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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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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엄청나게 황홀하고 믿을 수 없게 아름다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명화 라이브홀에서 영국의 드림팝 밴드 '슬로우 다이브(Slowdive)'의 '캐치 더 브리즈(Catch the Breeze)'를 듣다가 빨려 들어갈 뻔했다.

몽환적인 음들이 몽롱하게 미쳐 날뛰고, 우주에서 수많은 운석이 돌진하는 듯한 시각효과가 더해지자 무아지경의 세계가 찾아왔다. 7년 만의 내한이자 단독 공연은 처음인 이날 슬로우 다이브 무대는 황홀경이었다.

노랫말은 빽빽한 밀도의 사운드에 밀려 잘 안 들렸지만, 그 음절 자체가 음향이 됐다. "크레이지 포 러빙 유(크레이지 포 러브, 포 러브, 포 러브(Crazy for loving you (Crazy for love, for love, for love))"만 반복하는 '크레이지 포 유(Crazy for You)'만 들어도 그렇다. 쨍한 사운드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의 틈에서 비집고 나오는 이 되풀이됨은 주술적인 수사학이었다. '수블라키 스페이스 스테이션(Souvlaki Space Station)'의 신비로운 사운드는 주문 같기도 했다.

세계에 산재한 음이 신선하지 못한 까닭은 그 음들이 청자를 설득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슬로우다이브의 사운드는 청자를 설복시키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납득하게 만든다. 그것이 이 팀의 술법이다. 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뛰어넘어 곧장 매혹의 단계로 가는 이유다. 스스로 유혹 당하고 싶게 만드는 사운드의 관능. '션티(shanty)'로 시작한 이날 공연은 슬로우 다이브의 그런 방법론을 노래했다. 레이첼 고스웰의 보컬도 하나의 악기처럼 들렸다.

깨어나도 꿈 결 같은 '슬립(Sleep)'의 아련함, 몽환적인 빽빽함이 빛났던 '체인드 투 어 클라우드(chained to a cloud)', 멜로디컬한 '키세스(kisses)' 등 어느 곡 하나 쉬어 갈 틈이 없었다. 팀을 대표하는 올드송 중 하나인 '앨리슨(Alison)'을 들려줄 때는 관객들이 향수에 젖었다. '웬 더 선 히츠(When the Sun Hits)'의 아득한 사운드는 낭만을 길어올렸다.

블랙홀을 방불케 하는 '스타 로빙(Star Roving)' 등 우주를 탐험하는 듯한 영상과 몽롱한 빛도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포티 데이즈(40 Days)'로 본 공연을 마무리한 뒤 앙코르 첫 곡으로 대표곡 중 하나인 '슈가 포 더 필(Sugar for the Pill)'을 들려줬다. 조용하게 시작한 '대거(Dagger)'에선 관객들이 하나둘씩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 우주의 별을 만들었다. 이날 세트리스트에 포함된 곡 중 가장 여백이 있는 노래였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상징인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창단 멤버 시드 바렛(Syd Barrett)의 '골든 헤어(Golden Hair)'로 이날 공연을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결성 35주년을 맞은 슬로우 다이브는 여전히 청춘이었다. 1980~1990년대 몽환적인 사운드 질감의 슈게이징이 유행했는데, 비슷한 장르의 다른 팀들보다 팝적이라 해당 신(scene)의 입문 밴드로 통했다. 그래서 이날 관객은 상당수 중년층일 것이라 추정했다. 그런데 웬걸 10~20대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뉴트로 열풍은 록 신에도 불었고 슈게이징은 요즘 청춘들에게 핫한 장르가 된 것이다. 이날 공연을 위해 경북 포항에서 올라온 10대도 있을 정도였다. 해외 평단에서 더 주목하는 국내 1인 슈게이징 밴드 '파란노을', 캐릭터화 된 슈게이징 밴드 'TRPP' 그리고 브로큰티스(BrokenTeeth), 왑띠 등 이 신을 지키고 있는 국내 젊은 뮤지션들도 꽤 있다.

파란노을은 이날 오프닝 밴드이기도 했다. 라이브 무대 노출이 적어 한 때 실존 여부에 대해 궁금증이 일기도 했던 파란노을은 이날 밴드 세트(set) 구성으로 30분간 공연했다. 파란노을은 건반 앞에서 묵묵히 노래했다. '우리는 밤이 되면 빛난다', '아름다운 세상', '아날로그 센티멘탈리즘'은 몽환 속 서정이었다.

오프닝 무대를 마련해준 슬로우 다이브와 라이브 네이션 코리아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을 뿐, 멘트는 거의 없었다. 총 다섯 곡 중 마지막곡은 신곡이었다. 슬로우 다이브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했다. 내내 파랑이던 조명은 이 곡 때만 붉게 바뀌었다. 파란노을은 해당 곡에서 슬로우 다이브 같은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슬로우 다이브는 늘 청춘의 바이브다. 슬로우 다이브, 슈게이징 시대는 여전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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