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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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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경찰과 마약상 사이를 오가는 건달, 타락한 검사, 부패한 정치인, 나락으로 떨어진 형사, 안하무인이 된 권력자의 자식, 약에 절은 배우. 이들의 물고 물리는 관계. 디테일이 조금씩 다를 순 있어도 영화 '야당'(4월16일 공개)의 구도는 익숙하다. 레이먼드 챈들러 식(式)으로 이야기하자면 여기는 "비열한 거리"다. 명예를 아는 남자 필립 말로가 없기에 그나마 덜 비열해 보이는 건달, 일명 야당으로 불리는 이강수(강하늘)가 정의 구현에 나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공했을 때 정의가 덤으로 구현되는 복수를 시작한다.
이런 한국영화가 호황을 누린 게 2010년대다. '부당거래'(2010) '베테랑'(2015) '내부자들'(2015) '마스터'(2016) '검사외전'(2016) 등은 '야당'과 직접 맥이 닿아 있는 선배들이다. 꼭 한국영화가 아니더라도 이런 류의 영화는 어디서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이 상투(常套)와 답습은 '야당'의 약점이다. 게다가 현실은 픽션을 압도한다. 경찰과 마약상 사이에서 브로커 역할을 한다는 야당이라는 존재는 언뜻 새로워 보이나 10년 사이 대통령 탄핵을 두 번 경험하고 이 과정에서 온갖 아사리판을 지켜본 관객에게 영화가 그리는 전형적인 비열한 세계는 큰 충격을 주지 못한다.
'야당'에서 구태보다 더 좋지 않은 건 인간미의 결여다. 다시 말해 이 작품엔 사건은 있는데 정작 사람이 없다. 황병국 감독은 러닝타임 123분을 한시도 지루하지 않게 하겠다는 듯 쉬지 않고 사건을 이어 붙인다. 다만 사건을 몰아치기 데 집중하고 있을 뿐 정작 그 사건들에 엮여버린 사람들의 마음이나 관계에 관해선 관심이 없다. 그래서 관객은 이강수가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하고, 이강수와 구관희의 관계나 이강수와 오상재의 관계를 알지 못한다. '야당'의 인물들은 그렇게 사건을 만들어내기 위한 부품으로 전락한다. 관객이 마음 붙일 캐릭터 없이 진행 속력만으로 영화적 쾌감이 만들어질 순 없다.
강하늘·유해진·박해준·류경수 등은 이름값에 걸맞는 연기를 하고, 그들의 연기는 분명 '야당'의 최대 장점이다. 이들 연기의 실감은 이 영화의 기시감 강한 구성과 전개, 도식화 된 캐릭터와 관계의 부재를 일부 만회해 줄 정도다. 다만 이 작품에서 그들의 연기가 앞으로 종종 회자될 정도의 퍼포먼스였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이들은 애초에 각 인물을 더 깊이 파고 들어 가거나 넓게 확장해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부여 받지 못했다. 관객은 강하늘·유해진·박해준·류경수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 이상의 연기력을 갖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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