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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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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위암 투병 끝에 지난 21일 별세한 포크계의 대부인 김민기(73) 전 학전 대표는 이름의 무게감에도 절대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스스로 '뒷것'을 자처했다.

평소 김민기는 우스갯소리로 배우·가수들을 앞것들이라고 부르고 스태프들을 뒷것들이라고 칭했다. 본인은 뒷것들의 두목쯤 되다 보니까 앞에 나서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김민기는 가수이기도 하지만 음반만 냈지 실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은 거의 없다.

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이리(현 익산)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 재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고를 거쳤다. 학창 시절 미술반 활동이 "청소년기의 모든 것"이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힐 만큼 미술에 대한 그의 애정은 컸다.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틀에 박힌 수업에 흥미를 잃은 그는 1학년 1학기에 낙제했다. 1970년 고등학교 동창이던 김영세 전 이노디자인 대표와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듀엣 활동을 했다.

그러다 1971년 데뷔 앨범 '김민기'를 발매했다. 김민기의 유일한 정규 음반으로 그의 대표곡 '친구', '아침이슬' 등이 실렸다. 시대를 담은 시적인 노랫말, 담백한 멜로디, 철학적인 메시지 등으로 인해 그는 한국 포크 음악 그리고 싱어송라이터의 시작으로 통한다. 양희은이 불러 유명해진 '상록수'도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아침이슬'은 김 대표에겐 한동안 족쇄와도 같았다. 초창기엔 건전가요로 지정됐다. 널리 장려되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1972년 '10월 유신'이 있고 금지곡이 됐다. 불온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1년 전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던 곡이었다.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노래 부르기를 지도하다 동대문 경찰서로 연행되면서 이 음반이 전량 압수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의 상징이자 민주화 문화운동의 거목이기도 한 그는 오히려 1970~80년대 자연스레 청년 문화의 원형을 만들었다.

1970년대 후반 한국 노동운동의 정경이 담긴 1978년작 노래굿 '공장의 불빛'도 시대의 역작으로 통한다. 당시 노동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자신이 투사로 불리는 것에 넌더리를 낸다. 정작 싸워본 적이 없다며 몸을 낮춘다. '공장의 불빛' 이후 1980년대 김민기는 김제, 전곡 등에서 소작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갔다.

자신의 목소리를 음반으로 남기는 것도 마뜩치 않아했다. 하지만 이전 곡들을 모아 1993년 네장의 앨범으로 된 '김민기 전집'을 발매했다. 그는 믹싱룸에 들어갈 때, 무척 힘들어했다고 한다.

이 음반 계약의 선불금을 받아 1991년 3월15일 대학로에 학전 소극장을 개관하면서 학전(學田)을 출범시켰다. 한자로 '배울 학(學)'에 '밭 전(田)' 자를 쓴다. 일종의 못자리 농사라는 뜻이다.

문화예술계 인재를 촘촘하게 키우되 큰 바닥에서 추수를 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일종의 인재 사관학교가 되는 셈이다. 그렇게 김광석, YB 윤도현을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들, 황정민·설경구·김윤석·장현성·조승우 같은 영화계 버팀목이 된 '독수리 5형제'가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대중문화사에 크고 작은 궤적을 만들어 왔다. 33년간 총 359개 작품을 기획·제작해오면서 수많은 공연예술인들의 성장 터전이자 수많은 관객들의 삶 속에 함께 해왔다.

학전은 학전블루와 학전그린 소극장을 운영하면서 '김광석 라이브 콘서트 1000회',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등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연극, 대중음악, 클래식, 국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다. 또 '지하철 1호선'로 한국적 창작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다. '지하철 1호선'은 최초의 기획 프로덕션, 최초의 라이브 뮤지컬, 원작 저작권료 면제, 장기 상설공연, 최초 중국진출 뮤지컬 등의 기록을 남겼다. 4000회 이상 공연하며 73만 명의 관객을 실어 날랐다.

이외에도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등 우리의 정서와 노랫말이 살아 숨 쉬는 뮤지컬도 선보였다. 2004년부터는 학전 어린이 무대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복서와 소년', '아빠 얼굴 예쁘네요' 등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연에 집중했다. 김민기는 대학로 아동·어린이극 지킴이로도 통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병환으로 학전블루 소극장 운영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소식을 접한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학전의 사정이 외부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정부 등이 학전을 운영하는 방안 등이 검토됐으나 학전은 김민기 없는 학전은 없다며 학전답게 폐관을 결정했다. 일종의 장례식이었던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끝으로 개관 33주년 당일인 지난 3월15일 폐관했다. 그런데 이 공간을 배웅하는 장례는 엄숙하지 않았다. 축제의 굿판이었다. 20회가량 공연하며 약 100명의 가수, 배우가 함께 했고 회당 약 150명씩 3000명 관객이 함께 했다.

뒷것 김민기는 그 가운데도 모습을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학전을 통해 "모두다 그저 감사하다,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지난 4월에 SBS TV 'SBS 스페셜 -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은 '뒷것'을 자처한 김민기의 예술적인 면모를 재조명하기도 했다.

학전은 지난 1월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공로상, 지난 2월 '제21회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에서 선정위원회 특별상을 받았다. 뮤지컬계와 대중음악계에서 같은 해에 특별상을 받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최지호 한대음 선정위원은 '선정의 변'에서 "소위 돈 안되는 일, 예술의 못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가치로 30여 년 가꿔온 농부에게 모자를 벗어 정중한 예를 표하는 마음으로 선정위원 특별상을 수상한다. 학전이 한국 문화계에 끼쳤던 전통과 영향이 지속되길 바란다"고 했다. 학전 자리는 넉달 만인 최근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최근 새롭게 개관했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는 "대한민국 싱어송라이터의 정전(正傳). 노랫말과 선율, 음성은 물론이고 메시지와 향후 행보까지 총합해 삶 자체를 커다란 흐름의 음악으로 만들어낸, 강물과 같았던 예인"이라고 애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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