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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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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어쩔 수 없이 '글래디에이터2'(11월13일 공개)의 적은 '글래디에이터'(2000)다. 막시무스를 기억하는 이들은 신작을 전작과 끊임없이 비교할 것이다. 아내와 자식을 잃은 채 노예 검투사가 됐고 심신을 다해 모신 주군마저 떠나 보낸 영웅. 이 남자의 마음 속에서 들끓는 파토스가 '글래디에이터'의 핵심이었고, 당연히 관객은 후속작이 전편을 뛰어 넘는 정념의 에너지를 보여주길 기대할 게 뻔하다. 그러나 리들리 스콧(Ridley Scott·87) 감독은 그럴 생각이 크지 않은 듯하다. 물론 24년만에 돌아온 새 영화 역시 복수극. 그러나 이 노장은 복수를 결론 내리는 대신 복수를 발판 삼아 현재를 근심하고 미래를 꿈꾸는 데 공을 들인다. '글래디에이터'가 파토스의 영화였다면, '글래디에이터2'는 이를 테면 로고스의 영화다.


'글래디에이터2' 역시 전작처럼 그리스 신화에 원형을 두고 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거라는 신탁을 피하기 위해 테베에서 버려진 왕자가 운명처럼 테베로 돌아와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돼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오이디푸스 신화처럼, 암살 위협을 피해 로마에서 버려진 황제의 손자가 운명처럼 로마로 돌아와 황제가 되는 클래식한 이야기(양아버지를 죽이긴 하지만 어머니와 결혼하진 않는다)다. 아프리카 누미디아의 군대 지휘관 하노는 로마와 전쟁에서 패해 노예로 전락하고, 검투사가 돼 복수를 다짐하며 콜로세움에 선다. 그리고 그때 그 막시무스처럼 하노 역시 로마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의 출생과 과거에 얽힌 비밀이 하나 둘 드러나게 된다.

1편 제작비는 약 1억300만 달러. 2편은 3배인 3억1000만 달러(약 4360억원)를 들였다. 규모로 압도하는 건 물론 2세기 로마를 세공하듯 담아낸 기술력은 티켓 가격이 싸게 느껴질 정도다. "그 당시 로마의 냄새가 날 정도로 고증에 공을 들였다"는 스콧 감독의 말은 호들갑이 아니다. 이 시리즈의 시그니쳐 메뉴인 콜로세움 전투 장면은 까다로운 관객까지 만족시킬 것이다. 빼어나지 않은 액션이 없지만 그래도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살라미스 해전 모의 전투다. 콜로세움의 60% 크기 세트를 만든 뒤 물을 채워 실제 배를 띄우기까지 했다. 이런 럭셔리한 볼거리와 함께 하노를 비롯한 주요 캐릭터 서사가 빠른 속도로 맞물려 돌아가기에 상영 시간 148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같은 엔터테인먼트에 더해 나락으로 떨어진 막시무스의 마음에 관객을 동화시키는 게 '글래디에이터'였다면, '글래디에이터2'는 극한의 오락과 함께 루시우스(하노), 마크리누스, 아카시우스와 루실라, 카라칼라·게타 황제가 얽히고 설킨 다자 대결 상황을 관객이 오늘날 사회에 비춰 보길 유도한다. 안으로 썩어 들어가면서도 밖으로 근육을 뽐내는 듯한 난세 로마는 현실 세계 난맥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혼란을 더 거대한 카오스로 몰아가는 이들이 권력에 근접하고, 어떻게든 질서를 세우려는 이들이 그들의 이상향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양상 역시 유사하다. '글래디에이터2'는 폭압에 의해 쫓겨난 이가 폭력을 통해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음에도 그걸 스스로 내려놓는 담대한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올바른 미래를 상상해보는 듯하다.

'글래디에이터2'의 이 방향은 어느 정도 납득되는 것이긴 해도 관객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전작을 극장에서 본 관객은 노인의 근심과 설교가 아니라 전사의 비애와 카리스마를 이 영화에서 또 한 번 목격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다고 '글래디에이터'에 관한 추억이 없는 젊은 관객을 온전히 사로잡기에도 힘이 부쳐 보인다. 분명 야심 가득한 스토리이고 구조와 캐릭터가 명쾌한 이야기이긴 하나 온갖 액션 시퀀스와 함께 2시간30분 안에 담아내기 위해 얼렁뚱땅 넘어 가는 대목이 적지 않다. 심플하게 '막시무스 대 콤모두스'였던 전작과 달리 후속작엔 다양한 캐릭터 간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엮여 있고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세밀한 전개는 일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폴 메스칼, 덴절 워싱턴, 페드로 파스칼 등 배우들은 기대했던대로 빼어난 연기를 한다. 루시우스를 연기한 메스칼은 이 부담스러운 역할을 맡아 자신이 왜 티모시 샬라메, 오스틴 버틀러 등과 함께 차세대 슈퍼스타로 불리는지 증명한다. 덴절 워싱턴은 역시나 덴절 워싱턴이고, 파스칼의 연기에선 위엄과 품격이 느껴진다. 이들이 이렇게 열연하는데도 막시무스 러셀 크로우가 보여줬던 포스와 콤모두스 호아킨 피닉스의 악랄함엔 미치지 못한다. 막시무스가 콜로세움에서 투구를 벗고 정체를 밝힐 때, 극장 안 공기가 뒤바뀌던 순간을 경험한 관객은 이번에도 유사한 전율을 기대할 테지만 이 명장면에 비견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라는 요구는 다소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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