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0
  • CoinNess
  • 20.11.02
  • 2
  • 0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하얼빈'(12월24일 공개)은 노작(勞作)이다. '내부자들'(2015) '남산의 부장들'(2020)의 우민호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제작비 약 300억원을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장면이 마치 회화로 보일 정도로 세공돼 있다. 근래 나온 한국영화 중 관객 눈을 가장 즐겁게 해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현빈·이동욱·박정민·조우진·전여빈 등 배우들의 연기 역시 더할 나위 없다. 우 감독이 그린 그림을 최종 완성해주는 게 이들의 그 아련한 눈빛일 게다. 다만 이처럼 화려한 외양과 비교할 때 속에 담긴 알맹이는 종종 앙상하고 옹졸하다. 넓게 파지도 그렇다고 깊게 파고들어가지도 못하는 이야기 탓에 그 멋들어진 쇼트(shot)들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얼빈'은 반드시 극장에서, 스크린이 최대한 큰 상영관에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대로 이 영화는 ARRI ALEXA 65라는 카메라로 주로 찍었다. 이 기기를 쓴 게 '듄' 시리즈나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 같은 영화들이니까 '하얼빈'이 추구한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카메라를 들고 6개월 간 몽골·라트비아·한국에서 촬영했다. 1909년 안중근과 독립군이 그 해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에 오는 조선총독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한 여정을 그리면서 이들의 주 활동 무대였던 중국 만주 일대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 지역을 근사하게 재현하는 게 목표였고, 이 작품은 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이견이 있기 어렵다.

명암을 극대화하고, 채도와 명도를 모두 낯추며, 컷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고, 풍광을 적극 드러낸다. '하얼빈'은 이같은 방식으로 안중근과 그 동지들의 마음, 그들이 내뿜는 기운, 그때의 그 분위기를 시각화 하는 듯하다. 얼어붙은 호수에 홀로 선 한 남자, 담배 연기에 휘감겨 있는 식탁,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린 누군가의 두려움, 광야에 외롭게 달려가는 일행의 모습은 분명 쉽게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다. 우 감독은 채우는 것 못지 않게 비워내는 데 공을 들인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더 좋은 장면들은 대개 여백이 많을 때 나타난다. 대화가 멈춰버린 순간을 부러 채워넣지 않을 때, 텅 비어 있는 공간을 사람으로 메우려 하지 않을 때, 해명이 필요할 법한 지점에서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을 때다.


배우들은 말 그대로 열연한다. 현빈의 안중근은 절절하다. 이동욱의 이창섭은 용맹하다. 박정민의 우덕순은 애틋하고, 조우진의 김상현은 애처롭다. 전여빈의 공부인은 꼿꼿하고, 유재명의 최재형은 넉넉하다. 박훈의 모리 다쓰오는 모질고, 릴리 프랭키의 이토 히로부미는 얼얼하다. 특히 돋보이는 건 현빈과 이동욱이다. 현빈은 전에 보여준 적 없는 무게감으로 '하얼빈'의 중심을 잡는다. 이동욱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얼빈'을 포함해 우 감독 영화는 배우 연기가 돋보이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아마도 그건 단순히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함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적역을 맡기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장점이 뚜렷한만큼 단점도 분명하다. '하얼빈'은 안중근이 이토에게 총을 쏘기까지 품고 있던 마음을 들여다 보려 한다. 그러나 이 인물 탐구는 상영 시간 114분 내내 좀체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돈다. 만약 이 영화를 러닝 타임보다 길게 느끼는 관객이 있다면 그건 이 이야기가 무겁기 때문이 아니라 안중근의 마음이 죄책감과 두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용기를 순환 반복하고만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라 구한 영웅을 대하는 한국 관객의 엄숙한 태도를 고려했을 때, 애초에 안중근 캐릭터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점도 참작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객이 여태 봐왔던 독립운동가 캐릭터와 '하얼빈'의 안중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다소 어설픈 '밀정 찾기' 스토리는 '하얼빈'의 각본을 더 야위어 보이게 한다. 이 영화 최종 클라이맥스인 이토 저격 때까지 서스펜스를 유지해주는 건 과연 누가 밀정이며, 밀정의 세작질을 어떻게 극복하고 안중근을 이토 앞까지 데려다 놓을 것인가가 돼야 한다. 다시 말해 안중근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만큼 스파이물로서 매력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밀정의 정체를 추측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거니와 서로 속고 속이는 과정 역시 짜임새가 부족해 긴장감을 오래 끌고 가지 못한다. 관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너무 많은 것을 대사나 내레이션, 자막으로 처리한 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하얼빈'의 저 멋들어진 그림들은 때로 과시적으로 보인다. 따로 떼어 놓고 볼 때 하나같이 아름답던 그 신(scene)들이 치밀하지 못한 각본과 만나 전체 이야기와 호응하지 못한 채 순간의 감정만 남겨 놓는 것 같다. 서사와 별개로 의아할 정도로 시각적으로 과장된 표현 역시 이 작품의 목표를 헷갈리게 한다. 독립군이 폭약을 구하기 위해 옛동지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긴 몽타주는 그 의도는 알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꾸며져 있다(옛동지의 외모 역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부감으로 잡아버린 선택에는 많은 말이 오가게 될 것이다. 우 감독은 이 장면을 "동지들이 하늘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댓글 0

추천+댓글 한마디가 작성자에게 힘이 됩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전국 휴대폰성지] 대한민국 TOP 성지들만 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