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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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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어프렌티스'(10월23일 공개)는 도널드 트럼프에 관한 영화이지만, 트럼프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알리 압바시(Ali Abbasi·43) 감독은 청년 트럼프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로 그 트럼프가 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긴 한다. 다만 최종 목표는 결국 트럼프로 미국을 보려는 것 같다. 비약하자면 '어프렌티스'는 미국에 관한 영화다. 극 중 트럼프는 토크쇼에 나와 자신의 성공 원칙을 이렇게 정리한다. ①공격 또 공격 ②아무것도 인정하지 말고 부인할 것 ③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말 것. 진행자는 말한다. "딱 미국의 외교 전술이군요." 그래서 압바시 감독은 "트럼프가 이 영화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역시나 트럼프는 자신의 원칙 그대로 압바시 감독을 "쓰레기"라면서 이렇게 공격했다. "거짓되고 저속한 이 영화가 망하길 바랍니다."


어프렌티스(apprentice)는 수습생이라는 뜻. 영화는 성공을 갈망하는 어리숙한 청년 트럼프(서배스천 스탠)가 정·재계 인사들과 얽히고 설킨 부패한 변호사 로이 콘(제러미 스트롱)을 만나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기술을 체화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앞서 언급한 트럼프의 원칙 세 가지가 바로 콘이 가르친 것이다. '어프렌티스'는 트럼프가 출연한 NBC TV쇼 '어프렌티스'(2004)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부동산업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뒀지만 일개 사업가에 지나지 않던 트럼프를 대중에 각인한 프로그램이다. 트럼프 하면 떠오르는 유행어 중 하나인 "You're fired(당신 해고야)"가 여기서 나왔다. TV쇼에서 쌓은 인지도가 훗날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되고, 콘에게서 배운 것들 활용해 그가 미국의 얼굴이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어프렌티스'라는 제목은 영화 내외에서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하다.

'어프렌티스'는 압바시 감독의 전작 '성스러운 거미(2022)와 데칼코마니다. 이란계 덴마크인인 그는 2000년대 초 이란 마시하드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인 성매매 여성 연쇄살인을 영화 속으로 가져와 여성에 대한 이란 사회의 억압과 폭력,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돼버린 종교 극단주의를 직격한 바 있다. 이번엔 이 대척점에서 트럼프 성장사를 극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자본주의로 표현되는 미국 경제의 탐욕, 민주주의로 포장된 미국 정치의 타락 등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난맥상을 트럼프를 도구 삼아 짚어낸다. 개인의 타락은 못된 인성이 아니라 병든 사회 시스템에서 시작된다는 것. 압바시 감독이 '경계선'(2018)의 판타지에서 벗어나 사실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는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내놓은 건 지역·나라·인종을 막론하고 전 세계가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을 잃어 가는 중이라고 진단했기 때문일 게다.


이 일그러진 아메리칸 드림을 '어프렌티스'는 선택의 결과로 본다. 젊은 트럼프가 현재 트럼프가 된 건 천성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라는 것. 압바시 감독이 트럼프 삶 중 그가 막 부동산 거물로 올라서던 순간을 택해 그 기간을 콘과 관계 속에서 담아낸 것은 악마의 손을 잡은 게 어찌됐든 트럼프의 결정이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다. 그래서 압바시 감독은 잘생긴 금발의 트럼프는 탈모와 비만에 시달리는 트럼프로, 순정남 트럼프는 아내마저 성폭행하는 트럼프로, 콘의 방식에 겁을 먹던 순진한 트럼프는 콘보다 더한 방법으로 멘토 콘마저 담궈버리는 징글징글한 트럼프로 변모시킨다. 이 부정적 청출어람은 트럼프를 연기한 배우 서배스천 스탠의 얼굴로 드러난다. 초중반부까지만 해도 트럼프와 그리 닮아 보이지 않던 스탠은 어느 순간 우리가 아는 바로 그 트럼프가 돼 있다.

앞서 언급했던 맥락에서 보자면 망가져 가는 트럼프는 한 때 위대하다고 평가 받았던 미국이 빛보다는 어둠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힘을 증폭해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훗날 자신의 선거 구호가 되는 "Make America Great Again(MAGA)"이라는 문구를 보게 된 트럼프는 말한다. "맞아. 위대했던 때가 있었던 것 같아." 이렇게 '어프렌티스'는 미국 어둠의 상징처럼 그려놓은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는 가장 밝은 자리에 올라가는 과정에서 'MAGA'를 활용했다는 걸 넌지시 드러내 관객을 쓴웃음 짓게 한다. 다만 '어프렌티스'의 이 화법이 신선하진 않다. 한 개인을 통해 특정 사회를 진단하는 건 영화·드라마·소설 등에서 적지 않게 쓰이는 방식이고, 트럼프가 곧 미국이라는 관점 역시 새롭지 않다. 다만 살아 있는 권력을 대놓고 겨냥하는 이 용기 있는 시도는 그것 자체로 평가 받아야 한다.


트럼프를 연기한 스탠과 콘을 맡은 스트롱은 더할 나위 없는 연기로 '어프렌티스'를 받든다. 스탠은 국내 관객에겐 '어벤져스' 시리즈의 윈터솔져 정도로 알려진 배우. 트럼프의 행동, 말투, 제스쳐, 버릇, 호흡을 완벽하게 모사하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 트럼프 스스로 만들어낸 괴물성을 담아내는 순간들을 목도할 때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스트롱은 그에게 에미 트로피를 안긴 시리즈 '석세션'의 연기를 단번에 넘어선다. 쾌락과 탐욕에 절여져 생기라곤 찾을 수 없는 그의 눈빛은 어떤 배우도 보여준 적 없었던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마지막 남은 한 줌의 인간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때 캐릭터의 입체성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실감하게 된다. 내년에 열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탠이 남우주연상을, 스트롱이 남우조연상을 받는다고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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