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 CoinNess
- 20.11.02
- 0
- 0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콘서트가 이벤트가 된 세상이다. 기억이 아닌 기념의 자리로서 주로 존재한다. 공연장은 마음의 잔상(殘傷)을 지우는 곳이었는데, 스마트폰 카메라의 잔상(殘像)이 스치는 장소가 됐다.
답답한 상황 속에서 일종의 탈출구가 된 후자의 경우들도 물론 반긴다.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아일랜드 출신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 데이미언 라이스(Damien Rice·데미안 라이스)의 내한공연 두 번째 날은 전자의 상황이었다.
이렇게 어둡게 시작한 콘서트가 있었던가. 공연 출발은 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컴한 무대 위에선 라이스의 목소리와 건반 소리만 들리고, 무대 하수(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 왼편)에 붙어 있는 벽에서 라이스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스마트폰 빛이 새어나오면 관크(관객+크리티컬)가 되니 무대 위를 촬영하는 화면 없이 시작하는 공연이 됐다. '액시덴털 베이비(Accidental Babies)'의 애달픈 정서가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볼케이노' '엘리펀트' '델리킷'까지 라이스의 연주와 관객 심정의 유착 관계가 조용히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라이스가 무엇을 마실 때 객석에서 환호가 나오자 그는 영어로 "그냥 물"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이내 내일은 공연이 없으니까 오늘은 술 좀 마시겠다며 와인을 땄다. "뽕~" 코르크 마개가 열리자 팬들은 모두 깨닫는다. 그 다음 곡은 '치어스 달링(Cheers Darlin')'이라는 사실을.
또 하나의 사실은 라이스 공연은 세트리스트가 필요없다는 거다. 바로 전날 같은 장소에서 펼친 공연 곡 순서와도 다르다.
세트리스트를 보고 계획해온 감정에 맞춰 다소 안정된 감동을 받고자 한 이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 하지만 라이스가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지 묻자 곳곳에서 신청곡 제목이 쏟아졌다. '에이미(Amie)'를 낚아 챈 라이스는 '에스키모(Eskimo)' '나인 크라임스'까지 이어 불렀다. 히트곡들임에도 분위기가 잔잔하니, 한국 관객이 자랑하는 공연문화인 떼창이 파고들어갈 틈이 없었다.
라이스는 국내에서 라이스(Rice·쌀)라는 성(姓) 덕분에 '쌀아저씨'라는 애칭으로 통한다. 이 별명엔 그의 친근한 이미지도 한몫했다. 이날도 그런 꾸미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인 크라임스'를 끝낸 뒤 술을 너무 마셨다며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한 것이다. 이번 투어의 듀엣 무대와 연주를 맡고 있는 브라질 출신 첼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프란치스카 바레토(Francisca barreto)가 있어서 가능한 기회이기도 했다.
라이스의 공연에선 모든 곡이 그렇지만 특히 한국에선 빠지면 안 되는 곡이 있다. 영화 '더 클로저' OST로 사용돼 유명해진 '더 블로어스 도터(The Blower’s Daughter)'. 곳곳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중창단과 화음이 숭고한 느낌은 안긴 '비하인드 도즈 아이즈(Behind Those Eyes)'가 본 공연 마지막 곡이었는데 앙코르에서 근사한 잼(Jam)이 준비돼 있었다. 싱어송라이터 로이 킴과 해금 연주자 등이 무대 위에 올라 '아이 리멤버'를 함께 부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선물이었다. 특히 로이 킴은 평소 라이스를 롤모델로 꼽아온 만큼, 이번 무대는 더 특별했다.
사실 공연 전 음악 팬들 사이에선 로이 킴이 이번 무대에 오르지 않을까 기대감이 나왔다. 지난 11일 홍대 앞 클럽 스트레인지 프룻에서 라이스, 로이 킴을 비롯한 뮤지션들이 잼을 한 사실이 영상 등으로 퍼지면서 알려졌기 때문이다. 짜여진 스케줄, 세트리스트로만 움직이지 않고 이렇게 자유분방한 것이 라이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라이스는 이날 말도 비교적 많이 했는데 해방감 관련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혼란, 슬픔, 분노 등을 둘 곳이 없어 헤맸다는 라이스는 기타를 들고 문을 닫고 들어가 노래를 쓴 후 찾아온 해방감이 선물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 뒤로 너무 바빴고 자신의 내면을 느끼지 못했다가 멈춘 뒤 다시 원래의 감정을 돌아갔다는 게 그의 긴 얘기의 압축판이다. 그러면서 객석을 향해 당신을 당신이 하는 일로부터 구해달라고 했다.
그래 맞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다. (작년 '제15회 서울재즈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나서긴 했지만) 9년 만에 단독 내한공연한 라이스가 우리에게 다시 소환해준 공통된 감각의 기억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답답한 상황 속에서 일종의 탈출구가 된 후자의 경우들도 물론 반긴다.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아일랜드 출신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 데이미언 라이스(Damien Rice·데미안 라이스)의 내한공연 두 번째 날은 전자의 상황이었다.
이렇게 어둡게 시작한 콘서트가 있었던가. 공연 출발은 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컴한 무대 위에선 라이스의 목소리와 건반 소리만 들리고, 무대 하수(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 왼편)에 붙어 있는 벽에서 라이스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스마트폰 빛이 새어나오면 관크(관객+크리티컬)가 되니 무대 위를 촬영하는 화면 없이 시작하는 공연이 됐다. '액시덴털 베이비(Accidental Babies)'의 애달픈 정서가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볼케이노' '엘리펀트' '델리킷'까지 라이스의 연주와 관객 심정의 유착 관계가 조용히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라이스가 무엇을 마실 때 객석에서 환호가 나오자 그는 영어로 "그냥 물"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이내 내일은 공연이 없으니까 오늘은 술 좀 마시겠다며 와인을 땄다. "뽕~" 코르크 마개가 열리자 팬들은 모두 깨닫는다. 그 다음 곡은 '치어스 달링(Cheers Darlin')'이라는 사실을.
또 하나의 사실은 라이스 공연은 세트리스트가 필요없다는 거다. 바로 전날 같은 장소에서 펼친 공연 곡 순서와도 다르다.
세트리스트를 보고 계획해온 감정에 맞춰 다소 안정된 감동을 받고자 한 이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 하지만 라이스가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지 묻자 곳곳에서 신청곡 제목이 쏟아졌다. '에이미(Amie)'를 낚아 챈 라이스는 '에스키모(Eskimo)' '나인 크라임스'까지 이어 불렀다. 히트곡들임에도 분위기가 잔잔하니, 한국 관객이 자랑하는 공연문화인 떼창이 파고들어갈 틈이 없었다.
라이스는 국내에서 라이스(Rice·쌀)라는 성(姓) 덕분에 '쌀아저씨'라는 애칭으로 통한다. 이 별명엔 그의 친근한 이미지도 한몫했다. 이날도 그런 꾸미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인 크라임스'를 끝낸 뒤 술을 너무 마셨다며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한 것이다. 이번 투어의 듀엣 무대와 연주를 맡고 있는 브라질 출신 첼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프란치스카 바레토(Francisca barreto)가 있어서 가능한 기회이기도 했다.
라이스의 공연에선 모든 곡이 그렇지만 특히 한국에선 빠지면 안 되는 곡이 있다. 영화 '더 클로저' OST로 사용돼 유명해진 '더 블로어스 도터(The Blower’s Daughter)'. 곳곳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중창단과 화음이 숭고한 느낌은 안긴 '비하인드 도즈 아이즈(Behind Those Eyes)'가 본 공연 마지막 곡이었는데 앙코르에서 근사한 잼(Jam)이 준비돼 있었다. 싱어송라이터 로이 킴과 해금 연주자 등이 무대 위에 올라 '아이 리멤버'를 함께 부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선물이었다. 특히 로이 킴은 평소 라이스를 롤모델로 꼽아온 만큼, 이번 무대는 더 특별했다.
사실 공연 전 음악 팬들 사이에선 로이 킴이 이번 무대에 오르지 않을까 기대감이 나왔다. 지난 11일 홍대 앞 클럽 스트레인지 프룻에서 라이스, 로이 킴을 비롯한 뮤지션들이 잼을 한 사실이 영상 등으로 퍼지면서 알려졌기 때문이다. 짜여진 스케줄, 세트리스트로만 움직이지 않고 이렇게 자유분방한 것이 라이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라이스는 이날 말도 비교적 많이 했는데 해방감 관련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혼란, 슬픔, 분노 등을 둘 곳이 없어 헤맸다는 라이스는 기타를 들고 문을 닫고 들어가 노래를 쓴 후 찾아온 해방감이 선물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 뒤로 너무 바빴고 자신의 내면을 느끼지 못했다가 멈춘 뒤 다시 원래의 감정을 돌아갔다는 게 그의 긴 얘기의 압축판이다. 그러면서 객석을 향해 당신을 당신이 하는 일로부터 구해달라고 했다.
그래 맞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다. (작년 '제15회 서울재즈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나서긴 했지만) 9년 만에 단독 내한공연한 라이스가 우리에게 다시 소환해준 공통된 감각의 기억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댓글 0
추천+댓글 한마디가 작성자에게 힘이 됩니다.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