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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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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11월27일 공개)은 흡사 디스토피아 영화 같다. 세상을 종말로 몰아갈 자연재해가 닥친 것도 아니고 세상을 멸망시킬 힘을 가진 악당이 나타난 것도 아니지만 그곳에선 어쩐지 희망을 찾기가 어렵다. 디스토피아라는 말은 거창해보이지만, 대단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지역 사회가 서서히 쇠락하고, 관계가 각박해지며,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려 한다면 그게 디스토피아가 아니면 무엇일까.
박이웅(46) 감독이 그리고 있는 어촌이 그렇다. 이곳은 겉으로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안으로 심하게 곪고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람 중 한 명인 용수(박종환) 눈엔 생기를 잃은지 오래다. 그는 말한다. "이게 사람 사는 겁니까." 용수는 탈출해야 하고, 영국(윤주상)은 도피를 돕는다. 영국은 단순히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필사적으로 용수를 지원한다. 이 늙은이는 왜 이렇게까지 행동하나. 아마도 용수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일텐데 그렇다면 그는 왜 떠나지 않고 그 디스토피아에 남으려는 걸까.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바로 이 얘기를 한다. 침몰해 가는 세상, 떠나려는 자, 남으려는 자, 보내주는 자, 돌아온 자, 왔지만 떠나야만 하는자. 그들의 마음은 다 무엇일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작품으로 뉴커런츠상 등 3관왕에 오른 박 감독은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며 "내가 본 것들 그대로 보여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까지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개봉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같은 시기에 나오는 영화가 많아서 관객이 찾아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재밌게 봐주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불도저에 탄 소녀'(2022) 이후 두 번째 작품이다. 두 번째 영화는 데뷔작을 할 때와는 마음이 다를 것 같다.
"데뷔작을 할 땐 뭣도 모르고 찍은 것 같다. 그냥 찍었달까. 이번엔 약간 흔들리기도 했다. 자주 두드려 보면서 찍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첫 작품 할 때보단 여유가 있다. 그땐 많이 봐줘야 할텐데, 라는 걱정만 했다면 이젠 좋게 보는 분도 있고, 안 좋게 보는 분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됐다."
-흔들렸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글쎄, 처음 영화를 할 땐 한 장면 한 장면 완성하면서 그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 카메라 포지션은 하나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니까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이 없달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모든 요소마다 한 번 씩 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장면 구성 뿐만 아니라 캐스팅이나 현장에서 몇 마디 하는 것까지. 그렇게 되니까 작업이 조금 더뎌지더라."
-'불도저에 탄 소녀'보다 먼저 쓴 시나리오라는 얘길 들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가장 먼저 쓴 시나리오다. 2008년에 쓰기 시작했다. 취재하고 초고 완성하기까지 2년 정도 걸렸다. 그리고 나서 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 뒤에 세 달 정도 들여 다시 고쳤다. '아침바다 갈매기는'과 '불도저에 탄 소녀' 그리고 여기에 다른 시나리오를 3편 더 썼다. 그런데도 자꾸만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마음에 남더라. 자꾸 애착이 가니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게 됐나. 어촌 출신인가.
"아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지방 도시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어릴 때 '저 시골에 왜 살까' '서울에 와서 살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다. 이 호기심이 이 영화로 이끌었다. 초고는 용수가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곳에 남는 사람들'이었고, 그렇다면 떠나는 사람보다는 남는 사람이 주인공이 돼야 했다. 그 남는 사람을 먼저 보내기로 결심한 사람과 결국 보내기로 한 사람으로 나누게 됐다."
-서울 출신이라고 하기엔 어촌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다. 바닷마을을 택한 이유가 있나.
"우선 영화를 만들 거니까 어느 정도 스펙터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바다로 가야 더 볼거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보험 얘기가 나오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엮어 가려면 육지보다는 바다가 더 어울릴 거라고 본 거다. 앞서 말했듯이 난 서울에만 살았다. 무작정 취재를 갔고, 관찰한 것들을 이야기에 녹여냈다. 2008년에 보름 정도, 2009년에 보름 정도 동해안 마을을 훑었다. 항구에 차 대고 쪽잠 자면서 그곳에 있는 분들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취재하고 사진 찍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영화에 담겼다."
-그 취재가 10여년 전이다. 영화로 만들기 위해 다시 취재를 가진 않았나. 꽤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불도저를 탄 소녀' 끝나고 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두렵더라. 사실 이 시나리오는 완성이 안 된 것 아닌가. 이렇게는 안 된다고 판단해서 다시 동해안으로 갔다. 많이 변하진 않았더라. 하지만 변한 것도 분명히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이주 여성이 많아졌다는 거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영화 안으로 들어오게 됐고 영화가 일정 부분 확장됐다. 용수가 떠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영란을 만났기 때문이다. 영란이라는 캐릭터가 나타남으로써 용수가 마을을 떠나서 살 수 있는 곳이 생겼달까."
-쇠퇴하는 지역 사회, 떠나려는 사람과 그래도 남는 사람, 이주 여성 문제 그리고 이들의 개인사가 얽히고 설킨 이야기다.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엮여 가는 이 작품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메시지를 생각하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진 않는다.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들은 왜 그곳에 살고, 왜 떠나는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 뿐이다. 내가 발견한 것들을, 그것들만 보여주는 것이다. 음…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메시지라는 게 있다면 마지막 대목에서 영국의 대사가 아닐까 한다. '니들 종자나 걱정하고'라는 말.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결국 어느 커뮤니티의 쇠락에 관한 애기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엔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매우 개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내겐 이슈를 탐구해 들어가서 직접적으로 다룰 능력은 아직 없다. 이 영화가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아직까진 이 사회에 내가 도움줄 수 있는 게 그 정도인 것 같다."
-플래시백을 사용할 만도 한데 그런 것 없이 쭉 내달리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연출할 때 가장 중점을 둔 게 무엇이었나.
"플래시백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난 플래시백을 잘 쓸 줄 모른다. 플래시백을 쓰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고 관객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직 내겐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관객이 짐작할 수 있게 해야지, 의문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플래시백을 쓰는 건 꺼려진다. 그렇다면 과거를 현재에 적절히 녹여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마을에 남은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작품이니까, 그 마음을 보여줄 강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했다."
-윤주상·양희경 두 배우와 함께 그 강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두 배우와 어떤 과정을 거쳐 함께 작업하게 됐나. 익숙한 배우들이긴 하나 영화에 자주 나오지도 않고 주연을 맡은 적도 없는 배우들이다.
"윤주상 선배는 괴팍함과 친숙함을 모두 가지고 있다. 영국은 괴팍한 것에서 한 발 나아가 어떤 대목에서 폭력적이기도 하다. 관객이 영국의 이런 면을 이해하면서 계속 영화를 보려면 배우가 친숙해야 했다. 윤주상 선배가 딱이었다. 선배는 체력도 좋아서 배 위에서 연기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선장 역할에도 이물감 없이 녹아들었다. 판례는 이런 영국과 싸워야 한다. 역시 강한 캐릭터다. 다만 당당하면서도 귀엽고 따뜻한 면이 있어야 했다. 양희경 선배 외엔 그런 배우가 없더라. 이 두 분이 지금껏 보여준 연기의 총합은 물론이고 지금껏 보여주지 않은 면까지 이 영화에 담으려고 했다."
-두 배우와 소통은 어땠나. 두 배우는 맡은 캐릭터와 비슷한 나이이긴 하나 당신은 연배가 한참 어리다. 캐릭터에 관해 대화할 때 벽이 생길 수도 있지 않나.
"맞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상(狀)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배우들과 함께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분 배우가 그 과정에 언제나 적극 동참해줬고, 내가 보고 싶은 걸 찾아주기 위해 노력해줬다. 그래서 두 분께 정말 감사하다. 양희경 선배는 아무래도 체력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도 그걸 잘 알고 있으니까, 한 번 더 찍고 싶어도 망설여질 때가 있었다. 그러면 선배는 그걸 아시고 몇 번이고 다시 해줬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제목이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동요 '바다'에서 따온 걸로 알고 있다. 성석제 작가 단편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는다>와 관련이 있기도 한 걸로 안다.
"제목은 초고를 쓸 때부터 변하지 않았다. 이 영화의 정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 같았다. 이상하게 서글픈 느낌이 있다. 내겐 언제나 동요가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동요는 이상하게 다 서글프다."
-오프닝에 아침바다 갈매기가 나오기도 한다. 해가 뜨는 장면으로 시작한 오프닝이 해가 지는 장면으로 닫히는 클로징으로 이어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오프닝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그렇게 정했던 게 아니었다. 강릉에서 촬영할 당시에 바람이 많이 분 날이 있었다. 그날 촬영감독님께 바람에 뒤집어지는 바다를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바다를 갈매기와 함께 찍어놓았더라.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 영상을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앞에 붙여 보니까 갈매기의 모습이 풍파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 같기도 하더라. 어떻게든 날아오르려고 하는데 이기지 못하고 듯한 모습. 이 영화의 시각과 닮아 있었다. 엔딩의 경우 영국의 평범한 하루를 보여주고 싶었다. 해 지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길 바라지 않았다. 그저 똑같은 하루처럼 보이길 바랐다."
-저예산영화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작품이 담아낸 바다 위 장면은 꽤나 스케일이 커보인다.
"앞서 얘기했듯이 영화엔 어찌됐든 스펙터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다 위 장면을 반드시 찍어야 했다. 물론 주변에선 반대가 많았다. 힘든데다가 원하는 그림도 얻지 못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강행했다.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현장감이 잘 살아있는 장면을 찍으려고 노력했다. 윤주상 선배는 뱃멀미를 안 해서 괜찮았는데, 내가 멀미를 심하게 해서 참 힘들었다. 하지만 버티고 버텨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뽑아냈다고 본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더 큰 규모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나.
"하고 싶은 이야기에 맞춰 규모가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는 것이지 규모를 먼저 생각하진 않는다. 현재 써놓은 시나리오 중엔 50~70억원 정도가 필요한 작품도 있긴 하다. 어찌됐든 앞으로 만들 영화에도 역시 어디서 봤을 법한 사람들이 나오면서도 관객이 재밌게 따라올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다. 다만 어떤 가능성도 닫아두지 않으려고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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