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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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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960년대를 풍미한 영국 팝스타 겸 배우 메리앤 페이스풀이 별세했다. 향년 78. 대표곡 '애즈 티어스 고 바이(As Tears Go By)'로 기억되는 그녀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롤링스톤스' 음악에 영감을 준 뮤즈로도 유명하다.

1월31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페이스풀은 30일(현지시간) 고향인 영국 런던에서 별세했다. 유족은 "고인이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페이스풀은 1964년 롤링스톤스 프런트맨 믹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가 작곡한 '애즈 티어스 고 바이'를 부르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재거와는 내밀하면서도 괴로운 관계를 이어갔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을 떠나 1966년부터 재거와 사귀기 시작했고 그와 동거했다.

이들은 1960년대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신나는 런던)(1960년대 젊은이들 주도로 낙관주의·쾌락주의가 넘치며 역동적이었던 런던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의 화려하고 악명 높은 커플이었다.

특히 페이스풀은 1967년 롤링스톤스 멤버들과 마약 스캔들로 타블로이드지를 장식했다. 이 사건으로 재거와 리처드는 잠시 감옥에 갇혔고, 페이스풀은 타블로이드 신문에 "스톤스 파티에서 벌거벗은 여자"로 소개됐다. 페이스풀은 이 별명에 대해 수치스럽고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겼다.

라이더 슈트를 입은 여성의 원형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 받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주연의 '모터사이클을 탄 소녀'(1968·국내 개봉 제목은 '그대 품에 다시 한번')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도 나섰다.

1970년 재거와 헤어진 뒤 그와 사귄 여파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져 20대 중반엔 노숙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76년 앨범 '드리밍 마이 드림스(Dreamin' My Dreams)'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1979년엔 역작으로 평가받는 앨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를 발매했다. 격정적인 '와이드 야 두 잇(Why'd Ya Do It)'과 "죄책감을 느껴요"라고 외치는 '길트(Guilt)' 등이 실린 음반이다. 고인의 마지막 앨범은 2021년 내놓은 '쉬 웍스 인 뷰티(She Walks in Beauty)'다.

페이스풀은 세 번 결혼했다. 매혹적인 그녀는 그 가운데도 계속 열애설이 났다. 재거가 그녀의 가장 유명한 연인이었지만, 수많은 톱스타들과 염문을 뿌렸다. 리처드와도 스캔들이 있었고 영국 글램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 미국 싱어송라이터 진 피트니(Gene Pitney)와도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포크록 대부 밥 딜런은 그녀에 대한 노래를 쓸 정도로 사랑에 빠졌지만 당시 임신 중이었던 페이스풀은 그의 사랑을 거절했다.

무엇보다 페이스풀은 '쉬 스마일드 스위틀리(She Smiled Sweetly)', '렛츠 스펜드 더 나이트 투게더(Let's Spend the Night Together)' 등 롤링스톤스의 수많은 노래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롤링스톤스의 대표곡 중 하나인 '심퍼시 포 더 데블(Sympathy for the Devil)'의 기초가 된 러시아 소설가 미하일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The Master and Margarita)를 재거에게 빌려준 이도 페이스풀이었다.

재거는 고인의 부고 소식 이후 소셜 미디어에 "메리앤 페이스풀의 죽음을 듣고 너무 슬프다. 그녀는 오랫동안 제 삶의 일부였다. 그녀는 훌륭한 친구이자 아름다운 가수이자 훌륭한 배우였다"고 기억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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