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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1 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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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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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ggoorr.net/thisthat/10500995 

*이 글은 네이버 역사카페 '부흥' 의 회원 '신불해' 님의 게시글에서 글쓴이가 약간의 변형을 거쳤습니다.

 

 

 

 

 

1388년,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는 2차 요동정벌 도중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개경을 함락, 조정을 장악하게 된다. 

 

만약 이 당시 이성계가 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소한 전력으로도 연전연승을 거두게 된다 치면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되었을 것인가? 미리 언급하는데 이 글을 진지하게 보는 실수는 하지 않길 바란다.

 

 

 

 

 

첫번째 관문 : "뚫어라, 요동반도!"

 

 

2차 요동정벌의 주요 공격 지점이 요동인만큼, 가장 먼저 격파해야 할 상대는 물론 요동의 명나라 병력이다. 명 제국의 전체 힘에서 보자면 요동은 제국의 한 쪽 귀퉁이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곳의 전력 역시 만만한 편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1375년 나하추는 요동반도 깊숙히 침공을 하였으나 단 한개의 성도 제대로 함락시키지 못하고 대패하여 쫒겨났다. 이 당시 나하추의 병력에 대해서는 알기 힘들다. 나하추의 전체 세력은 10만, 항복할 무렵에는 20여만 등으로 '명사 : 달단전' 등에서 언급이 되는데, 이는 나하추의 병력이 20만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세력에 속해 있던 전체 세력의 숫자이다. 다만 나하추는 아직 힘이 강성해지기 이전인 1362년의 고려 침공에서도 수만 단위의 군대를 동원했으므로, 이 당시에도 수만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여력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나하추의 침공을 막아낸 것이 요동의 명군인데, 이 나하추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지휘관 섭왕(葉旺)은 요동원정 한달 전 무렵에 세상을 떠났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은 부분이 없진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섭왕이 죽었다고 해서 요동의 방위력 자체가 갑자기 허약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우리의 킹왕짱 성계 횽이 으랏차차 폭풍 돌파로 이 요동을 뚫었다고 하자! 그런데 만약 일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면...

 

 

 

 

 

두번째 관문 : "박살내라, 15만 대군!"

 

주원장의 대표적인 명장 '남옥'

 

고려의 요동 원정군이 활동을 개시할 무렵, 단순 방위의 목적으로 주둔하고 있는 병력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군단은 포어아해에 있었던 남옥과 풍승의 15만 대군이다. 이 군단은 요동 원정 바로 얼마 전 무렵에 북원 정권을 궤멸시키고 8만에 가까운 포로를 사로잡으며 막북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군단을 이끄는 핵심 장수는 남옥과 풍승이며, 훗날 영락제의 주요 장수가 되는 장옥 등도 이에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 장수들의 주요 공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남옥(藍玉) : 대단한 용맹을 지녀 가는 곳마다 적을 섬멸한 장군. 맹장 상우춘의 추천을 받고 촉을 평정하고 북으로 원나라를 격파했으며 서번(西番)을 제압하고 다시 남으로 운남을 평정. 나하추를 굴복시킨 후 곧이어 포어아해에서 북원을 궤멸시켰고, 만족의 반란을 제압함.

 

풍승(馮勝) : 명 태조 주원장의 심복 중 한사람으로 활약했던 무장. 진우량을 수차례 패배시키고, 이후 북방 몽골 세력과의 전투에서 활약하여 섬서를 평정시킴. 북원 명장 코케 테무르를 무찌르고, 서북방을 평정함.

 

장옥(張玉) : 정난의 변 당시 경병문의 30만 대군을 깨부수는데 큰 공훈을 세움. 영락제가 자신은 장옥에 의지한다고 말할 정도의 신임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장군. 이경륭의 군단을 격파하고, 영락제가 성용의 군단에 포위되어 위기에 처하자 진중에 홀로 돌입해 적군 수십명을 죽이며 영락제를 구하려다 전사한 장군.

 

하나같이 기라성 같은 장수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손에 있는 15만의 군세는 개국 초기 명나라에 있어 최대 위협이었던 북원 정권 마저 궤멸시킬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성계가 요동을 돌파하는 순간, 고려의 위협이란 명에게 있어 북원 정권에 버금가는 수준이 될 터이므로 사막으로까지 진군했던 이 병력이 요동의 이성계를 좌시하고만 있을지 의문이다. 만일 이들이 요동에 온다면, 이성계는 이들을 모두 격파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번에도 킹왕짱 성계 형님은 남옥이건 풍승이건 장옥이건 15만이건 20만이건 요동으로 몰려드는 적군을 모조리 뺨 한대씩 때려서 섬멸해버렸다고 치자! 요동을 아주 명군의 지옥으로 만든 성계 형이 슬슬 요동에서 조금 더 움찔거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 명나라 역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을 터인데...

 

 

 

 

 

세번째 관문 : 북상하는 주원장의 칼들

 

 

남옥과 풍승, 장옥은 뛰어난 장수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명 태조가 도적 무리에 가까웠던 시절부터 세력을 키우며 함께하여, 왕으로까지 추봉된 장수들이 있다. 검녕왕(黔寧王) 목영, 기양왕(岐陽王) 이문충, 동구왕(東甌王) 탕화, 영하왕(寧河王) 등유, 개평왕(開平王) 상우춘, 그리고 중산왕(中山王) 서달이 바로 그들이다.

 

이 중 일반적인 평가에서 최고로 꼽히는 인물은 대장군 중의 대장군 서달이지만, 이 시점에서는 사망한 후였다. 그러나 1388년 당시에도 목영과 탕화 등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 탕화의 경우, 1380년대 초부터 주로 해안지대에서 왜구를 막기 위한 방비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왜구를 막기 위한' 탕화의 병력만 해도 무려 6만에 가깝고, 전함은 300여 척이 동원되는 수준이었다. 고려의 요동 원정군이 5만, 그 중 전투병은 3만 8천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다.

 

왜구를 막는것은 왜구가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동을 평정하고 남옥의 군대마저 격파한 이성계는 왜구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협일 테니, 탕화 등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원장의 휘하에서 수십년에 걸쳐 천하의 군웅들을 격파했던 이 역전의 명장들도 이성계를 막으러 올라간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나 이 IF 시나리오에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우리의 명장 성계 형님이 그런 기라성 같은 장수들마저 모조리 떡실신 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치자! 이쯤되면 요동이 문제가 아니라 미친듯이 중원으로 남하해야 할 상황이고, 판이 그렇게 커진 마당에... 거기서 그만하자고 손을 떼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다음 상대는 바로 이 쪽이다.

 

 

 

 

 

네번째 관문 : 무적의 연왕 '주체'

 

연왕 '주체' (훗날의 명 성조 영락제)

 

미래의 영락제인, 주원장의 아들 연왕 주체는 홍무 13년인 1380년에 북평으로 이동했고, 이때부터 연나라 왕으로서의 행보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연나라 지역이면 중국의 북방으로, 1380년 당시라면 아직 북원의 위협이 여전한 상태라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연왕이라는 자리를 문제없이 이끌어간 주체의 군사적 능력이 어땠을까라는 점은 쉽게 상상이 가는 부분이다.

 

실제로 주체는 요동 원정 바로 다음 해인 1389년부터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행보를 보여주었는데, 내아불화(乃兒不花) 토벌에서 대활약을 하여 자신의 이름을 변경에 크게 떨쳤다. 즉 이 무렵은 주체가 지휘관으로서 쌩쌩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연왕 주체의 진짜 활약은 바로 '정난의 변' 당시다. 이 때 주체에 대한 기록을 조금만 살펴보도록 하자.

 

-성조본기-

 

王三易馬,矢盡揮劍,劍折走登堤,佯引鞭若招後繼者

▶▶ 왕은 말을 세번을 갈아타고, 화살이 떨어지자 칼을 휘두르고, 칼 또한 부러지자 제방 위로 달아나, 채찍을 휘두르며 후방의 군대를 불러들이는 척 했다.

 

當是時,王稱兵三年矣。親戰陣,冒矢石,以身先士卒,常乘勝逐北,然亦屢瀕於危

▶▶ 당시는 왕이 칭병을 한 지 3년 째였다. 직접 군진에서 전투를 벌여, 화살을 돌을 무릎쓰고 몸소 군사들보다 앞장을 섰고, 승세를 타고 패배를 막았으나 죽을 위기에 처해진 것도 여러번이었다.

 

平安轉戰,遇王於北阪,王幾爲安槊所及

▶▶ 평안이 전쟁터를 돌아다니다 북쪽 평원에서 왕을 발견했는데, 왕에게 평안이 찌른 창이 거의 닿을 뻔했다.

 

 

-장옥열전-

 

成祖以數十騎繞出其後。庸圍之數重,成祖奮擊得出

▶▶ 성조가 수십 기로 그 뒤로 감싸고 나왔다. 성용이 그를 포위한 것이 여러 겹이었는데, 성조가 분격하여 나올 수 있었다.

 

 

지휘관으로서의 주체는 중국 역사상 손에 꼽을만한 무투파 황제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총지휘관이면서도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스스로 전면에서 군대를 이끌던 맹장 중의 맹장이었다. 정난의 변 당시 정난군이 황제군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전력이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연왕이 가진 장수로서의 절대적 카리스마 탓이었다. 더구나 정난의 변 당시, 주체는 60만, 50만에 달하는 적군을 상대로 무수하게 승전을 거둔 불세출의 지휘관이기도 했다.

 

 

그런 연왕 주체가, 중국 북방에 있던 거의 모든 병력을 규합하여 머리를 들이미는 이성계의 고려군을 들이치는 것이다. 그야말로 공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주체고 뭐고 이성계... 아니, 이제 이성계가 맞기는 한지 의심스러운 이 IF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그런 명나라의 북방군마저 궤주시키고 요동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 이쯤되면 싫어도 남하해야 하는 참이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다...

 

 

 

 

 

FINAL STAGE : 명 태조 주원장의 본군과 강남의 생산력

 

명 태조 홍무제 '주원장'

 

비록 크게 주목받는 편은 아니지만, 명의 창업자 주원장은 그 자체로도 뛰어난 군사 지휘관이었다. 그는 혼란한 세상에서 맨 몸으로 시작해 곽자흥의 밑에서 오로지 본인의 능력만으로 주목을 받았고, 24명의 동지를 이끌고 떠나 수천의 병력을 수습하여 2만의 원나라 군사들을 무찔렀다. 복병으로 저주를 구하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화주를 공격한 10만 원나라 군사들을 물러나게 했으며, 대전략을 세워 중국의 남부로 이동하고 수륙 양면 협공으로 진우량을 격파했다. 특히 파양호 전투에서는 20만의 병력으로 호왈 60만에 이르는 압도적인 적군을 상대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비록 이 시점의 주원장은 노년이지만, 사태가 이렇게 되었으니 직접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 그 중 강남이 가진 엄청난 생산력이다. 이 시기 중국의 남부는 전체 중국에서 엄청난 생산력을 차지하고 있었던 곳이니 그 생산력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힘으로 불과 10여년 후, 정난의 변 당시 황제군은 30만 대군, 50만 대군을 계속해서 동원하여 실로 경악스러운 군사 동원력을 보여 주었다. 그야말로 무찔러도 무찔러도 끝이 없는 숫자의 군대와, 바닥나지 않는 군수물자의 향연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전부 도달해서 최종보스 주원장까지 때려눕히는 수준이 되었을 때, 세계사의 수많은 명장들과 이성계를 비교하면 대략적인 평가는 이렇게 될 것이다.

 

 

 

한니발

로마 찌질이들이 억지 향수로 띄워준 거품의 최고봉

 

칭기즈칸

시대 하나는 잘 만나서 땅 좀 넓힌 촌놈

 

나폴레옹

코르시카 이장에나 어울리는 그릇

 

알렉산더, 카이사르

언급할 가치도 불필요한 찐따들

 

 

 

 

 

 

 

 

 

 

 

 

 

 

 

 

갓성계

멸망 직전과도 같았던 고려의 국력으로 욱일승천하는 초강대국 명을 때려잡은 다시 나올 수 없는 초유의 군사전략가!!

위에서 나온 상거품들은 다 제껴 버리고, 모두들 갓성계 형님을 찬양하라!!!!! 

 

 

 

 

 

 

 

 

 

 

 

 

 

 

 

 

 

 

 

 

 

 

 

 

 

 

 

 

 

 

 

 

 

 

 

 

 

 

 

 

 

 

 

 

 

 

 

 

 

 

 

 

 

 

 

 

 

 

 

 

 

"헛소리 하짐 둥 말고, 얼른 집에 가서 잠이나 자겠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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