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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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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강풀 작가가 극본을 쓴 디즈니+ 시리즈 '조명가게'가 공개될 거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감독이 배우 김희원(53)이라고 했을 때 의아했다. 연기하던 사람이 연출을 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 중 한 명으로 김희원을 생각해본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를 아는 관객이라면 김희원을 '영화·드라마 가리지 않고 빼어난 연기를 하는 배우'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연출에 욕심이 있는 배우들이 종종 그 마음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알게 모르게 드러내는 것과 달리 김희원은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8부작인 '조명가게'의 전체 에피소드가 모두 공개된 뒤 만난 감독 김희원은 특유의 차분한 말투로 전체 시리즈는 물론 각 장면의 의도와 목표에 관해 풀어냈다. 어떤 사소한 물음에도 막힘이 없고,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우르려는 그의 태도를 보고 있으면 '이런 감각을 가진 사람이 왜 이제서야 연출을 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강풀 작가 앞에서 이 작품 모든 장면을 직접 다 연기해 보여주면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고 말할 땐 '이런 열정을 그간 잘도 숨겨 왔다'는 생각도 했다. 그에게 배우로 불리다가 감독으로 불리는 느낌에 관해 물었다. 김 감독은 "아직 실감을 못한다"면서도 "배우냐 감독이냐 그런 것보다는 김희원이라는 사람이 어떤 재미를 어떤 즐거움을 즐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출을 하겠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했나.

"늘 생각이 있었다. 연기를 할 때도 연출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다. 이런 건 이렇게 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거다."

김희원은 서울예대에서 연극 연출을 전공했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미 연극 연출을 한 적도 있다.

-그동안 왜 하지 않았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안 시켜 주더라.(웃음) 큰 돈이 들어가는 일이고, 누군가 결단을 해줘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배우는 시켜주더라.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 배우 생활을 시작한 거다."

-'조명가게'를 연출해보니 어땠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욕만 안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우가 왜 영역을 침범하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선입견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욕이 많지는 않더라."

'조명가게'는 강풀 작가가 2011년에 내놓은 웹툰이 원작이다. 어두운 골목길 끝에 정체불명의 조명가게와 그곳을 지키는 주인 그리고 이 가게를 찾는 수상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담았다. 초반부는 미스터리 호러 장르물처럼 보이지만 극이 진행되고 등장 인물 간 관계와 그들의 사연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하면 강풀 작가 특유의 인간을 향한 애정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조명가게'는 '무빙'(2023) 이후 디즈니+가 공을 들이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시리즈를 연출하는 데 부담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이 대본 받기 전에 단편영화를 준비 중이었다. 촬영하려고 사람 모으고 있었는데, 제안을 받게 된 거다. 처음부터 이렇게 큰 걸 해도 되나 싶었다. 단편영화는 내 돈 써서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조명가게'는 큰돈이 들어가는 작품이니까 이런 걸 해도 되는 건가 고민됐다."

-어쨌든 하기로 했다.

"요즘에 없는 이야기였다는 게 가장 컸다. 요샌 장르물이 많지 않나. 물론 '조명가게'도 초반부엔 장르물로 시작을 하지만 삶과 죽음, 정신 세계, 사후 세계, 의지와 의식 등 이런 얘기를 한다.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분명히 재밌을 것 같았다."

-강풀 작가는 연출을 해본 적 없는 배우 김희원에게 이 작품을 맡겼다. 왜 그런 건가.

"나도 물어봤다. 강풀 작가는 내가 '무빙'에서 연기를 가장 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나서 더 물어보진 않았다. 그 말은 내 생각에 이런 것 같다. '무빙'에서 최일환이라는 사람을 연기할 때,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초능력도 없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아이들을 지키려고 하는가였다. 아무리 선생이라고 해도 죽을 게 뻔한데 초능력자에 맞설 순 없는 것 아닌가. 강풀 작가한테 이해가 안 된다고, 이해가 안 돼서 연기를 안 하겠다고 했다. 강풀 작가는 최일환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존재감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우는 거라고 말하더라. 그런 모습이 드러나게 대본을 수정했다. 아마 그때 나한테 연출을 맡겨보자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 라고 나 혼자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쇼케이스 행사 때 '조명가게'를 연출한 뒤에 겸손해졌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지 더 설명해달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작가가 글을 써야 하고 연출이 해석해야 하고 누군가 돈을 대야 한다. 각 분야 스태프가 모여서 만들어야 하고 완성되면 홍보해야 하고 이렇게 기자들은 내 얘기를 기사로 쓴다. 이 모든 과정을 나 혼자 할 순 없다. 함께하는 사람이 없으면 하지 못한다. 연기도 그렇다. 나 혼자 모든 배역을 연기할 수 있나. 여러 배우가 모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겸손함을 배웠다."


-연출과 연기 둘 다 해보니까 어떤 게 더 맞는 것 같나.

"그건 내가 평가할 순 없다. 둘다 재밌다. 좋고 행복하다."

-그러면 어떤 게 더 힘든가.

"물리적으로는 연출이 훨씬 힘들다.(웃음) 정말 스트레스가 심하더라."

-강풀 작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극본과 콘티를 완성해갔다고 들었다. 의견 차이도 있었나.

"당연히 의견 차이도 있었다. 내가 강풀 작가를 귀찮게 했다. 새벽 2시에도 만나고 아침 6시에도 만났을 정도였다. 모든 신(scene)을 완벽에 가깝게 정리해놓고 촬영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야 촬영에 문제가 없지 않겠나. 1~8회까지 모든 장면을 내가 강풀 작가 앞에서 연기를 했다. 정말 다했다. 그러면서 강풀 작가와 맞춰 나갔다. 대사부터 배우 동선까지. 그렇게 콘티를 짰다. 일인극을 한 거다. 강풀 작가는 내가 1인다역하는 걸 보면서 웃으며 앉아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원작에 없던 내용이 추가됐고, 내가 원해서 넣은 장면들도 있다."

-당신이 추가한 장면 중에 대표적인 게 뭐가 있나.

"입관 장면이다. 그 장면이 우리 작품에서 꽤 길게 나오지 않나. 원래는 훨씬 더 길었다. 아무래도 이게 글로벌 플랫폼에서 공개되니까 한국 장례 문화를 더 자세히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분량 문제로 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삼일장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원작엔 없다."

-다음 작품을 연출할 때도 혼자 모든 장면을 다 연기해볼 생각인가.

"그럴 거다. 준비가 안 되면 현장에서 헤매게 되고 그러면 혼란스럽고 짜증이 난다."

-이번엔 연출만 했다. 글도 쓰고 연출도 할 생각은 없나.

"글쎄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나다면 쓰고 싶지만 그런 재주가 있는지 모르겠다."

-연출 제안과 연기 제안이 동시에 들어오면 뭘 하겠나.

"작품이 더 재밌는 걸 택할 거다."

-대화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당연하다. 얘기하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난 술을 못하니까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거 좋아한다. 사람은 같이 살아야 한다. 혼자 살 수 없다. 이렇게 인터뷰 하는 것도 소통 아니겠나. 늘 소통에 대해 생각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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