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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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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전, 란'은 제목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전란(戰亂)이라는 말에 쉼표를 넣어 전과 란으로 나눠 놓은 덴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싸움 전(戰). 이 말은 '전, 란'이 액션 영화라는 걸 명확히 하는 듯하다. 종려와 천영의 개인적 다툼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음은 어지러울 란(亂). 이 낱말은 단순 액션 영화에 그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패러다임을 둘러싼 혼란상을 담아낸다. 일견 두 패로 나눠진 듯하나 영화 속 주요 인물은 모두 그들의 시대를 각기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제목엔 없지만 '전, 란'은 단어 하나를 더 보여준다. 다툼 쟁(爭). 그 모든 주장이 충돌하며 다툼이 벌어진다는 걸 상징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말하자면 '전, 란'은 전란이라는 말에 담긴 전쟁의 뉘앙스를 최대한 무력화한다. 그래서 임진왜란 7년이 완전히 생략돼 있다. 다만 이 영화가 제목에 담아낸 목표를 온전히 달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강동원은 여지 없이 아름답다. '형사 Duelist'(2005) '전우치'(2009) '군도:민란의 시대'(2014)를 거치며 사극 액션의 정점을 보여준 이 배우는 '전, 란'에서도 도포자락 휘날리며 극 전체를 장악하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 영화엔 적지 않은 액션 시퀀스가 나오는데, 강동원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중심 역할을 하며 '戰의 영화'로서 스펙터클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강동원이라는 럭셔리가 선사하는 화려함에 비해 전체 액션의 신선도는 그리 높지 않다. 종반부 해무 액션 등 새롭게 보이는 대목도 있으나 남다른 감각이나 끓어오르는 에너지 같은 건 대체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개가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는데도 보는 이를 몰아붙인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건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구석이 그만큼 넓게 퍼져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게다가 액션과 붙어다니는 통역은 유머러스하기보다는 종종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신분 차이로 엇갈린 두 남자의 운명을 그리는 것 같았던 '전, 란'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해 보였던 왜란이라는 격변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방식으로 야심을 드러낸다. 결국 이 작품의 목표는 기존 시스템이 급격히 흔들리던 시대를 배경으로 그 체제의 미래에 관해 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종전 후 다시 세워야 할 조선의 체계를 둘러싸고 각기 다른 주장을 가진 캐릭터를 잇따라 충돌시킨다. 말하자면 공고했던 시스템이 뿌리 채 흔들리는 시기로 왜란 전후를 택했을 뿐이라는 거다. 그러고 나서 기존 패러다임을 수호하려는 자와 파괴하려는 자, 그래도 인정하려는 자와 어쩔 수 없이 포기해버린 자, 그리고 탈출하려는 자와 전환을 시도하는 자를 그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운명을 향해 밀어 붙이며 전진한다. 그 끝에서 '전, 란'은 어느 한 쪽의 손을 명백히 들어줌으로써 생각보다 더 명쾌하게 의도를 드러낸다.


하려는 이야기는 딱 떨어지지만, 그 과정이 치밀하지 않아 '亂의 영화'로서 매력은 그리 크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액션 영화의 의무를 넘치게 이행해야 했기 때문에 각 인물의 생각과 그 변화 과정 등을 정교하게 담아내진 못했다. 어떤 부분들은 얼렁뚱땅 넘어 가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르는 과정과 최종 클라이맥스를 급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은 이 스토리를 얄팍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전, 란'은 이 이야기를 바로 지금 이 순간 관객에게 왜 들려줘야 하는지 설득하지 못한다. 수구보수 세력과 진보개혁 세력의 대결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시기와 무관하게 언제든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사극이라고 해도 동시대의 디테일을 담아 내지 못한다면 동어반복이라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다.


'전, 란'의 약점을 상쇄하는 건 배우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들의 연기가 최대한 돋보일 수 있게 충분히 판을 깔아 준다. 강동원·박정민·김신록·진선규 등 출중한 연기력을 가진 출연진 가운데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새삼스럽지만 차승원이다. 차승원은 시대의 변화와 민중의 요구를 애써 외면한 채 시대착오적 관념 안에 또아리를 틀고 들어 앉은 선조의 몽매를 그 큰 몸에 어떤 위엄도 담지 않은 채 표현해낸다. 많은 배우가 선조를 포함해 조선의 무능하고 무기력한 왕을 연기해왔고, 앞으로도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될 배우들이 나올 것이다. 이 때 차승원의 선조는 가장 싱싱한 참고 자료가 돼 줄 것이다. '우리들의 블루스'(2022) '폭군'(2024) '전, 란'(2024)을 이어 오는 최근 차승원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그의 경력에 새로운 챕터가 열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 란'은 10월1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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