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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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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드뷔시 '달빛'(Clair de Luna)은 확실하면서도 은밀한 서곡이었다. 드라마틱한 색소폰 소리는 비밀을 숨겨둔 암호 같았다.
'카이트 워(Kite War)'부터 그 기밀이 풀렸다. 지난 7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한국 간판 밴드 '혁오(HYUKOH)'와 대만 대표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의 합동 무대는 밴드 공연이 세상의 비밀을 누설하는 신비로운 소리의 합(合)이라는 걸 증험(證驗)케 한 자리였다.
두 밴드에게 음악이 곧 삶에 대한 태도였다. 전자는 메이저급 한국 내 반응에도 마이너 감성과 개성으로 단독자(單獨者)의 길을 가고 있고, 후자는 대만의 퇴폐적이면서 낭만적인 슬픔을 보고하고 있다.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 모두 그렇게 2020년대 한국 청춘 사회의 진단서가 된다. 혁오는 이번이 4년 만에 국내 콘서트인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밴드로 자리매김하는 이유다.
이번 무대는 두 팀의 열 멤버가 마치 셰르파가 된 듯한 장면을 연출한 커버를 내세운 협업 앨범 'AAA' 발매를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공연은 이 음반의 수록곡, 각 팀의 대표곡을 번갈아가며 연주했다. 초반 선셋롤러코스터의 '버건디 레드(Burgundy Red)', 'AAA'에 실린 '영 맨(Young Man)', 혁오의 '굿바이 서울(Goodbye Seoul)'을 연이어 들려주는 형식이었다.
거의 토크 타임 따로 없이 음악만으로 직진했다. 드럼을 대열의 양 꼭짓점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형식을 취한 열 명의 뮤지션들은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연주로 정체불명의 매력적인 사운드를 직조해냈다.
간결한 가사가 만들어내는 긴 서사들, 이해 이전에 귀를 먼저 빨아들이는 선율들,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안기는 빤하지 않은 편곡들. 이렇게 두 밴드는 기타, 베이스, 퍼쿠션, 신시사이저 그리고 색소폰 등 각자 음악의 근원적 기질로 음악 아닌 요소들을 소환해내며 음악이 될 때까지 몰아붙이는 힘을 보여줬다.
천막집 같은 흰 배경, 조명과 연기 등을 사용한 원시적인 대형 모닥불 형체 등 무대 연출가 여신동의 미니멀하면서도 공감각적인 공간 구성을 비롯 스타일링 디렉터 김예영, '글루(Glue)' 뮤직비디오의 감독 DQM, '안테나(Antenna)' 뮤직비디오 감독 라푸(Rafhoo)가 힘을 모은 시각적 요소도 눈길을 풍부했다.
'리틀 발코니(Little Balcony)'에서 새가 현재 공연 무대를 바라보는 듯한 부감숏을 스크린에 띄우거나, '뉴 드럭(New drug)' 가사를 스크린 속에서 스마트폰 음원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을 재생시켜 보여주는 것이 신선한 예였다. '캔들라이트(Candlelight)' 때는 마치 조명이 촛불처럼 무대를 비췄다.
아울러 '글루(Glue)', '와이(Y)' 등 'AAA'에 실린 곡들의 황홀경을 지나 혁오의 '뉴 본(New Born)'에선 마치 씨줄과 날줄의 역사를 엮는 듯한 사운드의 정경이 펼쳐지더니 병풍처럼 무대를 지켰던 천막이 걷히고 빛으로 점철된 사이키델릭한 풍경이 찾아왔다. '안테나(Antenna)'에선 특히 두 밴드가 마주 보며 교감하는 존중의 화룡점정 순간들이 묻어났다.
본 공연 마지막에 선셋 롤러코스터의 감미로운 곡 '바닐라 빌라(Vanilla Villa)', 혁오의 대히트곡 중 하나인 '톰보이'를 들려줄 때 팬들은 객석에서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합창했다.
앙코르에서도 절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혁오의 '러브 야!(LOVE YA!)', 선셋롤러코스터의 '마이 진지(My Jinji)'는 익숙한 곡임에도 마치 처음 경험하는 듯한 마법을 빚어냈다. '마이 진지'를 마치고 멤버들은 '서울'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나와 객석과 인사했다. 멤버들이 퇴장하는 가운데 궈궈가 허밍으로 들려준 '2F 영맨(Young Man·年轻人)'의 여운의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는 각각 한국과 대만 음악계 최전방이다. 두 밴드 사이의 거리가 곧 아시아 음악의 반경이다. 음악에 국적이 없듯 이들에겐 경계가 없었다. 좋은 공연은 이렇게 사유의 한계도 넘나든다. 올해가 아직 3개월 넘게 남았지만, 2024년 최고의 수작 콘서트를 우리는 이미 만났다.
이번 공연은 8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열렸다.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한다. 같은 달 14~15일 타이베이 뮤직센터를 거쳐 10월10일 도쿄, 12일 마닐라, 18일 쿠알라룸푸르, 11월2일 방콕, 6일 홍콩, 18일 시드니, 20일 멜버른 등에서 진행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카이트 워(Kite War)'부터 그 기밀이 풀렸다. 지난 7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한국 간판 밴드 '혁오(HYUKOH)'와 대만 대표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의 합동 무대는 밴드 공연이 세상의 비밀을 누설하는 신비로운 소리의 합(合)이라는 걸 증험(證驗)케 한 자리였다.
두 밴드에게 음악이 곧 삶에 대한 태도였다. 전자는 메이저급 한국 내 반응에도 마이너 감성과 개성으로 단독자(單獨者)의 길을 가고 있고, 후자는 대만의 퇴폐적이면서 낭만적인 슬픔을 보고하고 있다.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 모두 그렇게 2020년대 한국 청춘 사회의 진단서가 된다. 혁오는 이번이 4년 만에 국내 콘서트인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밴드로 자리매김하는 이유다.
이번 무대는 두 팀의 열 멤버가 마치 셰르파가 된 듯한 장면을 연출한 커버를 내세운 협업 앨범 'AAA' 발매를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공연은 이 음반의 수록곡, 각 팀의 대표곡을 번갈아가며 연주했다. 초반 선셋롤러코스터의 '버건디 레드(Burgundy Red)', 'AAA'에 실린 '영 맨(Young Man)', 혁오의 '굿바이 서울(Goodbye Seoul)'을 연이어 들려주는 형식이었다.
거의 토크 타임 따로 없이 음악만으로 직진했다. 드럼을 대열의 양 꼭짓점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형식을 취한 열 명의 뮤지션들은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연주로 정체불명의 매력적인 사운드를 직조해냈다.
간결한 가사가 만들어내는 긴 서사들, 이해 이전에 귀를 먼저 빨아들이는 선율들,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안기는 빤하지 않은 편곡들. 이렇게 두 밴드는 기타, 베이스, 퍼쿠션, 신시사이저 그리고 색소폰 등 각자 음악의 근원적 기질로 음악 아닌 요소들을 소환해내며 음악이 될 때까지 몰아붙이는 힘을 보여줬다.
천막집 같은 흰 배경, 조명과 연기 등을 사용한 원시적인 대형 모닥불 형체 등 무대 연출가 여신동의 미니멀하면서도 공감각적인 공간 구성을 비롯 스타일링 디렉터 김예영, '글루(Glue)' 뮤직비디오의 감독 DQM, '안테나(Antenna)' 뮤직비디오 감독 라푸(Rafhoo)가 힘을 모은 시각적 요소도 눈길을 풍부했다.
'리틀 발코니(Little Balcony)'에서 새가 현재 공연 무대를 바라보는 듯한 부감숏을 스크린에 띄우거나, '뉴 드럭(New drug)' 가사를 스크린 속에서 스마트폰 음원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을 재생시켜 보여주는 것이 신선한 예였다. '캔들라이트(Candlelight)' 때는 마치 조명이 촛불처럼 무대를 비췄다.
아울러 '글루(Glue)', '와이(Y)' 등 'AAA'에 실린 곡들의 황홀경을 지나 혁오의 '뉴 본(New Born)'에선 마치 씨줄과 날줄의 역사를 엮는 듯한 사운드의 정경이 펼쳐지더니 병풍처럼 무대를 지켰던 천막이 걷히고 빛으로 점철된 사이키델릭한 풍경이 찾아왔다. '안테나(Antenna)'에선 특히 두 밴드가 마주 보며 교감하는 존중의 화룡점정 순간들이 묻어났다.
본 공연 마지막에 선셋 롤러코스터의 감미로운 곡 '바닐라 빌라(Vanilla Villa)', 혁오의 대히트곡 중 하나인 '톰보이'를 들려줄 때 팬들은 객석에서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합창했다.
앙코르에서도 절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혁오의 '러브 야!(LOVE YA!)', 선셋롤러코스터의 '마이 진지(My Jinji)'는 익숙한 곡임에도 마치 처음 경험하는 듯한 마법을 빚어냈다. '마이 진지'를 마치고 멤버들은 '서울'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나와 객석과 인사했다. 멤버들이 퇴장하는 가운데 궈궈가 허밍으로 들려준 '2F 영맨(Young Man·年轻人)'의 여운의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는 각각 한국과 대만 음악계 최전방이다. 두 밴드 사이의 거리가 곧 아시아 음악의 반경이다. 음악에 국적이 없듯 이들에겐 경계가 없었다. 좋은 공연은 이렇게 사유의 한계도 넘나든다. 올해가 아직 3개월 넘게 남았지만, 2024년 최고의 수작 콘서트를 우리는 이미 만났다.
이번 공연은 8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열렸다.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한다. 같은 달 14~15일 타이베이 뮤직센터를 거쳐 10월10일 도쿄, 12일 마닐라, 18일 쿠알라룸푸르, 11월2일 방콕, 6일 홍콩, 18일 시드니, 20일 멜버른 등에서 진행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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