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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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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사실 김상만(54) 감독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만드는 걸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워낙 방대한 양의 사료가 있고, 전문가도 많아서 고증에 부담감이 있었다. 고증이 상상력을 제한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평소 생각해왔던 것과 달리 조선이 배경인 영화 '전, 란'(10월11일 공개) 연출을 맡았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문제 의식이 세상을 향한 그의 관심과 맞닿아 있었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이제 계급 시스템은 없죠.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계급이 있다고 봤습니다. 금수저·흙수저 같은 말들이라든지, 부자와 빈자에 관한 선입견 담긴 말들만 봐도 그렇죠. 그런 것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계급성에서 나오는 얘기들인 것 같습니다. 현재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갖가지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돼요. '전, 란'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게 좋았습니다."
'전, 란'은 양반 종려(박정민)와 노비 천영(강동원)의 엇갈린 운명을 담는다. 표면적인 이야기는 이것이지만, 그 안에 김 감독이 말한 것처럼 계급에 관한 질문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 전후로 공고했던 사회 시스템이 뿌리 채 흔들리고, 이 때 종려와 천영을 비롯한 인간 군상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려간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계급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이 각 캐릭터에 잘 반영돼 있었고요. 게다가 박찬욱 감독님이 쓰신 각본이니까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이미 알려진대로 이 영화는 박 감독이 제작은 물론 각본도 맡았다. 김 감독과 박 감독 인연은 25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1990년대 말 포스터 디자인으로 영화계에 들어온 김 감독은 박 감독 대표작 중 하나인 '공동경비구역 JSA' 미술감독을 맡았다. 연출 데뷔를 제안 받은 시기였는데 한 번 더 현장 경험을 해보자고 해서 참여한 게 바로 그 영화였다. 이후에도 김 감독은 '걸스카우트'(2008)로 연출 데뷔를 하기 전까지 '친절한 금자씨'(2005)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등 박 감독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도맡았다.
"그렇다고 감독님께 시나오를 써서 보여주고 조언을 받고 그런 적은 없었어요. 그저 계속 인연을 이어왔던 거죠. 그러다가 2020년에 처음 연출 제안을 해주셨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미팅을 하면서 '전, 란'이 궤도에 오르게 됐죠. 글쎄요, 감독님께 왜 절 선택하셨는지 여쭤보진 않았어요. 그래도 재주가 있다고 보셨나 봐요.(웃음) 박 감독님께 누가 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 감독은 박 감독이 자신과 시나리오를 발전시켜가는 과정에서 대화를 나누긴 했어도 연출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김 감독이 준비했던 걸 보여주는 데 어려움이 있을 땐, 감독의 최초 의도를 더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아마 본인도 감독이니까 그렇게 말해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11일 공개된 '전, 란'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이 영화는 넷플릭스 영화 부문에서 3위를 달리고 있다. 1위는 로라 던 주연의 '론리 플래닛', 2위는 쉐인 블랙 감독이 2018년에 내놓은 호러물 '더 프레데터'다. 김 감독은 이 순위를 보고 "일단 안심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온라인 커뮤니티엔 '전, 란'이 아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특히 두 주인공 종려와 천영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과정과 화해에 이르는 순간의 감정이 급하게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김 감독은 "관객 평가는 온전히 받아 들여야 한다"면서도 "이 대목에서 계급에 관한 종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면 이해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하며 웃었다.
"천영을 향한 종려의 마음이 진짜 우정이었는지 아니면 사실은 시혜적인 것이었는지, 종려 자신도 헷갈렸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천영에게 일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던 거죠. 종려는 천영을 꼭 살려서 데려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천영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칼을 맞부딪히다가 진실을 알았을 때, 거대한 충격으로 해묵은 마음이 한 번에 풀릴 수도 있을 겁니다."
김 감독은 작품 공개 후 각종 반응을 두루 찾아봤다며 좋은 평가와 그렇지 않은 평가가 있었으나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자랑할 만하다고 했다. '전, 란'은 분명 액션영화이고 액션 장면에 큰 공을 들인 작품이지만, 김 감독은 이 작품의 포인트로 연기를 꼽았다. "강동원·박정민 두 배우가 정말 잘해줬죠. 게다가 차승원 배우의 선조 연기는 많은 분들이 역대급 왕 연기라고 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김신록·진선규·정성일 등 모든 배우의 연기가 빼어납니다. 워낙 준비를 많이 해오셨어요. 세세하게 디렉팅을 하기보다는 대화를 많이 했죠. 배우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분명 만족도가 있을 겁니다."
김 감독 전작은 배우 유지태가 주연한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2014)다. 새 영화가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동안 놀았던 게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10편 정도 썼는데…영화라는 게 그렇잖아요. 잘 풀리지 않은 거죠." 이번엔 차기작을 훨씬 빨리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김 감독은 동명 웹툰이 원작인 시리즈 '돼지우리'를 촬영 중이다. 첫 시리즈 연출이다. 그는 "제안을 주면 넙죽 잘 받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우연찮게 포스터 디자인 제안을 받고 영화계로 왔습니다. 이후에 미술감독을 해보라고 해서 큰 망설임 없이 해보기로 했죠. 연출도 그렇게 하게 된 거고요. 제 성격이 그래요. 그러고 보면 저는 참 운이 좋아요."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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