이 해보자고 하더라고. 처음엔 망설여졌어요. 내가 이런 다큐를 할 정도인가 했거든요. 데뷔한 게 엊그제 같으니까.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런 걸 할 정도로 온 것 같기도 합디다. 사실은 아쉬운 게 많아요. 세월이 지나다보니까, 자료들이 없어서…옛날 자료들이 세세하게 담기면 더 좋을 텐데잉. 나는 뭐든 만족하는 게 없어요. 항상 아쉬워."

'오빠, 남진'에서 남진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인연, 운, 행운 같은 말들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 여정을 "인연이 잘 이어져서" "운이 좋아서" "그건 행운이었다"고 했다. 65년에 걸친 가수 생활.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이어가고 있는 현역 활동. 이 세월을 버티게 해준 수많은 명곡들. 이건 결코 우연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남진을 노력파라고 말한다. 장윤정은 "선생님은 아직도 어마어마하게 연구를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래도 남진은 "운이 없으면 여기까지 왔겠느냐"고 잘라 말했다. 부러 겸손하려는 게 아니라 진심 같았다.

"2년 간 월남 파병 갔을 때, 일주일째 되는 날에 내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졌어요. 불발탄이었제. 그게 터졌으면 죽었을 거요. 그게 운이 자네. 내가 데뷔 초창기에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연애 0번지'였어요. 그게 퇴폐라고 해서 금지곡이 돼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당시에 내가 맘에 들어 하지 않았던 트로트 노래인 '울려고 내가 왔나'를 했는데, 그게 대박이 났잖아. 그리고 내가 미국에서 돌아와가지고 긴 슬럼프를 겪다가 '둥지'를 만났는데, 그 노래를 준 사람이 무명 작곡가라고. 그 사람이 내 사무실 앞에 놓고 간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나서 그걸 하게 된 거예요. 이게 다 인연이고, 운이고, 행운이 아니라면 뭡니까."

언뜻 보면 데뷔 이후 지금껏 잘 안 풀렸던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진만큼 오르내림이 심했던 가수도 없다. 오빠로 불리며 한국 가요계 최초로 팬클럽 문화를 이끌었던 전성기 한가운데에서 전쟁터로 향해야 했고, 그렇게 3년 간 완전히 잊혀졌다가 그 사이 치고 올라온 나훈아라는 일생의 라이벌과 함께 가수 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엔 전라도 목포 출신이라는 꼬리표 탓에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어 도망치듯 미국으로 가 3년 간 두문불출했다. 미국에서 돌아왔을 땐 청바지·통기타 시대와 함께 그는 이미 잊혀진 가수가 돼 있었다. 5만명 규모였던 그의 팬클럽은 5000면 규모로 줄어들어 있었다. 남진은 "인기란 파도"라고 했다.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죽겄더라고. 다 변해버렸으니까. 사람이 다 바뀌어버려서 어디 부탁할 데도 읎어. 쉽지 않더라고. 우울증이라고 할 정도로 우울하기도 하고. 근데 겉으로 내색을 못하니까 속으로만 '으매 죽겠는 거'하고 있었던 거죠. 그게 쉬웠겄소. 평생 똥폼만 잡고 살던 놈이. 그러다가 '빈잔' '둥지'가 잘 되면서 다시 올라온 거요. '빈잔'이 뜨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그걸 운이 아니고 뭐라고 할거냐 이 말이오." 남진에게 가장 소중한 곡을 꼽아 달라고 했다. 그는 '가슴 아프게'와 '님과 함께'를 언급한 뒤 결국 '빈잔'과 '둥지'를 얘기했다. "그 두 곡 없었으면 재기 못했어."


평생의 라이벌인 나훈아는 올해 연말 공연을 끝으로 은퇴한다. 나훈아가 남진보다 한 살 적은 1947년생, 남진은 1946년생이다. 데뷔는 남진이 1960년, 나훈아가 1966년으로 남진이 6년 빠르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진작에 은퇴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쨌든 후배 나훈아가 선배 남진보다 먼저 떠나기로 했다. "훈아씨가 왜 그랬을까. 훈아씨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나는 아직 노래를 할 수 있으니까 은퇴 생각은 안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노래를 더 이상 부를 수 없어서 떠나는 건 좀 그렇고. 그래도 노래가 될 때 가야죠. 훈아씨는 노래를 잘 하시고 지금 모습이 정말 좋은디…조금 더 하시지."

'오빠, 다큐'에서 남진을 아는 사람들은 남진의 마지막 무대가 잘 상상이 안 된다고 했다. 생각을 못하겠다고도 했다. 그래서 남진에게 은퇴 무대에 서게 된다면 첫 번째 곡과 마지막 곡으로 어떤 노래를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콘셉트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빠른 것과 슬로우를 하나 씩 고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노래들은 공연 중간엔 들어갈 수는 없는 노래들"이라고 말했다. "오프닝은 빠르게 간다면 '둥지'로, 슬로우로 가면 '빈잔'으로 하고 싶어요. 엔딩은 빠르게 간다면 역시 '님과 함께'지. 우리 팬들과 한 백 년 살고 싶다고 외치는 게 그림이 나오잖아. 엔딩을 슬로우로 간다면 '빈지게'를 하고 싶어요."

영화 마지막 대목엔 막 무대에 오르는 남진의 모습이 나온다. "선생님의 마지막 무대는 언제가 될까요"라는 물음에 남진은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근데 오늘은 아니야. 이건 확실해. 봐라잉, 지금부터 쇼타임이여." 남진에게 그렇게 오래 노래했는데도 여전히 노래가 잘 안 풀릴 때가 있냐고 했다. 남진은 "노래 하면서 한 번도 만족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정말 온갖 걸 다 했잖소. 근데 만족이 안 돼 만족이. 이렇게 하면 저게 맘에 안 들고, 저렇게 하면 이게 맘에 안들고, 뭐가 평범한 것 같고."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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