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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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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밴드 '자우림' 프런트 퍼슨 겸 싱어송라이터 김윤아는 솔로 활동에서 스스로 제물(祭物)이 된다.
자신의 뇌와 마음을 모두 바쳐 음반을 지어내기 때문이다. 솔로 정규작으로 따지면 8년 만인 25일 오후 6시 공개하는 정규 5집 '관능소설(官能小說)'이 특히 그렇다.
더블 타이틀곡 '장밋빛 인생'과 '종언'을 포함한 총 10곡이 실렸다. 김윤아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해온 '사랑 노래'들로만 구성했는데, 그건 예술가의 엄살에 불과했다. 이 독주 같은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는 김윤아의 문학적 심미주의(審美主義)를 보여준다. 청각뿐 아니라 시각의 세계도 펼쳐내며 공감각적인 심상을 안겨준다.
그런데 쉽게 가면 김윤아가 아니다. 그녀가 숙성시킨 유희는 관객들에게 관능적이며 우아한 '퍼즐 맞추기 재미'를 선사한다. 독주의 도수가 너무 높아 거기에 취해 길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주어진 아리아드네의 실이 김윤아의 이번 음반을 듣는 이들의 손에도 꼭 쥐여줬다.
그런데 김윤아 인장이 박힌 발라드 '종언', 탱고 사운드가 춤을 추는 '장밋빛 인생', 플라멩고 기타의 흐느낌이 배인 '마지막 장면', 진한 재즈의 향취인 '체취' 등을 들으면 그냥 마냥 취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라이너 노트'에서 "'관능소설'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제일 아름다운 일에 관한 이야기다. 동시에 베테랑 싱어송라이터로서 여전히 탁월한 역량과 녹슬지 않은 동시대적 감각을 증명하는 앨범"이라고 들었다.
예술영화 같은 '종언' 뮤직비디오와 배우 한예리가 주연한 '장밋빛 인생' 뮤직비디오가 이날부터 1주 간격으로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다음은 최근 서울 강남구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김윤아와 나눈 일문일답.
-물론 자우림 25주년을 비롯 여러 일로 바쁘셨지만 무려 8년 만에 솔로 정규가 나왔습니다.
"제 것보다는 자우림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간 자우림이 중요한 시점들을 많이 지나왔어요. 25주년도 그렇고 10집, 11집도 그랬죠. 그 작업들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더라고요."
-자우림 앨범도 워낙 좋은 평가를 받지만 윤아 씨 솔로 앨범에도 명반이 많습니다. 최근 EBS '스페이스 공감'이 20주년을 맞아 공개한 '2000년대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장'에 3집 '315360'(2010)이 꼽히기도 했습니다. 새 솔로 앨범에 대한 기대나 부담이 클 거 같아요.
"전 제가 기대를 많이 해요. 팀하고 할 때는 자우림의 한 명인 자아가 되거든요. 저희 3명의 교집합에 약간의 합집합을 더한 게 자우림의 자아죠. 진짜 저 자신은 아닌 것 같아요. 솔로 작업에선 저희들이 공동으로 생각하는 주제를 놓을 수가 있잖아요. 저한테는 굉장히 자유로워지는 시간이거든요. 소재도 제 안에서 길어 올리고요. 그래서 재밌어요. 물론 자우림도 항상 재미있지만 솔로 작업은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죠. '이번에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이 커요. 특히 이번 앨범은 특별해요. 제가 이전 앨범 작업에서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상상 세계'에 100% 의존한 적이 없거든요. 이번에는 단편으로 가득 찬 옴니버스 영화를 찍는 기분으로 만들었어요. 극단적인 광기의 선을 넘어갈 것만 같은 괴로운 순간들도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괴롭게 완성된 앨범이기도 하죠."
-'사랑 노래'로 가득 찬 앨범을 만드는 것에 대해 '해묵은 숙제'로 표현을 해주셨는데 이번에 숙제를 끝낸 다음 '사랑 노래' 앨범을 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나요?
"더 잘할 것 같아요. 다음 앨범은 '인생이다'라고 생각하고는 있어요. 정말 오래된 꿈 중에 하나가 '진짜 아름다운 트로트 앨범'을 만드는 거였거든요. 그러려면 제가 연륜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송이가 감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인생'에 대한 앨범을 제가 낼 수 있을지 확신을 못하겠어요. 그래서 제게 남은 더 큰 숙제는 인생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하는 노년이 되고 싶어요. JTBC '비긴 어게인2'(2018) 출연했을 때 파두 클럽에서 100세에 가까운 현역 가수 셀레스트 로드리게스가 노래 부르시는 걸 바로 눈앞에서 봤어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그 이전까지 '노인이 돼도 나만 낼 수 있는 소리를 가진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는데 그런 분을 진짜 실제로 목도하니까 더 그렇게 되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자우림 콘서트를 보면서 중년이 넘어서도 계속 멋있게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윤아 씨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건 좀 진짜 좀 슬픈 일인데요. 제가 출발할 때는 동료 여성 뮤지션이 많았거든요. 점점 활동을 안 하시는 것 같아서… 친구가 더 있으면 좋겠다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 앨범 제목만 들었을 때는 추상화를 떠올렸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밀화더라고요. 구성도 치밀하고요. 트랙 리스트 배치도 진짜 촘촘했어요.
"사실 곡 순서에 대한 의미가 없는 시대잖아요. 다들 앨범을 통째로 듣지 않고, 앨범을 들어도 셔플로 듣는 분들도 많죠. 뮤지션이 곡을 배치한 순서대로 들으면서, 곡과 곡 사이의 시간을 느끼는 걸 너무 좋아해요. 거기엔 행간의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앨범을 맥락을 생각해서 순서대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앨범은 단편 소설 혹은 단편 영화가 쭉 이어지는 옴니버스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곡을 만들 때부터 캐릭터가 겹치는 주인공이 없었으면 했고 이런 질감의 사운드가 있으면, 저런 질감의 사운드도 공간에 같이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꽃('카멜리아' 등)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제 머릿속에서는 유기적으로 하나로 이어졌죠. 곡에 어떤 배역을 부여할 지 고민하는 것도 재미있는 과정이었요. 곡들을 쭉 배치해 놓은 다음에 빨간 실로 곡들을 꿰맸어요. 그게 곡 배치랑 곡 사이가 된 건데 단어로도 곡들을 얽히게 해놨거든요(5번 트랙 '장밋빛 인생'의 가사 '마지막 장면'이 10번 트랙 '마지막 장면'과 이어지는 식) 트랙리스트 작업도 곡 작업 못지않게 굉장히 즐겁고 머리에서 퍼즐을 푸는 것 같았죠."
-관능이라는 표현은 원래 윤아 씨에게 낯설지 않은 단어이긴 합니다. 관능적 매력이 넘치시는데 이번 앨범 덕분에 그 관능이 새롭게 환기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 관능에 소설을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앨범을 구상한 뒤 작업 기간은 1년가량이 걸렸어요. 그 중 7개월은 진짜 집중해서 했죠. 1년 전에 이탈리아에 가서 앨범을 위한 사진과 산문을 위한 영감을 얻어왔고 그 때 앨범의 맥락은 다 있었어요. 작업대에서 딱 펼치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머릿속에서 유희하는 것처럼 가지고 놀았어요. 그러다 '얘네를 다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뭘까' 하다가 그냥 관능이 튀어나왔어요. 사랑에 대한 어떤 다른 표현들을 많이 생각해 봤는데 '마지막 장면'부터 '체취'를 다 아우를 수 있는 단어는 관능이었고, 그 관능과 딱 붙는 말이 소설이더라고요. '관능소설'은 장르적으로 좀 에로틱할 수도 있는데, 이 앨범은 에로틱하진 않으니까 아이러니함도 있었습니다. '관능소설'이라는 워딩에 있는 어떤 일말의 가벼움을 전부 다 지우고 싶었어요. 앨범에 실린 곡들은 사랑 이야기이면서 인생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조금은 더 진지하게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앨범 내에 '관념 산문'이라는, 완전 정반대 개념의 글을 실었죠."
-10개 트랙의 곡을 마치 LP처럼 A사이드와 B사이드로 나누시고 A면을 판타지, B면을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로 정의하셨습니다.
"일단 물리적으로 사운드가 잘 어울리는 곡끼리 배치하는 게 제일 좋아요. 떠 환상 세계의 곡들은 사운드도 환상적이고 현실 세계의 곡들은 사운드도 현실적인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그 사운드로 앞뒤를 나누었어요. 일상적인 소재의 곡들이 먼저 나오는 구조보다 환상을 먼저 A면에 배치하고 싶었어요. 최근엔 앨범으로 하나의 극을 만들어도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뮤지컬은 아니고 음악으로 된 극이겠죠."
-첫 트랙 '카멜리아'가 이번 앨범의 단초가 된 곡이라고 하셨습니다.
"앨범에 실린 곡 중 완곡으로 가장 먼저 만든 노래예요. 2년 전에 만들었던 곡에 어떤 테마가 있는데 그 테마를 발전시켰습니다. 아직 공개가 안 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게 짧은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하셨어요. 제 솔로 앨범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던 때라, 이 테마로 제 솔로 앨범에도 곡을 넣겠다고 말씀 드렸죠. 방영 일정이 미정인데 진짜 특별한 예능이에요. 그리고 그 곡은 좀 무서워요. 악몽에 대한 노래라서요. 그래서 '카멜리아'는 '관능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두 사람의 뜨거운 이야기가 들어있고 공감각적으로 추운 겨울 붉은색 꽃이 떠오르고요. 또 김필 씨가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곡을 완성해 줬어요."
-'종언'의 멜로디는 10년 전에 만들기 시작하셨다고요.
"가사 붙이기를 어려워하지 않는데 얘는 가사 붙이기가 진짜 어려웠어요. 한국어 음열이 잘 안 붙더라고요. 그런데 폐기하기 너무 아쉽고요. 이번에 오히려 힘을 빼고 가사를 썼는데 데모를 갖고 주변 모니터링을 했더니 다들 너무 슬프다는 거예요. 제가 느끼기에는 흡족할 만큼 슬프진 않았거든요. 제가 너무 극단적인 감정을 좋아해서 이제 가늠이 잘 안 되는 거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교훈을 이번에 크게 얻었죠."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는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성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테나 같은 곡이라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여왕 마고', '색,계', '화양연화', '몽상가들', '언페이스풀', '헤어질 결심' 같은 영화들을 뇌에 제물로 바치셨다고요. 근데 저는 원래부터 윤아 씨의 노래들은 신화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고 느꼈고 그런 부분이 미스터리적 요소를 풍기게 하는 이유라고 봤습니다.
"일단 영화들을 제물로 바친 건 작업대에 딱 앉기 직전에 뇌를 속이기 위해서였어요. 그러니까 제 머릿속에 있는 라인업을 생생하게 구현하려면 맨정신으로 안 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저는 (결혼을 해서) 합법적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닐 수가 없잖아요. 당연히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뇌에 연애 호르몬을 주입하기 위해서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앞서 언급한 영화들을 반복해서 보니까 뇌가 정말 사랑에 빠지더라고요. '카멜리아'를 만들 때 진짜로 '연애 행복감'에 고양돼 있었고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는 거의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대상이 없는 연애를 했어요. 정말 뇌를 속이기 위해 작업실에서도 영화 영상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처럼 띄워 놓았고 사진도 걸어 놓았죠. 정말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한 거죠. 대상, 실체가 없고 호르몬만 있으니까 나중에는 너무 지치더라고요. 그런 상태가 돼서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를 썼어요."
-'체취'랑 '장밋빛 인생' 녹음 작업은 시이나 링고(椎名林檎)와 협업으로 잘 알려진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겸 뮤지션 사이토 네코(斎藤ネコ)와 하셨습니다.
"사실 처음엔 (김윤아 2집 '유리가면'(2004)에서 편곡 작업을 맡았던 '와호장룡' 영화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탄) 조르지 칼란드렐리 선생님하고 같이 다시 작업을 하면 어떨까 하고 궁리를 했는데 시간적으로 촉박했어요. 그러다 다행이 사이토 네코 선생님이 제 일정이 딱 맞아서 제가 일본으로 날아가 하루 만에 두 곡을 작업하고 왔죠. 꿈꾼 것처럼 녹음하고 왔고 진짜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진짜 프로페셔널 하시고 친절하세요."
-6번 트랙부터는 현실입니다. 6번 트랙 '평범한 남자', 7번 트랙 '유(U)'는 모두 듀엣곡입니다. 각각 백현진, 이승열 씨가 참여를 했어요.
"사랑에 대한 앨범을 만들자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따라온 부수적인 숙제가 듀엣 곡이었거든요. 사랑 이야기하기 좋은 방식이잖아요. 사실은 '해피엔딩'도 듀엣으로 여성 뮤지션하고 부르려고 했는데 타이밍적으로 안 맞았어요. '평범한 남자'는 알고 보면 곡 안에서 전조가 8번이 됩니다. 멜로디는 하나처럼 들리지만 계속 조가 바뀌는 노래거든요. 특이하게 수학적으로 만들어진 곡인데, 가사를 쓸 때부터 이 곡에는 어울리는 분은 백현진 씨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안 평범한 남자라서요. 하하. 사랑에 빠졌을 때 '나도 이렇게 평범한 놈이었어'라고 생각하기에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렸어요. 어어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서 솔로 작업까지, 제가 현진 씨 팬이기도 하거든요. 이번 앨범에 사심을 참 많이 이뤘어요. '유'는 이번 앨범에서 제일 대중적인 곡이라고 생각해요. 회사 분들도 아는 여자 사람 친구랑 불러야 되겠다며 대중적일 수 있다고 반응했죠. 그리고 이승열 선배가 절대 이런 노래 안 부를 것 같은 뮤지션이잖아요. 무게감 있고 어두운 노래만 하셔서 '이승열 선배가 딱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사의 정원'에 함께 해준 이하이 씨한테도 정말 감사해요. 제가 하이 씨 목소리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근데 하이 씨랑은 안면이 없었어요. 제가 그냥 소속사에 문의해서 '하이 씨랑 얘기할 수 있을까요?'라고 대뜸 물었죠. 하이 씨도 새로운 작업하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하이 씨가 해외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서 빠르게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정말 만족스러운 듀엣으로 완성됐어요. 듀엣곡 4곡 모두 진짜 마음에 들어요. 네 분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전 '부사의 정원'에서 부사(副詞·주로 용언을 수식하는 기능을 하는 품사)가 처음엔 사과의 품종인 부사인 줄 알았어요. 또 사과가 관능 이미지와도 연결이 돼 있잖아요.
"진짜 부산(副詞)만으로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리고 재밌잖아요. 퍼즐 같아서요. 말씀하신 사과의 의미도 중의적으로 두고 싶었어요. 제가 음원 사이트에 있는 노래 제목들은 다 한글로 썼는데 앨범 재킷엔 '종언', '체취' 등 한자 제목들은 한자로 썼어요. 근데 '부사의 정원'의 부사는 한자를 안 쓰고 한글로 썼는데 동시에 뜻이 존재하길 바란 측면도 있어요."
-'해피엔딩'도 멋진 트랙입니다. 많은 여성 동료분들에게 바치시는 곡이라고요.
"제 경험담을 토대로 했고요. 동화나 영화를 보면 해피엔딩이라고 나오잖아요. 근데 그 다음엔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저는 비혼도 좋다고 생각해요. 너무 좋은 삶의 방식이죠. 굳이 결혼하거나 결합하지 않아도 그냥 사랑하는 사람하고 같이 인생을 걸어가는 것도 좋은 방식이라고요. 결혼 관련 해서는 다 개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저는 결혼이라는 방식을 사랑의 마지막 장면으로 택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는 기혼자로서 그리고 아이가 있는 사람으로서의 지금 저 자신으로서의 지혜를 가지고 있거든요. 이거는 흔히 말하는 해피엔딩 이후에 생긴 지혜들이고, 노래에 묘사되는 고난들은 해피엔딩 이후의 고난들이죠. 해피엔딩 이후에 더 연마되고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 새로 탄생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솔직히 말해서 이전에는 몰랐던 저 자신에 대해 최근에 알게 된 것도 있어요."(그러면서 김윤아는 '관문산념'에서 '우리는 멈춰진 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화살표이며 따라서 여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라는 대목을 읽어줬다.)
-10번 트랙 '마지막 장면'은 진짜 앨범의 '마지막 장면'이 됐습니다. '관념산문'의 '검고 싶은 바닷속의 마법사'랑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가요?
"사랑의 마지막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인생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잖아요. 산문에도 죽음에 대한 얘기가 되게 많이 나오는데 인간이 만약에 영원히 스물 여섯살인 채로 계속 살아간다면 그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상실되는 것이 없잖아요. 사람이 상실되지 않고 산다면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 생겨요. 저는 상실이 없으면 철학 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앨범은 '진짜 어른들의 앨범이구나'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경험과 연륜이 쌓이지 않으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제 물리적으로 나이가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연애가 너무 분홍색이거나 캔디를 먹는 듯한 연령 말고, 조금 씁쓸한 술도 즐기고 이런 연령대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만들 때 저희끼리는 '진짜 독주 같은 앨범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또 끝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노래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특히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저도 생각했어요."
-윤아 씨는 원래도 작가였지만 그냥 작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합니다. '해피엔딩' 얘기랑 연장선상일 수 있는데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분으로서, 예술가의 날선 감각을 어떻게 유지하면서 이런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지 궁금해요.
"부끄럽습니다. 보통 결혼하면 현실적으로 살아야 되고 특히 아이가 생기면 더 그렇다고 생각하시잖아요. 만약에 제가 결혼을 해서 제 커리어에 지장을 받았다면 아마 안 했을 거예요. 처음부터 그냥 저는 저로 살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결심한 거고 예상대로 지금 그냥 저는 저인대로 살고 있어요."
-25~28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홀(SIGNATURE)에서 '관능소설'이라는 타이틀로 콘서트도 여십니다.
"작년 3월에 LG아트센터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의 '지젤'을 봤어요. 극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여기서 음악 공연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그런 무대에 제가 서게 됐다니 정말 기쁘고요. 극장이 또 너무 아름다우니까 공연도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들어요. 오신 분들이 충분히 다른 세상에 갔다 오실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당분간은 이번 앨범 홍보하고 크고 작은 무대들, 페스티벌들에 출연할 거예요. 연말엔 자우림 투어가 예정됐고요. 아마 자우림 새 앨범을 위한 음악도 슬슬 구상을 시작할 것 같고요. 작업할 때가 제일 즐거워요."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자신의 뇌와 마음을 모두 바쳐 음반을 지어내기 때문이다. 솔로 정규작으로 따지면 8년 만인 25일 오후 6시 공개하는 정규 5집 '관능소설(官能小說)'이 특히 그렇다.
더블 타이틀곡 '장밋빛 인생'과 '종언'을 포함한 총 10곡이 실렸다. 김윤아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해온 '사랑 노래'들로만 구성했는데, 그건 예술가의 엄살에 불과했다. 이 독주 같은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는 김윤아의 문학적 심미주의(審美主義)를 보여준다. 청각뿐 아니라 시각의 세계도 펼쳐내며 공감각적인 심상을 안겨준다.
그런데 쉽게 가면 김윤아가 아니다. 그녀가 숙성시킨 유희는 관객들에게 관능적이며 우아한 '퍼즐 맞추기 재미'를 선사한다. 독주의 도수가 너무 높아 거기에 취해 길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주어진 아리아드네의 실이 김윤아의 이번 음반을 듣는 이들의 손에도 꼭 쥐여줬다.
그런데 김윤아 인장이 박힌 발라드 '종언', 탱고 사운드가 춤을 추는 '장밋빛 인생', 플라멩고 기타의 흐느낌이 배인 '마지막 장면', 진한 재즈의 향취인 '체취' 등을 들으면 그냥 마냥 취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라이너 노트'에서 "'관능소설'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제일 아름다운 일에 관한 이야기다. 동시에 베테랑 싱어송라이터로서 여전히 탁월한 역량과 녹슬지 않은 동시대적 감각을 증명하는 앨범"이라고 들었다.
예술영화 같은 '종언' 뮤직비디오와 배우 한예리가 주연한 '장밋빛 인생' 뮤직비디오가 이날부터 1주 간격으로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다음은 최근 서울 강남구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김윤아와 나눈 일문일답.
-물론 자우림 25주년을 비롯 여러 일로 바쁘셨지만 무려 8년 만에 솔로 정규가 나왔습니다.
"제 것보다는 자우림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간 자우림이 중요한 시점들을 많이 지나왔어요. 25주년도 그렇고 10집, 11집도 그랬죠. 그 작업들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더라고요."
-자우림 앨범도 워낙 좋은 평가를 받지만 윤아 씨 솔로 앨범에도 명반이 많습니다. 최근 EBS '스페이스 공감'이 20주년을 맞아 공개한 '2000년대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장'에 3집 '315360'(2010)이 꼽히기도 했습니다. 새 솔로 앨범에 대한 기대나 부담이 클 거 같아요.
"전 제가 기대를 많이 해요. 팀하고 할 때는 자우림의 한 명인 자아가 되거든요. 저희 3명의 교집합에 약간의 합집합을 더한 게 자우림의 자아죠. 진짜 저 자신은 아닌 것 같아요. 솔로 작업에선 저희들이 공동으로 생각하는 주제를 놓을 수가 있잖아요. 저한테는 굉장히 자유로워지는 시간이거든요. 소재도 제 안에서 길어 올리고요. 그래서 재밌어요. 물론 자우림도 항상 재미있지만 솔로 작업은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죠. '이번에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이 커요. 특히 이번 앨범은 특별해요. 제가 이전 앨범 작업에서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상상 세계'에 100% 의존한 적이 없거든요. 이번에는 단편으로 가득 찬 옴니버스 영화를 찍는 기분으로 만들었어요. 극단적인 광기의 선을 넘어갈 것만 같은 괴로운 순간들도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괴롭게 완성된 앨범이기도 하죠."
-'사랑 노래'로 가득 찬 앨범을 만드는 것에 대해 '해묵은 숙제'로 표현을 해주셨는데 이번에 숙제를 끝낸 다음 '사랑 노래' 앨범을 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나요?
"더 잘할 것 같아요. 다음 앨범은 '인생이다'라고 생각하고는 있어요. 정말 오래된 꿈 중에 하나가 '진짜 아름다운 트로트 앨범'을 만드는 거였거든요. 그러려면 제가 연륜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송이가 감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인생'에 대한 앨범을 제가 낼 수 있을지 확신을 못하겠어요. 그래서 제게 남은 더 큰 숙제는 인생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하는 노년이 되고 싶어요. JTBC '비긴 어게인2'(2018) 출연했을 때 파두 클럽에서 100세에 가까운 현역 가수 셀레스트 로드리게스가 노래 부르시는 걸 바로 눈앞에서 봤어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그 이전까지 '노인이 돼도 나만 낼 수 있는 소리를 가진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는데 그런 분을 진짜 실제로 목도하니까 더 그렇게 되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자우림 콘서트를 보면서 중년이 넘어서도 계속 멋있게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윤아 씨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건 좀 진짜 좀 슬픈 일인데요. 제가 출발할 때는 동료 여성 뮤지션이 많았거든요. 점점 활동을 안 하시는 것 같아서… 친구가 더 있으면 좋겠다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 앨범 제목만 들었을 때는 추상화를 떠올렸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밀화더라고요. 구성도 치밀하고요. 트랙 리스트 배치도 진짜 촘촘했어요.
"사실 곡 순서에 대한 의미가 없는 시대잖아요. 다들 앨범을 통째로 듣지 않고, 앨범을 들어도 셔플로 듣는 분들도 많죠. 뮤지션이 곡을 배치한 순서대로 들으면서, 곡과 곡 사이의 시간을 느끼는 걸 너무 좋아해요. 거기엔 행간의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앨범을 맥락을 생각해서 순서대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앨범은 단편 소설 혹은 단편 영화가 쭉 이어지는 옴니버스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곡을 만들 때부터 캐릭터가 겹치는 주인공이 없었으면 했고 이런 질감의 사운드가 있으면, 저런 질감의 사운드도 공간에 같이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꽃('카멜리아' 등)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제 머릿속에서는 유기적으로 하나로 이어졌죠. 곡에 어떤 배역을 부여할 지 고민하는 것도 재미있는 과정이었요. 곡들을 쭉 배치해 놓은 다음에 빨간 실로 곡들을 꿰맸어요. 그게 곡 배치랑 곡 사이가 된 건데 단어로도 곡들을 얽히게 해놨거든요(5번 트랙 '장밋빛 인생'의 가사 '마지막 장면'이 10번 트랙 '마지막 장면'과 이어지는 식) 트랙리스트 작업도 곡 작업 못지않게 굉장히 즐겁고 머리에서 퍼즐을 푸는 것 같았죠."
-관능이라는 표현은 원래 윤아 씨에게 낯설지 않은 단어이긴 합니다. 관능적 매력이 넘치시는데 이번 앨범 덕분에 그 관능이 새롭게 환기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 관능에 소설을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앨범을 구상한 뒤 작업 기간은 1년가량이 걸렸어요. 그 중 7개월은 진짜 집중해서 했죠. 1년 전에 이탈리아에 가서 앨범을 위한 사진과 산문을 위한 영감을 얻어왔고 그 때 앨범의 맥락은 다 있었어요. 작업대에서 딱 펼치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머릿속에서 유희하는 것처럼 가지고 놀았어요. 그러다 '얘네를 다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뭘까' 하다가 그냥 관능이 튀어나왔어요. 사랑에 대한 어떤 다른 표현들을 많이 생각해 봤는데 '마지막 장면'부터 '체취'를 다 아우를 수 있는 단어는 관능이었고, 그 관능과 딱 붙는 말이 소설이더라고요. '관능소설'은 장르적으로 좀 에로틱할 수도 있는데, 이 앨범은 에로틱하진 않으니까 아이러니함도 있었습니다. '관능소설'이라는 워딩에 있는 어떤 일말의 가벼움을 전부 다 지우고 싶었어요. 앨범에 실린 곡들은 사랑 이야기이면서 인생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조금은 더 진지하게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앨범 내에 '관념 산문'이라는, 완전 정반대 개념의 글을 실었죠."
-10개 트랙의 곡을 마치 LP처럼 A사이드와 B사이드로 나누시고 A면을 판타지, B면을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로 정의하셨습니다.
"일단 물리적으로 사운드가 잘 어울리는 곡끼리 배치하는 게 제일 좋아요. 떠 환상 세계의 곡들은 사운드도 환상적이고 현실 세계의 곡들은 사운드도 현실적인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그 사운드로 앞뒤를 나누었어요. 일상적인 소재의 곡들이 먼저 나오는 구조보다 환상을 먼저 A면에 배치하고 싶었어요. 최근엔 앨범으로 하나의 극을 만들어도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뮤지컬은 아니고 음악으로 된 극이겠죠."
-첫 트랙 '카멜리아'가 이번 앨범의 단초가 된 곡이라고 하셨습니다.
"앨범에 실린 곡 중 완곡으로 가장 먼저 만든 노래예요. 2년 전에 만들었던 곡에 어떤 테마가 있는데 그 테마를 발전시켰습니다. 아직 공개가 안 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게 짧은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하셨어요. 제 솔로 앨범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던 때라, 이 테마로 제 솔로 앨범에도 곡을 넣겠다고 말씀 드렸죠. 방영 일정이 미정인데 진짜 특별한 예능이에요. 그리고 그 곡은 좀 무서워요. 악몽에 대한 노래라서요. 그래서 '카멜리아'는 '관능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두 사람의 뜨거운 이야기가 들어있고 공감각적으로 추운 겨울 붉은색 꽃이 떠오르고요. 또 김필 씨가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곡을 완성해 줬어요."
-'종언'의 멜로디는 10년 전에 만들기 시작하셨다고요.
"가사 붙이기를 어려워하지 않는데 얘는 가사 붙이기가 진짜 어려웠어요. 한국어 음열이 잘 안 붙더라고요. 그런데 폐기하기 너무 아쉽고요. 이번에 오히려 힘을 빼고 가사를 썼는데 데모를 갖고 주변 모니터링을 했더니 다들 너무 슬프다는 거예요. 제가 느끼기에는 흡족할 만큼 슬프진 않았거든요. 제가 너무 극단적인 감정을 좋아해서 이제 가늠이 잘 안 되는 거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교훈을 이번에 크게 얻었죠."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는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성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테나 같은 곡이라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여왕 마고', '색,계', '화양연화', '몽상가들', '언페이스풀', '헤어질 결심' 같은 영화들을 뇌에 제물로 바치셨다고요. 근데 저는 원래부터 윤아 씨의 노래들은 신화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고 느꼈고 그런 부분이 미스터리적 요소를 풍기게 하는 이유라고 봤습니다.
"일단 영화들을 제물로 바친 건 작업대에 딱 앉기 직전에 뇌를 속이기 위해서였어요. 그러니까 제 머릿속에 있는 라인업을 생생하게 구현하려면 맨정신으로 안 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저는 (결혼을 해서) 합법적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닐 수가 없잖아요. 당연히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뇌에 연애 호르몬을 주입하기 위해서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앞서 언급한 영화들을 반복해서 보니까 뇌가 정말 사랑에 빠지더라고요. '카멜리아'를 만들 때 진짜로 '연애 행복감'에 고양돼 있었고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는 거의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대상이 없는 연애를 했어요. 정말 뇌를 속이기 위해 작업실에서도 영화 영상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처럼 띄워 놓았고 사진도 걸어 놓았죠. 정말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한 거죠. 대상, 실체가 없고 호르몬만 있으니까 나중에는 너무 지치더라고요. 그런 상태가 돼서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를 썼어요."
-'체취'랑 '장밋빛 인생' 녹음 작업은 시이나 링고(椎名林檎)와 협업으로 잘 알려진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겸 뮤지션 사이토 네코(斎藤ネコ)와 하셨습니다.
"사실 처음엔 (김윤아 2집 '유리가면'(2004)에서 편곡 작업을 맡았던 '와호장룡' 영화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탄) 조르지 칼란드렐리 선생님하고 같이 다시 작업을 하면 어떨까 하고 궁리를 했는데 시간적으로 촉박했어요. 그러다 다행이 사이토 네코 선생님이 제 일정이 딱 맞아서 제가 일본으로 날아가 하루 만에 두 곡을 작업하고 왔죠. 꿈꾼 것처럼 녹음하고 왔고 진짜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진짜 프로페셔널 하시고 친절하세요."
-6번 트랙부터는 현실입니다. 6번 트랙 '평범한 남자', 7번 트랙 '유(U)'는 모두 듀엣곡입니다. 각각 백현진, 이승열 씨가 참여를 했어요.
"사랑에 대한 앨범을 만들자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따라온 부수적인 숙제가 듀엣 곡이었거든요. 사랑 이야기하기 좋은 방식이잖아요. 사실은 '해피엔딩'도 듀엣으로 여성 뮤지션하고 부르려고 했는데 타이밍적으로 안 맞았어요. '평범한 남자'는 알고 보면 곡 안에서 전조가 8번이 됩니다. 멜로디는 하나처럼 들리지만 계속 조가 바뀌는 노래거든요. 특이하게 수학적으로 만들어진 곡인데, 가사를 쓸 때부터 이 곡에는 어울리는 분은 백현진 씨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안 평범한 남자라서요. 하하. 사랑에 빠졌을 때 '나도 이렇게 평범한 놈이었어'라고 생각하기에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렸어요. 어어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서 솔로 작업까지, 제가 현진 씨 팬이기도 하거든요. 이번 앨범에 사심을 참 많이 이뤘어요. '유'는 이번 앨범에서 제일 대중적인 곡이라고 생각해요. 회사 분들도 아는 여자 사람 친구랑 불러야 되겠다며 대중적일 수 있다고 반응했죠. 그리고 이승열 선배가 절대 이런 노래 안 부를 것 같은 뮤지션이잖아요. 무게감 있고 어두운 노래만 하셔서 '이승열 선배가 딱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사의 정원'에 함께 해준 이하이 씨한테도 정말 감사해요. 제가 하이 씨 목소리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근데 하이 씨랑은 안면이 없었어요. 제가 그냥 소속사에 문의해서 '하이 씨랑 얘기할 수 있을까요?'라고 대뜸 물었죠. 하이 씨도 새로운 작업하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하이 씨가 해외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서 빠르게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정말 만족스러운 듀엣으로 완성됐어요. 듀엣곡 4곡 모두 진짜 마음에 들어요. 네 분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전 '부사의 정원'에서 부사(副詞·주로 용언을 수식하는 기능을 하는 품사)가 처음엔 사과의 품종인 부사인 줄 알았어요. 또 사과가 관능 이미지와도 연결이 돼 있잖아요.
"진짜 부산(副詞)만으로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리고 재밌잖아요. 퍼즐 같아서요. 말씀하신 사과의 의미도 중의적으로 두고 싶었어요. 제가 음원 사이트에 있는 노래 제목들은 다 한글로 썼는데 앨범 재킷엔 '종언', '체취' 등 한자 제목들은 한자로 썼어요. 근데 '부사의 정원'의 부사는 한자를 안 쓰고 한글로 썼는데 동시에 뜻이 존재하길 바란 측면도 있어요."
-'해피엔딩'도 멋진 트랙입니다. 많은 여성 동료분들에게 바치시는 곡이라고요.
"제 경험담을 토대로 했고요. 동화나 영화를 보면 해피엔딩이라고 나오잖아요. 근데 그 다음엔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저는 비혼도 좋다고 생각해요. 너무 좋은 삶의 방식이죠. 굳이 결혼하거나 결합하지 않아도 그냥 사랑하는 사람하고 같이 인생을 걸어가는 것도 좋은 방식이라고요. 결혼 관련 해서는 다 개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저는 결혼이라는 방식을 사랑의 마지막 장면으로 택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는 기혼자로서 그리고 아이가 있는 사람으로서의 지금 저 자신으로서의 지혜를 가지고 있거든요. 이거는 흔히 말하는 해피엔딩 이후에 생긴 지혜들이고, 노래에 묘사되는 고난들은 해피엔딩 이후의 고난들이죠. 해피엔딩 이후에 더 연마되고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 새로 탄생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솔직히 말해서 이전에는 몰랐던 저 자신에 대해 최근에 알게 된 것도 있어요."(그러면서 김윤아는 '관문산념'에서 '우리는 멈춰진 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화살표이며 따라서 여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라는 대목을 읽어줬다.)
-10번 트랙 '마지막 장면'은 진짜 앨범의 '마지막 장면'이 됐습니다. '관념산문'의 '검고 싶은 바닷속의 마법사'랑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가요?
"사랑의 마지막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인생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잖아요. 산문에도 죽음에 대한 얘기가 되게 많이 나오는데 인간이 만약에 영원히 스물 여섯살인 채로 계속 살아간다면 그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상실되는 것이 없잖아요. 사람이 상실되지 않고 산다면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 생겨요. 저는 상실이 없으면 철학 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앨범은 '진짜 어른들의 앨범이구나'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경험과 연륜이 쌓이지 않으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제 물리적으로 나이가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연애가 너무 분홍색이거나 캔디를 먹는 듯한 연령 말고, 조금 씁쓸한 술도 즐기고 이런 연령대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만들 때 저희끼리는 '진짜 독주 같은 앨범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또 끝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노래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특히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저도 생각했어요."
-윤아 씨는 원래도 작가였지만 그냥 작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합니다. '해피엔딩' 얘기랑 연장선상일 수 있는데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분으로서, 예술가의 날선 감각을 어떻게 유지하면서 이런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지 궁금해요.
"부끄럽습니다. 보통 결혼하면 현실적으로 살아야 되고 특히 아이가 생기면 더 그렇다고 생각하시잖아요. 만약에 제가 결혼을 해서 제 커리어에 지장을 받았다면 아마 안 했을 거예요. 처음부터 그냥 저는 저로 살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결심한 거고 예상대로 지금 그냥 저는 저인대로 살고 있어요."
-25~28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홀(SIGNATURE)에서 '관능소설'이라는 타이틀로 콘서트도 여십니다.
"작년 3월에 LG아트센터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의 '지젤'을 봤어요. 극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여기서 음악 공연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그런 무대에 제가 서게 됐다니 정말 기쁘고요. 극장이 또 너무 아름다우니까 공연도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들어요. 오신 분들이 충분히 다른 세상에 갔다 오실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당분간은 이번 앨범 홍보하고 크고 작은 무대들, 페스티벌들에 출연할 거예요. 연말엔 자우림 투어가 예정됐고요. 아마 자우림 새 앨범을 위한 음악도 슬슬 구상을 시작할 것 같고요. 작업할 때가 제일 즐거워요."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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