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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nNess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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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시스]이재훈 기자 =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 난 포기하지 않아요 / 그대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 없겠죠 /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
'마왕' 신해철(1968~2014)의 대표곡은 셀 수 없으나, 10주기 당일만큼은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내세워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꼭 10년 전인 2014년 10월27일 의료 사고로 46세의 나이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더 이상 이제 우리가 아파하지 않기를 하늘에 있는 그가 바랄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으니까.
㈜넥스트유나이티드·㈜드림어스컴퍼니가 신해철의 10주기를 맞아 26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펼친 신해철 트리뷰트 콘서트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에서 가수 김범수가 부르는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눈시울은 붉어졌지만 동시에 미소 짓고 있었다.
이 곡의 원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 '그리움은 기다림의 시작이야'이었다. 신해철이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기 직전인 1988년 '강변가요제'에 '아기천사' 멤버로 출전해 이 곡을 불렀는데 예선 탈락했다. 같은 해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무한궤도' 프런트맨으로 부른 '그대에게'가 대상을 받으며 스타덤에 오른 그는 1990년 발매한 솔로 1집에 '그리움은 기다림의 시작이야'가 편곡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고 '하이틴 스타'가 됐다. 우리는 여전히 신해철을 향한 그리움과 기다림 사이에서 서성인다.
이날 공연의 주된 정서는 '애이불비(哀而不悲)'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신해철을 잃은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씻기랴. 그러나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이 삶의 미학은 우리를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신해철 아내인 넥스트유나이티드의 윤원희 대표도 이번 콘서트를 앞두고 뉴시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신해철님의 평소 팬들을 향한 마음을 제가 감히 모두 이해하거나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음악과 무대를 함께 즐기자고 자주 얘기하셨었기에, 10주기를 기점으로 더 이상 추모와 슬픔 대신, 고인이 남겨준 음악을 매개체로 함께 어우러지며 행복한 음악의 장을 추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 방면의 선두주자는 단연 신해철과 절친했던 가수 싸이(박재상·PSY)다. 첫째 날 콘서트 피날레를 장식한 싸이는 "제가 아는 형은 추모도 유쾌하게 하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문구를 스크린에 띄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챔피언' '연예인'으로 포문을 연 무대는 축제나 다름 없었다. 신해철의 신시사이저 사용 질감과 그의 창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엿보이는 '예술이야'를 부른 뒤엔 "제가 만든 곡 중에서 형이 가장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준 곡"이라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부르기 전엔 오늘 만큼은 신해철의 두 자녀에게 부르겠다고 헌정했다.
역시 화룡점정은 신해철의 곡들을 잇따라 부른 마지막이었다. 싸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덕의 무대'였다. 그는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연출력을 총동원해서 신해철을 추모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나에게 쓰는 편지', '그대에게'를 잇따라 불렀다. 웅장한 사운드는 물론 직접 준비해온 것으로 보이는 규모감 있는 영상 연출이 돋보였다. 특히 '그대에게'에선 엄청난 떼창이 펼쳐졌다.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다 같이 주먹을 하늘 위로 올리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는 당신 덕분에 잘 있다는 감사 인사였다.
이날 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커버한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 보컬 이성수는 "슬픈 얼굴, 무거운 마음으로 계시지 않았으면 해요. 마왕도 이 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고 싶을 겁니다. 지금 저희를 보면서 '너네 앉아서 뭐해?'라고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라이브를 듣고 싶으면 콘서트장으로 가라"라는 신해철이 남긴 명언으로 시작한 이날 콘서트는 또한 최근 밴드 붐이 어떻게 전승돼 온 것인지도 확인케 했다. 신해철은 국내 대중음악 장르의 백화제방 시대로 통하는 1990년대를 관통하는 동안 밴드 신을 지켜온 주인공이다.
싸이는 "전 댄스 음악을 하는 댄스 가수죠. 24년째 이런 것만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가 무작정 댄스만 하는 게 아니라 오늘처럼 모든 공연에서 밴드와 함께 협연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궁극적 이유, 명분, 그리고 당위성이에요. 밴드와 협연을 알려준 게 형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의 포문을 연 팀도 역시 신해철이 이끌며 국내 밴드 신에 굵은 획을 그은 '넥스트(N.EX.T)'였다. 넥스트 멤버 김세황·김영석·이수용의 연주에 맞춰 신해철 추모 콘서트에 꾸준히 참여해온 홍경민을 비롯 '플라워' 고유진, '신화' 김동완이 '넥스트 유나이티드'로 뭉쳐 넥스트, 신해철 노래를 불렀다. '더 디스트럭션 오브 더 셸(The Destruction Of The Shell)', '라젠카, 세이브 어스', '더 드리머', '호프', '머니', '코메리칸 블루스' 등이 강렬한 하드 록 사운드로 울려퍼졌다. 홍경민의 샤우팅, 고유진의 고음, 김동완의 세련된 보컬이 돋보였다. 고유진은 "넥스트 형님들 반주에 노래를 불러 영광이에요. 명곡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김영석은 "저희는 해철이 노래가 계속 불리길 원하고 그 노래가 그리운 추억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해리빅버튼은 터질 듯한 역동적인 사운드로, 모던록 밴드 '넬'은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몽환적인 조명 연출로 밴드 라이브 공연의 가치를 확인시켜줬다. 이날 K팝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예성도 참여했는데 그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록 A'팀으로 1년간 있었다는 뒷얘기를 전하며 밴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신해철은 모두에게 각자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의미가 크다는 건 공통점이었다. 김동완은 "나이 차이도 많고 음악 교류도 거의 없었지만 인격적, 인간적으로 제게 큰 영향을 주신 분"이라면서 "'카르페 디엠'(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를 구현하시면서 사셨던 분이에요. 이념과 신념 그리고 희망이 담긴 촌철살인 노래를 많이 만드셨다"고 기억했다.
올해 데뷔 19주년을 맞은 예성은 많이 떨린다며 "선배님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컸어요. 선배님의 오래 팬인데 친분은 없어요. 마왕으로서 거침 없이 솔직한 말씀을 하시고 어려운 분이라 생각했었는데, 라디오에 출연했을 당시 친절하게 반겨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넬의 이정훈은 "신해철 선배님과 넥스트 노래 덕분에 제 사춘기와 20대를 견뎌냈다"고 말했다. '날아라 병아리'를 부른 뒤 넬의 프런트맨 김종완은 "이 곡은 당시 수없이 불렀던 노래"라고 했다. 너무 흥분해서 구두의 굽을 부러트린 '마마무' 솔라는 "이번 공연에 참여한 것이 가문의 영광"이라고 벅차했다.
김범수는 "사춘기 제 첫 컬렉션이 선배님의 노래였을 정도로, 오랜 팬인데 후배로서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린 적이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올해가 데뷔 25주년이라는 그는 "돌아가신 때 나이와 활동 경력이 지금의 저와 비슷한데 전 선배님의 업적의 반의 반도 못 이뤘다"면서 "앞으로 열심히 '여행'하듯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오늘만큼은 딱 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부르고 싶다"며 자신의 대표곡 '보고 싶다'를 들려줬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제이홉도 짧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신해철을 그리워하고 공연을 응원했다. 방탄소년단과 신해철은 2020년 12월31일 하이브(당시 빅히트 레이블즈)의 합동 콘서트 '2021 뉴 이어스 이브 라이브 프레즌티드 바이 위버스(NEW YEAR'S EVE LIVE presented by Weverse)'를 통해 간접적인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인공지능(AI) 기술로 제작한 홀로그램을 통해 신해철과 빅히트 레이블스 소속 가수들의 협업 무대가 펼쳐졌다. 방탄소년단은 협업 무대에 직접 참여는 안 했으나, 멤버 슈가가 신해철을 기리는 헌정 무대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슬픔은 사적 측면과 공적인 측면으로 나눠진다. 이날은 그 두 개가 합쳐져 연대했다. 무엇보다 진지함과 진정함은 다르다는 걸 특기한 공연이다. 추모와 슬픔이라는 진지함이 주를 이루는 방식이 아닌, 축제의 장을 통해 진정해지는 법을 우리는 이번 신해철 헌정 콘서트를 통해 배운다.
러닝타임이 4시간30분을 훌쩍 넘겼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다. 서울 도심에서 거리가 있는 공연장이지만 신해철의 헌정 공연의 질을 높이는 데 이만한 곳도 없었다. 객석 어디에서든 무대 위를 잘 바라볼 수 있고 사운드가 특히 명징했다. 두 뿔을 포함한 마왕을 형상화한 무대도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신해철 팬클럽 철기군은 여전히 객석을 지켰다. 이번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 관객들도 눈에 종종 띄웠다. 신해철이 세상에 남긴 것들을 함께 볼 수 있는 특별 전시회 '마왕의 아지트'까지 둘러본 50대 초반의 김정신 씨는 "아이에게 엄마의 청춘 시절을 위로해준 노래를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내 밴드붐의 원조 중 한 팀 '송골매'의 한 쪽 날개인 DJ 배철수는 자신이 진행하는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코너 '철수생각' 형식으로 내레이션을 녹음해 주최 측에 전달하는 것으로 신해철을 추모했다.
배철수는 "세상의 성공 논리를 줏대 있게 거절하면서도 스스로 행복하려는 사람 역시 푼수라 불리기 쉽다"며 고인을 푼수로 기억했다. 그러면서 "가난하고 짐이 많았던 한 시절 그때 따듯하게 위로해준 그 음성엔 이데올로기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가장 낮은 마음이 들어 있었다"고도 했다. 라디오 작가로 신해철과 함께 일했던 허수경 시인도 가을에 먼 길을 떠난 사실을 상기하며 "가을엔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자주 몸살을 앓는다. 시간이 흘러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마음보다 먼저 몸이 그를 기억하며 아파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성복 시인의 말을 골라 치료제로 삼았다.
"요즈음 나는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 앞에 서 있다. '당신' 앞에서 나는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경건한 느낌을 갖는다. 처음으로 나는 '당신'과 연애한다. '당신'은 내가 찾아 헤매던 '숨은 그림'이고 나의 삶은 '당신'이라는 집으로 가는 길이다."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는 신해철 10주기 당일인 27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열린다. 넥스트 유나이티드 멤버들이 그대로 나오고 이승환, 전인권밴드, 국카스텐, 에피톤 프로젝트,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엑디즈)가 고인을 기억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마왕' 신해철(1968~2014)의 대표곡은 셀 수 없으나, 10주기 당일만큼은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내세워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꼭 10년 전인 2014년 10월27일 의료 사고로 46세의 나이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더 이상 이제 우리가 아파하지 않기를 하늘에 있는 그가 바랄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으니까.
㈜넥스트유나이티드·㈜드림어스컴퍼니가 신해철의 10주기를 맞아 26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펼친 신해철 트리뷰트 콘서트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에서 가수 김범수가 부르는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눈시울은 붉어졌지만 동시에 미소 짓고 있었다.
이 곡의 원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 '그리움은 기다림의 시작이야'이었다. 신해철이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기 직전인 1988년 '강변가요제'에 '아기천사' 멤버로 출전해 이 곡을 불렀는데 예선 탈락했다. 같은 해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무한궤도' 프런트맨으로 부른 '그대에게'가 대상을 받으며 스타덤에 오른 그는 1990년 발매한 솔로 1집에 '그리움은 기다림의 시작이야'가 편곡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고 '하이틴 스타'가 됐다. 우리는 여전히 신해철을 향한 그리움과 기다림 사이에서 서성인다.
이날 공연의 주된 정서는 '애이불비(哀而不悲)'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신해철을 잃은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씻기랴. 그러나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이 삶의 미학은 우리를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신해철 아내인 넥스트유나이티드의 윤원희 대표도 이번 콘서트를 앞두고 뉴시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신해철님의 평소 팬들을 향한 마음을 제가 감히 모두 이해하거나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음악과 무대를 함께 즐기자고 자주 얘기하셨었기에, 10주기를 기점으로 더 이상 추모와 슬픔 대신, 고인이 남겨준 음악을 매개체로 함께 어우러지며 행복한 음악의 장을 추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 방면의 선두주자는 단연 신해철과 절친했던 가수 싸이(박재상·PSY)다. 첫째 날 콘서트 피날레를 장식한 싸이는 "제가 아는 형은 추모도 유쾌하게 하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문구를 스크린에 띄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챔피언' '연예인'으로 포문을 연 무대는 축제나 다름 없었다. 신해철의 신시사이저 사용 질감과 그의 창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엿보이는 '예술이야'를 부른 뒤엔 "제가 만든 곡 중에서 형이 가장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준 곡"이라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부르기 전엔 오늘 만큼은 신해철의 두 자녀에게 부르겠다고 헌정했다.
역시 화룡점정은 신해철의 곡들을 잇따라 부른 마지막이었다. 싸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덕의 무대'였다. 그는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연출력을 총동원해서 신해철을 추모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나에게 쓰는 편지', '그대에게'를 잇따라 불렀다. 웅장한 사운드는 물론 직접 준비해온 것으로 보이는 규모감 있는 영상 연출이 돋보였다. 특히 '그대에게'에선 엄청난 떼창이 펼쳐졌다.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다 같이 주먹을 하늘 위로 올리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는 당신 덕분에 잘 있다는 감사 인사였다.
이날 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커버한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 보컬 이성수는 "슬픈 얼굴, 무거운 마음으로 계시지 않았으면 해요. 마왕도 이 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고 싶을 겁니다. 지금 저희를 보면서 '너네 앉아서 뭐해?'라고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라이브를 듣고 싶으면 콘서트장으로 가라"라는 신해철이 남긴 명언으로 시작한 이날 콘서트는 또한 최근 밴드 붐이 어떻게 전승돼 온 것인지도 확인케 했다. 신해철은 국내 대중음악 장르의 백화제방 시대로 통하는 1990년대를 관통하는 동안 밴드 신을 지켜온 주인공이다.
싸이는 "전 댄스 음악을 하는 댄스 가수죠. 24년째 이런 것만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가 무작정 댄스만 하는 게 아니라 오늘처럼 모든 공연에서 밴드와 함께 협연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궁극적 이유, 명분, 그리고 당위성이에요. 밴드와 협연을 알려준 게 형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의 포문을 연 팀도 역시 신해철이 이끌며 국내 밴드 신에 굵은 획을 그은 '넥스트(N.EX.T)'였다. 넥스트 멤버 김세황·김영석·이수용의 연주에 맞춰 신해철 추모 콘서트에 꾸준히 참여해온 홍경민을 비롯 '플라워' 고유진, '신화' 김동완이 '넥스트 유나이티드'로 뭉쳐 넥스트, 신해철 노래를 불렀다. '더 디스트럭션 오브 더 셸(The Destruction Of The Shell)', '라젠카, 세이브 어스', '더 드리머', '호프', '머니', '코메리칸 블루스' 등이 강렬한 하드 록 사운드로 울려퍼졌다. 홍경민의 샤우팅, 고유진의 고음, 김동완의 세련된 보컬이 돋보였다. 고유진은 "넥스트 형님들 반주에 노래를 불러 영광이에요. 명곡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김영석은 "저희는 해철이 노래가 계속 불리길 원하고 그 노래가 그리운 추억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해리빅버튼은 터질 듯한 역동적인 사운드로, 모던록 밴드 '넬'은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몽환적인 조명 연출로 밴드 라이브 공연의 가치를 확인시켜줬다. 이날 K팝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예성도 참여했는데 그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록 A'팀으로 1년간 있었다는 뒷얘기를 전하며 밴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신해철은 모두에게 각자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의미가 크다는 건 공통점이었다. 김동완은 "나이 차이도 많고 음악 교류도 거의 없었지만 인격적, 인간적으로 제게 큰 영향을 주신 분"이라면서 "'카르페 디엠'(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를 구현하시면서 사셨던 분이에요. 이념과 신념 그리고 희망이 담긴 촌철살인 노래를 많이 만드셨다"고 기억했다.
올해 데뷔 19주년을 맞은 예성은 많이 떨린다며 "선배님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컸어요. 선배님의 오래 팬인데 친분은 없어요. 마왕으로서 거침 없이 솔직한 말씀을 하시고 어려운 분이라 생각했었는데, 라디오에 출연했을 당시 친절하게 반겨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넬의 이정훈은 "신해철 선배님과 넥스트 노래 덕분에 제 사춘기와 20대를 견뎌냈다"고 말했다. '날아라 병아리'를 부른 뒤 넬의 프런트맨 김종완은 "이 곡은 당시 수없이 불렀던 노래"라고 했다. 너무 흥분해서 구두의 굽을 부러트린 '마마무' 솔라는 "이번 공연에 참여한 것이 가문의 영광"이라고 벅차했다.
김범수는 "사춘기 제 첫 컬렉션이 선배님의 노래였을 정도로, 오랜 팬인데 후배로서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린 적이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올해가 데뷔 25주년이라는 그는 "돌아가신 때 나이와 활동 경력이 지금의 저와 비슷한데 전 선배님의 업적의 반의 반도 못 이뤘다"면서 "앞으로 열심히 '여행'하듯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오늘만큼은 딱 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부르고 싶다"며 자신의 대표곡 '보고 싶다'를 들려줬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제이홉도 짧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신해철을 그리워하고 공연을 응원했다. 방탄소년단과 신해철은 2020년 12월31일 하이브(당시 빅히트 레이블즈)의 합동 콘서트 '2021 뉴 이어스 이브 라이브 프레즌티드 바이 위버스(NEW YEAR'S EVE LIVE presented by Weverse)'를 통해 간접적인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인공지능(AI) 기술로 제작한 홀로그램을 통해 신해철과 빅히트 레이블스 소속 가수들의 협업 무대가 펼쳐졌다. 방탄소년단은 협업 무대에 직접 참여는 안 했으나, 멤버 슈가가 신해철을 기리는 헌정 무대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슬픔은 사적 측면과 공적인 측면으로 나눠진다. 이날은 그 두 개가 합쳐져 연대했다. 무엇보다 진지함과 진정함은 다르다는 걸 특기한 공연이다. 추모와 슬픔이라는 진지함이 주를 이루는 방식이 아닌, 축제의 장을 통해 진정해지는 법을 우리는 이번 신해철 헌정 콘서트를 통해 배운다.
러닝타임이 4시간30분을 훌쩍 넘겼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다. 서울 도심에서 거리가 있는 공연장이지만 신해철의 헌정 공연의 질을 높이는 데 이만한 곳도 없었다. 객석 어디에서든 무대 위를 잘 바라볼 수 있고 사운드가 특히 명징했다. 두 뿔을 포함한 마왕을 형상화한 무대도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신해철 팬클럽 철기군은 여전히 객석을 지켰다. 이번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 관객들도 눈에 종종 띄웠다. 신해철이 세상에 남긴 것들을 함께 볼 수 있는 특별 전시회 '마왕의 아지트'까지 둘러본 50대 초반의 김정신 씨는 "아이에게 엄마의 청춘 시절을 위로해준 노래를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내 밴드붐의 원조 중 한 팀 '송골매'의 한 쪽 날개인 DJ 배철수는 자신이 진행하는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코너 '철수생각' 형식으로 내레이션을 녹음해 주최 측에 전달하는 것으로 신해철을 추모했다.
배철수는 "세상의 성공 논리를 줏대 있게 거절하면서도 스스로 행복하려는 사람 역시 푼수라 불리기 쉽다"며 고인을 푼수로 기억했다. 그러면서 "가난하고 짐이 많았던 한 시절 그때 따듯하게 위로해준 그 음성엔 이데올로기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가장 낮은 마음이 들어 있었다"고도 했다. 라디오 작가로 신해철과 함께 일했던 허수경 시인도 가을에 먼 길을 떠난 사실을 상기하며 "가을엔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자주 몸살을 앓는다. 시간이 흘러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마음보다 먼저 몸이 그를 기억하며 아파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성복 시인의 말을 골라 치료제로 삼았다.
"요즈음 나는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 앞에 서 있다. '당신' 앞에서 나는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경건한 느낌을 갖는다. 처음으로 나는 '당신'과 연애한다. '당신'은 내가 찾아 헤매던 '숨은 그림'이고 나의 삶은 '당신'이라는 집으로 가는 길이다."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는 신해철 10주기 당일인 27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열린다. 넥스트 유나이티드 멤버들이 그대로 나오고 이승환, 전인권밴드, 국카스텐, 에피톤 프로젝트,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엑디즈)가 고인을 기억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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