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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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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악은 죽었어요. 음악 궁극의 근원은 과거에 있습니다.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다 흘러나가 버린, 사라진 것들을 복원하고 그 가치를 아는 장인급의 사람들이 혼신을 다해서 여러분들한테 과거의 것을 재구성해서 들려드리는 음악을 많이 사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곡이 스트리밍, 즉 시냇물처럼 줄줄 스트림되는 시대에 과거의 음반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음질로 복원되기를 바라는 음악 마니아들이 있다.
퓨전 밴드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은 그 마니아들의 마음을 아는 몇 안 되는 '사운드 장인'이다. 그가 명반으로 통하는 봄여름가을겨울 정규 2집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1989) 발매 35주년을 기념해 2024년 믹스 버전으로 이 음반을 다시 내놓은 이유다.
김종진은 16일 오후 서울 광흥창 CJ문화재단 CJ 아지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우리 봄여름가을겨울을 사랑해 주셨던 팬들을 위해서 그들의 기억을 그리고 추억을 수선하는 그런 의미에요. 시간을 뛰어넘는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저희가 준비를 해봤다"고 말했다.
김종진과 세상을 먼저 떠난 멤버인 드러머 전태관(1962~2018)이 음악인으로서 정수를 담은 문구 '디스 이즈 마이 송 포 유'라는 여성의 짧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어떤 이의 꿈', 당시 모든 아마추어 밴드의 필수 연습곡이었던 '못다한 내 마음을…'을 비롯 세 연주곡 등 진보적인 열 곡이 담긴 이 음반은 상업성·작품성 모두를 다 잡은 수작이다. 24글자 제목을 가졌는데 마치 24절기를 모두 스쳐가듯 삶의 희로애락을 녹여냈다. 2000년대 경향신문이 대중음악 전문매체 '가슴네트워크'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도 꼽혔다.
김종진은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 온그라운드로 부상하는데 큰 기여를 한 앨범이 아닌가"라고 자평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이 음반의 흥행에 힘 입어 미국에서 녹음한 3집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1992) 타이틀곡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까지 빅히트시키며 당대 최고의 밴드로 떠올랐다. 두 음반의 흥행으로 금강제화 '랜드로바'의 뗏목편(1991)과 카누편(1993)의 CF를 촬영하기까지 했다. 또 이들 앨범은 봄여름가을겨울이 국내에서 이례적인 라이브 앨범을 제작하는 토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각 악기 연주가 입체적으로 잘 들리게 한 이번 믹싱 작업에 김종진은 지난 4월부터 직접 참여했다. 예전 아날로그 테이프를 스튜디오에 가져와 완전히 새로 풀어서 믹스를 다시 했다.
믹스의 기준은 크게 두가지였다. '과거의 음악을 그대로 쓴다' 그리고 '그대로 쓰되 수선으로 더 힙해서 힙스터들이 좋은 음악이야라고 추천할 수 있을 정도'다. 최근 '믹싱 기술'이 너무 발전했다고 판단한 김종진은 "35년 전 음악을 '요즘 기술로 믹스하면 충분히 좋게 들릴까' 질문을 갖고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믹싱은 보컬과 여러 악기가 각각의 자리에서 잘 들릴 수 있게 작업하는 것이다.
마스터링은 거장 버니 그런드만에게 넘어갔다. 그런드만은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 프린스의 '퍼플 레인(Purple Rain)', 닥터 드레의 '더 크로닉(The Chronic)' 등을 포함해 지미 헨드릭스, 도어스, 핑크 플로이드, 카펜터스 등의 앨범 마스터링과 래커 커팅을 맡았다.
김종진은 무엇보다 이번 작업으로 부모와 자녀가 같이 듣는 음악이 되기를 바랐다.
"'야 우린 이런 음악 들었어. 죽이지 않냐. 노랫말도 멋지고 연주 편곡도 멋지고 사운드도 죽이지! 우린 이렇게 멋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녀가 부모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매개체로 음악이 한몫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지금 20대도 언젠가 다음 세대와 같은 음악을 공유하면서 토론도 하는 전통이 생기지 않을까요?"
봄여름가을겨울 2집은 커버도 수작이다. 창문 모양의 네 칸에 사계절을 요약한 근사한 팝아트다. 내년 영국 런던의 유명 미술관인 테이트모던에서 개인전을 여는 설치미술가 서도호 작품이다. 그는 런던을 기반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 중인데, 전태권과 죽마고우로 봄여름가을겨울 1집 커버도 그렸다.
2집 뒷면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글씨도 서도호의 캘리그래피다. 그 글자 밑엔 2022년 별세한 김중만이 찍은 사진이 박혀있다.
오는 11월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를 여는 서도호를 최근 만났다는 김종진은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우리들만의 특별한 작품을 한번 만들어보자 얘기를 했다"고 귀띔했다.
현재 대중예술과 수집예술 사이엔 완전히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겨버렸다는 게 이번 두 사람 대화의 중요 화두였다.
"미술시장은 너무 부자들의 세상이 됐고, 대중음악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똑같은 값에 팔 수밖에 없는 세상이 돼버렸어요. 집에서 1시간 만에 뚝딱거려서 만든 음악과 저희같이 몇 억을 들여서 만든 음악이 음원 플랫폼에서 똑같은 금액에 팔리 시장이 됐단 말이에요. 돈 많이 들인 사람 입장에선 좀 황당합니다. 불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자존심에도 약간 흠집이 나죠."
김종진은 그러면서 음악의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음악을 갖고 산업을 만들어 그걸로 재미를 추구하는 형태가 앞으로도 계속 더해갈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했다. 음악은 산업에 부가적인 역할이나, 부싯돌 정도의 기능 정도로 사그라들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렇게 많이 변한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과거의 음악들이 가치 있고 다시 들을 만한 음악이 있다면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들어주시면 감사하다"는 마음이다. "봄여름가을겨울 노래가 돌아서 있는 사람을 다시 내 쪽으로 바라보게 하는 그런 음악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돌아서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2024 믹스(MIX)' 버전 열 곡은 17일 오후 12시 음원 플랫폼에 공개된다. 이후 뉴믹스 앨범은 바이닐로도 발매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신곡이 스트리밍, 즉 시냇물처럼 줄줄 스트림되는 시대에 과거의 음반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음질로 복원되기를 바라는 음악 마니아들이 있다.
퓨전 밴드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은 그 마니아들의 마음을 아는 몇 안 되는 '사운드 장인'이다. 그가 명반으로 통하는 봄여름가을겨울 정규 2집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1989) 발매 35주년을 기념해 2024년 믹스 버전으로 이 음반을 다시 내놓은 이유다.
김종진은 16일 오후 서울 광흥창 CJ문화재단 CJ 아지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우리 봄여름가을겨울을 사랑해 주셨던 팬들을 위해서 그들의 기억을 그리고 추억을 수선하는 그런 의미에요. 시간을 뛰어넘는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저희가 준비를 해봤다"고 말했다.
김종진과 세상을 먼저 떠난 멤버인 드러머 전태관(1962~2018)이 음악인으로서 정수를 담은 문구 '디스 이즈 마이 송 포 유'라는 여성의 짧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어떤 이의 꿈', 당시 모든 아마추어 밴드의 필수 연습곡이었던 '못다한 내 마음을…'을 비롯 세 연주곡 등 진보적인 열 곡이 담긴 이 음반은 상업성·작품성 모두를 다 잡은 수작이다. 24글자 제목을 가졌는데 마치 24절기를 모두 스쳐가듯 삶의 희로애락을 녹여냈다. 2000년대 경향신문이 대중음악 전문매체 '가슴네트워크'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도 꼽혔다.
김종진은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 온그라운드로 부상하는데 큰 기여를 한 앨범이 아닌가"라고 자평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이 음반의 흥행에 힘 입어 미국에서 녹음한 3집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1992) 타이틀곡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까지 빅히트시키며 당대 최고의 밴드로 떠올랐다. 두 음반의 흥행으로 금강제화 '랜드로바'의 뗏목편(1991)과 카누편(1993)의 CF를 촬영하기까지 했다. 또 이들 앨범은 봄여름가을겨울이 국내에서 이례적인 라이브 앨범을 제작하는 토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각 악기 연주가 입체적으로 잘 들리게 한 이번 믹싱 작업에 김종진은 지난 4월부터 직접 참여했다. 예전 아날로그 테이프를 스튜디오에 가져와 완전히 새로 풀어서 믹스를 다시 했다.
믹스의 기준은 크게 두가지였다. '과거의 음악을 그대로 쓴다' 그리고 '그대로 쓰되 수선으로 더 힙해서 힙스터들이 좋은 음악이야라고 추천할 수 있을 정도'다. 최근 '믹싱 기술'이 너무 발전했다고 판단한 김종진은 "35년 전 음악을 '요즘 기술로 믹스하면 충분히 좋게 들릴까' 질문을 갖고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믹싱은 보컬과 여러 악기가 각각의 자리에서 잘 들릴 수 있게 작업하는 것이다.
마스터링은 거장 버니 그런드만에게 넘어갔다. 그런드만은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 프린스의 '퍼플 레인(Purple Rain)', 닥터 드레의 '더 크로닉(The Chronic)' 등을 포함해 지미 헨드릭스, 도어스, 핑크 플로이드, 카펜터스 등의 앨범 마스터링과 래커 커팅을 맡았다.
김종진은 무엇보다 이번 작업으로 부모와 자녀가 같이 듣는 음악이 되기를 바랐다.
"'야 우린 이런 음악 들었어. 죽이지 않냐. 노랫말도 멋지고 연주 편곡도 멋지고 사운드도 죽이지! 우린 이렇게 멋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녀가 부모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매개체로 음악이 한몫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지금 20대도 언젠가 다음 세대와 같은 음악을 공유하면서 토론도 하는 전통이 생기지 않을까요?"
봄여름가을겨울 2집은 커버도 수작이다. 창문 모양의 네 칸에 사계절을 요약한 근사한 팝아트다. 내년 영국 런던의 유명 미술관인 테이트모던에서 개인전을 여는 설치미술가 서도호 작품이다. 그는 런던을 기반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 중인데, 전태권과 죽마고우로 봄여름가을겨울 1집 커버도 그렸다.
2집 뒷면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글씨도 서도호의 캘리그래피다. 그 글자 밑엔 2022년 별세한 김중만이 찍은 사진이 박혀있다.
오는 11월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를 여는 서도호를 최근 만났다는 김종진은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우리들만의 특별한 작품을 한번 만들어보자 얘기를 했다"고 귀띔했다.
현재 대중예술과 수집예술 사이엔 완전히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겨버렸다는 게 이번 두 사람 대화의 중요 화두였다.
"미술시장은 너무 부자들의 세상이 됐고, 대중음악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똑같은 값에 팔 수밖에 없는 세상이 돼버렸어요. 집에서 1시간 만에 뚝딱거려서 만든 음악과 저희같이 몇 억을 들여서 만든 음악이 음원 플랫폼에서 똑같은 금액에 팔리 시장이 됐단 말이에요. 돈 많이 들인 사람 입장에선 좀 황당합니다. 불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자존심에도 약간 흠집이 나죠."
김종진은 그러면서 음악의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음악을 갖고 산업을 만들어 그걸로 재미를 추구하는 형태가 앞으로도 계속 더해갈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했다. 음악은 산업에 부가적인 역할이나, 부싯돌 정도의 기능 정도로 사그라들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렇게 많이 변한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과거의 음악들이 가치 있고 다시 들을 만한 음악이 있다면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들어주시면 감사하다"는 마음이다. "봄여름가을겨울 노래가 돌아서 있는 사람을 다시 내 쪽으로 바라보게 하는 그런 음악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돌아서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2024 믹스(MIX)' 버전 열 곡은 17일 오후 12시 음원 플랫폼에 공개된다. 이후 뉴믹스 앨범은 바이닐로도 발매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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