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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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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언뜻 보면 영화 '새벽의 모든'(9월18일 공개)은 평범하기 만하다. 두 남녀의 일상을 무리 없이 담아내며, 삶이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어쩌면 늘 말하는대로 '일본 특유의 감성이 있는 영화' 정도로 요약돼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조용한 영화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새벽의 모든'엔 한 장면 한 장면 아귀 맞게 쌓아 올라가는 정교한 구조가, 단 한 장면도 허투루 흘려 보내지 않고 의미를 담아내려는 높은 밀도가 있다. 더불어 산다는 것에 관해 얘기하면서도 관계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 유지하려는 그 시각은 대단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과감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건 결코 흔치 않은 솜씨다.
월경 전 증후군을 가진 여자 후지사와, 공황장애를 겪는 남자 야마조에가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이 과정엔 대단한 사랑도 그렇다고 대단한 우정도 그게 아니라면 대단한 연대 같은 게 있지 않다. 게다가 그들이 가진 어려움이 요즘 관객에게 그리 충격적인 병명일 리도 없다. 이들 주변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평범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고, 현실과 별 다를 게 없는 풍경이 있다. 그 사람들과 그 풍경들 속에서 하루 하루 흘러가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요컨대 '새벽의 모든'은 별 일 없이 시작해서 별 일 없이 끝난다. 그리고 그들은 별 일 없이 산다. 할리우드식(式) 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게 이 영화는 굴곡 없이 밋밋하기 만할 것이다.
그런데 이 슴슴한 작품이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미야케 쇼 감독이 보여주려는 건 사람들이 엮여 만들어진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이 엮여 있다는 것 그 자체 그리고 사람들을 엮어 놓는 그 마음인 것만 같다. '새벽의 모든'은 그 관계와 속내의 단면들을 포착하려 한다. 그것은 결국 드러난 당황일 때도 있고, 엉거주춤한 자세일 때도 있고,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웃음일 때도 있다. 툭 던진 농담일 때도, 조용히 번지는 웃음일 때도, 무심한 듯 건넨 간식거리일 때도 있다. 말하자면 미야케 감독은 영화라는 건 그럴 듯하게 꾸며내지 않더라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만으로도 관객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새벽의 모든'이 이처럼 세밀하게 잡아내서 보여주려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다. 일단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우리 삶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외로운 것이지만 너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무수한 고리들이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다.' 다만 이 신중한 영화는 관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관계의 진실성을 재확인하면서도 관계의 효력을 과장하지 않는다. 서로 끌어 안아야만 삶을 견뎌낼 수 있는 거라고 호소하는 게 아니라 희미할지라도 우리가 연결 돼 있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야마조에는 말한다.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았어요. 남녀 간이든 대하기 힘든 사람이든 도와줄 수 있다는 겁니다. 내 발작은 어쩔 수 없지만 세 번에 한 번 정도는 선배를 도와줄 수 있어요."
이 얘기를 하기 위해 '새벽의 모든'은 밤과 별을 본다. 밤과 별을 보는 인간을 본다. 어둠이 있을 때만 빛이 나는 별을 통해 인간들이 느낄 고통과 너와 나의 존재를 명확히 하고, 별과 인간 사이 거리와 별이 발광해 눈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을 추측해가며 어쩌면 거리나 시간과 무관하게 이어져 있을지도 모를 인연들을 언급한다. 그 별들을 이어가며 발명해낸 별자리를 통해 인간 관계의 의미를 기어코 찾아내기도 한다. 길고 긴 밤이 고통스러울 거라고 짐작하기도 하면서도 나의 고통과 무관하게 찾아오기에 아침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짚어내기도 한다. 그래도 "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지구 밖 세계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삶을 비관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린 별일지도 모른다. 쿠리타 과학의 사장 쿠리타와 야마조에의 전 직장 상사 츠지모토가 서로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만나게 됐고, 쿠리타의 동생과 츠지모토의 누나가 죽었기 때문에 쿠리타와 츠지모토가 알게 됐다. 그 우연스러운 인연 덕분에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20년 전 사망한 쿠리타의 동생이 남긴 메모를 함께 읽으며 그와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별과 별자리를 한 자리에 모아 볼 수 있는 플라네타리움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미야케 감독은 이 공간 안에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아는 사람들, 이 이야기에 등장한 거의 모든 인물을 한 데 몰아넣음으로써 밤과 별과 인간과 연결고리를 드러내려 한다.
미야케 감독은 또래인 하마구치 류스케, 후카다 코지 감독 등과 함께 묶여 일본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세대로 불린다. 그리고 세계 영화계는 이들을 거장이 될 만한 재목이라거나 이미 젊은 거장이라고 수식한다. 미야케 감독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지, 또 어떤 말로 불리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작품엔 어떤 것도 쉽게 단정하지 않고 심사숙고하며 삶의 진실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는 진지함이 있다. 사람과 삶에 관해 얘기하는 방식이 결코 얄팍해져선 안 된다는 엄격함이 있다. '새벽의 모든'을 포함한 전작들에서 보여준 이 태도가 있는 한 그의 영화는 계속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돼 있을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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