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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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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선택지가 많다는 것, 그게 좋아요."
배우 설경구(58)는 평범하지 않은 것에 끌린다고 했다. 예상을 벗어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 그게 재밌다고 했다. 일반적인 감정을 쓰지 않을 때 다양한 표현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게 바로 그런 거죠." 그러고 보면 설경구가 이전에 연기했던 정치인·연쇄살인범·깡패·아버지·형사 등은 모두 범상치 않았다.
디즈니+ 시리즈 '하이퍼 나이프'의 최덕희는 아마도 설경구가 연기한 캐릭터 중에서도 유독 평범하지 않고 예상을 벗어나 있으며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제자의 모든 걸 빼앗아버리면서도 내 모든 걸 내어주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혐오하면서도 유일하게 존중하며, 욕을 하고 때리는 건 물론이고 협박도 일삼는 스승이니까 말이다. 설경구 역시 최덕희를 "비정상적인 괴물"이라고 했다.
"게다가 제자 정세옥과 관계도 애증이라는 말로 다 표현이 안 되죠. 복잡하고 묘합니다. 혐오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연민하죠. 자신의 옹졸함에 대한 죄책감도 있어요. 닫혀 있던 마음을 처음 열어줬기에 고마움도 있고요. 딱 떨어지는 말로 정의할 수 없는 캐릭터이고, 관계이기 때문에 재밌는 거죠."
'하이퍼 나이프'는 뇌에 문제가 생긴 최덕희가 제자 정세옥에게 수술을 요청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최덕희는 세계 최고 뇌 신경외과 전문의. 그가 사실상 유일하게 인정하는 의사가 제자 정세옥이다. 하지만 최덕희는 과거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정세옥이 더는 수술할 수 없게 만들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의사 면허까지 잃게 한다. 하지만 자신을 수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정세옥 외엔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최덕희는 이른바 쉐도우 닥터로 불리며 음지에서 몰래 수술을 하며 살아가던 그를 찾아가 수술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지만 정세옥은 최덕희를 향해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외치며 요구를 무시한다. "분명 사제 관계인데, 선을 한참 넘어 있죠. 서로 물리적인 공격을 하잖아요. 전 그게 후련하더라고요."
설경구는 이 작품에서 세옥을 맡은 배우 박은빈과 호흡했다. 이 시리즈의 독특함에 끌리면서 동시에 이런 작품을 박은빈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더 마음이 갔다고 했다. "당시에 출연이 확정된 상태는 아니었는데, 박은빈씨가 이걸 한다고 상상해보니까 참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만난 박은빈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설경구는 "많은 촬영을 했지만 상대 배우와 이렇게 얘기를 많이 한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촬영 현장에서, 촬영이 끝난 뒤 숙소로 돌아와서, 전화로, 메신저로 쉬지 않고 말했다. "작품 얘기도 했고, 일상에 관한 얘기도 했습니다. 서로를 알아간 거죠. 전 박은빈씨가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대화를 통해 확인한 건 우리가 이 작품에 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 시리즈는 워낙 독특해서 연출·작가·배우가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게 매우 중요했거든요. 박은빈씨도 그걸 알고 있었고, 서로 대화하면서 그걸 확인한 거죠." 설경구는 그런 박은빈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다.
설경구는 박은빈과 이 미친 사제 관계를 표현하는 동시에 죽어가는 최덕희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걸 위해 그는 또 한 번 체중을 조절했다. 약 10㎏을 감량해 극 초반부와 후반부 최덕희의 얼굴을 다르게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최덕희의 얼굴은 딱 봐도 1회와 8회가 다르다. 설경구는 어떤 배우보다 살을 찌우고 빼는 데 능하지만 이번 감량은 쉽지 않았다고 했다. 효율적인 촬영이 중요한 시리즈 특성상 극 중 시점을 자주 오가며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
"와, 이건 정말 섭섭했어요.(웃음) 전 저대로 죽어가는 걸 표현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촬영 스케줄상 이게 조정이 안 되니까…일단 무턱대고 빼기 시작한 거죠. 이거 힘들더라고요. 영화에선 살을 먼저 빼놓고 그 다음에 찍을 수 있는데, 시리즈는 촬영하면서 살을 빼야 하니까요. 아무튼 이게 제 마음대로 표현을 할 수 없게 되니까 참 힘들었어요. 나중엔 연출부를 죽이고 싶더라고요.(웃음)"
설경구는 체중에 변화를 주는 게 배어 있다고 했다. 자신이 아직도 자신을 설득하지 못하는 게 바로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창피해서 연기를 못한다고 했다.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책임감 같은 게 아니에요. 그렇게 안 하면 제가 너무 쪽팔려요."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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