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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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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원일 'ACC 월드뮤직페스티벌' 예술감독은 여지껏 '이단아'로 통했지만, '혁신가'로 불리는 게 더 적확하다. 각종 기관과 페스티벌이 단체 론칭이나 축제 리브랜딩 등이 필요할 때 그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원 감독 음력(音歷)이 증명한다. 1980년대부터 국악을 비롯한 음악 변신의 선두엔 항상 원일 감독이 있었다. 사물놀이와 함께 국악의 대중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신국악운동'의 선두주자였던 국악 실내악 그룹 '슬기둥'의 젊은피였다.

1994년엔 '이날치' 장영규, 현재 배우와 화가 일을 겸업하는 백현진과 함께 독특한 음악세계로 유명한 '어어부 프로젝트'를 결성했다. 1997년 내놓은 괴작인 1집 '손익분기점' 이후 원일은 팀에서 빠졌다.

대신 앞서 1993년 결성한 창작타악그룹 '푸리' 활동에 매진했다. 푸리는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실험적인 음악을 모색했고, 해외 뮤지션들과 활발하게 협업했다. 2003년 원일이 결성한 연주 단체 '바람곶'은 국악 기반의 창작음악 터전이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 제100회 전국체전 개폐회식 총감독,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등도 맡아 음악계 전방위로 활약했다.

올해 2월 위촉돼 3년 간 'ACC 월드뮤직페스티벌'을 이끌게 된 그는 페스티벌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역동성을 길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는 30일부터 9월1일까지 광주 ACC 예술극장과 열린마당, 5·18 광장 등에서 펼쳐지는 '2024 ACC 월드뮤직페스티벌'(광월페) 라인업만 봐도 확인 가능하다.

소리로 풍경을 그리는 신비로운 사운드 스케이프, 전통악기의 즉흥 연주, 전자음악과 전통음악의 융합,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동서양 음악의 만남 등 국내·외 정상급 열여섯 개 팀이 출연한다.

▲김창완 밴드 ▲옥상달빛 ▲카디밴드 ▲이옥경의 즉흥음악 프로젝트 길로 ▲박다울X박우재 ▲일본의 요시 호리카와(Yosi Horikawa ▲이란·아제르바이잔의 전통악기 '카만체' 연주자이자 페르시안 즉흥음악의 명인인 카이한 칼호르(ayhan Kalhor)가 이끄는 카이한 칼호르 트리오 등이다.

-라인업이 정말 탄탄합니다.

"카이한 칼호르는 정말 어렵게 모셨어요. 트리오 멤버들 워낙 바쁘신 분들이라 스케줄이 다 달랐어요. 월드뮤직의 가장 높은 정점에 있는 예술가분들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가장 깊은 가장 순수한 옛날의 음악적인 걸 간직하고 있고 비르투오소적인 초절정 기교의 끝판왕들이시거든요. 상업화되지 않은 음악의 정점에 있는 톱들이에요. 이 분들이 다녀갔다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인정받을 수 있죠. 세계적인 맥락에서 글로벌한 페스티벌이 되려면 누가 왔다 갔냐도 중요하잖아요."

-이번에 라인업을 구성하시면서 가장 고민하셨던 건 무엇인가요?

"올해부터 3년을 위촉 받았어요. 우선 기존의 'ACC 월드뮤직페스티벌' 흐름을 살펴봤죠.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더라고요. 대중음악적인 줄기로 국내 관객을 생각한 라인업, 당연히 다양성을 중시한 월드뮤직 아티스트들의 줄기, 나머지 하나가 국악을 베이스로 하는 음악들이에요. 이를 다 수용하면서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강조하려고 했어요."

-일본 DJ 겸 사운드 디자이너 요시 호리카와(Yosi Horikawa)의 전야제(28~29일 광주 무등산 원효사)가 그 일환의 하나인가요?

"광주라는 지역의 정신·고유성과 이 공간의 지역성을 어떻게 표방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아시아문화전당 바로 옆 옛 전남도청은 복원 공사 중이라 아쉽게도 사용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원효사를 발견했죠. 제가 (지리산 천년고찰 화엄사에서 펼쳐지는) '화엄 음악제'도 했잖아요. 원효사도 정말 예쁘고 아담한 절이에요. 요시 호리카와가 그곳에서 '일파만파(一波萬波)'라는 타이틀로 공연하는데, 전야제의 일파가 페스티벌의 만파로 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요시 호리카와는 어떤 아티스트인가요?

"굉장히 명상적인 사운드 디자인을 해요.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죠. 목진요 설치 작가가 '일파만파'라는 설치물을 만들어서 같이 하기로 했어요. 원효사 대웅전 앞에서 호리카와가 연주를 하고 그 맞은 편에 설치물이 세워져요. 그 사이에서 관객들이 있게 되죠. 스피커가 사방을 감싸고요. 그리고 무등산이 보이는 끝내주는 경관이에요. 광주의 정기를 흘려 보내는 거죠. 진짜 특별한 체험이 될 거예요. 호리카와가 '일파만파'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봤어요. 광주의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직접 찾아보고요. 이번에 '특별한 사운드 세션을 준비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가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했는데 그 때 음악을 담당한 적이 있고, 공연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몽골의 쿠슉퉁 밴드(Khusungtun Band)도 눈길을 끕니다.

"예전부터 멤버들과 친분이 있었던 팀이에요. 원래 몽골 국가대합주단 멤버들이었는데, 쿠슉퉁이 잘 나가니까 이 팀에 매진하고 있더라고요. 프랑스 회사에서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어요. 월드뮤직 강국이 프랑스와 영국이거든요."

-그런데 한편에서는 '월드뮤직'이라는 용어에 대해 갑론을박이 나옵니다. 해당 국가 음악을 타자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요.

"맞아요. 사실 요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월드뮤직' 용어와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대한 고민이 있죠. 여러 차원에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제는 K-뮤직, K-컬처가 고유한 브랜딩이 돼서 '우리가 제일 힙해'라는 개념으로 전 세계 음악가들을 여기에 모이게 할 수 있거든요. 월드뮤직이라는 용어는 서구의 주요 선진국들이 세계 지배에 대한 야욕의 결과로서 나온 상대적 용어이고, 아시아가 각성을 하면서부터 비판을 받는 용어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당당하게 우리말을 써서 '새로운 브랜딩'을 할 필요가 있죠. 그래서 내년이 'ACC 월드뮤직페스티벌' 리브랜딩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엔 어떤 음악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고민하고 있고 페스티벌은 그런 고민의 그릇을 담는 것이니 브랜딩을 계속 고민하는 게 당연하죠. 그래서 올해 조감독님 등과 함께 잡은 개념은 '메타 월드뮤직 페스티벌'이에요. 메타적으로 생각을 해야 내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정할 수 있거든요."

-구체적인 고민 내용이 있다면요.

"광주니까 저항 음악의 줄기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특히 옛 전남도청은 현대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이잖아요. ACC가 생긴 이유도 그것 때문인데 지역의 고유성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죠. 한국이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야'라는 역사를 보여줄 수도 있고요. 아울러 한국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딥 컬처 K-뮤직'이라 할까요? 이 부분이 월드뮤직계에서 창의적인 인정을 받고 있거든요. 그런 지점도 탄탄하게 이어가고 싶어요. 이 페스티벌이 아니면 구축하기 힘든 한국, 월드뮤직, 컨템포러리 라인업을 짜고 싶어요. 개막·폐막식, 전야제도 고유하게 만들고 싶고요. 아티스트 파티도 들어가야 하는데, 광주 지역의 대표적인 클럽이나 카페에서 할 수 있겠죠. 그러면서 '로컬 커뮤니티'와 연계도 하고요. 사실 글로벌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한다는 건 좋은 기회거든요. 전 세계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도 한국 음악가들을 세계로 진출시킬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죠. 전 세계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책임자들과 만나 저희 페스티벌을 알릴 수 있고요."

-감독님은 세계 월드뮤직 페스티벌 진출의 선두주자이십니다. 2010년 9월 당시 이끌던 바람곶이 '비빙'(장영규), '토리앙상블'(허윤정)과 함께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월드뮤직박람회 '워멕스'(WOMEX·The World Music Expo) 오프닝 공연을 장식했잖아요.

"그쵸. 근데 사실 1990년대 푸리 때부터 세계 무대에 올랐죠. 그리고 푸리는 일본에서 매니지먼트를 했어요. 당시가 일본 버블 경제 막바지였는데, 현지 전국 투어를 다니면서 큰 경험을 했죠. 그런데 매니먼트사에서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저희를 일본 대표로 내보내려고 했어요. 저희끼리 회의를 해서 '그건 절대 아니다'라고 판단해서 수용하지 않았어요. 우리 음악을 하는 팀인데 말이 안 됐죠."

-요즘 상당수의 페스티벌이 즐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는 'ACC 월드뮤직페스티벌'은 그 흐름에서 비켜나 있어요.

"이옥경씨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즉흥연주가예요. 이번에 이옥경 씨와 함께 하는 멤버들도 내로라하는 이들이죠. 이옥경 씨가 이번에 워크숍도 해요. 유명 연주자들이 이 워크숍에 신청했어요. 또 요시 호리카와도 전문 프로듀서와 큐레이터 등을 위해 사운드 스케이프 워크숍을 하죠. 쿠슉퉁은 어린이들을 위해서 신기한 악기를 소개하고요. 내년에 '스튜디오 메타'를 이끈 강준혁 선생님이 극장장을 맡았던 '공간사랑'의 녹음자료를 들으며 그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가질 거예요. 기획자들의 기획자로 통하는 분이신데, 전통 음악의 부흥을 이끄신 분이거든요. 사실은 축제를 위해선 1년 내내 이것만 생각해야 해요. 공공과 공조를 해서 어디에도 없는 페스티벌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바쁜 스케줄 가운데도 감독님만의 영감을 쌓는 방법이 궁금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보면서 제일 많이 영향을 받았던 부분은 습관이거든요. '습관이 작품을 만든다'는 말을 믿어요. 하루키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면서 항상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저도 항상 새벽에 일어나서 저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 시간에 급하지 않게 계속 창작을 해나가고 있어요. 저만의 레퍼토리와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시간이죠. 그걸 안 하면 진짜 소모되죠."

-요즘 선생님에게 가장 큰 예술쪽 화두는 무엇인가요.

"테크놀로지요. 인공지능(AI)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요. 전통은 이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고민이 있죠. 작곡, 저작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식으로 변해 갈까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AI 등장으로 이미 평균율 음악들은 다 끝났거든요. 몇 가지 공식을 넣으면 K팝 같은 음악은 기가 막히게 나온다는 거죠. 하지만 국악은 그게 아직 안 되거든요. 전통은 고유한 것들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제가 올해 '여우락'에서 백남준 선생님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낸 '디오니소스 로봇: 리부트'를 공연했거든요. (2022년) 통영음악제 때부터 해온 구상인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 장치의 신)라는 개념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그런 기술과 라이브 연주가 함께 하는 것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 너무 기계처럼 정확하게 하는 게 매력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고가 유행하는지도 몰라요."

-그런 의미에서 즉흥 연주는 되게 중요해 보입니다. 이번에 즉흥 프로그램을 넣은 것도 어떻게 보면 AI에 대한 저항처럼 읽힙니다. 광주의 정신을 살려서요.

"다른 페스티벌에서 없는 카테고리가 앞으로 여기에 계속 있을 거 같아요."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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