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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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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소리를 만든다기보다 빚어낸다.
'사운드 장인' 윤상은 균질한 건 균질한 대로, 불균질한 건 불균질한 대로 들리는 음악이 좋은 소리라는 걸 모양 그대로 증거한다.
이런 그의 장기는 최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 빛 축제 '서울라이트 DDP 2024 가을'의 미디어아트 '시(時)의 시(詩)'에 복무하는 음악을 지을 때도 빛을 발한다.
윤상은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박제성 서울대 교수가 전체 길이 220m인 DDP 외벽에 빛과 소리로 표현한 이 작품에서 음악 총괄 감독을 맡았다.
8분짜리의 이 황홀한 영상에서 윤상의 음악은 김 화백의 작품이 어떻게 아름다운지를 규명한다. 치밀하면서 우아하고, 근사하면서 역동적인 그의 사운드는 김 화백의 우아한 점선면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온전한 세계를 그려낸다.
특히 작품의 살결을 관객이 상상으로나마 만져볼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붓질 같은 역을 한다. 김 화백과 박 교수로부터 받은 영감을 자신의 미적 감각으로 전환시켰음에도, 김 화백의 정신과 작품 사이의 언문일치를 담당하는 그 치열함과 겸손함. 우리가 대작인 '시의 시'를 보고 들으면서 숭고함이 드는 이유다.
팝 발라드로도 유명하지만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꾸준히 들려준 윤상의 세계는 이렇게 벽과 빛을 타고 또 확장한다.
'사운드 프론티어'로 불리는 윤상은 예술성과 실험성, 대중성에서 최정점을 성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 여섯 장의 정규앨범과 두 장의 EP, 다수의 싱글을 발표했다. 강수지, 엄정화, 아이유, 성시경, 보아, 러블리즈 등의 앨범에 작곡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특히 1996년 고(故) 신해철과 결성한 '노댄스', 2008년 카입(kayip·이우준), 슈퍼드라이브(superdrive·강준호)와 함께 만든 '모텟(mo:tet)', 감성 일렉트로닉 듀오 '캐스커' 프로듀서 이준오와 뭉친 프로젝트 듀오 '노이스(Nohys)'로 국내 일렉트로니카의 맥도 짚어왔다는 평을 듣는다.
K팝 아이돌 팬들 사이에선 청순 아련 미학을 달성한 그룹 '러블리즈' 프로듀서이자 대세 그룹 '라이즈' 멤버 앤톤의 음악 거장 부친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세대, 취향마다 그를 다양하게 인식하는 것처럼 '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최근 서울 신사동 그의 작업실 페이퍼 모드에서 만난 윤상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서울라이트 DDP 2024' 음악 총괄 감독을 맡으셨습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는데요. 일단 저를 믿고 맡겨주신 관계자분들한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여러 음악들의 프로듀싱을 했지만 220m짜리 건물에다가 프로젝션 되는 화면에 음악을 만드는 건 기회가 없었죠. 개인적으로 제가 욕심 부린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박제성 교수님과 김환기 화백님의 작품을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게 너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감독님은 이번 프로젝트의 적임자입니다. 미대(도예학과) 출신이시고 국내 미디 음악 1세대이시기도 하니까 감독님으로 자연스레 수렴된 듯합니다.
"일반 대중의 70~80%는 저를 그냥 발라드 가수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공식적으로 보면 '순수 예술'의 영역에 맞대어 있는 작품을 할 때 '왜 저 가수가 이런 작업을 할까'라는 시선이 있지 않을까 자격지심 같은 게 좀 있었죠."
-순수 예술 영역 안에서도 멋진 작업을 보여주셨는데요. 8분짜리 작업을 세 달 가량 하셨다고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음악은 부재료일 수밖에 없고, 미디어 아트가 가장 주된 재료잖아요. 주인공은 화면이라고 생각하고요. 화면에 100%에 맞는 소리를 디자인하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일반적인 노래곡을 만들 때와 접근이 달랐어요. 멈춰져 있는 그림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데다가 또 세 가지 챕터로 이야기가 나눠져 있는데요. 소리로 그 빛과 색깔을 설명하는 느낌, 즉 제가 프레젠터가 된 기분으로 감정, 느낌을 소리로 만들어갔죠."
-이번 음악엔 앰비언트적인 요소도 있고 공간감도 포함됐죠. 야외에서 듣지만 사운드 설계가 치밀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저도 얼마만큼 소리가 디테일하게 들릴지 궁금했어요. 큰 공연장에 가서도 사운드 때문에 실망하는 경우가 왕왕 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스태프들이 한마음으로 작업을 했다는 게 느껴졌어요. 사운드 잡는 건 서울음향 분들께서 고민을 해 주셨고요. 저는 '로직 프로(Logic Pro) 11'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있어요. 최근에 음악을 만드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서너 가지가 있거든요. 로직 프로, 프로툴스, 큐베이스, FL스튜디오… 어떤 게 더 좋다를 떠나서 화면을 띄워 놓고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옵션들이 굉장히 잘 갖춰져 있어요. 예전엔 에러가 디폴트였는데 많이 깔끔해졌고 큰 용량의 비디오 파일을 열어놓고 작업할 때도 편안하게 할 수 있어요. 컴퓨터는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발전해서 편의성에서 너무 좋아졌죠. 그런데 여기 스튜디오에서는 작업한 디테일이 선명하게 잘 들리는데 야외 무대에서 그 디테일이 들릴 거라고 기대 안 했거든요. 근데 이번에 그 디테일들이 너무 잘 들리는 거예요."
-감독님처럼 음악뿐 아니라 장비에 대한 이해가 있는 분이라 음향 기술 담당자분들과 더 소통이 원활했을 듯합니다.
"그 부분 때문에 유학(미국 버클리음대 뮤직신서시스학과·뉴욕대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과 졸업)도 갔다 오고 경험이 쌓였죠. 이번에 전해드린 트랙들은 주파수상으로 잘 정리를 하려고 했어요. 나이 들면서 작곡도 작곡이지만 오히려 사운드 부분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장비가 계속 나오니까 공부도 계속 하셔야 되는 거죠?
"갑자기 시스템이 다 바뀌는 게 아니라 새로 나와도 이전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거든요. 완전히 새로운 공부라기보다, 예전에 어땠는가를 기억하니까 '지금 이런 게 가능하구나'는 느끼는 재미가 있죠. 지금 음악하는 친구들이 스마트폰에서 할 수 있는 기능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20년 전만 하더라도 정말 억대의 고가 음향 장비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었거든요.이걸 손 안에서 가능해진 시대를 경험하면서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감독님은 여전히 현역으로 다양한 장르에 대한 이해가 있는 드문 분입니다. 이번 DDP 프로젝트도 그렇지만 2018년 남한 예술단 평양공연 음악감독을 맡으셨던 것도 이해와 권위를 동시에 갖고 계셔서 가능했던 거죠.
"당시 최진희 선생님, 조용필 형, 알리 그리고 레드벨벳까지 다 편안하게 소통하기 위한 모더레이터가 있어야 했는데, 제가 이분들을 음악적인 불편함 없이 스태프들한테 연결해서 얘기해 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해요."
-이번 '시(時)의 시(詩)' 작업에서도 일종의 모더레이터 역을 하셨죠. 순수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걸 감독님 덕분에 대중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갔다고 할까요?
"그런 반응이 고마웠어요. 제가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미국에서 학부부터 다시 공부를 했던 것도 뮤직 테크놀로지와 관계된 부분 전공이었고, 그 부분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껴요. 'DDP 서울라이트' 음악 감독을 맡는데, 제 역사가 약간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감사한 일이죠. 제가 원했던 대로 나이를 먹고 있는 거니까요."
-이번 'DDP 서울라이트'도 그렇고 최근의 여러 비엔날레도 그렇고 대형 행사에 규모감 있는 음악들 사용이 잦아지는 거 같아요.
"미디어 파사드 같은 작품들이 많아지는 건 대환영인데요. 사실 대중들이 편안하게 소비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가장 공감하기 쉬운 형태의 어떤 포맷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에 대해 기업이나, 재단이 많이 만들어 주신다면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더 반가운 마음이 들 거 같아요. 그리고 특별 행사만을 떠나서 작은 규모라도 영상, 미디어 아트와 음악이 함께하는 그런 시도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지금 작업실 이름 '페이퍼 모드'는 고등학교 시절 만들었던 밴드 이름과 같습니다.
"저는 다른 이름을 쓰고 싶었는데 저희 김진석 대표가 굳이 그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했어요. 예전엔 패션 쪽에서 모드라는 표현을 많이 썼어요. 음악 쪽에선 음계 쪽으로 스케일을 얘기할 수도 있는 거고요. 페이퍼는 말 그대로 악보 잖아요. 처음엔 악보의 유행을 얘기하는 팀이 되자라는 뜻에서 지었어요. 저는 물론 악보가 없는 음악을 지향하고 있지만 어떤 음악의 유행이라는 뜻도 될 수 있고 해서 계속 사용하자가 된 거예요."
-고등학교 때 페이퍼 모드로 만든 데모 테이프에서 명곡이 두 곡이 나왔어요. 김현식의 '여름밤의 꿈',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입니다.
"그 테이프엔 네다섯곡이 들어 있었어요. 데모 테이프를 김현식 선배님께 드릴 때 저희 밴드가 해산한 이후였어요. 드러머랑 보컬리스트가 군대를 가버려서, 저희가 연습했던 곡들을 모았죠. 사실은 한 곡이 더 있었어요. 황치훈 씨 '가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도 그 데모 테이프에 들어있었죠."
-이처럼 초창기 작업도 좋지만 캐스커 이준오 씨와 함께 하시는 프로젝트 팀 노이스의 음악도 멋집니다. 노이스 이전엔 신해철 씨와 함께 하신 전자음악 프로젝트 팀 노댄스, 슈퍼드라이브·카입씨와 함께 하신 일렉트로니카 그룹 모텟이 있었죠. 두 팀 모두 앞서가는 작업을 했습니다.
''노 댄스'는 해철 씨와 제가 뜻이 잘 맞았죠. 영리적으로만 본다면 제작사가 좋아할 작업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선주문도 많았지만, 반품도 많았거든요. 당시 저는 프리랜서였고 해철 씨는 소속돼 있던 회사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해철씨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친구였기 때문이에요. 회사도 그걸 충분히 이해했었고요. 모텟도 많이 앞서가긴 했던 것 같아요. 슈퍼드라이브·카입 씨는 순수 음악을 대하듯이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 친구들을 조금 더 표면 위로 올려놔야 앞으로 이 친구들이 작업할 기회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라는 게 선배로서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자기들은 이름이 알려지는 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였어요. 당시 카입 씨는 영국 런던에 있고, 슈퍼드라이브 씨는 베를린에 있고, 저는 뉴저지에 있었어요. 데모를 주고 받고 소통할 만큼 인터넷이 발달해 있어서 '기념 사진 한 장은 찍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의미로 앨범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노이스의 첫 정규 앨범 '에식(ethic)'(2023)이 나왔습니다. 캐스커 이준오 씨와 참 합이 잘 맞아요.
"노이스도 주도권을 그 친구가 이끌어주지 않았으면 완성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시작은 하는데 즉흥적인 면이 있고 준오 씨 같은 경우엔 하나하나 다 타임라인을 만들어서 계획을 세워놓고 거기에 맞춰서 일을 끝내야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니까 저하고 많이 부딪히는데 또 거기서 나오는 시너지가 있으니까 상생하는 거죠. 저희가 작업을 한창 할 때는 코로나 시기여서 공연 날도 말씀드렸지만 너무 어두웠어요.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롭게 한 번 더 작업해서 노이스 이름으로 음반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자 음악에서 좋은 사운드란 무엇일까요?
"어떤 건 공간감이 주된 표현 목적일 수도 있고, 어떤 거는 글리치가 목적일 수도 있죠. 의도적으로 소리가 깨지게 만들고, 잘라서 이어 붙이기도 하죠. 좋은 소리에 어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본능적으로 파도 소리라든지, 빗소리라든지 백색 소음에 인간이 편안함을 느낀다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전자음악을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연출이 됐다 하더라도 본능을 거스르지 않는 그런 소리들을 찾아가게 되는 게 아닐까 해요."
-우문현답이네요. 감독님은 대한민국 최고의 베이시스트이시기도 하세요.
"저는 절대 아니에요. 국내에 훌륭한 연주자들이 많고요. 최근엔 (밴드 '캐치더영'의) 산이라는 친구를 보고 놀랐어요. (윤상의 아들 앤톤(이찬영)이 멤버로 포함돼 있는 그룹) '라이즈'의 '붐 붐 베이스' 챌린지가 많잖아요. 그 중에서도 산이 씨의 커버를 보고 놀랐어요. 국내에서도 쉽게 찾지 못하는 연주자에요. '자기 베리에이션을 이렇게 하는 괴물 같은 베이시스트가 다 있지'라고 생각하며 깜짝 놀랐어요. 제겐 세월에서 오는 바이브가 있을 수 있지만, 테크닉적으로 저는 이런 친구들을 못 따라가요."
-감독님은 일도 바쁘실 텐데 후배들 영상도 다 챙겨보시네요.
"다 아들 덕이죠. 아들 덕분에 제가 챌린지도 하게 됐고 또 그러다 보니까 누가 챌린지를 했나 찾게 된 거예요. 우리 페퍼톤스 이장원 씨도 했더라고요. 각자의 개성이 있어서 너무 반가웠어요. 원곡 베이스는 더티룹스 헨릭 린더가 연주했잖아요. SM엔터테인먼트 A&R이 열일을 하는 것 같아요."
-앤톤 씨도 활동하는 거 보면 되게 멋있어요. 곡 만드는 능력은 또 아버님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최근 재조명된 러블리즈 음악도 작업하시고, 무엇보다 감독님의 스펙트럼은 정말 넓어요.
"요즘에 아이돌들 보면 진짜 세대가 다 바뀌었구나 생각이 들어요. 저희 아들도 아이돌을 하고 있지만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이게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 물론 명암이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저는 너무 놀랍고 좋아요. 스펙트럼이 넓다고 하시는데 음악 말고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까 그냥 살아남기 위해서 한 거죠."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셨지만 그럼에도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거나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영역이 있을까요?
"장르에 대한 호기심은 어느 정도 채워진 것 같은데요. 전문가라면 제가 제시할 수 있는 미래는 뭔가 그것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다른 친구들하고도 작업을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윤상의 정규 앨범도 고민을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6, 7년 전에 정규 앨범을 만들어보려고 하다가 시행착오를 느껴서 다 스톱을 시켰던 적이 있거든요. 어떤 형식으로 표현을 할까 고민 하다가 당시 제가 밴드 음악 세트에 꽂혀서 7집 전체를 밴드를 꾸려서 자체적으로 연습을 마친 후에 그대로 녹음을 해서 발표를 하자고 했는데 준비가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접고 다시 지금은 천직이라고 할 수 있는 시퀀싱으로 돌아왔어요.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퀀싱은 어떤 색깔일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사운드 장인' 윤상은 균질한 건 균질한 대로, 불균질한 건 불균질한 대로 들리는 음악이 좋은 소리라는 걸 모양 그대로 증거한다.
이런 그의 장기는 최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 빛 축제 '서울라이트 DDP 2024 가을'의 미디어아트 '시(時)의 시(詩)'에 복무하는 음악을 지을 때도 빛을 발한다.
윤상은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박제성 서울대 교수가 전체 길이 220m인 DDP 외벽에 빛과 소리로 표현한 이 작품에서 음악 총괄 감독을 맡았다.
8분짜리의 이 황홀한 영상에서 윤상의 음악은 김 화백의 작품이 어떻게 아름다운지를 규명한다. 치밀하면서 우아하고, 근사하면서 역동적인 그의 사운드는 김 화백의 우아한 점선면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온전한 세계를 그려낸다.
특히 작품의 살결을 관객이 상상으로나마 만져볼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붓질 같은 역을 한다. 김 화백과 박 교수로부터 받은 영감을 자신의 미적 감각으로 전환시켰음에도, 김 화백의 정신과 작품 사이의 언문일치를 담당하는 그 치열함과 겸손함. 우리가 대작인 '시의 시'를 보고 들으면서 숭고함이 드는 이유다.
팝 발라드로도 유명하지만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꾸준히 들려준 윤상의 세계는 이렇게 벽과 빛을 타고 또 확장한다.
'사운드 프론티어'로 불리는 윤상은 예술성과 실험성, 대중성에서 최정점을 성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 여섯 장의 정규앨범과 두 장의 EP, 다수의 싱글을 발표했다. 강수지, 엄정화, 아이유, 성시경, 보아, 러블리즈 등의 앨범에 작곡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특히 1996년 고(故) 신해철과 결성한 '노댄스', 2008년 카입(kayip·이우준), 슈퍼드라이브(superdrive·강준호)와 함께 만든 '모텟(mo:tet)', 감성 일렉트로닉 듀오 '캐스커' 프로듀서 이준오와 뭉친 프로젝트 듀오 '노이스(Nohys)'로 국내 일렉트로니카의 맥도 짚어왔다는 평을 듣는다.
K팝 아이돌 팬들 사이에선 청순 아련 미학을 달성한 그룹 '러블리즈' 프로듀서이자 대세 그룹 '라이즈' 멤버 앤톤의 음악 거장 부친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세대, 취향마다 그를 다양하게 인식하는 것처럼 '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최근 서울 신사동 그의 작업실 페이퍼 모드에서 만난 윤상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서울라이트 DDP 2024' 음악 총괄 감독을 맡으셨습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는데요. 일단 저를 믿고 맡겨주신 관계자분들한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여러 음악들의 프로듀싱을 했지만 220m짜리 건물에다가 프로젝션 되는 화면에 음악을 만드는 건 기회가 없었죠. 개인적으로 제가 욕심 부린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박제성 교수님과 김환기 화백님의 작품을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게 너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감독님은 이번 프로젝트의 적임자입니다. 미대(도예학과) 출신이시고 국내 미디 음악 1세대이시기도 하니까 감독님으로 자연스레 수렴된 듯합니다.
"일반 대중의 70~80%는 저를 그냥 발라드 가수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공식적으로 보면 '순수 예술'의 영역에 맞대어 있는 작품을 할 때 '왜 저 가수가 이런 작업을 할까'라는 시선이 있지 않을까 자격지심 같은 게 좀 있었죠."
-순수 예술 영역 안에서도 멋진 작업을 보여주셨는데요. 8분짜리 작업을 세 달 가량 하셨다고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음악은 부재료일 수밖에 없고, 미디어 아트가 가장 주된 재료잖아요. 주인공은 화면이라고 생각하고요. 화면에 100%에 맞는 소리를 디자인하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일반적인 노래곡을 만들 때와 접근이 달랐어요. 멈춰져 있는 그림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데다가 또 세 가지 챕터로 이야기가 나눠져 있는데요. 소리로 그 빛과 색깔을 설명하는 느낌, 즉 제가 프레젠터가 된 기분으로 감정, 느낌을 소리로 만들어갔죠."
-이번 음악엔 앰비언트적인 요소도 있고 공간감도 포함됐죠. 야외에서 듣지만 사운드 설계가 치밀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저도 얼마만큼 소리가 디테일하게 들릴지 궁금했어요. 큰 공연장에 가서도 사운드 때문에 실망하는 경우가 왕왕 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스태프들이 한마음으로 작업을 했다는 게 느껴졌어요. 사운드 잡는 건 서울음향 분들께서 고민을 해 주셨고요. 저는 '로직 프로(Logic Pro) 11'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있어요. 최근에 음악을 만드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서너 가지가 있거든요. 로직 프로, 프로툴스, 큐베이스, FL스튜디오… 어떤 게 더 좋다를 떠나서 화면을 띄워 놓고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옵션들이 굉장히 잘 갖춰져 있어요. 예전엔 에러가 디폴트였는데 많이 깔끔해졌고 큰 용량의 비디오 파일을 열어놓고 작업할 때도 편안하게 할 수 있어요. 컴퓨터는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발전해서 편의성에서 너무 좋아졌죠. 그런데 여기 스튜디오에서는 작업한 디테일이 선명하게 잘 들리는데 야외 무대에서 그 디테일이 들릴 거라고 기대 안 했거든요. 근데 이번에 그 디테일들이 너무 잘 들리는 거예요."
-감독님처럼 음악뿐 아니라 장비에 대한 이해가 있는 분이라 음향 기술 담당자분들과 더 소통이 원활했을 듯합니다.
"그 부분 때문에 유학(미국 버클리음대 뮤직신서시스학과·뉴욕대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과 졸업)도 갔다 오고 경험이 쌓였죠. 이번에 전해드린 트랙들은 주파수상으로 잘 정리를 하려고 했어요. 나이 들면서 작곡도 작곡이지만 오히려 사운드 부분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장비가 계속 나오니까 공부도 계속 하셔야 되는 거죠?
"갑자기 시스템이 다 바뀌는 게 아니라 새로 나와도 이전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거든요. 완전히 새로운 공부라기보다, 예전에 어땠는가를 기억하니까 '지금 이런 게 가능하구나'는 느끼는 재미가 있죠. 지금 음악하는 친구들이 스마트폰에서 할 수 있는 기능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20년 전만 하더라도 정말 억대의 고가 음향 장비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었거든요.이걸 손 안에서 가능해진 시대를 경험하면서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감독님은 여전히 현역으로 다양한 장르에 대한 이해가 있는 드문 분입니다. 이번 DDP 프로젝트도 그렇지만 2018년 남한 예술단 평양공연 음악감독을 맡으셨던 것도 이해와 권위를 동시에 갖고 계셔서 가능했던 거죠.
"당시 최진희 선생님, 조용필 형, 알리 그리고 레드벨벳까지 다 편안하게 소통하기 위한 모더레이터가 있어야 했는데, 제가 이분들을 음악적인 불편함 없이 스태프들한테 연결해서 얘기해 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해요."
-이번 '시(時)의 시(詩)' 작업에서도 일종의 모더레이터 역을 하셨죠. 순수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걸 감독님 덕분에 대중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갔다고 할까요?
"그런 반응이 고마웠어요. 제가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미국에서 학부부터 다시 공부를 했던 것도 뮤직 테크놀로지와 관계된 부분 전공이었고, 그 부분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껴요. 'DDP 서울라이트' 음악 감독을 맡는데, 제 역사가 약간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감사한 일이죠. 제가 원했던 대로 나이를 먹고 있는 거니까요."
-이번 'DDP 서울라이트'도 그렇고 최근의 여러 비엔날레도 그렇고 대형 행사에 규모감 있는 음악들 사용이 잦아지는 거 같아요.
"미디어 파사드 같은 작품들이 많아지는 건 대환영인데요. 사실 대중들이 편안하게 소비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가장 공감하기 쉬운 형태의 어떤 포맷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에 대해 기업이나, 재단이 많이 만들어 주신다면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더 반가운 마음이 들 거 같아요. 그리고 특별 행사만을 떠나서 작은 규모라도 영상, 미디어 아트와 음악이 함께하는 그런 시도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지금 작업실 이름 '페이퍼 모드'는 고등학교 시절 만들었던 밴드 이름과 같습니다.
"저는 다른 이름을 쓰고 싶었는데 저희 김진석 대표가 굳이 그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했어요. 예전엔 패션 쪽에서 모드라는 표현을 많이 썼어요. 음악 쪽에선 음계 쪽으로 스케일을 얘기할 수도 있는 거고요. 페이퍼는 말 그대로 악보 잖아요. 처음엔 악보의 유행을 얘기하는 팀이 되자라는 뜻에서 지었어요. 저는 물론 악보가 없는 음악을 지향하고 있지만 어떤 음악의 유행이라는 뜻도 될 수 있고 해서 계속 사용하자가 된 거예요."
-고등학교 때 페이퍼 모드로 만든 데모 테이프에서 명곡이 두 곡이 나왔어요. 김현식의 '여름밤의 꿈',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입니다.
"그 테이프엔 네다섯곡이 들어 있었어요. 데모 테이프를 김현식 선배님께 드릴 때 저희 밴드가 해산한 이후였어요. 드러머랑 보컬리스트가 군대를 가버려서, 저희가 연습했던 곡들을 모았죠. 사실은 한 곡이 더 있었어요. 황치훈 씨 '가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도 그 데모 테이프에 들어있었죠."
-이처럼 초창기 작업도 좋지만 캐스커 이준오 씨와 함께 하시는 프로젝트 팀 노이스의 음악도 멋집니다. 노이스 이전엔 신해철 씨와 함께 하신 전자음악 프로젝트 팀 노댄스, 슈퍼드라이브·카입씨와 함께 하신 일렉트로니카 그룹 모텟이 있었죠. 두 팀 모두 앞서가는 작업을 했습니다.
''노 댄스'는 해철 씨와 제가 뜻이 잘 맞았죠. 영리적으로만 본다면 제작사가 좋아할 작업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선주문도 많았지만, 반품도 많았거든요. 당시 저는 프리랜서였고 해철 씨는 소속돼 있던 회사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해철씨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친구였기 때문이에요. 회사도 그걸 충분히 이해했었고요. 모텟도 많이 앞서가긴 했던 것 같아요. 슈퍼드라이브·카입 씨는 순수 음악을 대하듯이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 친구들을 조금 더 표면 위로 올려놔야 앞으로 이 친구들이 작업할 기회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라는 게 선배로서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자기들은 이름이 알려지는 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였어요. 당시 카입 씨는 영국 런던에 있고, 슈퍼드라이브 씨는 베를린에 있고, 저는 뉴저지에 있었어요. 데모를 주고 받고 소통할 만큼 인터넷이 발달해 있어서 '기념 사진 한 장은 찍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의미로 앨범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노이스의 첫 정규 앨범 '에식(ethic)'(2023)이 나왔습니다. 캐스커 이준오 씨와 참 합이 잘 맞아요.
"노이스도 주도권을 그 친구가 이끌어주지 않았으면 완성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시작은 하는데 즉흥적인 면이 있고 준오 씨 같은 경우엔 하나하나 다 타임라인을 만들어서 계획을 세워놓고 거기에 맞춰서 일을 끝내야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니까 저하고 많이 부딪히는데 또 거기서 나오는 시너지가 있으니까 상생하는 거죠. 저희가 작업을 한창 할 때는 코로나 시기여서 공연 날도 말씀드렸지만 너무 어두웠어요.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롭게 한 번 더 작업해서 노이스 이름으로 음반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자 음악에서 좋은 사운드란 무엇일까요?
"어떤 건 공간감이 주된 표현 목적일 수도 있고, 어떤 거는 글리치가 목적일 수도 있죠. 의도적으로 소리가 깨지게 만들고, 잘라서 이어 붙이기도 하죠. 좋은 소리에 어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본능적으로 파도 소리라든지, 빗소리라든지 백색 소음에 인간이 편안함을 느낀다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전자음악을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연출이 됐다 하더라도 본능을 거스르지 않는 그런 소리들을 찾아가게 되는 게 아닐까 해요."
-우문현답이네요. 감독님은 대한민국 최고의 베이시스트이시기도 하세요.
"저는 절대 아니에요. 국내에 훌륭한 연주자들이 많고요. 최근엔 (밴드 '캐치더영'의) 산이라는 친구를 보고 놀랐어요. (윤상의 아들 앤톤(이찬영)이 멤버로 포함돼 있는 그룹) '라이즈'의 '붐 붐 베이스' 챌린지가 많잖아요. 그 중에서도 산이 씨의 커버를 보고 놀랐어요. 국내에서도 쉽게 찾지 못하는 연주자에요. '자기 베리에이션을 이렇게 하는 괴물 같은 베이시스트가 다 있지'라고 생각하며 깜짝 놀랐어요. 제겐 세월에서 오는 바이브가 있을 수 있지만, 테크닉적으로 저는 이런 친구들을 못 따라가요."
-감독님은 일도 바쁘실 텐데 후배들 영상도 다 챙겨보시네요.
"다 아들 덕이죠. 아들 덕분에 제가 챌린지도 하게 됐고 또 그러다 보니까 누가 챌린지를 했나 찾게 된 거예요. 우리 페퍼톤스 이장원 씨도 했더라고요. 각자의 개성이 있어서 너무 반가웠어요. 원곡 베이스는 더티룹스 헨릭 린더가 연주했잖아요. SM엔터테인먼트 A&R이 열일을 하는 것 같아요."
-앤톤 씨도 활동하는 거 보면 되게 멋있어요. 곡 만드는 능력은 또 아버님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최근 재조명된 러블리즈 음악도 작업하시고, 무엇보다 감독님의 스펙트럼은 정말 넓어요.
"요즘에 아이돌들 보면 진짜 세대가 다 바뀌었구나 생각이 들어요. 저희 아들도 아이돌을 하고 있지만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이게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 물론 명암이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저는 너무 놀랍고 좋아요. 스펙트럼이 넓다고 하시는데 음악 말고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까 그냥 살아남기 위해서 한 거죠."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셨지만 그럼에도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거나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영역이 있을까요?
"장르에 대한 호기심은 어느 정도 채워진 것 같은데요. 전문가라면 제가 제시할 수 있는 미래는 뭔가 그것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다른 친구들하고도 작업을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윤상의 정규 앨범도 고민을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6, 7년 전에 정규 앨범을 만들어보려고 하다가 시행착오를 느껴서 다 스톱을 시켰던 적이 있거든요. 어떤 형식으로 표현을 할까 고민 하다가 당시 제가 밴드 음악 세트에 꽂혀서 7집 전체를 밴드를 꾸려서 자체적으로 연습을 마친 후에 그대로 녹음을 해서 발표를 하자고 했는데 준비가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접고 다시 지금은 천직이라고 할 수 있는 시퀀싱으로 돌아왔어요.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퀀싱은 어떤 색깔일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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