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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가수 윤하(고윤하)의 탄탄한 서사가 깃든 세계관은 2차원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3차원이며, 여기에 시간이 더해져 4차원이 만들어진다는 걸 깨닫게 한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윤하가 이를 기념해 화룡점정으로 발매한 일곱 번째 정규앨범 '그로우스 띠어리(GROWTH THEORY)'가 그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준다.

역주행하며 재조명된 '사건의 지평선'이 증명하듯 윤하의 록 음악엔 아련함, 즉 지나간 시간의 향수가 묻어난다. 데뷔 20주년 당일인 지난 1일 공개된 '그로우스 띠어리'는 윤하가 지난 2021년 11월 발매한 6집 '엔드 띠어리(END THEORY)' 이후 2년10개월 만에 선보인 '띠어리' 3부작 시리즈의 두 번째 편이다.

윤하는 국내보다 일본에서 먼저 데뷔했다. 2004년 9월1일 만 16세의 나이에 일본에서 첫 싱글 '유비키리'를 내놓았다. 이듬해 '호오키보시'(혜성)로 오리콘 일간 싱글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오리콘 혜성'이라는 별칭을 달기도 했다. 직접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며 밴드 사운드를 들려줬고, '틴 록' 또는 '틴 팝'의 대명사로 통했다.

2006년 국내 데뷔 싱글 '오디션(Audition)'를 발매했다. 대표곡 '기다리다'가 이 싱글에 실렸다. 특히 지난 2022년 3월 발매한 '엔드 띠어리' 리패키지 '엔드 띠어리 : 파이널 에디션'에 실린 타이틀곡 '사건의 지평선'이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윤하도 재조명됐다.

윤하는 또한 올해엔 데뷔 20주년 기념 퍼레이드를 펼쳐왔다. 첫 케이스포돔(KSPO DOME) 단독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국투어 '스물', 소극장 콘서트 '윤하(潤夏) : 빛나는 여름'을 성료했다. 현재 윤하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인 '2024 팀보타 전(展) '하울림 : 아림의 시간' 디렉티드 바이 윤하 X 팀보타(DIRECTED BY YOUNHA x TEAMBOTTA)'를 진행하며 색다른 음악 감상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음반은 이 모든 과정을 꿴다. 타이틀곡 '태양 물고기'를 비롯 총 열 곡이 실렸는데 음악에 과학을 접목하는 윤하의 시선이 바다와 다양한 생물에게로 향했다.

특히 윤하는 프로듀싱을 맡은 이번 앨범에서 소녀와 개복치, 그리고 작고 낡은 요트가 함께하는 장대한 여정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

타인의 평가나 타인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 치열히 옳다고 여기는 길을 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개복치(SUNFISH)라는 소재와 함께 풀어낸 '태양물고기'는 왈츠를 연상시키는 '맹그로브', 강렬한 록 사운드로 이뤄진 '죽음의 나선', 도전하는 이들을 위한 '케이프 혼', 아코디언·휘슬·장구·꽹과리 소리를 조합한 '은화', 경쾌한 리듬의 '로켓방정식의 저주', 시니컬한 보컬로 가창한 '코리올리 힘', 몽환적 사운드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라이프리뷰', 이별과 기억에 대한 '구름의 그림자', 스스로 용기를 얻는 내용의 '새녘바람' 등을 헤엄쳐 바다 위 태양으로 도약한다.

성장 이론을 다룬 윤하의 이번 '그로우스 띠어리'는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더 나은 연대를 통한 공존을 모색한다. 이건 사실 믿음의 문제다. 희망을 노래하면 언제가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신뢰. 윤하는 이걸 추동력으로 삼아 이론 아닌 노래를 통한 실천을 모색한다. 해안가에 위치해 폭풍 등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방파제 같은 역을 하는 맹그로브 숲처럼 음악이 우리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는 의지를 심어주며 믿음의 나무가 자라게 만든다. 생태계의 복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건 건강한 우리 대중음악 시장의 맞닿아 있기도 하다. 장르 편중이 유독 심한 국내 음악계에서 윤하는 자신의 음악으로 개복치처럼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뚝심 있게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다음은 최근 서울 중구 카페에서 윤하와 기자들이 만나 나눈 일문일답.

-앨범 발매·20주년 소감이 궁금합니다.

"1년 동안 꼬박 시간을 들여서 작업했어요. (크게 히트한) '사건의 지평선' 덕분에 회사에서도 많이 양해를 해주셨어요. 너무 많은 스케줄에 치이지 않게 작업 시간을 충분히 확보했죠. 그래서 이번엔 정말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해봤어요. 제 디스코그래피 중 제일 화려한 앨범이 됐습니다. 20주년은 언제 됐는지 모르겠어요. '20주년' 하면 너무 중년 같으니까 '두 번째 스무 살'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면 '뭘 하고 싶을까?' 생각하니까 많이 설레더라고요. 그래서 원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있습니다. 작업을 하다 중간에 호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 때 많이 충전을 했어요. 자연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얻었죠. 앨범에 실린 곡 중 제일 처음 작업한 곡이 (첫 트랙) '맹그로브'였는데요. 이 곡 이후에 작업을 이처럼 하면 되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고 싶었던 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나요?

"그걸 계속 찾아나가고 있는데요. '이런 걸 하고 싶다'와 그걸 실제로 했을 때 다른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번엔 하고 싶던 체조경기장(케이스포돔) 입성을 했으니 그래도 한 두 번 정도는 더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그렇게 사이즈가 큰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번 음반은 '록 앨범'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이번 앨범은 지구에 포커싱을 맞춘 느낌이 있습니다.

"완전한 스토리는 리패키지에서 공개할 예정인데요. 지난 앨범 리패키지부터 조금 더 세밀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소녀가 있어요. 저를 투영한 걸 수도 있죠. 이 친구가 지구에 충돌해 오는 혜성과 교실을 하는데 그 혜성이 소녀를 보고 블랙홀로 들어가 희생을 하는 장면들이 그려지는 내용이 있거든요. 계속 교감을 했었던 혜성이 블랙홀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오랫동안 절벽 끝에 있었던 소녀가 현실을 자각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스토리예요. 그런 것들을 언제까지 그리워할 수 만은 없으니까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서 정신을 차리는 거죠. 이후 시간이 바다 위에 절벽 위에 있고 '나는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다가 '맹그로브' 나무를 보고 용기를 얻죠.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내용이에요."

-윤아 씨의 앨범이나 가사, 제목을 보고 누리꾼들이 온라인에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받아라 떡밥' 이런 느낌으로 제목을 좀 더 깊게 짜보기는 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다루는 것이 마니악한 주제라고 느껴지는 그런 풍토가 있었는데, 요즘엔 누구나 씹고 듣고 맛볼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너무 기뻐요."

-'사건의 지평선'이 너무 화제가 돼서 다양한 생각이 들었을 거 같아요.

"차트 톱100에 들어왔을 땐 안도감 같은 게 있었어요. '열심히 사니까 이렇게 들어주시네'라는 우쭐한 느낌도 들고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막 (차트 성적이) 올라가는데 무섭더라고요. 1위에 계속 안착하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으니까 '아 여기까지는 내가 노력하는 걸로 얻어지는 성과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건 그냥 운의 영역이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거기에서 부채의식을 좀 많이 느끼게 됐고, 거기에서 오는 부담감이 많았던 것 같아요. '다음에는 어떤 노력을 해야 될까' '이렇게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드릴 수 있는 정도의 뭔가를 최소한 해야 될 것 같은데, 그게 뭐지' 등의 고민들에 빠지기 시작한 거죠. 그때부터는 초조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몸값을 올릴 게 아니라 빨리 작업을 해야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이런 얘기를 했을 때 보통은 회사에서 잘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잖아요. 비즈니스 관계다 보니까요. 하지만 회사에서 너무 흔쾌히 이해를 해주셨고 시간적 배려를 많이 받아서 호주에 가게 된 거예요. 사실 은하수를 보러 갔던 거였어요. 근데 거기에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없는 맹그로브라는 신비한 나무가 있더라고요. 염수를 먹고 자라는 나무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무에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했어요. 몇 번의 썰물과 밀물을 계속 겪으면서 바다 생물도 왔다 가고 미생물도 왔다 가고 그들의 터전을 이루는 데 본인의 몸을 내어주고 많은 희생을 하는 것에 관심이 갔어요. 소금물에 담금질을 당하면서도 움직일 수 없는 나무의 인생은 어떨까. 여기에 인격을 부여하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다 보니 제가 느끼는 것들이 작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내가 해야 될 일로 다시 돌아오자'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하게 됐죠. 어떤 분은 맹그로브 나무는 악취가 난다고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라임 오렌지나무, 레몬 트리 같은 예쁜 나무들도 많지만 저는 맹그로브에 애착이 갔고 저 역시 응원을 받게 됐죠."

-타이틀곡 '태양물고기'는 개복치의 영문명 선피시(Sunfish)에서 따온 것이죠. 왜 그 수많은 물고기 중 개복치였나요.

'제게 감동의 포인트는 그런 데 있는 것 같아요. 개복치가 나약한 존재라 금방 죽는다 등의 이야기들은 알고 있었는데 영어 이름이 '선피시'인 줄 몰랐어요. 이 친구에 대해 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내용을 찾아봤는데, 몰랐던 것도 많고 오해도 있었고 이 친구가 생각보다 대단한 친구인 거예요. 보통의 물고기들은 본인의 범위가 정해져 있잖아요. 이 친구는 수면 위에서부터 심해 800m 정도에 이르기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심해 생물이 가진 그런 발광체 기질을 가지고 있어요. 야광처럼요. 또 햇빛을 받아서 빛을 내기도 하는 존재인 거죠. 수명도 성체가 된 20년을 산다니까 제 20주년과 맞닿기도 했죠. 무엇보다 '이 친구가 바다의 태양 같은 존재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하늘같이 드넓은 대인배가 되고 싶고, 뭐든 할 수 있는 무한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아서 괴로운 순간들도 많아요. 그런데 하늘을 지향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하늘로 가는 바다 정도는 지향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바다의 태양 정도는 되고자 할 수 있지 않나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20년을 하시면서 가수가 뭔지 알 것 같은 부분도 있나요?

"가수는 툭 치면 노래를 해야 되는 사람 같아요. 요즘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은 '진짜 예술이 뭔가'에 대해서예요. 사실 예술은 '의식주'의 영역이 아니잖아요. 사치의 영역으로 들어가 있죠. 여기에 '어떤 가치를 부여를 해야 되는가' 그리고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뭔가를 부여할 때는 너무 이상적이면 되지 않는데' 경계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방망이 깎는 장인'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계속 곡을 만들고 계속 노래할 텐데 최대한 지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 얘기를 많이 하시잖아요. 근데 물 들어올 때 노만 젓다가 전완근이 잘못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장기 레이스라 생각하고 이걸 꾸준히 할 수 있는 선이 어디인지를 찾아가는 게 어떤 직종이든 똑같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그걸 찾아서 노래를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윤하 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운은 진짜 맞다고 생각을 해요. 운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요즘 너무 감사한 건 저의 팬분들이에요. '홀릭스'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이분들이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가수가 슬럼프를 겪는 것도 보시고, 회사를 바꾸면서 헤매는 모습도 보시고,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함께 나눠주셨는데 사실 가족이 아니면 (사람을) 포기하게 되잖아요. 죄송했던 적도 많아요. 근데 뭐라고 할지언정 떠나지 않으시고 이 가수를 계속 키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있죠. 가끔 그 부분을 생각하면 울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어느 정도 레벨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지지해주신 것이 되게 감사한 일이죠. 매진된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할 때는, 결혼은 아직 안 해봤지만 결혼식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식 같은 거 하면 일가 친척이 이렇게 많았나라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냥 스치듯 지나갔던 분들까지 다 오셔가지고 '축하해' 하시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번 앨범 가사에 영어가 거의 없어요. 우리말, 한글 위주로 많이 쓰십니다. '새녘바람'(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노래 제목을 처음 보기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록스타를 동경해오다 보니까 '나는 왜 해외에서 안 태어났지' 같은 생각도 들었어요. 무조건 밴드가 기반이 되고 기타를 들면 인기가 있는 나라들이 있잖아요. 어린 마음에 원망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시대가 그냥 좀 달랐던 것뿐이구나 생각해요. 인터넷으로 세계가 열려 있고 BTS도 엄청 활약하고 있고 우리나라 가수들이 국위선양도 하면서 한국 음악을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이제는 너네도 한번 부러워해 봐라' 마음이 들어요. '이런 예쁜 말들이 우리에게 있어' 같은 거죠. 나만의 매력, 우리만의 매력을 찾다가 제가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외국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거니까 여기에 좀 더 자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노래에 부득이 영어가 들어가야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로켓이라는 단어 같은 경우이거나, 뉘앙스와 리듬을 살리는 데 있어서 쓰긴 하죠. 하지만 가능하면 우리말로 작업을 하려고 해요."

-다른 모든 곡은 윤하 씨 홀로 작사를 하셨는데 '은화'는 동생이신 고윤진(프로덕션 아르뜨락 대표) 씨가 공동 작사가로 이름을 올렸어요.

"가사 몇 줄이 남아있는 상태였어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작가를 하고 있는 동생에게 '좋은 거 생각나면 몇 줄이라도 적을 수 있겠니'라고 물어봤고 그렇게 완성이 됐습니다."

-'은화'는 아코디언, 휘슬, 장구, 꽹과리 등 다양한 악기들이 사용됐어요.

"'은화'는 제 아이디어로만 된 곡이 아니에요. 혼자서는 절대 만들 수 없었어요. 실연자도 저자권에 들어가야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의 곡이거든요. 멀티 악기들을 다루는 친구들이 신나서 악기들을 다 가져와 이만큼 펼쳐 놓고 '골라 보시면 연주 해보겠습니다' 해서 완성이 됐어요. 재밌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론 탐구에 진심인 거 같습니다.

"작업의 동력이 호기심이요. 제겐 탐구하는 게 되게 '노다지의 영역'이에요. 전 고등학교를 제대로 안 나와서 검정고시를 봤죠. 사실 중학교도 사실은 오디션 보느라 띄엄띄엄 다녔어요. 대학은 교수님이 좋아서 졸업을 시켜주셨죠.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사실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배우면서 즐겁다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오락 외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이 영역에 발을 들이고 막 이것저것 보다 보니까 알고리즘엔 죄다 그런 것만 뜨거든요. 봐도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학자분들이 말씀하시는 건 비유하기도 되게 좋고요. 또 요즘 리스너분들도 엄청 수준이 높으시잖아요."

-이번 앨범과 지난 앨범의 가장 큰 차별점은 무엇이었나요?

"이번엔 좀 더 화려했으면, 좀 더 체감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6집 앨범은 '인셉션'처럼 어떤 무의식이나 꿈에 들어와서 같이 듣는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이번 앨범은 그냥 정말 바다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면 했어요. 같이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고, 이게 이게 판타지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믹스를 하는 데 있어서도 보컬을 뒤로 밀거나 그러지 않고 평평하게 앞으로 가져오는 방식들을 사용했습니다."

-개복치와 본인이 닮은 점이 있나요?

"수면에서부터 심해까지 헤집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제가 되게 많은 것들에 손을 대는 거랑 비슷하거든요. 특히 음악적으로 욕심이 너무 많아서 욕심이 생기면 장르마다 파고드는 느낌이 있어요. 발라드, 록부터 힙합은 막 해보지 않았지만 피처링도 해 보고 패셔너블한 음악도 해보고, EDM도 해 봤죠. 그러다 보니까 '윤하 하면 뭐가 떠오르냐'는 질문에 세대에 따라서 답이 엄청 갈리더라고요. '사건의 지평선'이 잘 되면서 중간으로 모이긴 했지만 항상 어느 장르에서나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다 장르마다 뿌리를 갖고 계신 분들이 있으니까요. 개복치도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3부작은 처음부터 기획된 건지 궁금해요. 정규 6집 '엔드 띠어리'가 3부작 시작이고 이번 '그로우스 띠어리'가 그 중간이죠.

"처음엔 3부작을 생각하고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엔드 띠어리' 하나로 끝낼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비즈니스 관계로 인해 얘기가 나왔고 근데 이것도 아이디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끝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희망적으로 풀어나가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주('엔드 띠어리')에서 이번에 바다, 지구('그로우스 띠어리')로 왔으니까 다음에는 좀 더 작은 공간으로 이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집이라든지, 군락이라든지, 가족이라든지요."

-음악을 안 하셨으면 과학자가 됐을까요?

"공부를 못해 가지고 안 됐을 것 같습니다. 하하."

-들으면 본인 스스로 힘이 나는 자신의 곡이 있나요?

"제 노래를 엄청 찾아듣지는 않는데 가끔 알고리즘이 뜨거나 주변에서 이야기해서 우연히 다시 듣게 되는 경우는 있어요. 특히 '혜성'은 10년 전엔 너무 창피했거든요. 패션도 이상했고 어깨는 좁아가지고 성냥개비 같은 모습으로 '난 지지 않겠어' 눈빛으로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근데 얼마 전에 노래 영상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저 나이에 일본에 혼자 가서 저러고 있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움을 주셨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팬분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면서 고맙게 느껴지더라고요. 걔(예전 윤하)가 일본에 갔으니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요."

-예전 윤하 씨는 생각이 많고 성숙하지만 좀 어둡고 염세적이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더 밝고 여유가 있어 보여요.

"예전엔 혼자 답을 내리려고 했어요. '중2병'처럼 그게 뮤지션의 숙명 같은 거라고 생각을 했나 봐요. 근데 요만큼의 세상을 가지고 답을 내리려니까 뭐가 안 맞는 거예요. 조금씩 확장이 되고 소통하는 방법을 지금 대표님(C9엔터테인먼트 이재영 대표)이 좀 알려주셨어요.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이 이런 거다'라는 걸 많은 대화를 통해서 알려주셨죠. 그렇게 제가 아는 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구나를 깨닫게 되니까. 그때부터는 엄청 신이 나더라고요. '답을 내가 내리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 '그냥 이렇게 몸을 맡기면 되는 거였어' '아직 나도 모르는 게 많고 알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니까 희망도 생겼어요."

-20년은 사람으로 따지면, 성인이 될 나이입니다.

"중견 느낌이 날까 봐 걱정할 수 있는데 조용필 선생님은 55주년이시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한없이 애기겠죠. 지금을 만끽하는 것이 20주년에 맞는 모습인 것 같아요. 좀 지나다 보면 '청춘이 없다'라고 느낄 거 같거든요. 앞으로 제 음악세계에 이제 시작점처럼 느껴집니다."

-콘서트계 성지인 케이스포돔에도 입성하셨는데 또 이루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우선 '재밌게 생각하고 재밌게 하자'가 첫 번째인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일이 너무 많은데 감당하지 못할 거 같아요. 무엇을 할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이 있잖아요. 예전엔 '난 이것만 하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그냥 이거 다 하는 거다. 재밌게 하자' 생각해요. 20주년의 마음가짐이죠."

-자신이 보고 느낀 걸 계속 음악으로 승화해서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 표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은 없나요?

"그 부분에 예전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었거든요. 이제는 좀 정리가 된 거 같아요.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간 저만 그렇다는 착각을 계속하고 살았어요. '예술가의 숙명은 얼마나 쓸쓸한가. 내 생각이나 사념을 가질 수가 없고 계속 화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이런 생각도 했었죠. 가만히 주변을 관찰해 보면 다 그러고 사는 거죠. 저만 특별히 힘든 건 아니구나를 알게 됐어요."

-윤하 씨 데뷔 당시만 해도 윤하 씨 음악은 '서브 컬처' '마니아 문화'로 분류됐어요. 근데 윤하 씨는 주류로 부상을 했고 그간 서브컬처로 여겨지던 문화들도 메인 스트림에 올라왔죠.

"너무 신나죠. QWER이 나왔을 때도 너무 좋았어요. 친구들이 너무 잘했지만 '이런 게 된다고?'라는 생각도 들었죠. '봐 이런 게 된다고 했잖아' 같은 마음도 들고요. 하하. 제가 좋아하는 감성에 '뭔가 아쉽다'고 하시거나 '메이저 느낌은 아니다'라고 반응하셨어요. '메이저 느낌이라는 게 대체 뭔데'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거든요. 또 해외 가수들도 거장급이 아니면 한국에 잘 오지 않는 것도 아쉬웠어요. 작은 홀(hall)을 도는 가수들이 오는 경우가 없으니까요. 다양한 일본 가수들도 한국 에 오지 않는 것도 불만인 부분이 있었고요. 근데 이제 다양한 가수들이 와도 매진이 되고 작은 홀에서도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좋아요."

-만약 아이돌 그룹과 협업을 한다고 했을 때 딱 한 팀만 고른다면요.

"저는 에스파입니다. 네 에스파에게 꼭 전해주세요. 멋있잖아요. 그리고 에스파도 세계관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협업하면) 뭔가 재미있는 걸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디즈니, 픽사 캐릭터도 협업하는 경우들도 있으니까요. 특히 어떻게 카리나를 거부할 수 있나라는 생각입니다. 카리나 짱입니다. 카리나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하."

-이번 음반에 대한 개인 만족도는요.

"마스터에서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100% 만족합니다. 듣는 분들이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신 것 같은 느낌'을 가지셨으면 해요. 어제도 댓글 보니까 '나는 이미 해적왕이다'라고 반응해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살아가면서 별일이 다 있잖아요. 생각지도 못한 돌발적인 일들이 벌어질 때 많고요. 저도 그런 상황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것이 일상에서 반복되는 수준일 때엔 좌절감이 말도 못하게 찾아오죠. 그런 상황에서 어디 하나 의지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이 앨범이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추가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요즘 프로듀싱의 영역으로 가볼까라는 생각도 좀 들어요. 현실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계속 퍼포먼스를 유지하면서 할 수 있나 생각이 들거든요. 물론 노력은 하겠지만, 체력적인 한계도 있으니까요."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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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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