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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1030022




김인국수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이 향년 78세로 영면에 들었다. 사진제공 | 한국기원
[스포츠서울]‘영원한 국수’로 불리던 한국 바둑계의 거목 김인 9단이 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유족으로는 부인 임옥규 씨와 1남이 있으며 발인은 6일,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추모공원이다.

김인 9단은 한국 바둑계에서 ‘영원한 국수’로 통했다.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우승한 후 71년 15기까지 6연패를 달성한 이후 ‘김국수’라는 별호로 불렸다.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23세의 김인은 당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조남철에게 3-1로 승리하며 국수 타이틀을 쟁취했다. 현대바둑 사상 첫 세대교체였다. 때문에 올드팬들은 김인 9단을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의 아성을 무너뜨린 기린아로 기억하고 있다.
김인-조남철.15기 국수전 도전4국
김인(왼쪽)과 조남철 9단이 1971년 운당여관 특실에서 대결한 15기 국수전 도전4국 장면.
1943년 전남 강진 바닷가에서 태어난 김인은 13세 때 바둑판을 안고 야간열차로 혼자 상경했다. 원로 김봉선과 아마 고수 이학진을 사사한 김인은 15세인 58년 프로가 됐다. 이후 63년간 한국기원 전문기사로 활약하며 1568전 860승 5무 703패의 통산전적을 남겼다. 통산 30회 우승, 22회 준우승의 기록을 남겼으며, 1968년 작성한 40연승은 현재까지 한국기원 최다연승 1위 기록이다.

62년 19세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 김인은 조남철의 소개 편지로 기타니 미노루 문하생이 됐고, 기타니 도장 사범 시절 조치훈을 지도하기도 했다. 당시 김인은 같은 또래 유망주들을 상대로 80% 전후의 승률을 기록하며 일본 바둑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63년 11월 스승 기타니 9단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 생활 20개월 만에 귀국한다. 엄격하고 규율이 강한 기타니 도장 생활이 자유분방한 성격의 김인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인-조훈현.15기 최고위전 도전1국.1975.05.08
김인 9단(왼쪽)이 1975년 최고위전 1국에서 조훈현과 대국을 벌이는 장면.
귀국한 김인은 이후 국수 6연패, 왕위 7연패, 패왕 7연패 등 국내 전 기전을 휩쓸었다. 이목이 수려하고 기품 있는 김인의 대국 태도는 바둑팬들을 매료시켰다. 중후한 기풍을 지닌 김인은 상금과 대국료로 가난한 동료들에게 밥과 술을 많이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인 9단은 2007년부터 고향 강진에서 개최된 ‘김인 국수배’에 참가하며 아마추어들과 만나는 것을 즐거워했다. 2007년 전국어린이 바둑대회로 출범한 김인국수배는 2008년 국제시니어바둑대회로 업그레이드 됐고 매년 해외에서 대회장인 전남 강진까지 출전한 선수들로 국제대회의 위상을 갖춘 바 있다.

이제 김인 9단은 2019년 10월 열린 제13회 김인국수배 국제시니어바둑대회를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남은 대회를 지켜보게 됐다.
유인근기자 ink@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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