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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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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30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물흐르듯 흐르는 이상은의 세트리스트 곡절(曲節·악곡의 마디)마다 곡절(曲折·복잡한 사정이나 까닭)이 자연스레 흘러들어왔다.
누구나 아는 명곡엔 개별성이 녹아든 추억을 보편성을 굳힌 기억으로 승화하는 힘을 갖고 있는데, 이번 이상은의 콘서트는 그걸 증거하는 자리였다. 고음에서 청량한 목소리는 여전히 젊었지만, 세월의 흐름에 기꺼이 몸을 맡기는 유연함도 배어 있었다.
이상은이 지난 2019년 발매한 16집 '플로(fLoW)'는 생각, 마음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흘러가는 문화의 역할이자 증표라는 걸 보여줬는데 그 지향점엔 졸업이 없다는 걸 이번 콘서트가 또 증명했다. 그녀의 음악과 함께 라면 몸, 마음은 경직될 일이 없다.
이상은의 음악이 끊임없이 젊은 세대에게 발견되는 이유다. 이번 콘서트 객석에선 K-팝 아이돌 문화의 상징 중 하나인 응원봉이 곳곳에서 반짝였다. 다음은 콘서트 성료 이후 이상은과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우선 6년 만의 단독 콘서트를 성료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네. 지금은 휴식 중이고 준비와 완성에 매우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서 방전된 핸드폰 충전하듯 멍하네요.^^"
-이번 콘서트 세트리스트는 '플레이리스트'라는 공연 타이틀답게 상은 씨 공연 중 가장 대중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우철 전 GQ 에디터와 허유 씨가 20곡을 제안 해주셨고 이 중 12곡이 반영된 걸로 아는데 세트리스트 구성에 가장 신경 쓰신 부분과 스태프들과 가장 많이 얘기를 나눴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공연 기획 시작 당시 바쁜 스케줄로 독감에 걸렸더랬어요. 그래서 혼자 못하겠다 싶어서 친구들에게 구조요청을 했고 장우철 씨, 허유 씨가 맹활약을 해주셨어요. 역시 재주 많은 동생들^^ '코로나로 옛 기억이 더 가물가물한 사람들, 급격한 사회변화로 과거와의 마음의 연결이 끊어진 분들을 위해 추억을 소환하자!'라는 주제였는데요. '물 흐르듯 잘 흐르는 공연'이 가장 멤버들과 신경 쓴 부분이에요. 상처를 치유하는 흐르는 물이랄까요."
-"어느 날 아침 봄볕에"라는 시작하는 '어느날 아침'을 첫곡으로 한 플레이리스트 서사화도 좋았습니다. '파라다이스' '에코송' '새'를 마치 자연 3부작처럼 묶으신 것도 좋았고요. 이번 세트리스트를 소화하시면서서 혹시 특정 그림을 그리신 게 있나요?
"딱히 없고요. 자연스럽게 곡들이 이어지고 흘러가는 것이 중요해서 신경 썼어요."
-본 공연의 마지막곡으로 '발키리'를 정하신 건 서사의 완성이라고 봤어요. 북유럽 신화의 여전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곡으로 알고 있는데, 특히 요즘 같은 때 많은 여성들에게 힘을 주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록 페스티벌 현장 등에서도 크게 호응을 얻었던 곡으로 알고 있고요. 이 곡은 상은 씨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우연히 재발견한 곡인데요. 록페에 어울릴 곡을 찾다 발견했죠. 저의 30대 감성인데 '사랑만이 배워야 할 모든 것'이라는 가사가 마음을 울렸어요.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낸 편지랄까… 요즘 친철함에 대해 고민 중인데요. 너무나 살기 팍팍해져가지만 사람에 대한 상냥함과 친절이 있다면 아무리 가난해져도 옛날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던 시절의 정이 되살아나 오히려 좋을 것 같아요. 말도 마음도 더 친절해지려고 요즘 생각을 많이 한답니다. 이 곡의 메시지를 따라서요. ^^"
"보령 씨는 어릴 땐 엄청 싸우다가 (동갑이라) 요즘은 대화가 잘 통하는 오랜 친구죠. 공연을 양일 보고, 저를 좀 도우려고 오셨는데 복장이 넘 근사해서 아까워서 즉흥적으로 모셨어요. 장난친 거라 전 재미있었어요. 젊은 세대가 좋아해주는 곡이 '사랑할꺼야'라서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해요. 가볍고 가족 친화적이어서 부르기에도 편안하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요.
왜? 이곡들을?? 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고 그간 코로나로 지친 분들에게 밝은 기운을 드렸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있어요."
-전체적으로 정말 봄을 껴안았다는 생각이 드는 공연이었습니다. 상은 씨에게 올해 봄은 어떻게 기억될 건가요?
"단공준비로 입술이 부르트고 쓰러진 봄. 마음은 차분히 할 일을 다했다는 안정감이 돌아온 그런 봄."
-무대 얘기도 안 할 수 없는데요. 블랙박스 공연장을 잘 활용했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런웨이 같은 무대에 밴드 멤버들을 지그재그로 배치한 점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베이스, 드럼 등 리듬 악기는 같은 쪽에 모은 구성도 좋았고요. 플루겔혼 트럼펫 등을 연주하는 혼섹션 주자의 가세도 좋았습니다. 이번 밴드 배치, 무대 구성에서 가장 신경쓰신 지점은 무엇인가요? 공연장 환경은 어땠나요?
"장우철·허유 콤비의 아이디어였어요. 현장에서 직접보니 매우 환상적이더군요. 패션쇼 무대를 차용한 콘셉트인데 특히 피아노·기타를 바라보면서 공연하니 마음이 더 뭉클했어요. 두 분과의 추억도 떠오르고."
-특히 앙코르에서 기타만, 건반만 그리고 드럼 베이스만 다시 전체로 편성을 하는 점층법적 구성이 정말 멋졌습니다. 이런 구성으로 어떤 효과를 유도하셨나요?
"글쎄요. 강약 조절이겠죠. 딱히 효과 유도는 없고 작은 변화만으로도 공연에선 큰 효과가 나와서…"
-장우철 씨, 황보령 씨는 물론 월간 페이퍼 기자인 정유희 씨 등 오랜기간 함께 우정을 이어온 분들과 계속된 협업도 든든합니다. 상은 씨에게 계속 동행하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공통점은 'A.I. 시대에도 인간성은 무엇이고 따뜻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시는 아티스트들이에요. 특히 페이퍼의 정유희 씨는 문학을 지키면서 모두가 쇼츠에 빠진 세상과 맞서고 계시죠. 훌륭한 분이에요. 테크놀로지가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한다면 '아니다!'라고 하면서 인류에게 소중했던 것들을 지키려는 전사들이라고 봐요. 장우철씨도 황보령씨도."
"팬들이 팬이 되시거나 그만두시거나 다 자유에요. 연령은 상관없어요. 다만 마음이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모인 팬클럽이라면 그 시간들이 서로에게 더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저와의 소통이나 좋은 추억도 많고 메마른 사회에서 그래도 그곳은 위로가 있어서 아주 훌륭한 것 같아요. 응원봉은 이제 익숙해졌어요. 처음엔 어색했었습니다. ^^"
-코로나 기간과 건강이 좋지 않아 휴식을 취하시다 이번 콘서트까지 최근 쉼 없이 달려오셨어요. 최근 활동을 돌아보시면 음악 인생에 어떤 영역으로 남아 있을 거 같나요?
"업계에서 출중한 프로듀서인 김기정 씨가 끌어오셨는데요. 음악의 프로페셔널한 일이라는 감각을 뛰어넘어 코로나로 마음 다치고 아픈 사람들이 모였던 야전병원 같은 시간이었어요. 이제 코로나의 시간은 끝나고 임시 야전 병원도 일단 문을 닫고 다시 조용히 지내겠지만 (원래 조용히 활동하는 것을 선호해요) 좋은 추억이 될 거예요."
-공연에서 이제 활동을 줄이시고 퀄리티로 승부한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말씀하신 것처럼 활동을 많이 안 하셔서 길게 갈 수도 있는 거 같아요. 에너지의 발산과 수렴을 잘 조정하시는 현명함의 기원은 무엇인가요?
"인간이니까 쉴 땐 쉬어야죠. 쉬어야 다시 에너지가 모이고, 모여야 또 발산할 수 있죠.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돼요. 시스템에 맞추지 말고 나의 패턴을 찾아서 그렇게 살아야죠. 쉽지는 않아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서요. 그래도 무조건 몸의 리듬을 지켜야 합니다. 안 그럼 건강을 잃어요. 몸과 마음의 건강! 그걸 지키려면 욕먹을 각오도 해야죠."
-마지막으로 올해는 어떻게 보내실 생각입니까? 중요한 키워드 몇 개만 알려주신다면요.
"몇 년 간 일을 중심으로 살다 다 놓아버린 내 사생활 다시 찾기!! 작곡은 풍부한 사생활에서 나오므로 텃밭을 가꾸듯 개인 생활을 풍요롭게 가지고 또 뭔가 자연스레 꽃이나 채소가 열리면 가지고 나가서 조용히 여러분들과 공유하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렵니다아아아 ^^"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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