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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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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은 세상에 피투(彼投)돼 전투(戰鬪)를 하며 기투(企投)한다.
독일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을 현존재라 정의하며 피투와 기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썼다. 거칠게 피투와 기투를 구분하면 피투는 불안하게 내던져진 수동적인 삶, 기투는 그럼에도 생산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능동성을 가리킨다.
이승윤이 24일 오후 6시 발매하는 정규 3집 '역성'엔 그럼에도 기투하며 살아가는 흔적이 역력하다. 삶의 전투에선 계속 패배할지 몰라도 전쟁에선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 그가 패배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편에 서는 '역성'을 드는 이유다.
이 역성은 어떤 언어 요소를 그 어원적인 구조와는 다르게 분석하는 역성(逆成)이기도 하다. 모두가 바로 보기만 강조하는 시대에 조금은 '삐뚜루'(삐뚤게) 봐도 괜찮다는 심리적 위안을 이승윤이 우리에게 안기는 이유다.
'역성'에는 선발매 앨범에 수록된 '폭죽타임', '검을 현', '캐논', '내게로 불어와', '28k 러브(LOVE)!!', '리턴매치', '솔드 아웃(SOLD OUT)', '폭포'를 비롯해, '인투로', '역성', '스테레오', '까만 흔적', '너의 둘레', '끝을 거슬러',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 등 신곡 일곱 곡을 더해 총 열다섯 곡이 담긴다.
더 확연해진 밴드 사운드는 빛나는 순간들을 휘두르다 버린 시대와 세상에 대한 '역성'의 칼날이 된다. 그건 우리가 삶을 기투하는 무기가 된다. 다음은 최근 서울 강남구에서 기자들과 이승윤이 만나 나눈 일문일답.
-정규 3집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최종 마스터링을 10월10일까지 했거든요. 작년 2023년 4월부터 준비를 해서 꼬박 1년6개월 걸렸어요. '잘 끝냈다'는 후련함과 동시에 '이런 앨범을 만들었다니'라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처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작곡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막연하게 만들고 싶었던 영역의 어떤 노래들이 있었는데 그걸 구현하고 실현해냈어요. 많은 상황·여건·시기가 잘 맞아야 되는 거라서 딱 이 타이밍에서만 만들 수 있는 앨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타를 잡았던 꼬맹이가 드디어 이런 앨범을 만들었구나' 생각도 했습니다."
-예전부터 만들고 싶던 영역의 노래라고 말씀을 주셨는데, 정확히 어떤 영역인가요?
"이번 앨범에 담긴 열다섯 곡의 규모나 가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설득력 그리고 노래를 구성하고 있는 악기와 연주와 프로듀싱의 어떤 밀도의 총합입니다."
-승윤 씨의 매력 중 하나는 가사가 시적이면서 직설적이라서 이해도 쉽다는 건데요. 영감은 어디서 받으세요?
"화날 때 가사를 많이 쓰고요. 가사가 '시적이어야 된다'는 강박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이승윤스러움'이 조금은 담겼으면 좋겠다 싶어서 최대한 조금이라도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는 문장으로 전환하는데 공을 많이 들입니다."
-이번엔 그 화남의 대상이 누구인가요?
"열린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 대상을 한정짓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역성이라는 단어를 제가 사용했던 이유는 개개인마다 다 '역성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예요. 또 역성엔 대항하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저는 그게 거꾸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봐요. 단순히 흑백이 아니라 무지갯빛 속에서도 서로 대항해야 될 이야기가 있고 저항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역성의 순간이 오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역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도감이 있어서 그렇지 저는 상황별로 역성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되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역성이라는 단어가 '역성혁명'할 때 역성(易姓)도 있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는 일이라는 단어의 뜻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두 가지의 의미를 다 담아서 앨범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타이틀곡 역성은 어떤 감정으로 쓰신 곡인가요?
"이 앨범의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곡 중에 하나인데요. 앨범을 만들고서 관통하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가 하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마지막에 작곡한 노래예요. 세상엔 단순히 흑과 백의 논리만 있는 건 아니죠. 골목 대장이 쓰는 왕관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해요. 근데 진짜 왕관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누군가는 그 왕관을 빛내주기 위해 보석이 돼야 하고, 궤변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저희가 슬로건이 돼야 되는 상황들을 마주하죠. '일단 왕관을 쓰십시오. 누리십시오. 궤변을 하십시오. 그러나 이번 한 번만큼은 저희들의 목소리를 내겠습니다'라는 생각으로 썼던 노래입니다."
-이 앨범 제목 '역성'도 그렇게 가벼운 단어는 아니거든요. 앞서 말씀하신 '거창해지지 말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엄청 거창한 사람이라서요. 저는 거창한 이야기를 자꾸만 하는 사람이라서 저를 다독이기 위해서 거창해지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제가 저를 현실주의자라고 자꾸 다독이는 것은 제가 너무 지독한 꿈을 꾸는 사람이고 지독한 이상을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이상론을 계속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내가 하는 말이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땅에 발을 붙이고서 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거창해지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 어쩌다 보니 또 거창한 노래를 만들게 됐습니다."
-'인투로' 속 피투랑 기투는 하이데거에서 갖고 오신 건가요?
"네, 피투돼 기투된다는 말은 알고 있었고 되게 인상 깊게 되새기면서 살아가게 하는 문장이었는데 사실 이 단어를 차용한 건 되게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이 곡의 데모를 가짜 영어로 만들었는데 피츄 기츄 이렇게 발음을 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피투, 기투가 떠올라 시작이 된 노래입니다. 곡은 제가 밴드하던 시절에 공연 때 인트로로 쓰려고 한 인스트로멘털이 조금 있었어요. 그것의 제목이 인트로였습니다. 피투, 기투를 통해서 노래를 해야겠다라는 맥락을 잡은 다음에 지구도 자기가 왜 도는지 모르는 채로 그냥 도는데 일단 '내가 돌아야 될 것들은 다 돌아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죠. 만들다 보니까 인트로에도 가장 적합한 곡이고 또 이 앨범을 시작하면서 내뱉는 포부로서도 가장 적합한 곡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재 자체는 승윤 씨 노래에서 계속 화두가 되는 지점 같아요. 이번 앨범을 만드시면서 존재에 대한 답을 좀 찾으셨나요?
"답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저렇게 길게 한 겁니다. 피투라는 것은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단 존재하게 됐다'는 내용이고, 기투라는 것은 그렇게 내던져진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떻게 내 삶을 내 스스로 내던지면서 살 것인가인데 단순히 피투, 기투를 한다라는 말만으로 이 존재 선택의 삶의 양태 문제를 다 설명할 수는 없어요. 이렇게 멋들어진 문장으로 다 텍스트화를 시킬 수 없는 것 같고, 결국 피투와 기투라는 용어를 쓰긴 썼지만 난 내 인생을, 내 존재를 어차피 함축할 수 없고 일축할 수 없고 텍스트화 할 수 없으니 그냥 걸어가 보겠다라는 뜻으로 쓴 곡입니다."
-승윤 씨는 보통 대중음악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을 많이 쓰십니다. 그런 단어들은 채집을 해두시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잠재돼 있다가 나오는 건가요? 아니면 따로 디렉터리가 있나요?
"세 가지 다인 것 같습니다. 어떤 단어가 있으면 일단 메모장에 적어놓고 그 단어를 가지고서 말이 안 되는 문장이라도 일단 써놓습니다. 잊어먹고 살다가 가사를 쓸 때 이 맥락에 이 단어가 들어가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때 그 단어를 꺼내와서 쓰는 것 같습니다. 안 쓰는 단어를 써야지 해서 쓴다기보다 이 노래 맥락에 들어가면 좋겠다라고 해서 써요."
-가사, 생각 쪽으로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누군인가요?
"음악 자체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너무 많은 가수들의 모티브를 빌려온다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데 가사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음악은 브릿팝을 기반으로 오아시스, 콜드플레이, 유투, 비틀스, 레드제플린 영향을 너무 크게 받았고 또 이적의 노래, 이승환의 노래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승윤 씨 노래는 이지 리스닝이나 대중적인 음악이 아니라 해석과 생각이 좀 더 필요한 노래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제 노래는 저 총균쇠예요. 그냥 아무도 안 읽는 데 꽂혀 있는 책 같은. 농담입니다. 저는 '슈퍼 이지 리스닝'이 됐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 '하드 리스닝'으로 가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는 것뿐이고 그리고 엄청 하드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냥 무난한 정도의 이지함을 요하는 곡인데, 제가 좀 더 열심히 살아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5곡 중 '역성'을 제외하고 공을 가장 많이 들인 곡이나 작업을 하면서 좀 쉽지 않았다라고 느낀 곡은 무엇인가요?
"쉽지 않았던 곡은 '스테레오'요. 10년 전부터 구상만 하던 곡이었는데 LRLR(레프트 라이트 레프트 라이트) 장르가 다르게 나오다가 마지막에 스테레오로 펼쳐지는, 그래서 '너가 이어폰을 한쪽만 꽂고 있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구상만 하다가 이번 앨범에 한번 시도를 해봤어요. 너무 재미있게 잘 나온 것 같아요. 또 제가 악기들을 정말 맥시멀 리스트로 넣는 창작자다 보니까 '끝을 거슬러',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에 악기를 와장창 넣어놓고서 배열을 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문학적 상상력이 되게 중요해진 때가 됐는데 승윤 씨 가사엔 문학적인 텍스트도 많아요. 그 근간이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아울러 '좋은 노랫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또 노랫말을 쓰실 때 나, 너 그렇게 주로 설정이 돼 있고 3인칭은 거의 안 쓰시는 것 같아요. 이유가 있습니까?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어휘를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지독히 뭔가 이상적인 어떤 것을 놓지 못하는 성격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최대한 직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서 그 이상과 현실 사이를 자꾸 줏대없이 오가는 그 와중에 어떤 글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좋은 노랫말은 듣기 좋으면 좋은 노랫말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좋은 것이야'라고 범주화해서 그 범위를 너무 축소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또 어떤 건 권위를 주고 어떤 거는 얕잡아보고 이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벼운 노랫말도 무거운 노랫말도 그냥 듣는 사람이 좋으면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화자 설정에 나와 너를 자주 쓰는 이유는 제가 3인칭을 이야기할 만큼 큰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는 제 방구석에서 파생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그래도 나눌 수 있다면, 우리 정도로 할 수 있지 누군가를 대상으로 제가 글을 쓸 만한 그릇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승윤 씨 하면 '싱어게인'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싱어게인 이후 고민 지점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일단 고민하는 지점은 싱어게인 질문을 안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에요. 달라진 점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3집을 완성시키고 자부심을 느끼고 '이 앨범을 내기 위해 음악을 했지'라고 스스로 뿌듯할 수 있는 상황과 또 여러 사람들과 여러 마음들이 모아진 시점이라는 거요."
-'싱어게인'에 대해선 고민을 안 할 수 없는 지점이 고민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이 그런가요?
"마냥 좋고 너무 감사한 프로그램이었죠. 음악을 그만둬여 하는 고민을 하던 시점이었으니까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근데 오디션 출신이라는 캐릭터는 주어진 역할이 커버곡을 부르는 거고 그리고 대부분의 방송 매체에서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할보다는 이미 알려진, 이미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를 여러 가지 음색으로 여러 가지 이미지로 다시 보여주는 게 안전한 방법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옛날에 버스킹 할 때도 커버곡을 안 불렀었거든요. 명곡을 부른 다음에 제 노래를 부르면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시키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요. 단독 공연을 하면서도 제 노래만 부르면서 이렇게 3집까지 낼 수 있다는 지점이 가장 달라진 것이고, 그런 저와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여전히 감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영향받은 밴드들 많이 말씀 주셨는데 갈수록 밴드 사운드가 강해지고 있어요. 특히 이번 앨범 특징은 밴드 멤버들(조희원, 지용희, 이정원)이 작곡 크레디트에 똑같이 이름을 올렸다는 건데요. 공동 창작을 중요시하게 되신 건지 아니면 밴드 사운드가 강해지다 보니까 그렇게 명기하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일단 저는 밴드맨이 되고 싶어서 음악을 시작했고, 밴드 형식을 차용한 음악을 하기 위해서 음악을 시작했는데 여건이 안 돼서 어쿠스틱 기타를 하나를 들고 다니면서 공연을 했습니다. 혼자 할 때도 '이건 밴드 음악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만들었고 다만 구현을 못할 뿐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음악을 했어요. 2집 때 정말 많은 도움을 친구들에게 구했는데 그 친구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명함이 없더라고요. 기타 세션, 드럼 세션으로 크레디트를 전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번엔 아예 작곡단계에서 같이 해야 더 많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곡 때부터 방에 가둬놓고서 같이 작업을 했습니다."
-꿈을 이루셨다고 하셨는데 이제 사실 오히려 꿈을 이루고 나면 더 앞으로가 막막한 거잖아요.
"이번 앨범은 단말마(斷末摩)를 생각하고 만들었고요. 굉장한 현실주의자라서, 제가 체념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있어서 '다음에 무엇을 해야 돼' 보다 '지금 이걸 진짜 잘해야지' 생각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승윤 씨 하면 또 야생마 이미지가 강하죠. 그 야생마는 세상에 길들여졌나요?
"길들여진 척하면서 반하는 앨범을 지금 잘 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독일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을 현존재라 정의하며 피투와 기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썼다. 거칠게 피투와 기투를 구분하면 피투는 불안하게 내던져진 수동적인 삶, 기투는 그럼에도 생산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능동성을 가리킨다.
이승윤이 24일 오후 6시 발매하는 정규 3집 '역성'엔 그럼에도 기투하며 살아가는 흔적이 역력하다. 삶의 전투에선 계속 패배할지 몰라도 전쟁에선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 그가 패배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편에 서는 '역성'을 드는 이유다.
이 역성은 어떤 언어 요소를 그 어원적인 구조와는 다르게 분석하는 역성(逆成)이기도 하다. 모두가 바로 보기만 강조하는 시대에 조금은 '삐뚜루'(삐뚤게) 봐도 괜찮다는 심리적 위안을 이승윤이 우리에게 안기는 이유다.
'역성'에는 선발매 앨범에 수록된 '폭죽타임', '검을 현', '캐논', '내게로 불어와', '28k 러브(LOVE)!!', '리턴매치', '솔드 아웃(SOLD OUT)', '폭포'를 비롯해, '인투로', '역성', '스테레오', '까만 흔적', '너의 둘레', '끝을 거슬러',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 등 신곡 일곱 곡을 더해 총 열다섯 곡이 담긴다.
더 확연해진 밴드 사운드는 빛나는 순간들을 휘두르다 버린 시대와 세상에 대한 '역성'의 칼날이 된다. 그건 우리가 삶을 기투하는 무기가 된다. 다음은 최근 서울 강남구에서 기자들과 이승윤이 만나 나눈 일문일답.
-정규 3집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최종 마스터링을 10월10일까지 했거든요. 작년 2023년 4월부터 준비를 해서 꼬박 1년6개월 걸렸어요. '잘 끝냈다'는 후련함과 동시에 '이런 앨범을 만들었다니'라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처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작곡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막연하게 만들고 싶었던 영역의 어떤 노래들이 있었는데 그걸 구현하고 실현해냈어요. 많은 상황·여건·시기가 잘 맞아야 되는 거라서 딱 이 타이밍에서만 만들 수 있는 앨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타를 잡았던 꼬맹이가 드디어 이런 앨범을 만들었구나' 생각도 했습니다."
-예전부터 만들고 싶던 영역의 노래라고 말씀을 주셨는데, 정확히 어떤 영역인가요?
"이번 앨범에 담긴 열다섯 곡의 규모나 가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설득력 그리고 노래를 구성하고 있는 악기와 연주와 프로듀싱의 어떤 밀도의 총합입니다."
-승윤 씨의 매력 중 하나는 가사가 시적이면서 직설적이라서 이해도 쉽다는 건데요. 영감은 어디서 받으세요?
"화날 때 가사를 많이 쓰고요. 가사가 '시적이어야 된다'는 강박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이승윤스러움'이 조금은 담겼으면 좋겠다 싶어서 최대한 조금이라도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는 문장으로 전환하는데 공을 많이 들입니다."
-이번엔 그 화남의 대상이 누구인가요?
"열린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 대상을 한정짓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역성이라는 단어를 제가 사용했던 이유는 개개인마다 다 '역성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예요. 또 역성엔 대항하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저는 그게 거꾸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봐요. 단순히 흑백이 아니라 무지갯빛 속에서도 서로 대항해야 될 이야기가 있고 저항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역성의 순간이 오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역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도감이 있어서 그렇지 저는 상황별로 역성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되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역성이라는 단어가 '역성혁명'할 때 역성(易姓)도 있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는 일이라는 단어의 뜻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두 가지의 의미를 다 담아서 앨범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타이틀곡 역성은 어떤 감정으로 쓰신 곡인가요?
"이 앨범의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곡 중에 하나인데요. 앨범을 만들고서 관통하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가 하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마지막에 작곡한 노래예요. 세상엔 단순히 흑과 백의 논리만 있는 건 아니죠. 골목 대장이 쓰는 왕관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해요. 근데 진짜 왕관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누군가는 그 왕관을 빛내주기 위해 보석이 돼야 하고, 궤변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저희가 슬로건이 돼야 되는 상황들을 마주하죠. '일단 왕관을 쓰십시오. 누리십시오. 궤변을 하십시오. 그러나 이번 한 번만큼은 저희들의 목소리를 내겠습니다'라는 생각으로 썼던 노래입니다."
-이 앨범 제목 '역성'도 그렇게 가벼운 단어는 아니거든요. 앞서 말씀하신 '거창해지지 말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엄청 거창한 사람이라서요. 저는 거창한 이야기를 자꾸만 하는 사람이라서 저를 다독이기 위해서 거창해지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제가 저를 현실주의자라고 자꾸 다독이는 것은 제가 너무 지독한 꿈을 꾸는 사람이고 지독한 이상을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이상론을 계속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내가 하는 말이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땅에 발을 붙이고서 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거창해지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 어쩌다 보니 또 거창한 노래를 만들게 됐습니다."
-'인투로' 속 피투랑 기투는 하이데거에서 갖고 오신 건가요?
"네, 피투돼 기투된다는 말은 알고 있었고 되게 인상 깊게 되새기면서 살아가게 하는 문장이었는데 사실 이 단어를 차용한 건 되게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이 곡의 데모를 가짜 영어로 만들었는데 피츄 기츄 이렇게 발음을 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피투, 기투가 떠올라 시작이 된 노래입니다. 곡은 제가 밴드하던 시절에 공연 때 인트로로 쓰려고 한 인스트로멘털이 조금 있었어요. 그것의 제목이 인트로였습니다. 피투, 기투를 통해서 노래를 해야겠다라는 맥락을 잡은 다음에 지구도 자기가 왜 도는지 모르는 채로 그냥 도는데 일단 '내가 돌아야 될 것들은 다 돌아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죠. 만들다 보니까 인트로에도 가장 적합한 곡이고 또 이 앨범을 시작하면서 내뱉는 포부로서도 가장 적합한 곡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재 자체는 승윤 씨 노래에서 계속 화두가 되는 지점 같아요. 이번 앨범을 만드시면서 존재에 대한 답을 좀 찾으셨나요?
"답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저렇게 길게 한 겁니다. 피투라는 것은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단 존재하게 됐다'는 내용이고, 기투라는 것은 그렇게 내던져진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떻게 내 삶을 내 스스로 내던지면서 살 것인가인데 단순히 피투, 기투를 한다라는 말만으로 이 존재 선택의 삶의 양태 문제를 다 설명할 수는 없어요. 이렇게 멋들어진 문장으로 다 텍스트화를 시킬 수 없는 것 같고, 결국 피투와 기투라는 용어를 쓰긴 썼지만 난 내 인생을, 내 존재를 어차피 함축할 수 없고 일축할 수 없고 텍스트화 할 수 없으니 그냥 걸어가 보겠다라는 뜻으로 쓴 곡입니다."
-승윤 씨는 보통 대중음악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을 많이 쓰십니다. 그런 단어들은 채집을 해두시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잠재돼 있다가 나오는 건가요? 아니면 따로 디렉터리가 있나요?
"세 가지 다인 것 같습니다. 어떤 단어가 있으면 일단 메모장에 적어놓고 그 단어를 가지고서 말이 안 되는 문장이라도 일단 써놓습니다. 잊어먹고 살다가 가사를 쓸 때 이 맥락에 이 단어가 들어가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때 그 단어를 꺼내와서 쓰는 것 같습니다. 안 쓰는 단어를 써야지 해서 쓴다기보다 이 노래 맥락에 들어가면 좋겠다라고 해서 써요."
-가사, 생각 쪽으로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누군인가요?
"음악 자체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너무 많은 가수들의 모티브를 빌려온다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데 가사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음악은 브릿팝을 기반으로 오아시스, 콜드플레이, 유투, 비틀스, 레드제플린 영향을 너무 크게 받았고 또 이적의 노래, 이승환의 노래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승윤 씨 노래는 이지 리스닝이나 대중적인 음악이 아니라 해석과 생각이 좀 더 필요한 노래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제 노래는 저 총균쇠예요. 그냥 아무도 안 읽는 데 꽂혀 있는 책 같은. 농담입니다. 저는 '슈퍼 이지 리스닝'이 됐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 '하드 리스닝'으로 가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는 것뿐이고 그리고 엄청 하드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냥 무난한 정도의 이지함을 요하는 곡인데, 제가 좀 더 열심히 살아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5곡 중 '역성'을 제외하고 공을 가장 많이 들인 곡이나 작업을 하면서 좀 쉽지 않았다라고 느낀 곡은 무엇인가요?
"쉽지 않았던 곡은 '스테레오'요. 10년 전부터 구상만 하던 곡이었는데 LRLR(레프트 라이트 레프트 라이트) 장르가 다르게 나오다가 마지막에 스테레오로 펼쳐지는, 그래서 '너가 이어폰을 한쪽만 꽂고 있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구상만 하다가 이번 앨범에 한번 시도를 해봤어요. 너무 재미있게 잘 나온 것 같아요. 또 제가 악기들을 정말 맥시멀 리스트로 넣는 창작자다 보니까 '끝을 거슬러',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에 악기를 와장창 넣어놓고서 배열을 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문학적 상상력이 되게 중요해진 때가 됐는데 승윤 씨 가사엔 문학적인 텍스트도 많아요. 그 근간이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아울러 '좋은 노랫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또 노랫말을 쓰실 때 나, 너 그렇게 주로 설정이 돼 있고 3인칭은 거의 안 쓰시는 것 같아요. 이유가 있습니까?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어휘를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지독히 뭔가 이상적인 어떤 것을 놓지 못하는 성격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최대한 직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서 그 이상과 현실 사이를 자꾸 줏대없이 오가는 그 와중에 어떤 글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좋은 노랫말은 듣기 좋으면 좋은 노랫말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좋은 것이야'라고 범주화해서 그 범위를 너무 축소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또 어떤 건 권위를 주고 어떤 거는 얕잡아보고 이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벼운 노랫말도 무거운 노랫말도 그냥 듣는 사람이 좋으면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화자 설정에 나와 너를 자주 쓰는 이유는 제가 3인칭을 이야기할 만큼 큰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는 제 방구석에서 파생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그래도 나눌 수 있다면, 우리 정도로 할 수 있지 누군가를 대상으로 제가 글을 쓸 만한 그릇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승윤 씨 하면 '싱어게인'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싱어게인 이후 고민 지점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일단 고민하는 지점은 싱어게인 질문을 안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에요. 달라진 점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3집을 완성시키고 자부심을 느끼고 '이 앨범을 내기 위해 음악을 했지'라고 스스로 뿌듯할 수 있는 상황과 또 여러 사람들과 여러 마음들이 모아진 시점이라는 거요."
-'싱어게인'에 대해선 고민을 안 할 수 없는 지점이 고민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이 그런가요?
"마냥 좋고 너무 감사한 프로그램이었죠. 음악을 그만둬여 하는 고민을 하던 시점이었으니까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근데 오디션 출신이라는 캐릭터는 주어진 역할이 커버곡을 부르는 거고 그리고 대부분의 방송 매체에서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할보다는 이미 알려진, 이미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를 여러 가지 음색으로 여러 가지 이미지로 다시 보여주는 게 안전한 방법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옛날에 버스킹 할 때도 커버곡을 안 불렀었거든요. 명곡을 부른 다음에 제 노래를 부르면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시키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요. 단독 공연을 하면서도 제 노래만 부르면서 이렇게 3집까지 낼 수 있다는 지점이 가장 달라진 것이고, 그런 저와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여전히 감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영향받은 밴드들 많이 말씀 주셨는데 갈수록 밴드 사운드가 강해지고 있어요. 특히 이번 앨범 특징은 밴드 멤버들(조희원, 지용희, 이정원)이 작곡 크레디트에 똑같이 이름을 올렸다는 건데요. 공동 창작을 중요시하게 되신 건지 아니면 밴드 사운드가 강해지다 보니까 그렇게 명기하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일단 저는 밴드맨이 되고 싶어서 음악을 시작했고, 밴드 형식을 차용한 음악을 하기 위해서 음악을 시작했는데 여건이 안 돼서 어쿠스틱 기타를 하나를 들고 다니면서 공연을 했습니다. 혼자 할 때도 '이건 밴드 음악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만들었고 다만 구현을 못할 뿐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음악을 했어요. 2집 때 정말 많은 도움을 친구들에게 구했는데 그 친구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명함이 없더라고요. 기타 세션, 드럼 세션으로 크레디트를 전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번엔 아예 작곡단계에서 같이 해야 더 많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곡 때부터 방에 가둬놓고서 같이 작업을 했습니다."
-꿈을 이루셨다고 하셨는데 이제 사실 오히려 꿈을 이루고 나면 더 앞으로가 막막한 거잖아요.
"이번 앨범은 단말마(斷末摩)를 생각하고 만들었고요. 굉장한 현실주의자라서, 제가 체념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있어서 '다음에 무엇을 해야 돼' 보다 '지금 이걸 진짜 잘해야지' 생각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승윤 씨 하면 또 야생마 이미지가 강하죠. 그 야생마는 세상에 길들여졌나요?
"길들여진 척하면서 반하는 앨범을 지금 잘 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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