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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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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결심' 아닌 '진심'이다.
밴드 '더 고도(The Godot)'는 무엇을 작정하기보다 마음의 문(門)을 여는 게 중요한 팀이다. 돈이 아닌 친구라서 같이 뭉쳤고, 인위적으로 억지를 부리지 않는 대신 자연스럽게 흐름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팀명도 수준이나 정도가 높은 상태를 가리키는 고도(高度)가 아닌 '노벨 문학상' 작가인 아일랜드 출신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따왔다. 고독과 소외감을 표현한 부조리극의 대표작인 이 작품을 더 고도의 리더인 보컬 최상민이 고독해서 읽고 있던 참이라 지었다.
네오사이키델릭·크라우트비트 등 2010년대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한 밴드 '포니'의 전(前) 멤버인 최상민·기타 소제소(sojeso·송광호)를 주축으로 베이스 류청, 드럼 이찬동이 합류한 더 고도는 그렇게 상황에 맞춰 흘러가는 이들이다. 최상민·류청은 본업을 병행해 오히려 더 순수하게 음악에 접근하고, 음악이 본업인 소제소·이찬동은 더 고도 음악에 더 순정을 바친다.
작년 겨울부터 다양한 무대에 서며 합을 맞춰온 이들은 포스트 펑크, 슈게이징, 로파이 등이 섞인 음악을 특징으로 하지만 딱히 자신들의 장르를 규정하지 않는다. 최근 발매한 첫 싱글 '웨이스팅 어웨이(Wasting Away)'는 포스트 펑크 장르인데 사이키델릭한 공간감이 일품이다. 다음은 최근 서울 홍대 앞에서 만나 네 멤버들과 나눈 일문일답.
-밴드는 어떻게 결성이 된 겁니까?
"작년 연말에 클럽 생기 대표님이 저랑 광호에게 다시 밴드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어요. 생기 스튜디오 5주년 기념 공연을 하는데 라인업을 채워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청이한테도 '베이스 칠래?'라고 물어봤죠. 이후 한 달 동안 열 곡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합을 맞춰봤는데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공연도 다 신곡으로 했어요. 그게 동기가 돼서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최상민)
-어느 날 상민 씨에게 연락이 왔어요. '포니' 하던 친구들이랑 같이 새 밴드를 할 건데 '같이 하면 어떻겠냐'고요. 음악을 떠나 친구니까 좋다고 했어요. 전 밴드를 함께 하는 기준이 일단 친구여야 돼요. 친구가 아닌 채로 음악을 하게 되면 음악이 안 되더라고요. 오래 손을 놓았던 베이스를 다시 잡게 됐죠."(류청)
-팀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제가 고독해서 사무엘 베케트의 책을 한창 읽고 있을 때였어요. 신경을 써서 뭘 만들려고 하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를 따왔고 그 앞에 '더(The)'를 붙인 거예요."(최상민)
-'웨이스팅 어웨이'는 추후에 발매한 앨범의 선공개곡 같은 건가요?
"싱글 녹음을 한 지는 꽤 됐는데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까 발매가 늦어졌어요. 지금 EP를 준비 중이에요. 쌓인 곡들이 많아져서 녹음도 많이 끝냈어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내고 싶어요. 만든 노래들 장르가 다양해요. 포니 활동 후반부에 난해한 방향으로 흘러간 노래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인생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번에도 녹음할 때 모호하거나 난해한 노래들도 많았는데 '제일 스트레이트한 노래를 첫 싱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최상민)
-그럼 작년 말 이전까지 밴드를 하실 생각은 없었던 건가요?
"전 계속 했어요. 음악도 계속 만들었고요. 그런데 다시 하기 위한 마음을 먹기가 힘들더라고요. 이전에 무대 공포증이 찾아왔었거든요. 그래서 머리카락을 많이 길렀어요. 록 공연은 즐거워야 하는데 어느 순간 저한테 '안 맞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 위에 서 있는 게 되게 불편했어요. 그렇게 공연을 점점 줄이고 하다 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죠. 최근 공연을 몇 번 했는데 다시 하니까 괜찮더라고요."(최상민)
-광호 씨는 방탄소년단(BTS) RM(김남준) 씨의 '헤븐(Heaven)' 프로듀싱을 맡는 등 K팝 업계와 광고음악계에서도 잘 나가시는 분인데, 밴드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밴드는 사람들이랑 같이 한다는 재미가 제일 커요. 지금은 돈 마음, 물직적인 여유가 이전보다 있는 상태에서 하니까 더 좋아요. 포니 할 때는 말도 안 될 만큼 안 좋은 악기들 쓰고 그랬었거든요."(소제소)
-포니는 어떻게 결성됐던 밴드인가요?
"처음엔 제가 솔로로 공연을 했는데 이규영 형(현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회장)이 '우리 레이블에서 같이 음악할 생각 없냐'고 제안하셨고 밴드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라고 해서 포니가 시작됐어요. 음악을 늦게 시작했어요. 첫 앨범이 나왔을 때가 스물 아홉 살이었거든요. 연주도 잘할 줄 몰랐지만, 지향하는 음악은 있었는데 포스트 펑크로 나온 거죠. 음악이라는 게 진짜 참을 수가 없나 봐요. 광호는 원래 다른 밴드에 있었는데 유난히 혼자 남달랐어요. 감성도 특별했고요."(최상민)
-천동 씨는 포니 활동 막바지에 세션을 같이 하셨어요.
"원래 상민 형이나 광호 형의 감성과 음악이 너무 멋있어서 전부터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같이 하자고 하셨을 때 당연히 고민이 없었죠."(이찬동)
-광호 씨는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상업 음악 영역에서 인정을 받고 계신데 그런 상황에서 밴드 활동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라디오 헤드를 비롯해 우울한 분위기를 밴드를 좋아했고요. 상업음악과 밴드활동은 확실히 장단점이 있어요. 일단 돈은 딴 데서 버니까 밴드 음악에서는 타협을 안 해도 되는 부분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상민 씨도 본업이 있죠.
"음악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이제 먹히는 거 좀 해봐야 될 텐데' 같은 강박 관념을 가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상대적으로 안 해도 되니까 이 부분이 장점이죠. 근데 괴리감이 있어요. 창작적인 생활을 하면서 억압적인 라이프 스타일 쪽에 갇혀야 될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 데서 오는 갈등이 있는데 그런 갈등은 또 음악으로 풀어요. 카프카가 낮엔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일했고 저녁에는 세상을 저주하는 소설을 쓰면서 기쁨을 찾았다고 하는데 약간 그런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최상민)
-찬동 씨는 드럼을 어떻게 시작하신 겁니까?
"중학교 때 엑스재팬 좋아하는 기타 치는 친구가 '밴드 하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드럼이 너무 재밌어서 학원까지 가서 배웠는데 선생님이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너무 좋아하셔서 이 밴드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받기도 했죠. 이후 음악으로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이찬동)
-류청 씨도 다른 일을 병행하십니다.
"프리랜서 생활이 오래되다 보니까 터득한 게 있어요. 일할 때엔 일에만 매달려 있지만 주기적으로 제 시간이 찾아오거든요. 그럴 때 음악에 몰두를 하면 저절로 삶이 순환 되더라고요.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해봤던 적이 있어요. 지금은 돈을 벌어야 된다라는 그 강박관념에 음악이 안 들어가 있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류청)
-음악이 주가랑 연관되는 등 상업적인 시대에 비상업적인 태도와 정신을 유지하는 게 너무 보기 좋아요.
"포니 할 때 항상 저희에게 따라 다니는 꼬리표가 있었어요. '꽃미남 밴드'요. 근데 그게 너무 싫어서 광호랑 둘이 2015년도에 완전히 비상업적인 앨범('아이 돈트 원트 투 오픈 더 윈도우 투 더 아웃사이드 월드(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을 만들자고 했죠. '우리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는 마음이었어요."(최상민)
-더 고도의 정체성은 설정하신 게 있나요?
"그런 얘기는 전혀 안 해요. 앨범 녹음에 대해선 치열하게 얘기하죠. 감성적으로 더 극한으로 갈 건지 아니면 첫 싱글처럼 스트레이트하게 갈 건지에 대해서요. 오늘 프로필 사진을 찍는데, 어떤 옷을 맞춰 입고 나올 지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앞으로 나올 음악은 더 처지는 분위기일 거 같긴 해요. 특정 장르를 정하기보다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을 이어가려고 하죠."(최상민)
-밴드의 본질이네요. 밴드의 매력은 뭡니까?
"포니 막바지엔 거의 다 개인 작업이었어요. 각자 집에서 데모를 다 녹음해가지고 광호가 기타를 붙이는 형식이었죠. 그런데 이번엔 집에서 녹음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저희는 '레코딩 아티스트'라기보다 연주하고 공연하는 걸 목표로 삼았거든요. 사실 합주 한 번 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최근 공연에서 다 같이 더 의욕이 생겼어요. 이 느낌으로 계속 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특별히 달라진 건 없는데 어느 순간 케미스트리가 더 좋게 느껴지는 거예요. 힙합이 유행할 때 밴드가 다 망할 줄 알았는데 다시 붐이 오잖아요. 함께 연주하고 같이 만들어나가는 밴드의 맛은 계속 갈 수밖에 없어요."(최상민)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밴드 '더 고도(The Godot)'는 무엇을 작정하기보다 마음의 문(門)을 여는 게 중요한 팀이다. 돈이 아닌 친구라서 같이 뭉쳤고, 인위적으로 억지를 부리지 않는 대신 자연스럽게 흐름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팀명도 수준이나 정도가 높은 상태를 가리키는 고도(高度)가 아닌 '노벨 문학상' 작가인 아일랜드 출신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따왔다. 고독과 소외감을 표현한 부조리극의 대표작인 이 작품을 더 고도의 리더인 보컬 최상민이 고독해서 읽고 있던 참이라 지었다.
네오사이키델릭·크라우트비트 등 2010년대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한 밴드 '포니'의 전(前) 멤버인 최상민·기타 소제소(sojeso·송광호)를 주축으로 베이스 류청, 드럼 이찬동이 합류한 더 고도는 그렇게 상황에 맞춰 흘러가는 이들이다. 최상민·류청은 본업을 병행해 오히려 더 순수하게 음악에 접근하고, 음악이 본업인 소제소·이찬동은 더 고도 음악에 더 순정을 바친다.
작년 겨울부터 다양한 무대에 서며 합을 맞춰온 이들은 포스트 펑크, 슈게이징, 로파이 등이 섞인 음악을 특징으로 하지만 딱히 자신들의 장르를 규정하지 않는다. 최근 발매한 첫 싱글 '웨이스팅 어웨이(Wasting Away)'는 포스트 펑크 장르인데 사이키델릭한 공간감이 일품이다. 다음은 최근 서울 홍대 앞에서 만나 네 멤버들과 나눈 일문일답.
-밴드는 어떻게 결성이 된 겁니까?
"작년 연말에 클럽 생기 대표님이 저랑 광호에게 다시 밴드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어요. 생기 스튜디오 5주년 기념 공연을 하는데 라인업을 채워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청이한테도 '베이스 칠래?'라고 물어봤죠. 이후 한 달 동안 열 곡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합을 맞춰봤는데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공연도 다 신곡으로 했어요. 그게 동기가 돼서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최상민)
-어느 날 상민 씨에게 연락이 왔어요. '포니' 하던 친구들이랑 같이 새 밴드를 할 건데 '같이 하면 어떻겠냐'고요. 음악을 떠나 친구니까 좋다고 했어요. 전 밴드를 함께 하는 기준이 일단 친구여야 돼요. 친구가 아닌 채로 음악을 하게 되면 음악이 안 되더라고요. 오래 손을 놓았던 베이스를 다시 잡게 됐죠."(류청)
-팀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제가 고독해서 사무엘 베케트의 책을 한창 읽고 있을 때였어요. 신경을 써서 뭘 만들려고 하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를 따왔고 그 앞에 '더(The)'를 붙인 거예요."(최상민)
-'웨이스팅 어웨이'는 추후에 발매한 앨범의 선공개곡 같은 건가요?
"싱글 녹음을 한 지는 꽤 됐는데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까 발매가 늦어졌어요. 지금 EP를 준비 중이에요. 쌓인 곡들이 많아져서 녹음도 많이 끝냈어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내고 싶어요. 만든 노래들 장르가 다양해요. 포니 활동 후반부에 난해한 방향으로 흘러간 노래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인생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번에도 녹음할 때 모호하거나 난해한 노래들도 많았는데 '제일 스트레이트한 노래를 첫 싱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최상민)
-그럼 작년 말 이전까지 밴드를 하실 생각은 없었던 건가요?
"전 계속 했어요. 음악도 계속 만들었고요. 그런데 다시 하기 위한 마음을 먹기가 힘들더라고요. 이전에 무대 공포증이 찾아왔었거든요. 그래서 머리카락을 많이 길렀어요. 록 공연은 즐거워야 하는데 어느 순간 저한테 '안 맞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 위에 서 있는 게 되게 불편했어요. 그렇게 공연을 점점 줄이고 하다 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죠. 최근 공연을 몇 번 했는데 다시 하니까 괜찮더라고요."(최상민)
-광호 씨는 방탄소년단(BTS) RM(김남준) 씨의 '헤븐(Heaven)' 프로듀싱을 맡는 등 K팝 업계와 광고음악계에서도 잘 나가시는 분인데, 밴드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밴드는 사람들이랑 같이 한다는 재미가 제일 커요. 지금은 돈 마음, 물직적인 여유가 이전보다 있는 상태에서 하니까 더 좋아요. 포니 할 때는 말도 안 될 만큼 안 좋은 악기들 쓰고 그랬었거든요."(소제소)
-포니는 어떻게 결성됐던 밴드인가요?
"처음엔 제가 솔로로 공연을 했는데 이규영 형(현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회장)이 '우리 레이블에서 같이 음악할 생각 없냐'고 제안하셨고 밴드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라고 해서 포니가 시작됐어요. 음악을 늦게 시작했어요. 첫 앨범이 나왔을 때가 스물 아홉 살이었거든요. 연주도 잘할 줄 몰랐지만, 지향하는 음악은 있었는데 포스트 펑크로 나온 거죠. 음악이라는 게 진짜 참을 수가 없나 봐요. 광호는 원래 다른 밴드에 있었는데 유난히 혼자 남달랐어요. 감성도 특별했고요."(최상민)
-천동 씨는 포니 활동 막바지에 세션을 같이 하셨어요.
"원래 상민 형이나 광호 형의 감성과 음악이 너무 멋있어서 전부터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같이 하자고 하셨을 때 당연히 고민이 없었죠."(이찬동)
-광호 씨는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상업 음악 영역에서 인정을 받고 계신데 그런 상황에서 밴드 활동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라디오 헤드를 비롯해 우울한 분위기를 밴드를 좋아했고요. 상업음악과 밴드활동은 확실히 장단점이 있어요. 일단 돈은 딴 데서 버니까 밴드 음악에서는 타협을 안 해도 되는 부분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상민 씨도 본업이 있죠.
"음악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이제 먹히는 거 좀 해봐야 될 텐데' 같은 강박 관념을 가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상대적으로 안 해도 되니까 이 부분이 장점이죠. 근데 괴리감이 있어요. 창작적인 생활을 하면서 억압적인 라이프 스타일 쪽에 갇혀야 될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 데서 오는 갈등이 있는데 그런 갈등은 또 음악으로 풀어요. 카프카가 낮엔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일했고 저녁에는 세상을 저주하는 소설을 쓰면서 기쁨을 찾았다고 하는데 약간 그런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최상민)
-찬동 씨는 드럼을 어떻게 시작하신 겁니까?
"중학교 때 엑스재팬 좋아하는 기타 치는 친구가 '밴드 하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드럼이 너무 재밌어서 학원까지 가서 배웠는데 선생님이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너무 좋아하셔서 이 밴드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받기도 했죠. 이후 음악으로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이찬동)
-류청 씨도 다른 일을 병행하십니다.
"프리랜서 생활이 오래되다 보니까 터득한 게 있어요. 일할 때엔 일에만 매달려 있지만 주기적으로 제 시간이 찾아오거든요. 그럴 때 음악에 몰두를 하면 저절로 삶이 순환 되더라고요.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해봤던 적이 있어요. 지금은 돈을 벌어야 된다라는 그 강박관념에 음악이 안 들어가 있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류청)
-음악이 주가랑 연관되는 등 상업적인 시대에 비상업적인 태도와 정신을 유지하는 게 너무 보기 좋아요.
"포니 할 때 항상 저희에게 따라 다니는 꼬리표가 있었어요. '꽃미남 밴드'요. 근데 그게 너무 싫어서 광호랑 둘이 2015년도에 완전히 비상업적인 앨범('아이 돈트 원트 투 오픈 더 윈도우 투 더 아웃사이드 월드(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을 만들자고 했죠. '우리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는 마음이었어요."(최상민)
-더 고도의 정체성은 설정하신 게 있나요?
"그런 얘기는 전혀 안 해요. 앨범 녹음에 대해선 치열하게 얘기하죠. 감성적으로 더 극한으로 갈 건지 아니면 첫 싱글처럼 스트레이트하게 갈 건지에 대해서요. 오늘 프로필 사진을 찍는데, 어떤 옷을 맞춰 입고 나올 지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앞으로 나올 음악은 더 처지는 분위기일 거 같긴 해요. 특정 장르를 정하기보다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을 이어가려고 하죠."(최상민)
-밴드의 본질이네요. 밴드의 매력은 뭡니까?
"포니 막바지엔 거의 다 개인 작업이었어요. 각자 집에서 데모를 다 녹음해가지고 광호가 기타를 붙이는 형식이었죠. 그런데 이번엔 집에서 녹음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저희는 '레코딩 아티스트'라기보다 연주하고 공연하는 걸 목표로 삼았거든요. 사실 합주 한 번 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최근 공연에서 다 같이 더 의욕이 생겼어요. 이 느낌으로 계속 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특별히 달라진 건 없는데 어느 순간 케미스트리가 더 좋게 느껴지는 거예요. 힙합이 유행할 때 밴드가 다 망할 줄 알았는데 다시 붐이 오잖아요. 함께 연주하고 같이 만들어나가는 밴드의 맛은 계속 갈 수밖에 없어요."(최상민)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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