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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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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개척교회 담임목사인 성민찬은 평범한 종교인이었다. 목사로서 신앙적 사명과 생활인으로서 세속적 욕망을 함께 가진 그는 거듭된 현실의 고난 속에서 신의 계시로 해석해봄직한 일들을 연달아 마주하며 변해간다. 급기야 성민찬은 자신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 역시 계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며 폭주한다. 지난 2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은 성민찬의 행적과 이 과정에서 그와 얽히게 된 형사 이연희, 성범죄자 권양래를 엮어 간다.

말하자면 성민찬은 맹목적 믿음에 잡아먹힌 목사 쯤 될 것이다. 몇 마디 말로는 딱 떨어지지 않고 붕 떠 있는 듯한 이 캐릭터를 땅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건 배우 류준열(39)이다. 류준열은 성민찬을 어디서 본 듯한 목사님으로 극에 안착시키는 건 물론이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신(scene)을 단번에 장악하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이야기를 주도한다. 류준열은 "인간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를 기다려왔고, '계시록'이 바로 그런 영화였기에 큰 고민없이 심플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계시록'의 류준열 연기 중 우선 눈에 띄는 건 자연스러운 목사 연기다. 그러니까 류준열의 성민찬은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기독교인의 모습이다. 인사가 몸에 베어 있는 듯한 모습, 서글서글한 말투, 만면에 띈 미소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모습, 기도할 때의 어조 같은 게 진짜 목사 같다. 류준열은 모태신앙이라고 했다. 현재도 그는 신실한 크리스천이다. 류준열은 성민찬을 연기하기 위해 가깝게 지내는 목사들에게 직접 도움을 청했다고 했다.

"교회랑 밀접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경험이 많습니다. 작은 교회를 다닌 적도 있고, 큰 교회를 다닌 적도 있어요. 아무래도 그 경험이 이 연기에 도움을 줬습니다. 또 마음을 나누는 목사님들이 있어서 그분들의 도움도 받았죠. 정말 우리 일상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습니다. 요샌 유튜브에서도 각종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목사님들도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요. 그런 모든 걸 아우르면서 성민찬을 완성해갔습니다."

'계시록'엔 류준열의 인상적인 연기가 다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게 기도회 시퀀스다. 성민찬은 실종된 소녀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회를 열고, 교회 모든 성도가 한자리에서 기도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류준열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목사를 데려다 놓고 기도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신의 계시를 참칭하는 성민찬의 광기가 본격적으로 표출하는 순간이어서 의미가 남다른 신이기도 하다.

이 장면을 위해 류준열은 목사들에게 기도문을 부탁해 받았다고 했다. 한 가지 기도문이 아니라 여러 기도문을 놓고 가장 좋은 것들을 취사선택했다. 실제로 목사가 기도하는 걸 녹음한 뒤 반복해서 들어보기도 했다. 유튜브로 대형 교회 목사들의 기도·설교 장면을 공부했다. 그들 특유의 탁월한 전달력과 에너지를 극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기도회 장면을 촬영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찍어야 해서 꽤나 부담스러웠어요. 그래도 실제 교회에 와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미술이 잘돼 있어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실제 목사님들이 기도하는 것과 다른 게 있다면 눈을 뜨고 했다는 거예요. 교회 다니는 분들은 아실텐데 눈 뜨고 기도하는 목사님은 없어요. 하지만 전 이 장면이 더 파워풀하게 다가가는 동시에 보기에도 더 즐거운 표현이 눈을 뜨고 기도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류준열의 현실 목사 연기가 시청자를 '계시록'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면, 믿음에 취해 현실을 벗어나버린 목사 연기는 시청자를 작품 안으로 빨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류준열은 선을 넘어버린 목사가 되기 위해 연출·각본을 맡은 연상호 감독에게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그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연 감독과 반복해서 대화해가며 성민찬이라는 캐릭터를 하나 하나 완성해갔기 때문에 어떤 아이디어가 누구의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믿는 것만 믿게 되는 상황에 빠졌다는 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걸 연기로 표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고,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표현해야 보는 사람이 성민찬을 느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묻고 또 물었던 겁니다. 제 연기를 계속 의심하고 고민하고 생각하면 뭐라도 나오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질문이 많았을 때 제 연기가 더 나아지고, 작품이 더 좋아진다고 생각해요."

광기에 휩싸인 성민찬에겐 잊히지 않는 대목이 여럿 있다. 차 안에서 아내에게 회개를 강요하는 장면, 권양래를 잡아두는 덴 성공했지만 폭행을 망설이는 장면, 성민찬·이연희·권양래가 폐호텔에서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 등이다. 이 장면들에서 시청자를 몰입시키면서 동시에 당황스럽게 하는 건 성민찬의 눈물이다. 이 눈물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해석하기도 쉽지 않다. 류준열 역시 "연기 도중 자연스럽게 흐른 눈물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눈물이 흘러야 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린 장면은 하나도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감정이 차올라 눈물이 흐른 거죠. 성민찬을 단순히 악당이라고 할 순 없을 겁니다. 그는 정말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는 선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잖아요. 그때 그 감정이 격해져서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올랐다고 생각합니다. 연기를 하면서 여기서 눈물이 나오는 게 맞나, 라고 매번 고민했어요. 어쨌든 전 제 감정 그대로 연기했고 선택은 감독님의 몫이라고 봅니다."

'계시록'이 믿음에 관한 작품이었기에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류준열에게 앞으로 10년을 위해 어떤 믿음을 갖고 배우 생활을 해 나갈 거냐고 물었다. 류준열은 확신범 성민찬을 연기했으나 자신의 10년에 관해서는 전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도 이제 마흔을 바라보고 있고(웃음), 참 어려워요. 어떻게 연기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요샌 매일 매일 고민이 많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이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제 고집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 저만의 고집이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성취를 안겨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제 고집대로 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러면서도 제가 제 고집을 놔버릴 때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준 힘을 잃어버릴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계속 찾아가야 할 거예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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